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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너희가 동부를 아느냐(III) - 이상한 생일 파티

투덜이 |2005.04.27 17:19
조회 854 |추천 0

사이암의 말이 전부 진짜라면 아마도 내가 길에서 너무나도 우연히 대단한 사람을

만난 셈인데… 다행히도 내가 10대가 아니다 보니, 처음 보는 사람 말은 적당히

믿어야 실수를 면한다는 정도의 이성은 있었다.

 

암튼, 이렇게 후한 대접을 받고 오후 5시경 사이암이 나를 처음 만난 시내 외곽의

자기 사무실로 돌아 가면서 사이암이 내게 저녁에 초대하고 싶다고 한다. 

이궁….  역시나….  또 시작이군…. 

 

사이암은 내가 도저히 거절 할 수 없는 초대를 했다.  그날이 자기 생일인데,

쿠르드족은 원래 전통적으로 생일 파티란 게 없단다.  Just other day일뿐

생일이라고 특별 할게 없단다.   게다가 그 날은 10월 라마단이 시작하는 바로

전 날인 라마단 축제일 이기 때문에, 다들 잘 알겠지만 모든 무슬림들은 라마단

기간 동안은 새벽 5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식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라마단

전야제엔 밤 새 가족이 모여 흥청망청 먹고 논다지만…  흥…. 술도 안 마시는

무슬림들이 흥청망청 해 봤자지…  ㅋ.ㅋ.ㅋ..

 

암튼, 사이암은 그날이 자기 생일이라 친구들을 자기집(이삭파샤 바로 아래 있는

캠핑장 겸 레스토랑 옆에 자기 집이 있다)에 초대 했는데, 다들 라마단 축제 때문에

가족과 밤을 보내야 해서 겨우 몇 명밖에 안 온단다. 게다가 사이암의 부모님도

낮에 잠깐 인사만 하고 가시고 자기 생일 파티엔 참석하지 않으실 거라며 자기

생일인데 너무 외로워 우울 하다느니, 네가 와 주면 정말 기쁠 거 라는 둥, 너무나

불쌍하고 애처로운 표정을 하고 부탁을 했다.

 

지금까지 친절하게 꼬박 하루를 자기 차로 모시며 내게 친절을 베풀었는데 딱 잘라

거절 할 수도 없고…  난 다음날 아침 7시 반 첫차를 타고 반(VAN)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네 레스토랑 까지 가면 오늘 밤 시내 호텔로 돌아올 수 없어 안 된다고 정중히

거절을 했더니 한술 더 떠서 자기 캠핑장에 빈 방 무지 많으니 거기서 자고 가란다. 

넌 내 친구니까 공짜로 자도 된다면서.

 

내가 공짜에 환장한 사람도 아니고… 호텔 비 이미 선불 해서 나올 수 없다고 살짝

거짓말을 했는데도, 호텔 주인도 다 아는 사람이니 자기가 호텔 주인에게 얘기해

놓고 내 짐을 옮겨 주겠다며 걱정 말란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첫 차에 맞춰 차로

보내 줄 테니 믿으라고.  이런… 

 

입장 곤란해 얘기를 이리 저리 돌리다가 갑자기 사이암이 황당한 소릴 한다.… 

자기가 처음 에베레스트를 정복 한 게 1992년이고, 그때 19살 이었단다.  뭐시라 ? 

난 그때 대학 졸업하고 직장 다닐 땐 데 ?  이기 무신 소리지 ???  

 

난 킥킥 웃으면서, “네가 19살 이었으면 1982년도 겠지, 1992년도가 아니고” 했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1992년도 맞단다.   자가기 33살 이니까 1992년도 맞다 면서 자기

운전면허를 찾아 보여준다.  띠잉….   뭐야… 이 아저씨, 아저씨가 아니고 한참

동상일세 그려....

 

내가 너무 황당해 하면서 난 그때 대학 졸업하고 이미 직장 다니고 있었다고 하니까

지도 황당해 한다.  넌 대체 몇 살이냐고 묻길래 뭐, 말해야 믿지도 않을 테니

이집트에서 만든 학생증에 나온 생년월일을 슬쩍 보여줬다.  사이암도 나만큼

놀랬는지 어깨를 으쓱 하더니 자긴 내가 스물 대여섯 됬는줄 알았다나.   하긴,

내가 좀 많이 작으니까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원래 내가 나보다 어린 남자한테는 내 동생 친구들 같아 아그들로 보는 버릇이

있어서… 우리 막내와 동갑이다 싶으니 갑자기 내 동생 같이 생각 되서 부담이

화악~ 없어지는 거다.   그래서 얼떨결에 생일이라는데 너무 불쌍한 거 같아 그럼

나도 네 생일파티에 가마 하고 승락을 하게 됬다.  한참 동생인데 뭐 어떠랴.....

 

일단 호텔로 돌아가 사정이 있어 숙박을 못 하지만 내가 check in 을 했으니 숙박비는

지불 하겠다고 하니, 호텔 주인은 잠도 안 잤는데 숙박비는 받을 수 없다며 그냥 가란다. 

물론 방이 펑펑 남아 도는 것은 사실 이지만, 손님도 없는데 나 까지 나가면 손해 인데도

절대 숙박비를 받을 수 없다며 그냥 가란다.   난 그들의 선한 양심에 감사를 하고 나와

근처 빵집에서 커다란 케잌을 하나 사 들고 사이암의 사무실로 갔다.

 

사이암은 내가 올지 안 올지 반신 반의 했는지, 내가 오니까 너무 기뻐한다.  난 다른 건

몰라도 약속 안 지키는 사람은 병적으로 싫어하는데 내가 공수표 남발 하는 사람으로

알았다는 게 살짝 기분 상했지만, 암튼 사이암의 차를 타고 다시 이삭파샤 아래 캠핑장의

레스토랑으로 갔다.  

 

그런데… 내가 차에 타고 나니 사이암이 자꾸 딴소릴 한다.  내가 분명히 다음날 새벽

첫차에 맞춰 내려 간다고 했는데도 낼 아침 같이 먹고 날씨가 개이면 아라랏 산에 다시

가 보잖다.  내가 난 새벽에 돌아 간다고 해도, 그래,  근데 오늘 날씨 나빠 못 봤으니 낼

다시 보자고 하는데, 아라랏 산이 시내 가는 길에 있는것도 아니고,  얘가 지금 뭔 생각으로

이런 소릴 하는건지…  암튼 레스토랑에 도착 하니 파티 시간이 아직 멀었는지 사람들도

별로 없고 테이블도 안 차려 놓고 썰렁 하기 짝이 없다.

 

터키도 그렇고 터키의 쿠르드인들도 그렇고, 다들 무슬림인 관계로 식당 일은 주방 일

이던 써빙이던 당연 남자들의 일 이다.   사이암은 나나 자기나 무슬림이 아니니 상관

없다며 날 식당 주방으로 초대해 주방 사람들이 케밥을 굽는 동안 샐러드 만드는 것을

도와 달라고 했다.   내 취미가 원래 음식 만드는 거라서(이 말은 음식을 아주 가끔

만든다는 뜻 임) 즐거운 마음으로 남자들의 주방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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