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마.음.에 들어..]
3.필연의 기적
부스럭부스럭.
몇 시쯤 됐을까. 이제 막 해가 뜨기 시작한 듯 희미하게 밝아오는 창 밖으로 새소리가 들린다.
반쯤 실눈을 떠 본다. 상현이가 언제 깼는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서성인다.
‘속은 괜찮나…, 물이라도 한 컵 가져다 놓을걸…’ 걱정을 하며 열린 방문으로 그 애의 뒷모습을 찾는다.
상현이가 이 쪽으로 온다.
재빨리 눈을 감았다. 아무런 이유없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발소리가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이내 아무 인기척이 없다.
‘눈을 떠야하나, 말아야하나… 지금 갑자기 눈을 뜨면 어색하겠지. 자다 일어난 얼굴 보이기 싫은데… 에이, 뭐하고 있는거야?’
머리 속으로 갖은 생각들이 스포츠카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얼마 동안을 그러고 있었을까… 그러다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니, 상현이는 온데간데없다.
거실로 나와서 다른 방문을 두드려본다.
“얘들아..!”
어제저녁부터 깜깜무소식인 녀석들은 아무도 나올 생각이 없나보다.
재빨리 화장실에 가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고, 퉁퉁 부은 눈을 원망하며 열심히 찬물을 끼얹어 눈을 달래본다.
‘들어가라, 들어가…’ 퉁퉁 부은 눈이 어서 빨리 가라앉기를 열심히 빌면서.
그 때, 현관문 소리가 들린다.
“상현이야?”
“어… 일어났네?!”
“치… 모냐? 일어나자마자 어디갔었어? 찾았잖아.”
“아… 그냥. 아침 공기가 좋아서 산책하러. 너 자고있어서… 안 깨웠어.”
아직 가라앉지 않은 눈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써 어색한 눈길을 맞추지 못하고 이리저리 던진다.
“에이… 나두 데리고 가지… 아.., 애들이 왜 안 일어나나…”
“수지야, 이리와 봐.”
덥썩 방으로 들어온 상현이가 나를 눕힌다.
순간, 그 애의 예상치 못한 낯선 행동에 덜컥 겁이 난다.
'어떡해야 하지.' 수많은 생각들이 88열차처럼 뇌혈관을 타고 달리는 내 머리를 상현이가 가만히 자기 가슴에 갖다 댄다.
쿵덕쿵덕…
그 애의 심장소리.
“너 잘 때 되게 웃기더라. 막 코도 벌렁이고 그러던데… ㅋㅋ”
피식 웃음이 나온다.
자는 나를 보고 있었던 거야? 내가 다시 잠 들 때까지 숨소리도 내지 않고… 그렇게 나를 보고 있었던 거야? 상현아, 내 쿵덕임도 들려? 널 처음 만난 그 날부터 너를 8년 만에 다시 보게 된 그 기적 같은 날,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은 이 쿵덕임말야.
“수지야, 빨리 챙겨.”
“어…”
허어하다. 방학을 집에서 보내고 영국으로 돌아가는 아침은 항상 그렇지만, 이번 만큼은 정말이지 마음 한 모퉁이가 떨어져 나간 것 처럼… 마음 한 켠이 시리다.
‘머야, 고상현. 음성 하나도 안 남기고. 머냐, 정말…’
그 때 8년만의 꿈 같은 통화를 이후로, 상현이랑 다시 통화를 하지 못했다. 전화를 하고픈 맘은 굴뚝같았지만, 국민학교 4학년 때보다 굵어진 머리가 용기가 없어진 탓인지, 꼬맹이 때 겁없이 탄탄했던 낯두께가 얄팍해진 탓인지 쉬이 전화길 들 수가 없었다.
오늘따라 허둥지둥, 짐을 어떻게 챙겼는지 모르게 부산한 아침을 보내고 공항으로 향했다. 방학 때만 한국에 나온 것도 이번이 몇 번째인데, 청사를 잘못 찾아 택시를 타고 다시 2청사로 가야하는 해프닝까지.
엄마랑 아빠는 잔뜩 화가 나셨다.
“그러게, 미리미리 좀 챙기지. 왜 떠나는 날 아침마다 이러니. 일찍가야 여유있게 환전도 좀 하고 그럴 것 아니야. 에휴… 정말. 여권 줘봐”
잔뜩 혼이 나면서도 마음을 어디에 던져놨는지 모르겠다.
“표 주시구요, 여권도 주십시오, 손님”
??여권?? 아무리 찾아도 여권이 없다.
‘어디있지?’
안 그래도 아침부터 내내 역정이 나신 부모님이 나를 의심스런 눈빛으로 쳐다보신다.
“어… 어디갔지?”
애써 뒷통수로 꽂히는 뜨거운 시선을 무시한 채 붉어지는 얼굴로 부산하게 여기저기 둘러봐도 여권은 행적을 감췄다.
“아! 엄마, 아까 택시에서 여권 달래서 내가 줬잖아. 어쨌어?”
“머어? 얘가 정신이 있어 없어, 니 여권을 니가 알지 엄마가 어떻게 알아? 택시에서 언제 줬어? 받은 적이 없는데.”
“키키키…”
“얘 좀 봐… 실없이 뭐가 좋다고 웃니? 넌 지금 웃음이 나와? 어휴… 내가 못 살아.”
자꾸 웃음이 나온다.
여권을 분실하는 그야말로 말.도.안.되.는 해프닝으로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 대신, 엄마의 계속되는 구박을 되씹으며 다시 집으로 향하는 차에 올랐다. 분실한 여권을 재발급 받으려면 최소한 3일이 걸린단다.
3일. 뜻밖의 3일.
뚜르르르, 뚜르르르.
방금 호출한 삐삐에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어, 이수지? 어디야? 영국 안 갔어?”
“ㅋㅋ, 어… 그게… ㅋㅋ 어쩌다 그렇게 됐어.
야, 고상현! 머냐 나 간다는데 음성 하나 안 남기구.”
“어.. 아니, 그게… … …”
주님, 저에게 주신 뜻밖의 3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필연 같은 우연.
그것은 정말이지
너와 내가 만나려는…
필연 같은 우연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