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아라리 2부(약 20분 소요) / 배경사진은 25초 마다 바뀜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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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 아우라지에 있는 아랑각과 처녀상*
* 정선 아리랑의 특색 *
정선아리랑은 한민족의 가슴 속 깊이 강원도의 서정을 대표하는 소리로 자리잡고 있다. 오랜
옛날부터 정선 사람들은 하루하루 고달프고 쓸쓸한 삶을 정선아리랑 가락에 담아 풀어나갔다.
첩첩 산골에 묻혀 사는 설움, 시집살이에 대한 버거움, 어리거나 늙은 남편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 등을 구성진 가락으로, 때론 풍자와 해학으로 달래며 살아왔다.
정선아리랑은 어느 한 기능에 밀착되지 않고 노동의 현장에서, 유희의 공간에서 널리 불려
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물 뜯을 때, 밭 맬 때, 나무할 때, 떼를 매거나 탈 때, 심지어는
아이를 재울 때 자장가로도 불렸고 잔치 때나 여럿이 둘러앉아 놀 때도 부르는 다기능의
민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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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군 숙암계곡의 수달래꽃 *
이렇듯 정선아리랑이 삶의 일부로 자리잡게 된 까닭은 정선아리랑이 가사 중심의 노래라는
것이다. 명확한 음계와 가사를 기본으로 하는 서양 음악과는 달리 .정선아리랑은 최고음과
최저음과의 폭이 그다지 크지 않고 음이 길게 늘어지고 단조로워 가락만 귀익으면 즉흥적으로
가사를 만들어 무한정 붙일 수 있다. 특히 가사 자체가 짧게 구성된 두 줄 짜리 형식이라는
점은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단어를 바꿔가며 제 나름대로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게 했다.
정선아리랑을 "찍어다 붙이면 되는 소리"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숱한 세월을 거쳐오는 동안 시시때때로 만들어진 정선아리랑 가사는 지금 채록된 것만 해도
1,300여 수가 넘어 세계 단일 민요 가운데 가사가 가장 방대하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그 노랫말 하나하나에는 정선 사람들의 정서가 시대마다 서로 다른 빛깔로 고스란히 쌓여
삶의 퇴적층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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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군 화표동에 있는 노송 *
정선아리랑은 '긴 아리랑'과 '엮음 아리랑'으로 구성되어 있다. '긴 아리랑'은 가사가 느리고
길게 이어지는 가장 일반적인 정선아리랑 소리이고, 긴 아리랑 가사에 다 담지 못하는 삶의
응어리는 사설을 이야기하듯 촘촘하게 엮는"엮음아라리"로 불렀다. 앞 부분은 사설로 촘촘
엮어가다가 뒤에서는 다시 긴 아리랑 가락으로 부르는 엮음 아라리는 서양음악의 랩과 거의
다를 바 없는 해학과 흥겨움의 골계미를 갖추고 있다.
흔히 정선아리랑의 후렴으로 생각하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는 가사 뒤에 일정하게
따라붙는 후렴(Refrain)이 아니었다. 소리를 둘이서 메기고 받다가, 또는 여럿이 한마디씩
돌아가며 부르다가 갑자기 가사가 막힌 사람이 판을 깨지 않기 위해 자기 순서가 되어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오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불렀다.
이 때는 같이 자리한 모두가 함께 불러주어 나누고 어울리는 소리가 되게 했다.
정선 사람들은 이같은 삶의 소리를 '아라리'라고 부른다.
이렇다할 뚜렷한 이유가 없으면서도 아리랑 보다는 아라리가 좋다고 하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지켜온 자신들의 소리가 다른 아리랑과는 달라도 뭔가 다르다는 뿌듯한 자부심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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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군에 있는 두위봉 정상(1,466m)에서 본 산,산,산들... *
예전 같지는 않지만, 정선 땅 어디를 가더라도 정선아리랑을 듣는 일은 그리 어렵지가 않다.
처음 만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소리를 청하면 누구나 다 못한다고 일단은 주저하지만
부르기 시작하면 구구절절 한도 끝도 없이 계속 이어진다.
정선아리랑은 오랜 세월을 두고 자연스럽게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가 그곳의 문화적인
특성이 더해져 또 다른 이름의 아리랑을 낳았다. 정선 떼꾼, 출가한 남녀, 소리꾼,
장돌뱅이, 화전민 등등 사람의 발길은 정선아리랑을 자연스럽게 확산시켜 수많은
아리랑을 태동케 했다.
우리나라 아리랑의 든든한 뿌리가 되는 정선아리랑은 이제 정선에 머문 소리만은 아니다.
한국인이 머문 공간이면 그 구성지고 애잔하면서도 해학적인 정서로 인해 쉽게 빠져드는
소리로 사랑을 받고 있다.
2005. 2. 18. 휘뚜루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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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 화암약수 전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