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초면부터 반말을 쓴 공무원에 대하여

사평역에서 |2005.04.20 00:12
조회 1,203 |추천 0

초면부터 반말을 쓴 공무원에 대하여


저는 광주광역시에 거주하는 30대 초반의 평범한 시민입니다. 현재 실직 상태로

고용보험금 수급자입니다. 수급 신청 과정에 있어 담당 공무원의 ‘반말’과 ‘비아

냥’,‘비웃음’ 등 지극히 모멸적인 태도로 인하여 굴욕감을 느끼는바 이렇게 공식

적으로 문제를 제기합니다.


민원명 : 불쾌하고 모멸적인 공무원의 태도

대  상 : 광주 고용안정센터 소속 ××× 씨


내  용


실업급여 수급자는 2주에 한 번 씩 고용안정센터를 방문해야 하지요. 실업급여

의 본뜻에 맞게 계속 실직상태이며 또한 진정으로 구직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

을 확인하는 취지로 실업인정일이라고 하지요.


본디 ′05년 4월 15일 금요일이 저의 인정일이었는데 당일 모 기업의 사장이 급

작스럽게 입사면접일정을 앞당기는 사정으로 급히 서울을 방문해야했고 본 센

터에 문의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직원으로부터 ‘당일자 버스표 등 거주

지역을 벗어났다는 증빙물’을 준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인정일 대신 방문한 4월 18일 월요일이었습니다. 담당자가 바뀌어 있더

군요. 제 나이 또래로 보이는 서로 처음 보는 인물이었습니다. 이하 대화대용의

‘민원인’은 저이고 ‘공무원’은 제가 민원을 제기하는 해당직원입니다.


민원인 : “안녕하세요?”


공무원 : (권위적이고 딱딱한 표정 및 말투로)

          “어...... . * * * 씨? 오늘이 아닌데 왜 인제 왔지?”



안내 데스크 계시는 제 아버지 연배의 직원분은 몇 번을 뵈어도 너무도 공손하

셔서 죄송스러운 마음까지 들게 하시던데 이 분은 초면부터 반말이더군요. 보통

오래된 친구라도 공적인 대화에서는 ‘상호존칭’을 쓰는 것이 기본예절로 알고

있는데...... . 이 분은 초면에 반말이더군요.



홍조(紅潮)를 띤 제 얼굴을 보고 나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동반한 사무적인

존댓말로 바뀌었지만 존댓말을 가끔 섞어주는 ‘~~씨’와 ‘반말’은 한동안 계속

되더군요.



씨(氏)라는 호칭까지 문제로 삼지는 않겠습니다. 단 2인칭 호격으로 쓰일 경우 

말투에 따라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는 하대체일 수 도 있다는 점은 알려드리

고 싶네요. “야 이 양반아!”에서의 양반이 ‘상류계급’을 뜻하는 존칭은 아니듯

말입니다.



그리고 지정일 광주를 벗어난 면접일정을 설명하면서 또 한 번 모멸감을 느끼

게 되었습니다.



기업체로부터 ‘입사지원을 위한 노력을 했다’는 확인도장을 받지 못한 것이 문

제였습니다. 사실 ‘실업급여 받아야 하니 도장 한 번 찍어 주세요’라고 말하기가

쉽지는 않더군요.



숙제를 하지 않아 선생님께 야단을 맞는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사전에 전화로 문의한 대로 ‘버스 승차권’은 가지고 왔다”라고 해명을 했더니

또 한 번 비아냥거리는 말투의 일장훈계를 들어야 했습니다.


‘사무실 전화는 보통 비서가 받는 것 같던데 인천본사가 아닌 서울 사무소에서

면접을 보았기에 원하시면 사장님의 개인 전화번호도 알려드리겠다. 지금 당장

확인전화 해주셔도 좋다’는 저의 말에는 비웃음과 함께 ‘(통화해보았자) 그런 말

어떻게 믿느냐’는 툭 쏘는 말투의 핀잔을 또 들어야 했습니다.


결국 그 분의 요구에 따라 A4용지에 자필확인서를 썼습니다. 마음이 불편해서

였는지 몇 가지 요구사항을 빠뜨린 모양이더군요. 또 면전에서 냉소적인 코웃음

을 치더군요.


예, 압니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거지요. 업무규정이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는

거지요. 하지만 꼭 그렇게 경멸적인 태도와 모멸적인 말투의 일장연설이 업무상

필요한 것인지는 모르겠군요.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이렇게 대답했을 겁니다. 공(公)이 아닌 사(私)기업체

였지만 그러한 사람사이의 친절함은 유지했었습니다.


“누군지 동료가 잘못된 조언을 드렸군요. 죄송하지만 승차권은 효용이 없거든

요. 번거롭더라도 자필로 확인서를 좀 써주시죠. 저희도 규정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 불편하더라도 이해 좀 해주시구요”


안되는 것을 안 된다고 한 것이라면 문제 삼을 것이 아니지요.


제가 공식적으로 문제를 삼는 부분은 광주 고용안정센터 ×××씨의 민원태도로

다음과 같습니다.


                   ------   다   음   ------


1. (나중에 존칭으로 바뀌긴 했지만) 반말을 위주로 했던 처음의 모멸적인 말투


2. 면담기간 계속 유지했던 권위적이고 모멸적인 표정과 태도


3. 몇 차례 관찰되었던 면전에서의 냉소적인 비웃음




노동부 총무과 ○○○ 선생님께 드리는 몇 가지 당부와 약속


노동부 감사 담당관실에 문의한 결과 ‘당 부서는 비리관련부서로 직원의 불친절

은 총무과의 영역이다’라는 설명과 함께 담당자로서 선생님의 존함과 전화번호

를 가르쳐 주더군요.


선생님께 몇 가지 당부 및 약속의 말씀을 드리지요.


현재 저는 공식적인 민원 형식의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는 말씀과 더불어


1) 당 민원업무의 담당자로서 조사의 과정과 결과를 알려주십시오.


- 징계 사유가 되던 그렇지 않던 과정, 결과, 근거 및 취지를 민원당사자로서

정히 요청하는 바입니다. 선진국을 지향하는 민주국가의 민원인으로서 그 정도

의 권리는 있다고 사료됩니다. 누군가 제동을 걸지 않는 다면 얼마나 많은 더구

나 절박한 사정을 가진 시민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고 속앓이를 할지 모르는 일

아닙니까?


2) 지금의 본 글을 포함해서 앞으로의 진행상황을 제가 가입한 NGO 단체, 기

자회원으로 가입한 인터넷 신문, 제도권 언론, 포털 사이트 등의 많은 인터넷

매체에 올려서 동료 시민들과 공유할 예정입니다.


‘천인공노할 사건’은 비록 아닐 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불친절한 공무원 때문에

불편을 느끼면서도 참고 넘어가곤 하지요. 그래도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서 ‘함

께 나누어 생각해 볼 문제’라는 취지입니다. 단, ‘분풀이를 위한 명예훼손’을 목

적으로 하는 것은 아닌바 노동부의 홈페이지 이외의 사이트에는 모든 이름을

익명으로 올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행여 실명이 나돈다면 그 것은 제 작품이 아닙니다.


3) 앞에서 부탁드린 선생님의 민원처리가 미흡하다고 판단이 되면 이 또한 새로

운 민원대상으로 여기고 함께 청와대 신문고 등의 상위 기관을 활용하겠습니다.

‘여전히 반복되는 공무원의 제 식구 감싸기 관행’이라는 제목이 좋겠군요.



행여 이 글을 읽으시는 공무원 여러분께


‘국민의 공복’이라는 진부한 문구는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항상 일부가 문제라고

들 하는데 제발 사람사이의 최소한의 친절함은 좀 갖추어 주십시오. 특히 배움

이 덜한 분들, 변화되는 시대에 적응이 늦는 연세 드신 분들, 직업이 변변하지

못한 이, 한 마디로 보기에 약하고 만만해 보이는 분들에게 사람 봐가면서 더욱

거만해지지 말고 일부러라도 친절해 지십시오.


외환위기 시대의 대량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에 비해서 ‘왜 공무원 노

조는 국민적인 공감대와 호응을 얻지 못하는 지’ 한 번 차분하게 생각해 보십시

오. ‘공무원도 결국 노동자라는 팩트를 인지하지 못하는 부족한 국민의식’때문

만은 아닐 겁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실업급여 수급자 여러분들께


지금 처해진 상황으로도 벅차지요. 자기가 책임지고 있는 가정이나 부모님께 죄

스럽기도 하고요. 외식(外食)하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가슴이

메여오기도 하고. 여하튼 좋은 정보와 힘을 얻지는 못할지언정 무슨 떳떳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된 양 쭈뼛거리고 부당한 대우 받을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하나 여쭙지요. 정당하게 보험금을 탈 때 보험사 직원이 고객에게 모멸적인 태

도 보이나요? 우리가 받는 것도 결국은 ‘만약에 닥칠 수 도 있는 불행이나 위험

을 대비하여 함께 대비한 보장에 대한 결과물’입니다. 단, 보험 모집인이 사기업

(私企業)이 아닌 행정서비스이기에 우리가 보험료 대신 세금(稅金)으로 지불했

던 것이고 보통 ‘사회보장’이라는 다른 명칭이 있을 뿐입니다.


어디 가서든 고객이랍시고 거만을 떨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굽신거릴 필요도

없습니다. 저 역시 부정수급자들은 경멸하는 바 입니다. 하지만 비슷한 나이 또

래 아니 좀 차이가 있더라도 설령 거지에게 자기돈 적선할 때도 초면에 ‘힘내

세요’라고 하지 ‘야 힘네’라며 거만을 떨지는 않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동료 시민들께


‘무슨 중요한 일이라고 이렇게 긴 글을 쓰나’라고 나무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은 누가 나서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드는 것이다’는 말씀은

꼭 드리고 싶네요.


‘동북아 정세’와 ‘일본의 역사 왜곡’을 논하는 것 이상 우리 주변부터 바르게 고

쳐나가는 것 또한 ‘함께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중요한 일입니다.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정도이상 군림하는 비열함, 접촉사고라도 나면 더

욱이 상대가 여성이거나 초보 운전자면 무조건 큰 목소리로 제압하려 드는 부

정직함, 부당하고 모멸적인 대우를 받더라도 상대가 공무원이거나 하면 꿍하고

참고 넘어가는 태도부터 고칩시다.


주변부터 바꾸자는 겁니다.


지하철에서 아이를 가진 여성분이나 어르신들께 자리를 양보하는 것, 관공서에

서 배움이 덜하거나 연세 드신 분들이 어려워 할 때면 직원이 아니더라도 먼저

챙겨드리는 것부터 실천하자는 겁니다.


그 분들은 우리의 이웃이며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이 민족을 이어나가기 위해

자신의 신체적 자유를 상당 부분 희생한 우리의 누이이며 또 지금 우리를 있게

만드신 고마운 어른들입니다.


핵심에서 조금 벗어나긴 했지만 사소한 에피소드를 가지고 이렇게 호들갑을 떠

는 못난 필부(匹夫)의 속마음을 보여 봅니다.


함께 만듭시다. 우리 주변부터.


함께 생각해 봅시다. 작은 것부터.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