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윤이 마취에서 깨어나서도 한필중의 눈을 맞추지 못했다. 멍한 시선 속에 아무것도 담지 않은 듯 반쯤 넋을 놓고 있었다. 한필중이 몇 마디를 건네 보아도 없는 사람인 듯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듯한 지윤의 태도에 한필중이 잠시 당혹해 하다 담당의를 찾아가 지윤의 상태를 전해 들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들었는데.....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아서...”
“일시적은 충격 상태에서 아직 벗어나지 않아 그럴 겁니다. 차에 동행했던 사람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고를 당했다 들었습니다. 그 순간에 깨어있었다면 그 상황을 목격했을지도 모를 일이고.....차차 상태를 지켜보며 상담을 해봐야 알겠지만 받아들이지 어려운 일에 대한 일종의 거부반응일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몸의 상처보다 정신적인 후유증이 더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당분간은 다그치거나 불편해 할 질문들은 삼가는 게 좋을 겁니다.”
한필중이 다시 병실로 돌아와 물끄러미 지윤을 바라보았다. 문득 애써 밀쳐두고 있던 그 불안함이 섬뜩하게 고개를 쳐들어 등줄기에 싸늘한 한기가 스쳤다. 한필중이 지윤에게로 다가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그 눈을 자신에게 맞추었다. 여전히 휭한 시선에 아무런 초점이 없어 한필중을 낯선 사람인 듯 바라보고 있었다.
“왜 이르니. 도대체 뭘 본거야....뭘 봤길래 이러는 거니?”
지윤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주르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슬픔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듯한 그 눈에서 끝없는 한스러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필중이 손으로 그 눈물을 닦아내려 하자 지윤이 싸늘하게 고개를 돌리며 외면했다.
답답함에 담배를 꺼내 물다 병실임을 인식해 다시 손으로 걷어내던 한필중이 종두가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그것을 물었다.
“확인했어?”
“모두 전소돼서 다른 걸 찾아내지는 못했습니다. 시신이 183에 73키로 정도의 남자인 것과 동준이 하고 있던 목걸이가 나왔습니다.”
“가자....봐야겠다.”
한필중이 종두를 앞세우고 동준의 시신을 확인하려 병실을 나가려 하자 일순간 얼굴색이 변한 지윤이 괴성에 가까운 울부짖음으로 발작을 일으켰다. 종두와 한필중이 동시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를 지르는 지윤을 감싸않은 한필중이 급하게 벨을 누르고 종두에게 의사를 불러오라고 했다.
“내 앞에서 동준이가........”
한필중이 지윤의 잎에서 흘러나온 그 말에 일순간 마지막까지 놓지 않고 있던 한줄기 기대를 스르르 놓았다. 유일한 맞수를 잃은 상실감이 그 심장을 배고 지나갔다. 한필중이 첫마디를 멈칫거리며 지윤에게 다시 되 물었다.
“그 놈이.....정말 그놈이.......그렇게 떠났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니.”
지윤이 한필중의 가슴자락을 움켜지고 몸을 떨며 소리도 나지 않는 울음을 꺼이꺼이 토해냈다.
“내가.....놔줬어야 했어....그랬으면....그랬으면.....”
지윤이 말을 다 잊지 못하고 실신하듯 침대에 쓰러졌다. 한필중이 멍하니 천정을 올려다 보다 지윤을 바로 눕히고 복도로 나왔다. 종두가 불안하게 서성이며 서 있다 한필중의 눈치를 살피며 다가섰다.
“경찰이 와 있습니다. 사모님께 몇 가지 묻고 동준의 신원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지금은 안정이 필요하다. 내가 만나보겠다.”
이성을 잃은 지윤의 발작으로 조금씩 동준의 죽음에 대한 의구심을 놓고 있던 한필중이 사고 상황과 시신에 대한 얘기를 전해 들으며 온몸의 기운을 상쇄하고 있었다. 결국 대합실 의자에 힘없이 주저앉아 무의식 속의 손놀림으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주위의 시선이 담배를 피워 문 한필중에게 쏠리는 것을 의식한 종두가 조심스럽게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건넸다.
“사장님....잠시 밖으로 나가시지요.”
여전히 멍한 시선으로 초점을 두지 않고 있던 한필중이 동준을 마주한 마지막 그날을 떠올렸다.
“종두야!”
“.....그 놈이.......끝까지 나를 우롱하는구나.”
“사장님....!”
“내일 지윤이 진술 받고나면 시신 수습해서 장 치러라.”
나는 한번도 너를 만나 가진 그리움에 지친 적 없었다.
처음 내게 와 아릿한 웃음을 흘려주고 간 그 날부터 이미 평생을 준비한 그리움이었으리라.
긴말 나누지 않는 짧은 새벽의 만남 속에서도 내 눈앞에 담긴 너를 그리워했고...
내 그리움 읽어내 아이처럼 맑고 푸른 기운을 전하던 그 전율을 그리워했다.
아느냐...
내 방을 들어서며 살며시 그 입가에 걸리는 미소한 자락으로......
심장을 태웠던 그리움의 무게를 놓았던 나를....
나를 찾아와 방문을 나서는 그 순간까지 나는 단 한점의 시선조차 흘려 놓을 수 없었다.
크게 웃지 않아 유심히 보지 않으면 찰나에 놓쳐버릴 너의 미소 한 자락이....
심장이 아릴만큼 아깝고 저려서 눈 속에 심장 속에 새기듯 각인했다.
하얀 도포자락을 살며시 걷어내며 벽에 등을 기대고 앉은 그 모습이 꿈처럼 아련해 늘 나를 몽환 속에 빠지게 했었다.
내 시선을 붙잡아 농을 던지며 술잔을 만지작거리던 그 흰 손이 세상 어떤 유혹보다 나를 뜨겁게 데웠던 것을 아느냐....
온몸의 힘을 내려 기대앉은 채 눈을 감은 니가 보지 않고도 내 시선을 말했었다.
- 그리 보지 마라.
아직도 내게서 다른 모습을 찾고 있느냐.
- 아니다. 내가 취한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것을 무엇이라 해야 하겠느냐!]
감은 눈으로도 그려낼 듯 그런 너를 수없이 화폭에 내려 앉혀 내 그리움 속에 두었었다.
너를 가져 평생을 키웠던 그 그리움이 나를 살게 했다.
나를 두고 떠나던 그 심장이 온전히 내게 전이돼 보내고 견딘 세월 속에 다른 것이 찾아들지 못했다.
어느 새벽 내게 찾아들었던 그 그리움 하나가.....
내 영혼을 취해 가져갔다.
아마도 너를 그리워하기 위해 태어났던 모양이다.
앞에 두어도 그리웠던 사람....
니가 나를 데려가던 그 새벽 비로소 내 몸에서 그 그리움들이 흩어져 세상 속에 뿌려졌다.
너무도 가벼운 육신의 무게가 너에게로 가는 나를 허락했다.
네게 가면 원 없이 말할 것이다.
가슴에 산처럼 쌓아 단 한번도 편히 하지 못했던 그 말을....
사랑한다...
사랑한다...
집도를 맞은 김과장의 얼굴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고 있었다. 이미 몸이 싸늘히 식어 굳어갈 만큼 심한 출혈로 쇼크사에 가까운 상태였다. 김과장이 눈짓으로 정재를 수술실 밖으로 밀어냈다. 누워있는 동준만큼이나 하얗게 굳어 수술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어 수술 중 동준이 견뎌내지 못할 것을 예상해 그 자리를 피하게 하려 했다.
정재가 고개를 작게 가로저으며 나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이미 그 어떤 의학기술이나 집도의의 신력으로 길을 바꿀 수 있는 수술이 아님을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오직 침대에 누운 그 한사람의 의지로만이 자신을 끝까지 붙잡아 둘 수 있는 일이었다.
다섯 시간이 넘어가고 있는 수술로 모두 긴장이 풀리고 있던 순간 동준의 호흡이 작게 파동을 치다 이내 그 압이 끝없이 추락 했다. 순간 정재의 눈이 심하게 흔들리며 들고 있던 메스를 떨어트렸다. 김과장이 침착하게 심폐소생을 시작했고 수술 팀들의 얼굴이 두려움으로 뒤덮이고 있었다.
“50.....한 번 더........80........한 번 더.......한 번 더......120 한 번 더............”
이미 기계속의 생명선이 아무런 파동 없이 일직선으로 선을 걷고 있었다. 최고 압까지 올려 심폐소생을 계속 하던 김과장이 맥없이 물러나 물끄러미 동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상한 일이다. 생명 줄을 놓아버린 그 얼굴에 빛을 담은 듯한 엷은 웃음이 번져 있었다. 김과장이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긴 기다림 끝에 그가 왔다.
방문을 들어서는 그를 보지 않은 채 술잔만을 비웠다.
금방이라도 꿈틀거리며 그 박동을 들켜버릴 것 같은 심장을 꾹꾹 눌러 담으며 그렇게 술잔속에 모든 떨림을 실어 마셨다.
- 내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모양이구나.
- 언제나 니 뜻이 아니냐. 처음부터 그리 니 뜻으로만 이루어진 인연이니 내가 기다린다 한들 네게 한점 무게나 실리겠느냐.
그가 빙긋이 웃으며 종현의 술잔에 반쯤 잔을 채우다 그대로 멈춘 채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종현이 술병을 든 그 손을 잠시 바라보다 눈을 들어 시선을 맞추었다. 그 얼굴에 한가득 번진 미소가 금방이라도 술잔 속에 녹아내릴 듯 했다.
- 뭘 하는 것이냐. 왜 잔을 채우다 마느냐.
- 아직 한번도 나를 봐주지 않고 있질 않느냐. 심통난 사람 어찌 생겼는지 얼굴한번 들어 보라 그리 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에 아무런 저항 없이 서운함을 내려놓았다. 어쩌면 그 미소를 가지고 싶어 그리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순간만은 온전한 내 벗으로 너를 가질 것이다.
입가에 머물러 번지는 그 미소 한 자락조차도 오직 나를 위한 것으로 가질 것이다.
지금 그 눈 속에 내려앉은 모든 것은 너를 통해 내가 보는 것이리라.]
그가 새벽의 푸른 빛 속에 발을 내딛으며 동준을 돌아보았다. 동준이 함께 가려 걸음을 때려하자 그 얼굴에 번졌던 미소를 거두었다.
- 움직이지 마라.
- 함께 갈 것이다. 이제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동준이 다시 한걸음을 때어놓으려 하자 그 얼굴에 노기가 번지며 뜨거운 기운을 쏟아냈다.
- 멈춰라. 움직이지 마라 하지 않았느냐.
- 이제 더는.....너를 기다리는 일.....하지 않을 것이다.
- 돌아서라.
- 싫다. 함께 갈 것이다.
- 돌아서라. 지금 이 순간만 참아내면 다시는 나를 보내는 일도, 기다리는 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제발 돌아서라 동준아!
동준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지 못하고 그 발걸음을 내딛지도 못한 채 서 있었다. 희뿌연 새벽안개와 푸른 연기 속에 반쯤 가려진 그의 얼굴이 어느새 진서로 바뀌어있었다.
- 이제 기다리게 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한순간도 너를 그리움 속에 놓아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돌아서서 나를 보지 마라. 그 발걸음 지금 멈추지 못하면 더 길고 어두운 그리움 속에 갇히게 된다. 이번만...이 한번만 내게서 눈을 돌려라.
김과장이 손에서 기구를 놓자 정재가 참았던 두려움을 토해내며 달려들었다.
“안됩니다. 이렇게 보낼 사람이 아닙니다. 계속해야 합니다. 살 겁니다. 살아날 겁니다. 강한 사람입니다.”
김과장이 동료에게 정재를 데려나가는 눈짓을 보냈다.
“이미 각오하고 시작한 수술이다. 최선을 다하는 것 밖에는 우리에게 그 어떤 특권도 없다.”
정재가 격한 감정을 들어내며 동준의 가슴에 계속 심폐소생을 시도하고 있었다. 정재의 불같은 화기에 동료가 김과장의 눈치를 살피다 기계를 다시 올렸다.
“120.......한 번 더.....한 번 더......한 번 더.....”
평소답지 않은 정재의 모습에 모두들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수술실의 분위기가 한층 더 가라앉고 있었다. 보다 못한 김과장이 정재를 말리고 나섰다.
“그만하게. 자네답지 않게 왜 이러나. 죽은 사람 살리는 일은 의사 몫이 아니야.”
정재가 자신에게 주문을 걸 듯 계속 그 말을 되풀이 하고 있었다.
"죽지 않았습니다. 죽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죽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싸리문을 나서던 그가 불안함을 감추지 못한 채 뜨거운 눈물을 삼키던 동준에게 마지막 그말을 남겼다.
- 멈추어라......움직이지 마라.....나를 보지 마라.
동준이 그 말을 듣지 않고 뒤따르려 하자 그가 발을 멈춘 채 한번도 보인 적 없는 두렵고 싸늘한 목소리를 들어냈다.
- 돌아서라. 한걸음만 더 내듣는다면 다시는 너를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돌아서라. 제발.....”
동준이 흐려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 더 버티지 못하고 돌아섰다.
정재의 어리석은 행동에 김과장이 더 참지 않고 노기를 들어내려 할 때였다. 평행선을 그으며 띠- 하는 일직선의 전자음을 내고 있던 주파수가 미세하게 튀어 오르며 숨길의 흔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일순간 모든 시선이 그곳으로 모아졌고 또다시 튀어 오르는 그 파동에 김과장이 놀라 정재에게서 기계를 받아내 다시 심폐소생을 시작했다.
호흡을 잡아낸 김과장의 시선이 정재에게 잠시 멈추었다 남은 수술을 시작했다.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고 정재 또한 처음과 변함없는 얼굴로 김과장을 따르고 있었다. 뇌 속의 굳은 핏덩어리를 제거하고 또 다른 절개부분을 열던 김과장의 얼굴이 다시 굳어지고 있었다. 정재가 머뭇거리다 김과장을 건너다보며 무거운 입을 열었다.
“위험합니다.”
“안다. 하지만 그대로 두면 시신경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기억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단편적이 될 수도 있고.......케이스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그렇게 큰 어려움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잠시 망설이든 정재가 그 눈에 어떤 의지를 싫어 말을 이었다.
- 단 하나의 기억이 어떤 사람에겐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형에겐 그 하나가 생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