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산 아파트 밑은 빵가게가 들어섰다. 빵가게에서 하루종일 피워대는 오븐의 열기로 겨울에는 따스했지만 여름에는 더워서 속에서 홧기가 올라올 정도였다.
그래도 넓디 넓은 집에서 살다가 조그마한 아파트로 이사를 오니 아늑하고 일도 별로 없고 나름대로 괜찮았다. 밑의 상가 과일 가게에는 좋은 과일도 많아서 자주 사다먹었다. 빨갛다 못해 까마스름한 세레사(첼리)는 물도 많고 쫀득거리며 달고 맛있어서 하루 종알 입에 달고 살았다. 공원도 두 블럭만 가면 있어서 아가를 유모차에 태우고 자주 갔다.
딸내미는 무럭 무럭 자라서 만 두살이 넘어갔다. 말도 제법 하고 윤희랑 장난도 제법 쳤다.
알렉한드로와 로미나는 온세 지역에 옷가게를 새로 내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집 딸도 유치원에 보내야 하는데 돌 봐 줄 이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 아들 녀석 다니는 유치원에 넣기로 했다. 아무 것도 안하고 노는 내가 유치원 끝나면 데려다 씻기고 밥도 먹이기로 했다.
어차피 어렸을 때부터 기저귀도 많이 갈아주고 키우다시피 했는데 우리 애들하고 같이 유치원도 보내고 같이 공원도 데리고 다니고 그랬다.
저녁 나절에 아이를 데릴러 왔는데 어떨 때는 일이 바빠 늦게 오는 바람에 자는 아이를 안고 가기 일쑤였다.
윤희는 동생을 끔찍이도 위했다. 누가 이쁘다고 데려가는 척 하면 가서 울면서 아이를 지가 안고 왔다. 동네 아줌마나 아저씨들은 그런 것이 재미있으니까 윤희만 보면 아가를 안고 가겠다고 협박을 하곤했다.
아파트 상가 뒤 쪽에 과자와 우유와 치즈 종류를 파는 작은 알마센(구멍가게)이 있다. 그 집 주인은 남자인데 귀걸이에 목걸이까지 요란스럽게 한 아줌마같이 생긴 아저씨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호모였는데, 동네 사람들은 그를 ""세뇨라(아줌마)"라고 불러줬다. 맘씨 착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참 잘했다.
그 아파트에 우리 딸하고 동갑내기 두 살배기 루이스란 이름을 가진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보통 개구장이가 아니었다. 머리는 짙은 갈색에 고슬고슬 곱슬머리가 아주 귀여운 아이였는데, 매일 바닥에서 자동차 놀이를 하는 것이 취미였다.
아빠 엄마가 둘 다 맞벌이로 살기에 주로 할머니가 와서 돌봐줬는데 약간 버릇없이 굴기도 했다. 한 번은 지나가는 윤희에게 침을 뱉어서 싸움이 붙은 적이 있다. 그래도 윤희가 나이도 있고 덩치도 있는데 그 녀석이 뎀빈 것을 보니 어지간히 배짱도 있는 녀석인가부다.
애가 하도 똘망똘망해서 우리 애들하고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잘 어울려 지냈다. 내가 지나가면 꼭 자동차를 내 다리 사이로 지나가게해서 내가 다리를 벌려줘야했다. 나 뿐만이 아니고 동네 아줌마들에게는 꼭 그런 장난을 했는데 어떤 때는 쇼핑 카트 밑으로 지나게 해서 쇼핑 카트를 들어주기 까지 한 적도 있다.
아르헨티나는 비닐 봉지보다 자기 장바구니를 많이 이용하는 나라이다. 그래서 집집마다 작은 쇼핑 카트가 있어서 밀고 다녔다. 물이나 음료수 같이 무거운 것을 사 올 때 아주 유용했다.
암튼, 루이스는 고집이 보통이 아닌 녀석이라 한 번 떼쓰고 울며 누워버리면 몇 시간이고 그 자리에서 울어버려서 동네에선 아주 유명인물이다.
오후에 유치원 마칠 시간이 다 되어 가길래 아가를 데리고 집을 나가는데 창문 너머에서 "쿵"하는 쓰레기 봉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미 나가려고 창문도 쇠문으로 굳게 걸어 잠가서 그냥 아무 생각없이 집을 나섰다.
우리는 2층에 살았는데 'ㄷ'자 형태의 아파트 단지는 가운데 1층 상가만 있고 상가 지붕은 그대로 콘크리트채로 방치되어 있는 곳이었다.
아들 녀석을 데리고 2살 반 된 딸 손을 잡고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는데 앰블런스가 와 있었고 경찰도 와 있었다. 또 어떤 노인이 아파서 그러나 싶어 별 의심없이 집으로 들어가는데 아줌마들이 모여서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어떤 정장을 한 부인이 떨며 울고 있었다. 뭔 일이 나도 큰 일이 난 게 분명하다. 경찰에게 가서 물었다.
우리 아파트 15층에서 아이가 떨어졌댄다.
헉. 15층이면 루이스인데...
우리 집 옆 창문 앞으로 떨어졌다니 루이스가 역시 맞다. 루이스네 엄마랑 아빠는 맞벌이여서 엄마 얼굴을 못봤는데 그 떨며 울던 여자가 루이스 엄마였나보다.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워서 아이들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가려고 층계로 향하는데 웅성거리던 아줌마들 중 주책스런 아줌마 하나가 우리 딸내미를 가리키며 말했다.
"딱! 쟤만하지. 나이도 그렇고, 키도 딱 저 아이만해"
그러면서 우리 딸을 만지는 게 아닌가. 갑자기 기분이 더 나빠져서 아이를 얼른 나꿔채서 층계로 올라갔다. 벌써 옆집에는 경찰이 몇 명 와 있었다. 얼른 우리 아이들을 집 안으로 들여 보낸 다음 복도로 다시 나왔다.
옆 집에서 루이스 아빠처럼 생긴 사람이 아이를 양복 윗옷으로 덮어서 안고 나왔다. 아이는 자는 듯이 평화롭게 안겨 있었는데 추운 겨울인데 맨발 차림으로 있어서 조그맣고 하얀 발이 바지 밑으로 나와 있었다.
놀라고 당황스러워서 뭐라고 위로의 말도 해줄 수도 없었고 할 말도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하얗게 비져나온 아이 발을 양복을 끌어당겨 덮어주었다.
그렇게 그들은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옆 집 아줌마와 난 무서워서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아줌마는 자초 지종을 말해줬다.
내가 나간 그 시간에 들었던 쓰레기 봉지 떨어지던 소리는 루이스가 떨어진 거였단다. 오늘따라 돌봐주시던 할머니가 아파서 고등학교 다니던 이모가 와서 루이스를 돌보고 있었는데, 청소를 해주느라 식탁을 창문에 딱 달라붙게 밀어놓고 청소를 했다.
개구장이인 루이스는 식탁위로 올라가 창문을 내려다보다 균형을 잃어 그대로 떨어진 거란다. 그 높은 데 살면서 아무런 보호막도 안해놓다니...
다른 집 창문은 보호대가 설치되어 있어서 웬만해선 안떨어지게 해놨는데 그 집 창문은 그대로 아무 것도 걸칠 것도 없었더랬다.
마침 랑도 출장 가 있던 시기여서 난 밤마다 루이스 꿈을 꾸며 불쌍해서 안타깝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잠을 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