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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87. 유치원 보내기

무늬만여우... |2005.02.07 14:03
조회 2,519 |추천 0

우리 윤희가 만 네 살이 다 되어가니까 이제 슬슬 이 나라 유치원에 보내자 싶었다.
시골에서 잠깐 다니기는 했어도 본격적으로 유치원에 넣어서 공부를 시켜야했다.

두 블럭 떨어진 곳에 유치원이 하나 있었다.
규모는 작아도 갖출 것은 다 갖춰져 있는 곳이었다. 영아반 부터 있어서 선생님들이 교육이 잘 되어 있을듯 싶었다. 시설도 웬만했다.

윤희는 첫 날인데도 신이나서 들어갔다.
집에서 엄마와 심심하게 지냈는데 친구들과 지낸다니까 무척 기대된 듯 했다.
엄마와 떨어져서 가면서도 뒤도 안돌아보고 들어가니까 무지 섭했다.

그런데 하루 다녀오더니 재미없다고 안간다고 했다.
이제는 안간다니까 걱정이 되었다.
학교에 가서 선생님과 상담해 보았더니 집에서 한국말만 써서 스페인어로 커뮤니케이션이 안통하니까 그렇댄다. 집에서도 스페인어로 대화를 해서 아이가 스페인어가 원활하게끔 해달란다.

그래도 모국어가 한국어이길 바라는 우리는 우리 아들 윤희가 스페인어가 좀 부족해도 집에서 스페인어를 쓰는걸 원치 않는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스페인어로 공부하니까 한국어보다 아무래도 스페인어가 더 능통하게 될 꺼라고 했더니 선생님도 수긍을 하는 것 같다.
차츰 적응 할 꺼라는 말로 선생님과 우린 결론을 맺고 면담을 끝냈다.

순했던 윤희는 학교에 가서 툭하면 아이들과 싸웠다.
선생님과 면담을 하고 왔는데도 윤희는 하루도 안 싸우고 오는 날이 없었다.
유치원만 다녀오면 아이가 고슴도치처럼 날이 서 있었다.

그러면서 윤희는 점점 더 유치원에 가기를 싫어했다.
가기 싫은 이유를 물어도 그냥 싫다며 고개만 저었다.
혼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별 짓을 다해도 안 간댄다.

처음에는 그래도 억지로 내 손에 끌려 가더니 나중에는 유치원 문을 잡고 안 들어가려고 울었다.
맘이 아팠다.
왜그러냐고 물어도 윤희는 입을 꽉 다물고 안 들어간다고 눈물만 흘렸다.

이렇게 억지로 보내는 것도 아니다 싶어서 유치원에 있는 아동심리학 의사와 면담을 요청했다.

윤희는 엄마가 자기를 유치원에 버려두고 가지않고 같이 있는다는 약속을 받은 다음에야 같이 유치원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서도 내 손을 꽉 잡고 놓지를 않았다.

그 아동심리 의사는 아이를 많이 다뤄봤는지 윤희를 잘 안심을 시켰다.

한 시간이 넘도록 몇 가지 테스트와 놀이 끝에 뱉은 윤희 말에 난 너무 충격을 받았다.

"아이들이 날 때려요. 네 명이서 때리는데 한 명은 배를 때리고 한 명은 다리를 차고 두 명은 내 손을 꽉 잡고 있어요."

"꼬레아노(한국인)는 수시오(더럽고) 말로(나쁜놈)래요."

어떻게 아이들 싸움이라지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유치원에서 그냥 싸움이 있다고 해서 아이들 싸움이니 대수롭지않게 넘겼는데...
이렇게 우리 윤희 하나를 데리고 여러 놈이 때렸다니...

심리학 의사는 그 맞는 시간에 선생님들은 뭐하냐고 물었다.

그 아이들은 어린 것들이 교활해서 선생님들 없는 쉬는 시간에만 그렇게 했다고 했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한 번도 윤희가 그렇게 맞는 걸 못 본 것이다.

우리 윤희를 가만히 안아줬다.

"윤희야 엄마가 윤희한테 너무 미안하다. 엄마한테 진작 말하지 왜 말 안했어."

그 아동심리 의사는 교장 선생님과 면담에 들어갔고 윤희를 때린 아이들은 부모들까지 소집하게끔 했다.
한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그렇게 때릴 수 있냐고 따졌다.
아이가 그렇게 맞는데도 몰랐다는 선생님들이 원망스러웠다.

그 중에서 주동자 역할을 하는 아이는 엄마와 아빠가 이혼한 아이라 맘에 불만이 가득 찬 아이였다. 할머니에게 맡겨진 그 아이는 버림받았다는 마음의 상처로 복수의 대상을 윤희로 잡고 우리 윤희를 두들겨 팬 것이다.

그 아이의 할머니의 사과와 그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사과로 이 사건은 무마되었고, 윤희에게는 특별히 보조 선생님이 당분간 따라 붙어주기로 했다.

그러는 사이 또 싸움이 붙어서 윤희가 눈꺼풀과 뺨에 커다랗게 할퀴어 가지고 집에 왔다.
마침 집에 와 있던 랑은 그걸 보고 당장 유치원으로 달려갔다.

아이 눈이라도 상했으면 당신을 어쩔 꺼냐고 선생님들에게 따졌다.
선생님들도 안절부절 못했다.
우리 윤희 다친 곳이 정말 위험한 곳이기도 했다.

역시 예전에 우리 윤희를 못살게 굴던 그 아이가 그랬다.
그 아이는 말썽을 하도 부려서 벌써 유치원을 네 번이나 옮겼다고 했다. 그래도 랑의 무서운 항의로 그 아이는 다른 유치원으로 보내지게 되었다.

비록 내 새끼를 그렇게 다치게 해놨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 아이가 걱정도 되고 맘이 참 안 좋았다.

그 뒤로 윤희는 유치원에 잘 적응해 나갔고, 아이들과도 사이좋게 지냈다.

학예회도 한다고 했다.
다람쥐 복장을 해오라고 하는 걸 내가 천을 사다가 손 바느질로 꿰매어 만들어 주었다.

아직 솜씨가 없던 터라 쟈크를 만들지않아 발표회 내내 쉬야라도 마렵다면 어쩔까 걱정되었지만 무사히 커다란 무대에서 춤도 추고 재주넘기도 잘하며 재롱을 피워댔다.
잘 적응하며 뛰어노는 윤희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윤희와 싸워서 다른 학교로 보내진 그 꼬마아이가 못내 맘에 걸렸다.

담임 선생님도 새로 오신 선생님으로 바뀌어 윤희는 너무 즐거워했다.

그즈음 내가 긴 생머리를 잘라서 파마 머리를 했었는데 긴 생머리를 좋아하는 윤희는 그걸 늘 못마땅해 했었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이 긴 생머리의 예쁜 선생님이 오신 것이다. 게다가 너무나 이쁜 금발이었다.
날마다 윤희는 집에 와서 그랬다.

"선생님이 엄마보다 이뻐요."

난 그 말이 너무 섭하고 섭해서 가끔 눈물이 나기도 했다.
나쁜 녀석.

내가 섭해하는 걸 본 랑이 아들 녀석을 교육을 시켰다. 절대로 엄마보다 이쁘다고 하면 안된다고 엄마가 훨씬 이쁘다고 대답하라고 했다. 그래도 아들녀석은 차마 그 말은 못하고 선생님과 엄마가 똑 같이 이쁘다고 했다.

아이들 그림 그릴 때 주로 사용하는 색으로 심리 판단을 하는 그들은 윤희가 주로 어둔 파란 색으로 도배를 하던 그림이 점점 색이 많아지며 밝아진다고 했다.
그렇게 즐거워하는 윤희의 심리에 대하여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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