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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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령은 수추국으로 가는 도중에 천위의 태산(太山)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 이르자 간단한 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어찌 이러시는지 사연을 들어보아도 되겠습니까?”
“제가 죽인 자들에 대한 속죄 입니다.”
“…”
그렇게 말하면서 적령은 갑자기 눈물을 보였다.
“성현(成玄)장군… 그대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소. 난 지금 복수자 이며, 또한 그대들에게는 배신자가 되었소. 이 씻을 수 없는 죄를 어찌 속죄해야 할 지 모르겠소.”
“…장군…?”
적령은 제단 앞에서 소리 내어 곡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 행동에 무위는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곡은 삼일 밤, 낮 동안 계속 되었고, 그 삼일 동안 그녀는 무릎을 꿇고 일어나 앉지도 않았으며, 물조차 입에 대지 않았다.
“장군…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습니다.”
“…”
“적령…”
그의 말을 듣는지 못 듣는지 그녀는 태산을 향해 중얼거렸다.
“내 이 사무친 한을 갚으면… 곧 그대들의 뒤를 따라가 사죄하리다… 그때까지만 이 나를 참아주시오. 그럼… 불의한 저는 이만 떠나겠습니다.”
그렇게 태산을 빠져 나온 무위와 적령은 태엄(太嚴)을 통해 국경을 건너 수추의 봉신(奉神)으로 향했다.
“어찌된 사연인지 들려주면 안 되는 일입니까?”
“옛날에 저를 따르던 900 용사를 그곳에서 제가 죽였습니다.”
“…”
무위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그들은 수추국의 황도인 의현(意現)에 들어섰다.
“서(西)가 활처럼 휜 천강의 지류인 백강으로 막혀 있는 형국 입니다. 그리고 그 상류에는 백봉산이 있어 서(西)로는 범하기 어려울 듯 합니다.”
적령이 이리 말하자 무위가 말했다.
“동(東) 역시 천강이 상류이니… 북(北)으로 들어오는 길목 밖에 없군요…”
“허나 그것이 더 어렵겠죠. 북(北)이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에는 가장 강력한 방어선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군사를 크게 돌려 북에서 내려온다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전략입니다. 그 전에 모두 원정 길에 객사할 것이 분명합니다.”
“용의 군사는 어찌할지…”
“지금 용의 군사라 하셨습니까?”
“장군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까?“
“훗…”
적령은 가볍게 웃었다. 한편, 그 시각 철기주 일행은 무국의 황도인 상성(常晟)에 있었다.
“제가 전략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곳 상성은 전략적으로 그리 방어가 좋아 보이지 않군요.”
“그래… 황도를 지켜 줄 지형물이 전혀 없다.”
“하지만… 성벽이 매우 높고 견고하군요.”
“그렇구나. 이러다가 네가 나보다 더 대륙의 모든 지형과 도시에 박식하게 되겠구나…”
“별 말씀을…”
수추를 거쳐 적령은 이미 용에 복속 된 옛 봉국의 영토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녀는 계속 남하 하고 있었다.
“어찌 옛 봉의 영토를 모두 그냥 지나치시는 것입니까?”
“저는 중림에 가기 전에 본시 봉국의 사람이었습니다.”
“…”
“옛 봉국의 영토는 손바닥 보듯 하니 심려 마시기 바랍니다.”
“그럼, 어찌해서 바로 용의 영토로 향하지 않은 것입니까?”
“꼭 들어야 할 곳이 있습니다.”
한편, 철기주 일행은 이미 태상국에 있었다. 태상을 여행하던 초란은 지금까지와 다르게 마음이 심히 침체되어 있었다. 그녀는 태상의 여러 성과 마을을 철기주와 함께 염탐하면서 마치 자신의 고향에 온 그런 착각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그녀를 보며 철기주가 물었다.
“어찌 이곳에 와서는 한번도 웃지 않고 안색이 어두운 것이냐?”
“어릴적 생각이 나서 그렇습니다.”
“고향 생각인 것이냐?”
“네”
“…”
“…”
“어찌 유독 태상에서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냐?”
“제 느낌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곳의 백성은 웃는 자를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
“아니 어쩌면 제 고향보다도 더 침울해 보입니다. 제 고향은 굶주려도 웃는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그것은 태상이 이미 국운이 기울었기 때문이다.”
“…”
태상을 바라보며 초란은 한없이 마음이 아팠다. 사실 태상은 함현평야의 9할을 목진에 잃음으로해서 많은 백성이 이미 굶주리고 있었다.
적령과 무위는 옛 봉의 영토에 들어선 후 계속 남하하여 지금 영림강(盈林江) 상류의 패림(沛林)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한 적령은 또 다시 제를 올렸다. 그러자 무위가 다시 물었다.
“이곳은 또 어떤 사연이 있는 곳입니까?”
“제 스승님과 부모님이 묘소 입니다.”
“…”
무위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적령과 같이 예를 갖추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 사람은 3일 동안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있었으며, 적령은 마치 죽은 자처럼 온 몸의 모든 수분을 쏟아낼 양으로 속죄의 눈물만을 흘리고 있었다.
‘스승님… 어머니, 아버지… 이 불초한 자식을 용서해 주세요. 결국, 세분의 예언대로 저는 다시 이 운명으로 끌려왔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랬다면, 세분과 함께 봉의 천하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런데…’
철기주 일행은 마지막으로 중림으로 향하기 전에 목진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적령과 무위 일행도 용국으로 향했다.
“드디어 진양 입니다.”
“그렇군요.”
“장군”
“네”
“노파심이지만… 장군이 용에 원한이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허나, 지금은 행동을 자제해 주셔야 합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목진의 황도 선루에서도 철기주가 초란과 함께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일이 끝나면 어디로 갈 예정이죠?”
“절포진과 연성을 염탐한 후에 운산을 거쳐 중림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아쉽네요. 벌써 6개월이 다 되어 가다니…”
“…”
초란은 이제 곳 이 여행이 끝난다는 것이 너무나 애석했다.
‘이렇게 그냥…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날 수는 없는 거인가…’
패림에서 제를 마치고 곧바로 용의 황도 진양에 들어섰던 적령 일행은 며칠동안 그곳에서 정볼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홀로 정보를 수집하던 적령은 그만 진양의 대로에서 운명처럼 장수 악귀 모격하게 되었다.
‘헉! 저건…’
적령은 악귀의 모습을 보자마자 그만 이성으로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곧 악귀의 앞을 가로 막아 섰다. 그러자 수행하는 자도 없이 술에 취해 대로를 걷던 악귀는 자신을 가로막는 적령에게 노기를 드러냈다.
“누군데 감히 날 가로막는 것이냐?”
“날 벌써 잊은 것이냐?”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네놈이 누구길래…”
적령은 얼굴에 두른 두건을 벗어 얼굴을 보였다. 그러나 술에 취해 눈이 흐려진 악귀는 한쪽 눈에 안대를 한 그녀를 여전히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도 모르겠는가?”
“…도대체…”
악귀는 눈을 비벼 적령을 유힘히 바라 보았다.
“너… 넌!”
악귀는 그 순간 그만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이제야 나를 알아 보겠느냐?”
“…”
악귀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이미 적령의 칼이 달빛에 번쩍였다.
“크윽~”
적령은 순식간에 악귀의 사지를 잘라내고는 몸통만 뒹구는 그의 가슴을 내리 밟으며 물었다.
“말해라!”
그러나 그 순간 악귀는 사지가 잘렸음에도 조금도 기하 흐뜨러지지 않고 오히려 정신이 맑아져 있었다.
“무엇을 말이냐?”
“그 일에 감담한 자가 너 말고 또 누가 있는냐?”
“그들은 모두 용국의 영웅들이다. 네가 안다고 해서 어찌할 수 있는 인물들이 아니다. 취한 나를 쓰러뜨렸다고 그들도 어찌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것은 내 문제니라. 어서 대답이나 하거라.”
“크헉…”
악귀는 갑자기 각혈을 하며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이대로 그냥 조용히 살 수는 없는 것이냐?”
“닥쳐라! 나를 세상에 불러낸 것은 너희들이 아니더냐?”
“아들이 일은 실수였다. 내 진의가 아니었다.”
“이제와서 변명은 필요없다. 이미 내 아들은 죽었다.”
“그런가…”
악귀는 계속 피를 쏟으면서도 또렷히 말했다.
“그 음모에 가담한 자들은 군사 미란과 제상 무린… 그리고 장수 정찬우, 요적란, 이서기와 자현룡, 함덕, 유란… 그리고 나 악귀다.”
“…”
“이것으로 속죄가 된 것이냐?”
“하나가 빠졌다.”
“무슨 말이냐?”
“황제다.”
“훗… 그것은 나도 모른다. 황제가 유허를 했는지는 미란군사와 제상만이 아는 일이다.”
“…”
“되었으면 이제 날 보내다오.”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느냐?”
악귀는 고통속에서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슬픈 눈으로 적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하다.”
“…”
“그리고 복수는 잊어라! 살고 싶다면… 절대로 그들을 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며 악귀는 서서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눈을 감은 악귀심장에 적령은 무참히 칼을 밀어넣었다. 그리고 악귀의 심장이 멎어갈 때 그의 귀에 대고 적령이 속삭였다.
“나는 봉의 장수 묘령이었으며, 중림의 촌부 운향이다. 그리고 지금은 목진의 전쟁의 귀신이라 불리는 적령 이다.”
그녀가 이 말을 악귀의 귀에 싸늘하게 속삭이고 물어섰을 때, 이미 숨을 거둔 악귀는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그렇게 그날 장수 악귀는 자국의 황도인 진양의 대로에서 참살 되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날 밤.
적령과 무위는 말을 달려 전진으로 향했다.
“죄송합니다. 우발적인 사고였습니다.”
“…”
무위는 아무 대답도 해 주지 않았다. 그들은 곧 전진에서 상선을 타고 중림으로 향했으며, 용국은 황도에서 장수 악귀가 대로변에서 주살된 사건으로 벌집을 수셔 놓은 듯 소란스러웠다.
#07
철기주와 초란이 중림주에 돌아온 때는 이미 추수가 시작한 절기가 되어서였다. 목진국의 운산을 거쳐 중림에 들어선 철기주는 운산 기슭에서 자신의 추억이 담긴 집에 접하게 되었다.
“이 무덤들은… 혹시…”
“그래, 이 무덤들 속에 내 아내와 아들이 날 원망하며 묻혀 있단다.”
“어느 것이죠?”
“처음 왔을 때 팻말이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파 보았지만… 그것이 아내와 아들의 것인지 조차 확일할 수 없었다.”
“…”
“나는 이 무덤에 들어 찬 시신 중에 어느 것이 아내와 아들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가 이 무덤들을 만들어주었는지 조차…”
“…장군님…”
철기주는 곧 널려 있는 무덤과 불타 재만 남은 집을 향해 절을 올렸다.
“항상 같은 이야기지만, 또 용서를 빌겠소… 이 제국을 통일하면, 반드시 다시 이곳에 돌아와 봉양하겠소. 그럼…”
철기주가 일어서 돌아서자 초란도 곧 절을 하고 무엇인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
그날 밤.
철기주는 초류향에 머물렀다. 그리고 적령과 무위 일행도 배를 타고 용국에서 중림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장군께서는 먼저 본국으로 돌아가시지요.”
“적령장군께서는 어찌하려고…”
“옛 집에 들른 후에 초류향에 며칠 머물까 합니다.”
“그 초란이라는 기생을 만나시는 것입니까?”
“네… 절 위로해 주는 친구 입니다.”
“친구라…”
다음날.
철기주는 새벽부터 출타를 준비하고 있었다.
“새벽부터 어디를 가시는 것입니까?”
“며칠 비울까 한다.”
“네?”
“이곳 중림에서 활동하고 있는 용의 첩자들과 정보를 교환 할 생각이다. 그들은 자신들 조차 상대방을 모르게 활동하기 때문에 내가 직접 방문을 해 정보를 얻을 것이다.”
“용은 어느 나라보다도 정보를 중시하는 군요.”
“나의 사매가 하는 일이란다. 사실, 우리 군 내부에서 조차 사매의 정보망은 비밀이란다.”
“그 사매란 분… 정말 대단한 분이시군요.”
“나도 그리 생각한다. 아무튼, 항상 다른 곳에 머물면서 비밀리에 접촉을 할 예정이기에 이곳에도 들르지 않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저도 좀 쉬어야겠습니다.”
한편, 무위를 배웅하고 운산을 집을 찾았던 적령은 다시 산을 내려와 초류향을 찾았다. 그 시각 초란은 초류향의 주인인 처연의 처소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 여행의 여독은 아직인 것이냐?”
“그렇지는 않지만, 우선은 장군님께서 이곳에 일주일을 머문다 하시니 그 동안만 이라도 다른 손님을 맞고 싶지 않아요.”
“사실, 나는 이번에 네가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럴 리 없잖아요. 제가 갈 데가 어디 있다고…”
“그 ‘검은 장수’님이…”
“검은 장수?”
“여기서는 다들 부른단다. ‘검은 장수’, ‘붉은 장수’ 말이다.”
“참, 촌스러운 별명이네요.”
“네가 그분들의 비밀을 알려주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
“다들 그러한 것은 비밀이 아니었던가요?”
“하긴 여기 드나드는 손님들이 모두 그렇기는 하구나…”
두 사람은 차를 들어 마셨다.
“사실은 그분이 이 참에 널 안주인으로 삼을 요량인줄만 알았다만…”
“아직, 아니에요.”
“어째서…”
“그분은 천하를 통일하기 전에는 절대로 절 받아주실 것 같지 않아요…”
“그래…”
그때 밖에서 하녀가 그녀를 불렀다.
“초란 언니?”
“무슨 일이니?”
“언니를 찾는 손님이…”
“벌써?”
“소문이 빠르기도 하구나… 네가 없는 동안 널 찾던 손님들이 난리도 아니었단다.”
“언니! 죄송한데… 일주일만 더 제 뜻대로 해 주세요.”
“그래 알았다.”
초란의 청을 받은 처연은 밖의 하녀에게 말했다.
“초란은 일주일 동안 손님을 받을 수 없다고 전하고, 다른 아이와 묵도록 청하거라.”
“저… 그게…”
“긴 여행으로 심신이 피곤하니, 일주일 후에 찾으시도록 권해라.”
“네. 알겠습니다.”
하녀는 그 말을 그대로 적령에게 전해다.
“그래…”
“…”
“혹시, 다른 손님을 모시고 있는 것이냐?”
“그… 그게…”
“그런가 보구나…”
“저… 다른 언니 중에…”
“아니다. 그냥, 하룻밤 머물 빈 방을 내어 주면 좋겠구나”
“알겠습니다.”
밤이 되자 초란은 철기주를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으며, 적령은 자신의 사무치는 원한을 생각하며 홀로 쓸쓸히 웅크려 떨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기나긴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아왔다.
“벌써 아침인가…?”
적령은 차비를 하고, 초류향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하녀 하나가 그녀의 방을 정리하기 위해 들어왔다.
“어머, ‘붉은 장수’님?”
“응?”
“여기서는 다들 그렇게 부른 답니다. 그런데 왜 이곳에 계시죠?”
“…”
“초란 언니는 벌써 일어났나…?”
“…”
“왜 그러시죠?”
“아무것도 아니다.”
적령은 차비를 하고 곧 초류향을 나서려했다. 그러자 이를 이상히 여긴 하녀가 물었다.
“저…”
“왜 그러느냐?”
“떠나시는 건가요?”
“무엇이 문제냐?”
“아뇨… 언니한테 인사도 없이 가시나 해서…”
“급한 사정이 있다고 전해주어라.”
“네…”
초류향은 아침이 되자 들었던 손님들을 내어 보내고, 한데 모여 이야기로 수다를 떠는 기녀들과 하녀들의 활기찬 목소리로 하루가 시작 되었다. 그때 하녀 하나가 그 무리에 합류했다.
“아, 초란 언니?”
“응”
“여행은 어땠어요?”
“뭐… 그냥”
“뭐야 언니… 나는 이 참에 장군님 부인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그리 쉬운 일이겠니?”
“근데, 도대체 어느 쪽이에요?”
“뭐가?”
“’붉은 장수’? 아니면 ‘검은 장수’?”
“맞아 우리 모두 내기 했는데”
“뭐?”
“그야 당연히 ‘검은 장수’겠지?”
“그런가?”
“6개월이나 그분을 따라 여행을 했으면 결론이야 이미 난 것 이냐?”
“그런가? 그래서 아침에 그리 안색이 어두우셨나?”
“누가? 언니 안색은 별로 나빠 보지지 않는데?”
“아니? ‘붉은 장수’님 말이야… 뭔가 우수에 찬…”
“도대체 누구 애기를 하는 거야?”
“아이 참. 아침에 차비를 하고 떠나셨단 말이야.”
“누가?”
“누구긴 누구야? ‘붉은 장수’님 이지?”
하녀의 이 말에 초란은 그만 크게 놀랐다.
“뭐?”
초란은 자리에서 일어서 황급해 뛰쳐 나갔다.
“언니…?”
“이게 도대체 어찌 된 거야? 언니가 어제 밤 모신 게 아니었어?”
“난 오신 줄도 몰랐는데?”
“정말? 어제 밤 언니 시중든 게 누구냐?”
“…전데요?”
“뭐? 너 신참! 이거 큰일 인데?”
초란은 급히 적령을 찾아 나섰다. 중림부를 떠나 목진의 국경을 넘기 위해 길을 나선 적령을 초란이 말을 달려 쫓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운산의 문턱에서 초란은 적령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장군님!”
“응?”
적령은 멀리에서 자신을 향해 말을 달리는 초란을 목격했다.
“초란…?”
그리고 그렇게 두 사람이 마주섰다.
“어찌 소녀를 만나지도 않고 이리 무정하게 가시는 거죠?”
“며칠 동안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하길래…”
“소녀 너무 섭섭합니다. 손님이라니… 그럼 그 동안 저는 그저 창기였단 말입니까?”
“아니… 절대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
초란은 짐짓 일부러 화를 냈고 적령은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적령은 지금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었다.
“소녀는 장군님한테 무엇입니까?”
적령은 웬일인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망설였다. 무엇인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떤 말이 튀어나오고 있었는데 막상 그 말을 입 밖으로 시원하게 내 뱃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숨 넘어가겠어요”
적령은 참던 숨을 내쉬며 힘겹게 말했다.
“넌… 넌… 내 벗이 아니더냐?”
“…장군님…”
초란은 적령의 이 뜻밖의 말에 그만 너무 놀라 어찌할 줄을 몰랐다.
“왜 그러느냐?”
“아니… 아무것도…”
그리고 그날 두 사람은 같은 말에 올라 다시 초류향에 돌아왔다.
#08
자칫 놓칠뻔 한 적령을 다시 맞은 초란은 온 종일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무엇이 그리 즐거워?”
“뭐… 그냥… 다… 모두…”
“너도 참…”
두 여인은 온종일 함께 붙어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렇게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한… 일주일 정도 머물 수 있니?
“왜?
“철기주 장군님을 만나게 해 주려고…”
“…”
“뭐야? 그 표정은… 여긴 중림이잖아…
“그랬었지…
잠시 고민하는 적령을 초란은 잠자코 기다려 주었다.
“만나보지…”
“정말이지?”
“그래”
약속을 받아낸 초란은 며칠 후 철기주의 방에 들었다. 그리고 철기주에게도 같은 청을 하고 있었다.
“어찌 생각하시죠?”
“비록 적국이지만… 천하의 영웅을 만나는 자리를 거절할 이유는 없다.”
“그럼 약속하신 겁니다.”
“그래”
초란은 너무나 기뻐했다. 두 영웅과 같이 만난다는 것이…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위태한 사태는 초란도 적령도 철기주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세 사람이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 만나기로 한 날인데 어딜 가는 거야?”
“갈 데가 있어… 저녁에는 꼭 약속한 장소에 갈께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잊으면 안돼!”
“알았어.”
한편, 철기주도 초류향을 나서려 하고 있었다.
“장구님마저 어딜 가려는 거에요.”
“본국의 밀정이 만나기를 청한다는 연락이 왔다.”
“그럼…”
“저녁에는 꼭 약소한 장소로 갈 것이니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거라.”
“꼭 오시는거죠?”
“그래”
저녁 해가 질 무렵에 초란은 운산 아래의 정자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리 늦으시지… 두 분 다…”
“누님!”
“응?”
뜻 밖에 그녀를 부른 것은 시동 묘기(妙奇) 였다.
“네가 여기 웬일이니?”
“서신 이에요.”
“서신?”
그것은 철기주가 보낸 것이었다. 서신의 내용은 황도에서 변괴가 있어 속히 귀환 한다는 것이었다. 철기주는 그 시각 황도에서의 악귀 참살 소식을 듣고 배에 오르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변괴길래…’
시동을 돌려보낸 초란은 할 수 없이 적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나타난 적령은 얼굴을 가리고 붉은 안대를 한 채, 칼을 들고 나타났다.
“너…”
초란은 그만 적령의 모습에 크게 상심하고 말았다.
“철기주는?”
“…본국에 변괴가 있어 올 수 없다는 서신을 보내왔어…”
침묵 속에 개울 흐르는 소리가 퍼지고 있었다.
“내 칼을 들고 나타나 실망 했니?”
“네가 이리해야 했다면 분명 사연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어.”
“난 복수자라고 하지 않았니…”
“…”
“이곳에서 무장을 하지 않은 철기주를 주살했다면, 나는 좀 더 빨리 용의 황제에게 갈 수 있었을 거야.”
초란은 너무나 슬퍼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다.
“아무래도 두 사람은 만나지 말아야 할 운명이 듯 하구나…”
“…”
“이후로는 이런 자리 감히 마련하지 않을게…”
초란을 계속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러한 그녀에게 적령이 말했다.
“이 빗는 나중에 꼭 갚을게…”
적령은 그대로 자리에 앉지도 않은 채 떠나버렸고, 초란은 슬피 울며 탄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