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년전에 이혼을 했습니다.
성실하고 착한 심성이 맘에 들어 집안의 반대를 다 물리치고 아버지 몰래 호적을 떼다가 혼인신고하는것으로 시작한 결혼이었습니다. 명문대학을 나온 나와 야간공고를 나와서 제대로된 직업도 없었고, 부모랑 사는집....무허가 판자집에서 한칸 방에 오글오글 그렇게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월세방 한 칸에 대충의 세간살이로 아무생각없이 열심히 아끼고 저축하고 그사람이 공장에서 벌어오는돈 아까워서 못쓰고 늘 이런저런 부업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맘에 안드는 한가지 버릇만을 빼고 가난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던것 같습니다. 결점을 가졌지만 그는 아이 아빠였고 그게 사랑인줄만 알았으니까요... 제가 직업을 갖게 되면서 우리 생활은 더 여유롭게 되면서 아이를 더 낳았습니다. 쌍둥이였지요
그러는 중에도 변하지 않는 것 술에 취하면 그는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술에 취한 그는 저를 밤새 그냥두지 않았습니다. 남자라곤 그밖에 몰랐기에 난 남자들은 다 그런줄 알았습니다.
힘들어 하면서도 아이를 밟을까봐 이쪽저쪽으로 치워가면서 피해다녀도 봤고, 벽하나 두고 사는 옆방 아줌마 민망해서 소리 죽이면서 힘든밤을 보내기도 했지만. 일년에 두어번의 그런일은.. 참을만 했던것 같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걷잡을 수 없는 그의 행동은 더 늘어갔습니다.술에 취한 그에게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모양인지 아이들 앞에서 옷을 벗기고 몸을 주무르고 거부하면.... 밖에 나가서 지나는 사람 붙잡고 쌈질하고 두들겨맞고 패고... 아이들에게 잠도 안재우고 괴롭히는 그를 피해 도망도 다녀서 아이들과 저는 바깥에서 잠을 잔적도 여러번입니다. 추위에 떨면서 ...
부부라는 이름으로 용서하기에는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아니 내가 너무 알아버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는 다는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내가 짐승이 되는 기분으로 늘 살았지만
내 선택의 결과이니 받아들이려고 많이도 노력하고 견뎌냈지만 더이상 짐승이 되기 싫어갈 무렵에
사고를 치더군요.. 저의 집앞을 지나는 남자 아이를 붙잡고 때리고 뒤잡이 하면서 쌈을 한겁니다.
아이가 머리를 다쳤다고 그 집 부모들 난리가 아니였습니다. 밤새도록 술취한 그를 받아주면서 아이들이 느끼는 공포를 다독이면서 난 아이들 앞에서 못보일 꼴을 보일까봐 늘 초조하고 불안하면서 살았습니다. 계단에서 그의 술취한 발걸음 소리가 들릴때면 가슴이 울렁대고 불안해서 아이들에게 책가방을 챙기라고 했으니까요..
더이상의 인내가 필요하지 않았고 우린 이혼을 했습니다.
결혼할 때도 그런것처럼 다른사람의 말은 별로 필요치가 않았습니다.
아이들 셋을 제가 키우기로 하고 공동명의인 집은 제가 살기로 하고 그를 내보냈습니다. 이혼서류정리하고는...두달간은 나가더군요 그러다가 다시 자기집이니 자기도 권리있다고 하면서 들어오니 그냥 남남인체 각방쓰면서 두어달을 동거아닌 동거도 했습니다. 측은하기도 했다는것이 맞을 겁니다.
그래도 변치 않는... 그 버릇땜에 난 용서할 맘도 사라졌고 그를 내몰았습니다. 사천만원을 달라고 하더군요 방한칸 전세는 얻어야 나간다고 해서..... 해줬습니다.
처음에는.....삼십사십 아이들 양육비라고 보내더군요 나중에는 차차로 줄어들기도 하고 아예 안주기도 하면서 어차피 자식인데 설마 애비가 있어도 안줄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도 해 보지도 않았습니다.
열심히 아이들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누구의 돈으로라도 아이들 잘 키우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아이들 키우는건 엄마가 좋을 거라는 생각에 지 아빠에게서 내게 맡겨진 아이들이지만 잘 키워서 지 아빠에게도 좋은 자식이면 내게도 좋은 자식일거라고 생각하면서 많이 어려울때는....친정 언니에게 아쉬운 소리도 햇고 말없는 도움도 받으면서 때론 처량해지는 기분도 있었습니다.
이혼한지 만사년동안 아이들 아빠의 금전적 도움은 별로 없었습니다. 벌이가 시원찮아서 그러려니 실제도 그랬을지도 모르고요.
올초에 아빠를 만나고 온 아이들이 아빠가 결혼해서 방에 커다랗게 사진을 붙여놓았더라고...그러더군요 반가웠지요 혼자살아서 궁상맞게 그런것보다는......홀가분해지는 기분땜에 좋더군요 물론 가끔씩 주는돈도 이제는..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햇지만 그래도 결혼을 햇다니 다행이었습니다.
작은 아이들이 말 끝에 서른두살이라고 외국사람이라고 하더군요. 태국 갔다더니 거기서 알게된 여자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큰아이는 별로 말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말끝에 더 어린것 같다고 ...
그전에는....아이들에게 주던 용돈 일이만원도 천원짜리 하나 달랑받아오는 아들아이가 약간은 불쌍했지만 그러려니 햇습니다. 살림을 차리니 지먹고 살기에도 빡빡한 모양이라고 ..아이들 아빠니 형편나아지면 그래도 지새끼들 외면하지는 않을 거라고요.
며칠전 어린이날,,,,난 참으로 참담한 일을 들었습니다.
스물둘의 베트남 여자애를 사서 결혼해서 제집이랑 불과 한정류장 떨어진 곳에서 산다고... 아직도 제집으로 날아오는 카드명세서에 찍힌 외식명세를 보면 화도 났지만 ... 그래도 설마 지새끼들 어려운데 ...
저희 큰 아이는 이제 고2의 18살 여자애입니다. 작은 애들은 이제 12살,,,,
자기 아빠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짜증만 내고 ....
것도 그렇지만
전 인간을 믿기가 싫어졌습니다. 자기딸같은 여자애를 무슨맘으로 데리고 사는걸까 그결혼을 하면서 한번이라도 자기딸 입장을 생각은 해 본건지... 아이들과 힘든 그동안 그사람은 천만원으로 여자를 사온겁니다. 그리고 무슨 심정으로 아이들과 사는 집에서 얼마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이사를 온건지.....
서로 맞지 않아서 헤어지지만 아이들의 아빠와 엄마로 부끄럽지 않게 살거라고, 서로 같이 부부로 살진 않지만 아이들을 배려하는 맘은 있을거라고 난...그렇게 믿었습니다.
내가 어리석은걸까요?
이혼을 하고서 그의 행동을 더 견뎌주지 못한게 결혼해서 한남자를 평생 가슴에 담지 못한 한이 조금은 있었지요 내가 모진건가. 내가 나쁜 여자인가? 그러면서 그사람과 산 기간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으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세월을 파버리고 싶습니다. 참담함에 잠이 오질 않습니다. 똥물을 뒤집어쓴 기분이 이럴까요 제 인생 전부를 사기당한 기분에 더 이상 인생을 진행하고 싶지도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게 좋은 사람도 만났습니다.
아이들과도 잘 지내고 이년만 기다려 달라던 그가 일년전 부터는
주말은 제 집에서 지내고 월욜날 갑니다. 이년 됐지만 아직 결혼은 못했습니다.
그사람 딸이 엄마랑 사는데 우울증 치료를 받을 정도 예민합니다.
자신의 아이가 충격받을까 아직도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그에게 긴 한숨밖에는...
할말이 없어지기도 하고요... 또 제 큰아이 고등학교 입학선물로 최신형의 핸드폰을 사주고
자기딸 사주는거 하는거 똑같이 제 아이들에게도 합니다.
때때로 챙겨주는 마음은 정말 아빠같이 하니, 아이들도 아저씨를 좋아합니다. 큰아이는
꼭 결혼을 하려고 집착하지 말랍니다. 기다린다는 생각말고 살라고 그러다 결혼하면 되는거 아니냐고요
이제는 제가 느끼는 실망감에 더이상 기다리지 않고 끝낼 준비를 합니다.
아이들이 받을 상처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힘들었는데.
이제는 아이들과 지 아빠의 연락을 끊게 하고 아이들과 다른 곳으로 가야 되는 건지...
아니면 아이들 다 주고 내가 이꼴저꼴 안보고 멀리 떠나버리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