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지원자
PC를 켜보니 두 개의 메일이 와 있었다. 하나는 소녀라는 아이디였다. 승찬은 메일을 열었다. 요란하게 장식된 메일이었다. 메일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안녕, 아저씨. 나는 분당초등학교 6학년 애솔이야. 난 요즘 너무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학교에 갔다 오면 피아노 학원, 바이올린 학원, 영어 학원, 그리고 건강한 신체를 위해서 태권도 학원까지 다녀오면 보통 열한시야. 배가 고파서 무언가를 먹으려고 하면 살찌면 보기 싫다고 먹지 말라고 해. 배가 고파서 뒤척뒤척하다가 잠이 깨면 다시 영어부터 시작이지.
날 좀 구해줘. 정말 도망치고 싶어. 나는 한 몸매 하니까 어디서든 밥은 굶지 않을 거야. 그리고, 노파를 요리한다고? 정말 재미있네. 아저씨, 정말 사람이 사람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거야? 도대체 무슨 맛이 나. 나도 한번 먹어봤으면 좋겠다. 이번에 무슨 새로운 공부 방법이 나왔다고 해서 우리 엄마는 그것 들으러 갔어,
이따가 들어오면 아마도 영재가 어떻고 하면서 나를 달달 볶을 거야. 자기는 매일 찜질방에 가서 수다를 떨면서 나를 아예 공부벌레로 만들려고 해. 공부 정말 재미없는데. 정말 우아하게 노파를 요리한다는 것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 꼭 좀 연락해 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지만 승찬은 답장이라는 버튼을 클릭하여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애솔아, 사람 고기처럼 맛이 없는 고기는 없단다. 특히 돈 많고 마음이 나쁜 노파의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단다. 요리는 내가 할 테니까 너는 공부나 해. 그 나이에 한 몸매 한다고 까불어야 아직 넌 어려. 그러니까 그냥 공부나 열심히 해.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어. 그리고 한 마디 충고하겠는데 이런 사이트 다시는 들어오지 마. 알았지?”
메일이 간 것을 확인하고 그는 다음 메일을 열었다. 아이디는 쭉빵이었다.
“나는 럭서리, 쭉쭉 빵빵 희봉이에요. 기쁜 봉우리라는 뜻이지요. 기쁜 봉우리가 어디인 줄은 다 아시죠?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어디 한군데도 연락이 없어요. 가슴도 확대하고 얼굴도 죄다 뜯어 고쳤어요. 들어간 돈을 뽑으려면 몇 년은 고생해야하는데 정말 큰일이에요.
노파를 요리하는데 같이 일하면 큰 것은 하나 주나요? 나, 그것도 아주 잘해요. 제 허리가 보통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좀 까무잡잡한 피부가 아주 매끄러워서 그것하기에 아주 좋은 것 아시죠? 제가 좀 급하거든요?"
승찬은 적혀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아주 상냥한 여자의 목소리였다. 글자 그대로 럭서리한 목소리였다.
“어머, 바로 전화를 주셨네요? 그래, 정말 큰 것 한 장 주실 건가요. 겨울이 다가왔는데 코트가 없어서. 어제 명품점에 갔더니 아주 좋은 것 있던데. 저, 지금이라도 갈 수 있어요.”
승찬은 오피스텔을 알려주었다.
“좋아요. 내가 지금 곧 가죠. 거기가 메디 파크 옆이죠?”
빨간 승용차가 온 것은 삼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승찬은 선금이라면서 우선 백만 원을 건네주었다.
“에이, 이 정도는 껌 값인데. 하기는 요즘에는 불경기니까 내가 좀 참죠. 이놈의 영감탱이들이 통 소식 이 없으니까 내가 별 일을 다 하네.
그리고 앞으로 이 정도는 작은 것 한 장으로 끊어요. 요즘에 십만 원짜리 수표 쓰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촌스럽게.”
승찬은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희봉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노파 따위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오직 돈이 필요했다. 어찌 보면 승찬이 그토록 경멸하는 그 노파보다도 더 돈에 환장한 여자였다. 그냥 보내고 싶었다. 구역질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다.
“아참, 이렇게 무슨 일을 하든지 파트너가 되면 손발을 한번 맞춰봐야 하는데 어때 우리 서로가 잘 맞는지 한번 실험해 볼까요?”
희봉은 승찬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옷을 벗었다. 풍만한 가슴과 튼실한 히프가 저절로 성욕을 자극했다. 난감했다. 승찬은 도망치고 싶었다. 자꾸 타락하는 자신이 싫었다. 유빈과의 관계도 시작하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다른 여자와의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 자신의 정서와는 맞지 않았다.
범행을 공모했던 것도 이런 것을 하자고 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이미 몸은 달구어져 있었고 어느 순간 열기에 휩싸여 버렸다.
“이 새끼야. 어디다 싸. 네가 뭘 믿고 건방지게 안에다 뿌리는 거야. 내가 하기 전에 정신 똑 바로 차리라고 그랬지?”
“야, 그 순간에 어떻게 참아. 네 것은 정말 완벽하단 말야.”
“아이고 이런 병신, 그러니까 노파나 요리한다고 인터넷에 띄우고 지랄이지.”
“너도 섹스 할 때는 정신없던데 뭘.”
“씨팔, 그럼 그 짓 할 때 어느 년이 정신 차리니?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졌는데, 나보러 어떻게 하라는 말야. 씨-팔, 아무튼 애만 배면 알아서 해. 거기를 확 잘라버릴 테니까.”
“너, 정말 날 계속 무시할 거야?”
“무시하면 어때.”
“이게, 정말. 나이도 어린 게.”
“어이구, 꼴에 나이는 따지네. 그래, 고작 노파를 하나 없애는데 공모하는 자식이 나이 어린 여자는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제발, 나를 더 이상 비참하게 만들지 마. 부탁이야.”
“에이, 술 맛 땡기게 하는 군. 정말 경기가 어려우니까 내가 별 놈을 다 만나네.”
희봉은 냉장고를 열더니 소주병을 꺼내어 통째로 두 병을 마셨다. 안주도 없이 마셔서 그런지 비틀거 렸다. 그리고도 양이 차지 않은지 술병을 찾아 눈을 두리번거리다가 창문 옆에 놓여진 양주병을 들더니 입으로 가져갔다. 그건 어제 승찬이가 먹다 만 양주였다.
“그만 마셔. 너 취했어”
“됐어. 내 몸 내가 알아서 해. 그것 하다가 참지 못하고 안에다 흘리는 놈이 뭘 안다고 그래. 이렇게 세상이 엿같이 돌아갈 때는 취해야 버틸 수 있어.”
“그래도 몸 생각해서 마셔. 그러다가 확 가는 수가 있어”
“가면 어때. 어차피 이 고상한 척 하는 나라에서는 살기 싫은데. 씨팔 년놈들이 다 마찬가지야. 어둔 곳에서는 별 짓을 다 하면서 밝은 곳에 가면 마치 천사처럼 행동한다니까. 나도 다 알아. 너만 아는 척 하지 마. 내가 나이는 어려도 이 좆같은 세상 어둔 데는 다 다녀봤어. 그러니까 나를 가르치려고 하지 마. 알았어?”
“아무튼, 술은 그만 마셔”
"잔소리 그만하고 빨리 밥이나 시켜 한 바탕 뛰니까 창자가 꼬이는 것처럼 배고파.”
“너를 생각해서 하는 소리야”
`“네 몸이나 간수해”
`“이게, 정말 보자보자하니까”
`“그래, 어쩔래. 나를 죽일 거야. 어디 죽여 봐. 죽여 보란 말이야”
`“어휴, 이걸.”
희봉의 술주정은 지나쳤다. 그녀는 술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의 모습이 싫어서 성형수술을 했듯이 말짱 깨어 있는 모습이 싫어서 술을 마시고 섹스를 하는 것 같았다. 술이 깨고 나면 얼마나 달라질까. 두려웠다.
`“아이고 이제 살 것 같네.”
`희봉은 가져온 중국음식을 허겁지겁 먹더니 잠이 들어버렸다. 정말 놀라운 변신이었다. 그 변하는 모습은 마치 영화촬영장면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능란한 연기자를 보고 있는 것일까. 유빈에게 전화가 왔지만 갈 수 없었다.
이 여자를 어떻게든 처분을 해야 다른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잘 잤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
두리번거리다가 희봉은 승찬을 발견하더니 마치 사막에서 곤충을 발견한 듯이 신기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그러니까 내가. 맞아. 노파를 요리할 사람을 찾는 인터넷을 보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지? 또 못 보여줄 것 다 보여주었겠군. 어때, 아저씨. 나 괜찮았어?”
무어라고 말을 할까 망설이고 있으니까 희봉이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이 아저씨, 별미를 먹어서 아주 맛이 갔군. 하기는 요즘 내가 어려워서 조금 덤핑을 쳤더니 이런 아저씨에게도 혜택이 다 돌아가네? 안 그러면 죽어도 한 번도 맛도 보지 못했을 거야. 그렇지?”
`“집이 어디야? 나, 나가봐야 돼.”
`“이 아저씨 봐라. 진짜 매너 없네. 아니, 나 같은 여자를 그냥 놔두고 간단 말야?”
`“난 노파를 요리할 사람을 찾고 있었어?”
`“알아. 하지만 난 항상 내 마음대로 해. 그러니까 내 말에 복종해야 해. 알았지?”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거래 끝났어. 난 너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했어.”
“무슨 소리야? 고작 한 장으로 끝내려고 그랬어?”
“처음부터 내 거래의 목적은 노파를 같이 요리할 사람이었어. 네가 만약 노파를 같이 요리하고 싶으면 여기 있고 안 그러면 여기를 나가. 나는 다른 사람을 찾아봐야 해.”
`하지만, 희봉은 매일 저녁이면 내일 아침에 일찍 간다고 하면서 가지 않았다. 늘 바쁘다고 서대면서도 낮에는 잠을 자거나 탄천을 거닐거나 할 뿐이었다. 가지고 있는 핸드폰도 가끔 선물을 준다는 전화나 메일 이외는 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큰 소리는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더 골치아픈 것은 술을 마시기만 하면 가끔씩 승찬을 때렸다. 쇠파이프를 들기도 하고 어디선가 각목을 구하여 오기도 하였다. 승찬은 처음에는 어이가 없어서 참았고 나중에는 희봉이 불쌍해서 참았다. 희봉은 그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
`가끔씩, 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참을 수 없어 소리치며 달려들기도 했지만 곧바로 체념으로 돌아섰다. 그것만이 자신이 지켜야할 유일한 영역이라 생각했다. 더 이상 파멸로 가고 싶지 않는 자기보호였을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망감. 어느새, 승찬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조금만 삐끗하면 발 낭떠러지에 떨어질 것 같은 위기를 매번 느끼면서 신기하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지점장처럼 스스로 죽지 못해서 매일매일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혼자야. 이렇게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낯선 곳에 혼자 있다 보면 전화벨 소리가 제일 두려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때를 가리지 않고 다가오는 폭력이 내 휴대폰을 타고 내 마음까지 침입해 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피할 수 없어. 망설이다가 계속 울리는 벨을 무시할 수 없어 다가가지만 여전히 망설일 수밖에 없어. 또, 어렸을 때처럼 남자의 신음소리만 들리다가 끊어지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 정말 두려워. 그래서, 혼자가 되는 것이 죽기보다 더 싫었는데 혼자는 정말 나의 운명인 것 같아.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또 이렇게 혼자가 되어 있어. 아무래도 불길해서 도저히 이곳을 나갈 수 없어. 또 어떤 남자의 음험한 손길이 나를 감싸고 밤새도록 공포에 떨게 할지 알 수 없어. 그나마 분당은 좀 나아서 이곳으로 이사 왔지만 오피스텔도 이제 들어갈 수 없어.
`더 돈을 내야하는데 낼 돈이 없는 거야. 나에게도 착한 남자가 있었지. 그 남자가 왔으면 좋겠어. 내 몸과 마음을 처음 열어준 그 남자만 있다면 강원도에 가서 감자를 캐고 살아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남자가 올까?”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던 것은 희봉은 가끔 산소 같은 구석이 있다는 것이었다. 절절이 눈물을 흘리면서 사람을 감동시키게 하는 귀여운 면이 있었다. 정말 거짓말처럼 변신했다. 어느 것이 진짜인지 알 수 없지만 그것도 그녀의 일부임에는 부인할 수 없는 것 같았다.
한 바탕 난장판을 피우면서 지옥에서 막 돌아온 악녀처럼 괴롭히다가도 어느 순간이 지나면 마치 고압전기에 감전된 듯이 사람이 달라졌다.
`“저는 주인님을 극진하게 섬기도록 명령을 받은 노예에요.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할게요.”
그 신기함으로 승찬은 희봉을 보내지 못했다. 하지만, 유빈도 만만치 않았다. 처음에는 희봉이라는 존재를 알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알게 되자 당장 희봉을 내 보내라면서 성화를 부렸다. 승찬은 두 여자의 틈바구니 틈에 끼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를 보내야 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희봉이었다. 희봉은 노인을 요리하기 위해서 만났다. 그리고 아무리 살펴봐도 희봉은 노인 요리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언젠가는 너는 떠나야 해. 이제 그 시간이 된 것 같아. 우린 처음부터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 어쨌든 너를 만나서 즐거웠어.”
“아니, 정말 내가 가야하는 거야?”
“그래. 너도 여기에 오래 있으려고 온 것은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만 내가 다른 사람 때문에 나가야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데.”
“그냥 네가 가고 싶어서 간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지. 뭐가 그리 복잡해.”
“그래도, 이건 경우가 아냐. 내가 그 유빈이라는 여자를 좀 만나야겠어.”
“네가 그 여자를 만날 이유가 없잖아.”
“하루를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했는데 왜 내가 그 여자를 만날 이유가 없다는 거지?”
“갑자기 너 답지 않게 왜 이래? 한강물에 배 지나간다고 표시 나는 것 아니라고 말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마치 순정을 바친 여자처럼 행동하네?”
결국, 희봉은 유빈을 만났다. 처음에는 순순히 술을 마시던 둘은 술이 취하자 서로를 욕하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철천지원수처럼 싸우기 시작했다. 둘의 싸움은 글자그대로 용호상박이었다.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싸움. 결국, 둘 다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고 난 후에야 싸움은 끝이 났다.
승찬은 응급실로 달려갔고 거기서 하필이면 그 노파를 만났다. 그 노파는 여전히 까만색 에쿠우스를 타고 다녔으며, 그 시간이 꽤 늦은 시간인데도 곁에는 지점장이 있었다. 지점장은 그 노파가 움직일 때마다 사모님 존경합니다, 를 외치고 있었다.
역시, 그 노파는 요리하는 게 옳았다. 그것도 빨리 요리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