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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색경고(赤色警告) 011

미리별 |2005.03.31 19:52
조회 249 |추천 0

 

 

 

적색경고(赤色警告) 부제:잔혹하게사랑하라

 

 

 


“도망 가게 해줄까?”

 

 

그는 침대에 송장마냥 누워있는 한경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꺼냈다.

도망 가게 해줄까… 반대편 벽을 바라 보고 있던 한경의 시선이 급히 그에게로 옮겨졌다.


그는 그럴줄 알았다며 한경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떼곤

담배각에서 담배 한 개피를 꺼내어 불은 붙지지 않고 다만 입에만 물었다.

 

 

“………”


“물었잖아, 도망 가게 해준다고.”

 

 

작은 고개짓 할 여력도 없는 것인지 여전 한경은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하지만 그는 매정하게도 한경을 한번도 바라보지 않았다.

다만 멍하게 허공을 응시하며 담배 필터를 잘근잘근 씹어댈뿐.


한경은 마른침을 힘겹게 삼키고선 이를 꽉 물고

힘 하나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검지 손가락을 간신히 움직였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그가 바라볼만큼 커다란 기척을 만들진 못했다.

 

 

“이번에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심한것같아.

어쩌면 하루 아침에 여기서 피봐야 할지도 모르지.”


“………”


“그것도 네 몸에서 나오는 피를 말이야.”


“………”


“아줌마가 깨끗하게 빨아논 침대보가 빨개지겠네.

역시 그것도 네 몸에서 나오는 피로 말이야.”

 

 

그는 짧은 한숨과 함께 침대 가장자리에 살짝 걸터앉았던 몸을 일으켰다.


그 짧은 한숨 속에 모든것이 담겨 있었다.

말로 나열할 수 없는 그 무언가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한경은 그의 무미건조한 말에 발끝부터 소름이 돋는 듯 싶었다.

분명 저 말은 어쩌면 간접적이게 죽음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죽음을. 아주 간단하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그저 숨쉬고 있던 하찮은 그 무언가의 죽음을 말하듯.

 

 

“네 편이 되어줄순 없지만 너에게 도움은 줄 수 있어.”

 

 

문쪽으로 몇 발자국 다가선 그가 잠시 멈추어 서더니 빙글 돌아 한경에게 말을 꺼냈다.

조금은 앞뒤가 맞지 않은 듯한 이율배반적인 말.


하지만 본능적으로 죽고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해서였을까.

한경은 그의 말에 온 몸의 세포를 곧두 세워 하나하나 새겨들었다.

 

 

“내 동생을 살인자로 만들고 싶진 않거든.

아, 그 전에 내가 널 죽일수도 있지만 그것 또한 내키질 않거든.”


“………”


“방법, 계획 따윈 없어. 그냥 내가 몰래 널 빼돌릴꺼야.

그러면 넌 도망가. 그리고 다시는 눈에 띄지마.

그 때는 니가 죽든말든 상관하지 않을테니까.

상관하고 싶다 해도 내가 상관 할 범위에서 너무 멀어져 버렸을테니까.”

 

 

그의 말을 제대로 처음부터 들어보자면 한경을 위한것이라고 보기보단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 챙기는 것이었다.

도움이란 말은 그냥 보기좋고 예쁜 포장지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한경에게 그런것따윈 신경쓰지, 아니 신경 쓸 조차 필요없는 것이였다.

우선 도망가게 해준다는 그 말에 엎드려서 백번천번 고개를 조아리고 싶었다.

그 의도가 무엇이었든, 방법이 무엇이었든 그건 생각해 볼 여를조차 없었다.


본능이 판단했다. 어떻게든 우선 살고보자고.

 

 

“김한경, 정말 다시는 눈에 띄지마.”

 

 

그는 마지막 말을 허공에 남겨두곤 문을 열고 밖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방안에 남겨진 한경은 그의 토시 하나 빠지지 않게 말을 들으려

온 몸에 바짝 치켜세웠던 긴장감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졌다.

축 늘어진 몸을 그대로 침대에 맡기곤 두 눈을 감았다.


방금 전 들었던 그 말이 꿈이 아니길,

그가 장난으로 말한것임이 아니길 빌고 또 빌었다.

 

 

“………”

 

 

한경은 실로 오랜만에 편안하게 두 눈을 감은 듯 싶었다.

바싹 타버린 입술 새에서는 작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제 되었다는 안도감에서 비롯된 한숨이랄까.


방 안에는 금세 한경의 새근새근 고른 숨소리가 울려퍼졌다.


어둠이 가득한 이 방에서의 오늘이 마지막이길.

숨 조차 내쉬기가 힘들었던 이 방에서의 오늘이 마지막이길.

…제발 마지막이길.

 

 

 

**

 

“아침은 먹고 가지 그래.”


“가는 길에 빵 사먹어도 돼.”


“뭐 그러던지.”

 

 

잠에서 깨고 바로 나온것인지 편안한 옷차림에 그는

마침 현관에서 학교갈 차비를 다 끝내고 신발을 신고있던 인우와 마주쳤다.


그는 예의상 아침밥을 권유했지만 인우는 됐다는 듯,

조금은 귀찮다는 듯 대충 말대꾸를 해주곤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았다.

 

 

“아 참, 해둘말이 있는데”


“뭐.”

 

 

현관문을 열려 손잡이를 잡고 비틀려던 인우는

갑자기 불현듯 생각난게 있다는 듯, 고개를 그가 있는 쪽으로 돌렸다.


인우의 말에 그는 물 한잔을 들이키며 간단하게 대답했다.

 

 

“저 누나를 밖으로 빼돌릴 생각은 죽어서도 하지마.”


“훗. 표정이 참 살벌하군.”


“난 분명 말했어. 허튼 생각하지마.”

 

 

인우는 그렇게 매섭게 날이 선 말을 남겨두곤

현관문을 열어 찬바람을 흔적으로 남겨두곤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현관 가까이 물 컵을 들고 서 있던 그는 묘하게 입가를 비틀었다.

 

 

“못 들은걸로 하지.”

 

 

 

미리별 (d_dmino_o@hanmail.net)

비오는날의고양이 (cafe.daum.net/rainNcat)

 


좀 많이 짧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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