4장 절 교
진석은 고등학교시절 성적도 상위권이고, 비교적 사교성이 좋아서 주위에 친구들이 많았다.
하지만 허물없이 속내를 털어놓는 베스트 프렌드는 4명 정도였다.
그중에 태훈이가 제일 붙임성 있고 너스레를 잘 떨어서 진석이랑 제일 친하고,
그에 비해 준섭이는 조금도 빈틈없는 완벽한 모범생 타입이고,
기철이는 좀 얌체같이 기회주의자처럼 가끔 속내를 헤깔리게 할 때가 있어서 자주 진석이랑 마찰이 있고,
민혁이는 좀 우유부단한 듯하지만 마음이 여리고 긍정적이 성격이어서 기철이와 진석이의 중재역할을 도맡아 하는 성격이다.
개학도 얼마 안 남았고 오랜만에 고등학교 때의 멤버가 뭉쳐서 부평에서 술약속이 있어서 진석이는 저녁 무렵에 약속장소로 나갔다.
“어이 친구 신수가 훤해 지셨네. 오랜만에 목매는 여자를 만나서 기분을 업그레이드 시켜 줬나?”
태훈이가 서영이를 만난 진석이를 놀리면서 자기와 헤어진 이후 무슨일이 있었는지 내심 궁금해서 설치며 물어봤다.
“그래 오랜만이다. 근데 왜 기철이가 안 보이냐?”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고 화제를 은근슬쩍 기철이에게 돌리면서 진석이는 자리에 앉았다.
“어, 기철이는 조금 늦게 온데.”
항상 단정하고 말수가 적은 준섭이가 말해줬다.
“민혁이 너도 피부가 더 좋아진 것 같다. 요즘도 누나가 네 얼굴에 맛사지 해 주시냐?”
“맛사지는 무슨 맛사지 원래 천성이 귀공자 타입인지.”
민혁이는 누나가 미용기술을 배우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민혁이가 가끔 마루타가 되어 얼굴도 빌려줘야 하고 가끔 머리도 빌려줘야 한다.
아이들은 여전히 밝은 표정이었고 분위기도 좋았다.
아마도 번번이 진석이랑 자주 부딪치는 기철이가 조금 늦게 나온다고 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1차에서 푸짐한 안주와 반주로 소주를 기분 좋게 마셔서 그러지 제법 많이 마셨는데도 적당이 기분좋게 취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때 기철이가 약속장소를 물어보는 전화가 왔고 장소를 옮겨서 자주 가는 호프집을 알려주고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호프집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자 금방 뒤따라서 기철이가 들어왔는데 혼자가 아니라 못 보던 여자애를 데리고 들어왔다.
진석이외에 다른 친구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이 됐다.
당연이 기철이 옆에는 미은이가 뒤따라오거나,
될 수 있으면 동반하지 않고 오는게 기철이가 껄끄러워 하는 친구들 사이를 배려하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은미는 4명이 친구들이 마음속으로 다들 좋아하는 유일하게 여자 고정 멤버였는데
한결같이 자상하고 순한 민혁이의 모습이 미은의 선택에 따라 친구들의 동의로 공식커플이 됐다.
공식커플이 되고나서, 미은의 온갖 투정과 변덕스러움을 웃음으로 잘 받아주던 민혁였다.
그런데 미은이는 공주병도 있고, 매번 자기 맘대로 좌지우지 되는 민혁이에게 매력 없어하는 모습이 친구들 눈에는 보였다.
둘 사이가 미지근해진 것을 눈치체고 둘 사이에 기철이가 비집고 들어가
기철이가 이제는 민혁이의 여자친구로 공식적으로 인정한 미은이를 따로 만나서 미은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그리고 친구들도 자신이 설득하겠다고 미은이를 안심시켰다.
그 때는 우정이 깨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그 누구도 기철이의 행동을 이해해주는 친구는 없었다.
그런데 마음씨 좋은 민혁이가 자신보다 미은의 결정과 행복을 전적으로 생각해줘서 자신이 남자답게 물러나겠다고 해서 일단락 졌다.
그 때도 진석이는 기철이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되서 제일 앞장서서 민혁이를 대변해 줬고,
그러다보니 기철이에게 가장 많이 입바른 소리를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사건 이후는 민혁이와 기철이 사이보다 진석이와 기철이 사이가 더 멀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평지풍파를 일으켜서 친구의 여자친구를 빼앗아갔다면 미은에게 더 잘해주고 더 배려해 줘야하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미은이 알게 여러 여자들을 만나고 다녀서 미은를 마음고생 시키고, 미은를 자신의 소유물처럼 취급한다는 얘기가 있어서
소극적인 민혁이도 기철이에게 다시 한번 미은를 잘해주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는 말까지 있었다.
근데 지금 이 자리가 어디라고 미은가 아닌 다른 여자친구를 버젓이 데리고 나왔던 것이다.
그녀는 화장은 덕지덕지 찍어 바르고 쥐새끼를 잡아먹었는지 입술은 검붉어서 한눈에 보기에도 여성스러운 미은이 하고는 천지 차이였다.
“야! 뭐들 그렇게 놀란 표정으로 있어. 영란아, 인사해 내 친구들이야.”
“안녕하세요. 기철씨, 여자친구 박영란이에요.”
‘여자친구’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그녀는 거만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진석이는 당장이라도 술상을 엎고 기철이와 한판 붙고 싶다는 생각을 억누르며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상황 설명을 듣고 나서 화를 내도 늦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영란아, 내 친구들 소개 해 줄께. 내 옆에 친구가 준섭이고, 그 옆이 태훈이, 진석이, 민혁이야.”
“어머! 기철씨가 말한 대로 다들 잘생겼네요. 그런데 다들 여자친구가 없다면서요? 조만간 제 친구들 소개해 드릴게요.”
간들어지는 목소리에 술집 작부 같은 옷차림에 기막혀 하는 모습이 분위기를 어색하게했다.
기철이에게 당장 따지고 싶은 말을 삼키며 진석이는 아무 말 없이 술만 마시자 준섭이는 계속 술잔을 채워줬다.
태훈이는 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해 여러 가지 질문을 그녀에게 했다.
“영란씨, 기철이하고는 어디서 만났어요?”
“네에... 그게요 이 앞에 스핑클스라는 나이트 있죠?
거기서 부킹해서 만났는데 원 나잇 스탠드로 끝내려고 했는데
서로 의외로 잘 맞는 것 같아서 계속만나기로 했어요.”
‘원 나잇 스탠드’ 다들 그 말이 어떤 뜻인지 집작이 가는지 당황하는 표정이었고,
기철이가 미은이를 놔두고 왜 저런 천박한 여자랑 어울리는지 도통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성격 좋은 태훈이와 기철이 영란이의 목소리만 들리고 나머지는 조용히 술 마시는데 열중했다.
“저....실례 좀 할께요. 맥주를 마시면 자주 왔다갔다 하는게 너무 귀찮네요?”
다른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쏟아놓는 그녀의 모습에 다들 계속계속 놀라고 있었다.
“너, 미은이랑은 어떻게 된 거냐?”
“어.... 그게 자꾸 미은이랑은 삐걱거려서 냉전기간이거든.”
그녀가 자리를 피해준다니 잠시나마라도 기철이의 얘기를 들을 수 있겠다 싶었는지 민혁이가 다그쳤다.
“뭐라고? 네가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 하냐?”
“야! 너 네들은 내 친군데 왜 미은이만 싸고 도냐? 그러니까 미은이가 매일 너 네들을 등에 없고 나를 마당쇠 취급하는거 아냐?”
오히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자신의 자초지정을 말할 생각도 하지 않고
다른 친구들을 몰아세우는 말로 어깃장을 놓는 기철이가 말에 다들 기막혀 할 때
진석이가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물잔을 기철이 머리에다 붓고는
“야! 나기철, 너랑은 지금 이 순간부터 절교다. 너를 더 이상은 눈뜨고 못 봐주겠다. 지저분해서....”
나직막하지만 감정을 가득 실어서 아는 말에 소름 돋을 정도였다.
“이게!”
하면서 기철이가 벌떡 일어나서 제대로 싸울 판 이였는데
태훈이가 기철이를 붙잡고 진석이는 이미 문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준섭이가 진석이를 뒤따라나갔지만 이미 보이지 않자 준섭이도 그냥 집으로 갔다.
진석이는 기철이의 면상을 한대 휘려 치고 한판 붙을까도 생각했는데
술 집안이었고 여러 사람 있는 장소에서 깨부수며 싸우고 싶지는 않아서
최대한 기철이를 모욕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기분이 씁쓸하고 우정이 뭔지 친구가 뭔지 여자가 뭔지 마구마구 머릿속이 뒤엉켜 복잡해졌다.
집에 그대로 들어가기는 싫고 마음통하는 누군가에게 푸념을 털어놓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사람이 희경이 밖에 없었다.
희경하고는 앙숙처럼 ‘아웅다웅’ 하다가도
어떤 일을 함께 진행 할 때는 성별이 다르지만
대등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에 동성친구처럼 느껴질 만큼 편하다.
“여보세요”
“희경아, 나 진석인데... 나 너네집 앞인데 잠시 만날래?”
“어! 그래, 나도 네게 할 말이 있었는데.... 잠시만 기다려.”
희경이는 밤늦게 뜻밖에 진석이에게 전화가 와서 놀랬지만,
여름방학이 다 끝나가는데 서영이랑 다시 한번 만나고 가기로 하고서는 감감무소식이라서
약속날짜를 재촉해서 빨리 잡도록 추궁할 생각으로 내일쯤 전화를 할까 생각중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