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악마 (3)
난 좀 조용하고 과묵한 편이다.
아니 오히려 괴팍한 편이라고 해야 옳은 표현일 것이다.
그렇다고 항상 음침하거나 어두운 얼굴을 하고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 대하는 음악 장르를 발견하거나, 내가 음악에 심취할때 보다는
음악이 나를 이끌때가있다. 그때는 나도 모르게 눈동자가 빛나고, 소리지르거나,
손에 잡히는대로 적도 원주민처럼 타악을 연주하며 상체를 흔들어 댄다.
이때 만큼은 음침하고 어두운 내가 아니다.
째즈나 하드롹 싱거 처럼 눈을 감고 감정에 몰입할 때도 있다.
한때 노래도 불렀으니 이때는 스피커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내가 된다.
로비 윌리암스 이 흐른다.
두두당당~ 두두당당~ 두두당당~
난 윈손으론 손바닥으로, 오른손으론 시디케이스로 데스크를 두두린다.
그리곤 눈을 감고 이십년 전으로 돌아간다.
미친듯이 두들기던 울분의 시절로 말이다.
머리는 흔들면서 발바닥은 자동으로 반응한다.
마지막 바이올린 연주와 드럼 연주 그리고 랩부분이 죽인다.
'으으~ 예~~ 유 머스트 바이~ 두두당당~ 두두당당~'
테이블 칵테일 잔을 치우던 수지가 모처럼 환하게 웃는다.
'선생님~!! 멋있어요...'
'지금 몇시야?'
난 20년 전으로 되돌아간 기분을 유지하며 물었다.
'1시30분요'
'굿~!! 퇴근준비!! 두두당당~ 두두당당~'
우리는 <미쉘> 을 나섰다. 이시간 가계문을 닫을 때는 슬프다.
아침 열시에 문열고 새벽 2시에 셧터 내리려고 사는 인생인가를 생각하면
한심하다는 얘기다. 아스팔트는 젖어 있지만 비는 그쳤다.
'선생님~ 술한잔 사주세요...'
'이시간에 술 먹게?'
'저... 낼~ 아니 오늘 쉬는 날이잖아요. 일요일!'
'아, 낼 너 회사 출근 안하는 날이구나.'
'포장마차에서 한잔 하고 싶어요.'
'좋아~ 사장님이 직원 관리해야지... 가자.'
수지는 웃으며 살짝 내 옷자락을 잡는다. 실내 포장마차 동해집은 여전히
젊은이들로 붐빈다. 인근 동국대 청춘들이 소주와 꼼장어를 즐긴다.
이 젊은 청춘들 몇명이 우리에게 인사한다. 카페에 자주오는 단골들이다.
'카페 사장님 꼼장어 드릴까?'
동해집 아줌마가 조개탕을 올려놓으며 반긴다.
'선생님 오늘은 쭈꾸미 구이 먹어요.'
'그래 비오는날 고추장 쭈꾸미 구이 좋치'
참 묘하다. 누구는 날 사장님이라 부르고, 또 누구는 날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둘다 틀린말은 아니다. 카페 주방아줌마는 나이가 나보다 다섯살 많어서인지
사장님이라 부르는게 편한가 보다.
하지만 수지는 선생님이란 말의 열열한 팬이다.
내가 음악 학원에 강의를 나가니 선생님이란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는 쏘주 두병을 비웠다.
서너잔 술에 자세가 흐트러진 수지 얼굴이 발그레 하다.
쏘주가 좋은건지. 이 시간의 포장마차가 좋은건지, 아님 나랑 마시는 술이 좋은건지
수지는 오늘따라 수다스럽다.
옆자리 남학생에게서 건너오는 술잔을 행복하게 받아 마신다.
'선생님은요~ 정말 묘한 매력이 있어요'
난 웃는다.
'검고 짧은 곱슬머리에다가, 검은안경, 그리고 검은 턱수염.. 가름하고 하얀 피부..
안경에 숨겨진 조그만 눈..그리고 심연같은 조용함.'
'술 몇잔하니 수지 너 농담 잘한다.'
수지가 내 카페 <미쉘>에서 일한지 벌써 사개월이 되어 간다.
첫눈이 흩날리는 1월 어느날 그녀는 <미쉘>에 왔다.
수지는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싶다 했다.
수수한 그녀였지만 그녀의 이모작 인생 도전에 내심 감탄했다.
얼마나 견딜까...반신반의 했지만 지금까지 흔들림없이 날 도우고 있다.
나이 스물여섯의 수지가 결혼보다 돈 욕심을 내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수지에게는 세속적인 소박한 꿈이 있었다.
우린 새벽 네시가 다 되어 포장마차를 나왔다.
시간은 참 빠르게 흐른다. 그녀집 근처에서 그녀를 내려준 후 난 잠시 생각했다.
'집으로 갈까..싸우나로 갈까...'
난 어제도 <미쉘> 쪽방에서 널부러졌지만,
오늘도 새벽 아파트 계단을 혼자 오르는 것이 웬지 싫었다.
'기사양반 영포렉스 싸우나로 갑시다.'
새벽의 싸우나는 참 조용하고 편하다.
집에서 자는 시간보다 여기서 자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다.
'형님 어서오십셔'
새벽 싸우나 관리하는 때밀이 영춘이가 가운을 내주며 반긴다.
이 친구는 나이가 나보다 더 들어 보이고 덩치도 큰 친구가
민구 럽게도 항상 곰살맞게 형님~하면서 징그럽게 군다.
오른쪽 팔뚝에 큐피트의 화살을 문신새긴 것이 새삼 웃긴다.
이친구의 상술이지만 나이가 비슷하면 무조건 형님이다.
넉살도 참 좋은 친구다.
'오늘은 때 안 민다. 피곤해서 말야..'
'아네~ 형님 탕에들어가 푹 쉬십셔. 헤헤'
새벽 이시간엔 싸우나 하는 사람도 드물다.
난 탕에 옴몸을 담구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아까 포장마차에서 수지가 말 했었다. 혜정이가 아무래도 미성년자 같애요.
제 느낌이 그래요. 집 뛰쳐나온 여고생 일지 몰라요.
선생님은 그런 생각 안드세요? 난 좀 걱정돼요. 제가 살살 물어볼까요?
내가 싸우나 휴게룸에서 잠에서 깬건 열시가 조금 넘은 시간 이었다.
아~ 일요일이지만, 카페문 열어야 하는데....
난 서둘러 카페로 갔다.
멀리 혜정이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아!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내가 늦잠을 잤다.'
'사장님 저 여기서 30분이나 기다렸자나요~'
'하하..미안.. 어? 근데 얘가 뭐야?'
혜정이 품에 털복숭이 조그만 강아지를 안고 있었다.
혜정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내가 키우는 강아지 인데요. 이름이 <핑클> 이예요. 제가 핑클 팬이자너요.
그래서 그렇게 지었어요. 이쁘죠? '
난 좀 어이가 없었다.
'가게에 강아지 데리고 오면 안돼지..'
'나 떨어지면 하루종일 운단 말예요..불쌍해서요..'
난 별수없이 이들을 카페로 밀어넣었다.
육개월 쯤 된 요크샤테리어는 앙칼지게 짖기도하고 카페를 휘졌고 다녔다.
혜정이는 강아지 때문에 거의 써빙은 엉망이었다.
이것은 운명의 신이 나에게 보낸 짖굿은 장난의 전주곡에 불과 했다.
그녀가 온 일주일 동안 난 어린 그녀 때문에 정신을 못차릴 지경이었다.
조용하고 아늑했던 나만의 세계는
홀연히 스며든 어린 여자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