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색경고(赤色警告) 부제:잔혹하게사랑하라
- 전해주지 못한 그 말.
중년남자의 손을 꼬옥 부여 잡고 소년이 도착한 곳은
목이 뻐근할정도로 높이 쳐다봐야만 지붕이 보이는 아주 커다란 집이였다.
“들어가자꾸나.”
“………”
소년은 지금 자신이 꼭 엘리스처럼 다른 이상한 나라에 온 기분이었다.
모든것이 낯설었고 처음이었다.
무너지고 부서져가던 자신의 집과는 너무나도 확연하게 다른 이 집이 소년은 그저 낯설기만 했다.
자신이 숨쉬고 있던 땅 위에 이런 집이 있을꺼라곤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다.
책속에서나 볼 듯한 궁전이 눈 앞에 있다는 것이 환상, 꿈만 같았다.
중년남자의 이끌림에 소년은 바싹 타오른 긴장감을 말해주듯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한발한발 천천히 내딛었다.
정말이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된 듯한 기분으로….
“아빠 오셨어요?”
“그래, 별일은 없었고?”
“네, 방금 인우도 잠들었어요.”
“하하, 고 녀석은 저의 누나라면 아주 껌뻑 주는구나.”
중년남자와 말을 나누는 고운 미성의 예쁜 목소리.
소년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중년남자의 딸아이로 보이는 소녀와의 잠시 간단한 대화가 끝나자,
소녀는 중년남자를 맞이하느라 보지 못한 소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궁금함이 가득한 눈으로 중년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아, 이제부터 우리 식구가 될 녀석이다.
우선 씻고 나서 자세히 말을 해주마.”
“네.”
중년남자의 말에 소녀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궁금함이 가득한 눈으로 돌아가 소년을 바라보았다.
꾀죄죄한 옷, 더수룩한 머리카락, 생채기와 상처로 가득한 얼굴.
그리고 불편한다는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소녀를 바라보는 반듯한 눈동자.
소년은 그저 궁금했고, 소년은 그저 불편했다.
잠시후, 가정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나와 소년을 데리고 샤워실로 안내했다.
**
깨끗이 씻고나온 소년의 모습에서 좀 전의 꾀죄죄한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반듯하게 차려입은 옷, 그리고 반창고로 가린 흉한 상처들.
그리고 아까전보다 훨씬 더 반짝이는 소년의 눈동자.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음이구나.”
중년남자는 소년을 아주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소년은 그런 중년남자 시선이 불편했는지 습관처럼 미간을 찌푸렸다.
“어서 앉거라. 이제 한 식구가 될테니 간단한 소개와 인사는 해야하지 않겠니.”
중년남자의 말에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가 비어있는 쇼파에 앉았다.
쇼파에 앉는 부시럭 소리가 허공에서 잠잠해졌을때쯤,
중년남자가 앞에 있던 차 한잔을 들이키더니 말문을 열었다.
“이쪽 예쁜 숙녀님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의 딸. 권인경.
그리고 반대편에 앉은 이 멋진 신사는 이제부터 우리 가족이 될 녀석.”
“안녕?”
“………”
중년남자의 말에 인경은 싱긋 웃으며 소년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소년은 살짝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는 걸로 인사를 맞췄다.
약간은 민망해진 인경은 살짝 얼굴을 붉혔고,
소년도 약간은 미안했던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잠시 인경을 바라보았다.
“아 참, 그것보단 녀석 이름을 안 물어봤구나.”
“……이…름…없어요.”
중년남자는 이제서야 생각이 났는지 짧고 작은 탄성과 함께 소년에게 이름을 물었지만,
들려오는 건 아주 딱딱하고 건조한 음성이지만 그 안에 슬픔들로 가득찬 소년의 대답이었다.
소년의 말에 중년남자 그리고 인경은 아무말도 없이 한참동안 정적을 지켰다.
그리고 한참후 정적을 깬 건 중년남자였다.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는거냐. 이름이 없다면 지으면 되는 것이 아니냐?
갖다 붙이면 이름이거늘. 안그런냐?”
중년남자 말에 인경은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소년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중년남자는 자신의 턱주변을 손으로 만지작 거리며 고심히 무언갈 생각하는 듯했다.
“우리 집안은 인자 돌림이니, 흐음. 인성이 어떻겠느냐?
인경, 인우 그리고 인성. 꽤 괜찮은 이름 아니냐?”
“네. 멋있는 이름 같아요.”
“………”
인경은 손뼉까지 치며 밝은 웃음까지 지어가며 멋있다 를 연발했고,
소년도 별 다른 거부의 말 없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인성, 권인성. 소년의 이름이 인성이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소년의 마음에 새하얀 천사가 숨쉬기 시작하기도 한 날이었다.
물론 소년은 절대 그 사실을 절대 알리 없지만 말이다.
중년남자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인경의 밝은 웃음소리.
그리고 들리지 않는 소년의 웃음소리가 거실에 한데 뒤섞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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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별 (d_dmino_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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