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거울에 비춘 자신의 모습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의 모습은 자신이 봐도 너무 아름답게 보였다.
제이슨이 선물로 보내준 검은 드레스는 하늘의 검은머리와 갈색 눈동자에 너무도 잘 어울렸고, 그녀의 동양적 아름다움을 업그레이드 시켜주었다.
내일이면 그리던 고국에 유학을 떠나는 하늘은 가기 전에 제이슨의 생일 파티에 가서 그에게 감사와 축하를 전하고 싶었다.
하늘이 어릴 적 부모님과 동생과 함께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모르는 낯선 땅에 왔을 때 엄마가 일하던 체인점의 사장이었던 제이슨은 그들 가족에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하늘의 가족은 제이슨이 엄마를 고용인이 아닌 여자로 본다는 걸 알았다. 하늘의 미모는 엄마에게 그대로 물려받았기에 엄마의 아름다움도 눈이 부셨고, 이목구비가 확실한 서양 사람들 틈 속에서도 확연히 눈에 띠는 인상이었다.
그러나 그들 가족은 엄마를 믿었고, 아버지 역시 엄마를 사랑했기에 믿었다. 그리고 엄마는 그 믿음을 지키려는 듯이 단 한번도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 굳건함에 가끔은 제이슨이 불쌍하게 여겨질 정도였었다.
하늘은 과거를 생각하다가 자신을 부르는 택시의 경적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코트를 입고 파티 장으로 향했다. 제이슨은 그녀에게 차를 보내겠다고 했지만 하늘은 극구 사양했다.
파티 장은 많은 사람들이 와있다는 걸 증명하듯이 주차장이 가득 메워져 있었고, 아직도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었다. 하늘은 기사에게 팁을 얹어 주고 파티 장으로 향했다.
많은 남녀들이 아름다운 옷과 남성미를 자랑하는 옷을 갖추어 입고 파티를 즐기고 있었고, 사람들 틈에 잘 나서지 않던 하늘에게는 낯선 광경이었기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람들이 워낙에 많아 제이슨의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라이언은 작은 아버지의 생일 파티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재력과 매력에 여자들이 몸을 던지다 시피 그에게 다가왔지만 오늘은 단 한 명의 여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남자들과 세상 이야기를 나누며 샴페인만 마시고 있었다.
"저 여자는 누구지. 동양 여자 치고 꾀 매력적인데."
그 말에 그는 눈길을 돌렸고, 그 한번의 눈길에 입구에 서서 주위를 서성이던 검은 드레스를 입은 동양 여자 한 명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비단결 같은 검은머리를 허리까지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게 하고 간단한 액세서리만을 착용한 동양여자는 이미 여러 명의 사내들의 시선을 받고 있었지만 누구를 찾느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여자는 그걸 전혀 눈치 못 채고 있었다.
라이언은 그런 여자의 순수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자 잠시 자리를 비운 작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손님을 맞는 게 아주 만족스럽게 여겨졌다.
"누굴 찾고 있소?"
하늘은 저음의 굵은 목소리에 몸의 솜털이 바르르 떨며 서는 것이 느껴졌다. 단 한번도 남자의 목소리에 이렇게 반응한 적이 없는 하늘은 당황했다.
"제이슨 포드씨를 찾고 있어요."
남자는 목소리만큼 매력적인 얼굴과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높은 힐을 신었음에도 깊이를 알 수 없는 회색 눈으로 하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난 라이언 포드라고 하오. 제이슨 포드는 내 작은 아버지 되시지."
"오! 반가워요. 제이슨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제이슨은 라이언이 얼마나 매력적인지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언급 한적히 없었다. 분명 자신의 파티에서 하늘을 놀래 킬 생각이 분명했다. 그리고 하늘은 그의 뜻대로 되었다.
"난 소개를 했는데, 그쪽은 아직 하지 않았소. 아쉽게도 작은 아버지는 나에게 당신에 대해서 단 한번도 이야기를 하신 적이 없었소."
하늘은 손을 내밀어 남자의 굵고 강인한 손을 잡았다. 장갑을 끼었어도 남자의 굳은살이 부드러운 손
바닥에 느껴졌다. 만약 제이슨에게 듣지 않았다면 하늘은 라이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라이언 포드는 호텔 업계를 뒤흔드는 마이더스의 손이라고 불렸기에 그를 잘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육체적인 노동을 싫어하는 줄 알지만 그는 틈 만나면 텍사스에 있는 자신의 목장으로 휴가를 가서 노동을 즐긴다고 했었다.
"전 윤하늘이라고 해요. 친구들은 스카이라고 부르죠. 제 이름의 영어로 말하면 그렇게 되거든요."
"어느 나라에서 왔소."
라이언은 그녀의 갈색 눈동자를 바라볼수록 끌리는 걸 깨닫고 있었지만 그만 둘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여자에게 이렇게 속수 무책으로 빠진 적이 없는 그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국이요. 어릴 때 가족이랑 이민을 왔어요."
"오! 스카이 왔구나. 드레스가 아주 잘 어울리는 걸."
제이슨의 장난기 어린 도발적인 훑어 내리는 시선에 하늘은 웃음을 터트렸지만 라이언의 눈길은 불타 오르고 있었다.
"라이언과는 이미 인사를 나눈 것 같구나."
"네."
왜 그가 잘생겼다고 말하지 않았는지 묻는 시선을 보냈지만 제이슨은 모르는 척 하며 그녀의 팔을 자신의 팔에 올렸다.
"이제 음악이 시작 되구나 우리 춤추지 않으련."
제이슨은 춤을 추는 걸 좋아했고, 많은 도움을 받은 하늘은 단 한번만이라도 그를 기쁘게 만들고 싶어서 틈틈이 춤을 배웠고, 지금은 수준 급인 제이슨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의 실력을 가지게 되었다.
"좋아요."
가볍게 시작되던 춤을 점점 격렬한 춤으로 바뀌었고, 파티의 주체자인 제이슨이 어린 동양 여자와 계속해서 춤을 추자 사람들의 시선은 그들에게 향해 있었고, 그들을 향한 무성한 추측만이 파티 장을 떠돌고 있었다.
하지만 관객 중에 가장 화가 난 사람은 라이언이었다. 자신의 적수가 작은 아버지가 되자 라이언은 자신과 작은 아버지 그리고 저기 제이슨의 품에 안겨 요염하고 아름다운 몸을 흔드는 스카이라는 여자에게 향해 있었다.
"제이슨이 빠져 있다는 동양 여자가 바로 저 여자 였나봐요."
"그러게요. 하지만 너무 어리지 않나요. 동양 여자들은 나이를 잘 알 수가 없지만 별로 나이가 있어 보이지는 않아요."
"아버진 저런 여자가 어디가 마음에 든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아. 동양 인에게서는 이상한 냄새가 난다구. 난 정말 싫어."
라이언은 옆에 와서 제이슨과 스카이를 욕하는 사촌 패티에게 곁눈질을 했지만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패티는 이미 술에 취해있었기 때문에 그녀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패티가 사촌만 아니었다면 당장에 내 쫓아 버리고 싶을 정도로 무례하고 버르장머리라고는 없었다. 제이슨은 잦은 출장을 다녔고, 그것이 미안해 외동딸은 패티의 뜻대로 해 주었고, 그 결과는 지금처럼 아주 난잡하고 낭비벽이 심한 아가씨를 탄생하게 만들었다. 제이슨은 그런 자신의 딸을 보면서 많이 후회했지만 이미 차는 떠난 후였다.
하늘은 춤을 추면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걸 눈치를 챘지만 춤을 멈추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말은 신경쓰지 말아라."
"걱정하지 마세요. 전 괜찮으니까요."
"고맙구나."
드디어 제이슨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 나왔고, 격렬한 탱고의 리듬에 맞추어 하늘과 제이슨은 날렵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이슨의 나이는 60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열심히 해온 운동 덕에 아직은 춤을 추는데 손색이 없었다.
그들의 춤이 끝나자 사람들은 그들에게 박수를 보냈고, 그들은 인사로 그들에게 답례했다.
제이슨은 춤을 추느라 등한시했던 손님들을 달래로 갔고, 하늘은 웨이터들이 들고 다니는 소다수를 들고 테라스로 향했다. 하늘은 이미 테라스에 나와 있는 커플의 반대쪽으로 가 어둠에 잠긴 정원을 내려다보았다.
다시 돌아올 예정이지만 막상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곳을 떠난 다고 생각하니 서글펐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올 땐 어린 나이었기에 고향이 무엇인지 그리움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지금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왜 엄마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는지 이해했다.
"춥지 않소? 춤을 잘 추더군."
하늘은 라이언의 목소리에 놀라 들고 있던 소다수를 조금 흘렸다.
"고마워요. 춤을 춰서 그런지 시원해요."
라이언은 큰 체구를 가지고 있었지만 제이슨처럼 몸놀림이 아주 날렵했고 조용했다.
"정말 잘 추더군."
하늘은 그의 말에 어깨가 으쓱해지는 걸 느꼈지만 자만하지 않았다.
"아저씨만큼은 안돼요."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자 다른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늘은 처음 본 남자에게 미묘한 감정을 느끼는 자신이 이상하게 생각됐지만 라이언이 앞에 있는 상황에서는 깊은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제이슨과는 무슨 관계인지 물어봐도 되겠소?"
하늘은 라이언의 목소리가 말처럼 부드럽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지적하지 않을 만큼 이골이 난 질문이었다.
"무슨 관계처럼 보이죠?"
라이언은 자신을 올려다보는 검은 눈빛의 여자를 흔들어줘야 할지 아니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키스를 해야 자신의 알 수 없는 갈망이 없어질지 생각해 봤다.
"친구라고 말하면 믿어 줄 건가요?"
"아니."
하늘은 솔직한 라이언의 대답에 웃음이 나오는걸 막을 수가 없었다.
"솔직하군요. 하지만 실망 시켜서 어쩌죠. 우린 좋은 친구 사이 아니 제이슨은 나의 아버지 같은 좋은 사람이에요."
라이언은 진실을 담고 있는 여자의 신비한 검은 눈을 내려다보면서 자신이 그녀의 말을 믿고 싶어함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당신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한적히 없소."
하늘은 제이슨의 행동이 아쉬울 뿐이었다.
"그건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군요. 하지만 당신하고 공유하고 싶지 않는 것들이 있을 수 도 있지 않나요."
하늘은 어둡게 변하는 회색 눈을 바라보면서 숨을 들이켰다.
"설마 내가 잠자는 사자를 건드린 건가요?"
라이언은 대담한 하늘이 마음에 더욱 들었고, 그녀에게 키스를 하기로 결정했다.
붉은 입술을 가진 여자의 입안은 실크처럼 부드러웠고, 그의 손길이 닿는 머리카락과 몸은 잊을 수 없을 만큼 감촉이 좋았다.
하늘은 그 누구도 시도 한적히 없고 허락한 적이 없는 자신의 입안을 구석구석 탐하는 라이언의 혀의 놀림에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다가 몸을 부드럽게 스치는 그의 손길에 조금씩 몸에 변화를 느끼고 그의 몸에 손을 올렸다.
키스를 해 본적이 있지만 이렇듯 머리부터 발끝 까지 전기가 오는 듯한 짜릿한 키스는 단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그녀는 그의 키스에 이미 빠져들고 있었다.
"스카이 어디에 있니?"
하늘은 닉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을 떠나기 전까지 미처 제이슨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감각이 무척 예민하고 사생활의 노출에 대한 경계심이 강한 닉은 금새 작은 아버지의 존재를 눈치 챘다.
"저.. 저 여기 있어요."
하늘은 닉의 얼굴을 올려다보았지만 그의 얼굴은 방금 전 격렬한 키스를 나눈 적이 없는 사람처럼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닉은 자신의 행동을 그리고 하늘, 스카이라고 불리는 여자의 존재를 믿을 수가 없어 그녀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닉은 왜 제이슨이 하늘의 존재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는지 궁금했고, 오늘밤에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비밀을 알아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