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언제나 예측불허..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다.."
소녀 적에 읽었던 순정만화에서 나왔던 말인데..
30대 중반의 나이에, 그 말을 절감한다면 좀 우스운가...
시부 입원을 앞두고, 시부모님께 합가 이야기를 건네러 시댁에 갔다...
시친결 님들에게는 미리 밝힌 바대로 내 결심은 서 있었으나.. 울 신랑에게도 합가 이야기를 꺼낼 것이라는 귀띔은 하지 않고 갔다... 왜 그랬을까... 끝까지 어떻게든 모면해 보려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내 속에 있었던 것일까... 그건 나도 모르겠다...
울 시부모께서 두 분만 사시는 데에는 몇몇 이유가 있다..
장남으로서, 홀아버지를 30년간 모시고 산 시부는 본인의 노후 역시 자신의 장남에게 의탁하고 싶어하신다.. 반면, 울 시모는 큰며눌과는 도저히 함께 사실 수 없단다...
마찬가지로 큰시숙은 당연히 부모님을 모시고 싶어 하지만, 큰형님은 시부모(정확하게는 시어머니)를 모시느니 이혼을 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묘하게도,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이러한 사실이 한 번도 공론화된 적은 없다...
각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심경을 털어놓는 일은 비일비재했으나...
시모와 큰형님 두 분 사이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오간 바가 없으며, 가족 전체가 모인 자리에서도 그런 일은 없었다...)
결국, 울 시모와 큰형님의 의기투합(서로 안 살겠다는)과, 다른 동생들과 사는 것은 결코 볼 수 없다는 큰시숙 때문에 다른 대안(다른 자식과 사는 것)도 없이 시부 혼자서 시모 수술 후의 살림을 맡아오셨다.. 이제 시부도 수술을 앞두고 있고... 자식의 보살핌이 필요한 때가 되었으니... 숙제를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 두 분이 사실 수 없으니, 어느 자식이든 하나와 합치셔야 한다고 먼저 말을 꺼냈다..
울 시모, 큰시숙네랑 합치라는 이야기로 오해를 하신 모양이다..
(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부부가 오기 직전에 셋째 시숙이-형님은 여전히 전화도 없고- 애가 탔는지 다녀가면서, 무조건 큰형이랑 합치시라고 화를 내면서 이야기하고 갔단다... 그게 자식으로서, 동생으로서 입에 담을 소리인지...나도 기가 차는데 어머니 입장은 오죽하랴... 울 시모 많이 서운하셨나 보다..) 오해는 마시라고, 그저 다섯 자식 중 누가 되었든지 의지하고 사셔야 한다고...큰시숙과 사시는 게 어렵다면 다른 자식이랑 사시면 될 일이지, 굳이 두 분이 사신다고 고집을 부리셔야 할 이유가 어디 있냐고 말씀드리자 노여운 기색이 좀 풀리신 듯...
다시 여쭈어 보기 시작했다..."큰시숙은 어떠세요??" 고개를 내저으신다.. 둘째 시숙, 셋째 시숙, 시누까지 하나하나 짚어 보면서 여쭈어 보아도 한사코 고개를 내저으신다..
"그럼 막내밖에 안 남았네요..어머니, 그럼 막내랑 사세요.."
울 시모...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그래..내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너 말고는 함께 살 수 있는 자식이 없다..." 하신다...
아버님은 옆에서 말씀이 없으시다... 자식이 모시겠다고 말하니 듣기 나쁘지는 않으신 모양이나, 그 말을 장남-맏며눌에게서 듣고 싶으셨을 것이다... 울 시부는...
" 어머니 뜻이 그러하시니, 아버님도 이제 뜻을 정하세요... 그리고 자식들 불러다 놓고 아버님 뜻을 밝히세요...지난 번 어머님 수술 때문에 입원하셨을 때, 고모랑 큰시숙이 다투셨던 것 기억하시죠??
저희가 나서서 모시겠다고 하면 또 비슷한 상황이 생겨요... 아버님이 교통 정리를 해 주셔야 해요..
저희가 나서면 아버님,어머님은 편하실텐데...죄송하지만, 그러면 형제간에 또 분란이 생겨요...어머니는 병원에 계셨으니 모르시지만 아버님은 아시죠?"
울 시부 고개를 끄덕이신다..
"제 입장은 그래요... 어머니,아버지 편히 모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숙들이 형들 무시하고 막내가 나선다고 언짢아하시면 난처해요...저희랑 사시더라도 다른 자식들 모두 왕래하면서 사시려면 아버님이 나서 주셔야 할 것 같아요.."
울 시부..."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너는 아무 말 말고 있어라... 그리고 고맙다" 하신다..
고맙다고 말씀을 하시면서도 안색이 어두우시다..왜 안 그렇겠는가...
그래서 한 말씀 더 올렸다...
"아버님, 장남이랑 사는 것도 옛말이래요..요새는 통계적으로 볼 때 딸이나 막내 아들이랑 사는 집이 더 많다네요..다른 시숙들이랑 사시면 어차피 애들이 다 커서 학교,학원 가느라 두 분이 우두커니 계실 시간이 많잖아요 .저희 애들이 어리니까 손주들 재롱도 보시면서 지내시면 적적하시지 않고 좋잖아요..."
듣고만 있던 울 신랑...내 얼굴 한번 쳐다보더니(아마 좀 감동을 받은 모양이다..)
"설에 큰형에게 먼저 상의하세요..큰형이나 큰형수가 못 모신다고 해도 서운해 마시고..."(울 시부 그게 두려워서 여지껏 이렇게 살아오신 거다.아이러니하게도 울 시모는 막상 큰아들이 모시겠다고 할까봐 두려워 하시고...)
"큰형이 듣고도 눈만 껌뻑(그게 울 큰시숙의 특기다..) 하고 계시면, 네가 안 되면 다른 누구라도 같이 살아야겠다고 분명히 얘기하세요... 그래야 제가 나설 수가 있어요..."
"그래.. 설에 결론을 내마..." 하신다...
그 때까지 줄곧 베개에 기대어 계시던 시부...일어나 앉으셔서 울 딸네미들 하나 하나를 주시하신다..눈빛에 따스함... 함께 살 손주들이라는 마음이 담긴 눈빛으로 내게는 보였다..
집에 돌아와서 시누와 통화를 했다...
일단 우리 집을 내놓고, 시댁 근처에 일곱 식구가 살 만한 집을 얻겠다고 했다..
퇴원하시고 나서 우리가 집을 구할 동안은 시누 댁에서 좀 모시면 어떠냐고...
지금 우리가 사는 집은 좁고, 수술 직후에는 쉬셔야 하는데 애들이 어려서 방해가 될 수도 있고...
울 시누도 그간 고민이 많았으나 내게는 말도 못 꺼내다가, 합가하겠다고 하자 그간 시누 내외가 생각했던 것을 이야기 한다.. 내용인즉슨, 고모부가 처남댁(3맘)이 힘들 수도 있으니까... 부모님 집 옆에 집을 하나 얻어서 가까이 살면서 아침, 저녁으로 들여다 보면 어떻겠냐고...집 얻는 비용은 고모부가 좀 보탠다고 했단다...
내가 싫다고 거절하자 놀라는 눈치이다...나를 위한 배려인데,내가 거절하자 이상도 하겠지...
어차피 대안이 나라면, 지금부터 모시고 살겠다고... 나도 일하는 사람이고, 애들이 셋이나 되는데..두 집 살림은 못한다고... 물론, 어머니나 나 두 사람에게 서로 편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리 지내다 보면 아무래도 바쁠 때에는 소홀해지게 마련이고...그러면 서로 서운함만 쌓인다고...
무엇보다도, 울 딸네미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의 존재가 반가워지려면 지금이 낫다고...
함께 살면서 반찬이라도 하나 수저에 올려주고, 한번 안아주고 하시다가 편찮아지시면 그야말로 "우리 할머니 아프시니까 우리 가족이 보살펴야지"라는 마음이 생기지만.. 운신조차 못하게 되어 합치면 " 왜 병든 노인네가 우리 집에 와서 울 엄마를 힘들게 만드나"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고...
울 친정 할머니가 병든 몸으로 고모들에게 이끌려 우리 집에 왔을 때... 할머니와의 따뜻한 추억이 없던 내게 할머니와의 동거는 거의 지옥이었다고...
울 시누..한동안 말이 없다가...알겠노라고...퇴원 후에는 일단 시누 댁으로 모셔가겠다고...
짤막하게 대답했지만...목소리에 물기가 스며 있다...
"자네한테는 미안하네..정말... 그런데 올케 정말 억울하지 않겠어?"
"억울하다니요.."
"올케... 내가 정말 겁나는 게 뭔 줄 알아?? 엄마가 돌아가시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것도 아니야... 어차피 살 만큼 사셨으니..언젠가는 돌아가실 양반들이지...
내가 겁나는 건, 울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에 그나마 하나 의지하고 있던 자네마저 다른 며느리들처럼 지칠까봐...그게 겁나... 그런 모습을 울 부모가 겪기 전에 어서 돌아가시라고 나는 주일마다 기도해...나 못된 딸이지?? "
기어이 울고 마신다...
"형님...제가 피해가려면 충분히 피해갈 수 있는 일이에요...아시죠??"
대답이 없으시다...
울음소리를 듣고 있다가... 주무시라고 인사하고 먼저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시누와 통화를 마치자..
남편이 아무 말 없이 어깨를 감싸쥔다... 탁!! 하고 매섭게 내치니 깜짝 놀란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 울 남편에게 화가 났다...
무슨 분위기인지 감을 못 잡는 남편에게...톡 쏘아 붙였다...
"당신 부모에 대해서 이렇게 애틋하게 생각해 주니 마누라가 고마워?"
울 신랑... 분위기 잡으면서 고맙다는 뜻을 전하려고 하다가..이게 무슨 생뚱맞은 상황인가 싶어 눈만 껌뻑인다...
"당신...내가 당신 부모에 대해서 이리 신경 쓰는 동안... 울 친정 엄마 심정 한번이라도 생각해 봤어??
가진 것 없고 나이도 많은 당신과 결혼 허락하시면서, 막내라는 것 하나 마음에 들어하셨는데...
왜 그런 줄 알아?? 아들 형제 많은 집 막내 며느리로 시집 보내면.. 본인처럼 병든 시어머니 차지할 일 없을테니... 그런 울 엄마 마음 저버리고 총대 메는 마누라가 이쁜가?? "
"아..."
마치 무언가 잊어버리고 있다가 낭패를 본 듯한 표정이다...
"내가 나중에 장인, 장모님께 허락을 받을게..상황도 말씀 드리고, 양해도 구하고.."
"자식이 부모 모시는 일인데... 며느리도 자식인데 무슨 허락을 받아...내가 택한 건데..."
(이미 친정엄마에게는 전화로 어느 정도 상황을 설명한 상태인데, 울랑은 알 턱이 없겠지..)
도무지 감을 못 잡는다..이 남자가...
"허락을 받으라는 것이 아니라...당신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이 처가 부모 가슴에는 못 박는 일일 수도 있다는 것..당신 생각이나 해 봤냐고... "
내가 울먹이자..울랑 내 손을 잡는다...
"내가, 장인-장모님께도 잘할게... 어차피 처남이나 처형과 사시기 어려운 상황일 것 같으니. 나중에 장인-장모님도 우리가 모시면 되지..."
"나중?? 그래...말 잘 했어...나도 그래...일단 나이 들고 병드신 시부모 먼저 모시자...
시부모님이 울 부모님보다 10년 이상씩 연세가 많으시니 먼저 자식 도리하고...
나중에 울 친정부모 편찮아지시면 그때 딸 도리도 하자...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러면 되지..뭐가 문제야? "
"누가 그래?? 반드시 당신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울 엄마-아빠가 오래 사신다고...
자식 입장에서 나는... 울 엄마 아빠가 오래 사실거야 하고 위안하지만...
노인들 돌아가시는 건 순서가 정해진 일이 아니야... 그건 단지 딸인 내가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소리라고 ... 알아?? "
".........."
"마음으로 잘해..지금부터... 아직 젊으시니 당분간 저리 사시겠지만, 당신 부모에게 먼저 효도한 뒤 처가 부모에게 효도하자 하지 말고..지금부터 잘해... 기다려 주실지, 안 기다려 주실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 "
남편에게 말한 것 같지만, 사실은 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다...
ps. 쓰다 보니 길어져서, 일단 여기까지 한번 끊어 쓰네요...![]()
시부 수술 전의 일을 정리한 게 저 정도이니 글을 간추리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절감합니다...
시부 퇴원 후- 설에 엄청난 반전이 있었는데...그것까지 쓰다가는 정말 밤을 꼬박 새겠네요...
퇴원 후부터 최근까지의 상황은 나중에 다시 올릴게요...
긴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또 길게 써도 읽어주실런지... 3맘은 길게만 쓴다고 클릭도 안 하실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