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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연주대전(連周大戰)이 있은 지도 이미 여러 해가 지나고 있었다. 그 동안 철기주(鐵氣走)는 죽은 자가 되어 중림의 운산(雲山)에서 발을 내어놓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항상 그림자처럼 무연(撫淵)이 있었다.
‘내가 죽였다. 두 번 씩이나… 그런데도 나는 어찌하여 살아있는가…?’
철기주의 이러한 의문과 탄식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었다. 3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는 그의 속죄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 죽지 못하고 있었다. 무연으로 인하여…
‘언제까지 그렇게 죽은 자처럼 지내실 거죠? 도대체…’
참회하며 자신을 저주하는 철기주를 바라보며 무연은 항상 울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항상 눈물이 그치지 않고 있었다.
‘사랑해요. 왜 이쪽은 한번도 바라보지 않는 거죠? 왜…’
그녀는 철기주가 원망스러웠다. 사실 그는 황도에서 어의에게서 몇 개월 동안 치료를 받고 다시 중림에 은거하면서 딱 한번 운산을 나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운산을 나간 그가 찾은 곳은 다름아닌 초류향(草流香) 이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초란(超蘭)이 이미 떠난 것을 안 그는 그 후로 지금까지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야속한 분…’
그날도 여지없이 운산의 밤은 소란스러웠다. 그것은 철기주가 악몽에 미쳐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일은 거의 매일 지속되고 있었으며, 무연은 그를 매일 밤 침대에 묶어 놓아야만 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그는 더욱 망가져 가고 있었다.
“운향… 비… 내 아들아…”
밤에는 미친 듯이 악몽에 시달리고 낮이면 몽유병 환자처럼 묘지에 하루 종일 앉아 있었다. 다만, 그녀가 위로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가끔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아주 가끔…
“무연…”
“네…”
“나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그러니 날 떠날 수는 없는 것이냐?”
“그럴 수는 없습니다.”
“어째서…”
“몇 번을 물으셔도 제 대답은 같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미안하다.”
“그런 말은 제게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나는…”
“세 번째라도 상관 없습니다.”
“…”
그렇게 두 사람이 온전한 정신으로 대화를 하는 것은 거의 일주일에 한번 정도였다. 그나마 무연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그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점점…
‘전 기다릴 거예요. 처음 당신과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1년이나 기다렸는걸요…’
그렇게 전해지지 않는 마음은 오늘도 또 하루를 더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무연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그것은 철기주가 이른 아침 밭을 갈고 있는 모습 이었다.
‘당신…’
무연은 가슴이 벅차올라 밖으로 뛰어 나갔다. 그리고 철기주를 불렀다.
“장군님!”
“응?”
“장군님…”
무연은 감정이 북받쳐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만 같았다.
“왜 그래?”
“그… 그건…”
그러나 그녀는 철기주의 다음 말에 그만 정신이 아득해 지고 말았다.
“장군님이라니…? 무슨 말이야? 운향.”
“…”
무연은 그 순간 그만 참고 참았던 인내가 붕괴되어 혼절하고 말았다.
‘아…’
철기주는 그러나 멍하니 서 있었다. 자신의 앞에서 혼절한 무연을 바라보며…
‘뭐지?’
철기주는 머리가 심하게 아파왔다.
‘이 여인은… 누구…? 왜 내 앞에서 혼절한 거야? 왜…?’
그의 앞에는 지금 3년 동안 묵묵히 그를 지켜온 한 여인이 혼절하여 쓰러져 있었다.
‘…무…연.’
철기주는 혼절한 무연 앞에 털썩 주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한 없이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02
깊은 밤.
무연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이미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내가 얼마 동안이나 누워 있었던 거지…?’
그때 그녀의 방에 철기주가 김이 나는 따뜻한 음식을 들고 들어섰다.
“깨어났나?”
“장군님?”
“왜 날 그렇게 부르지?”
“네?”
순간, 무연은 생각했다.
‘그래… 장군님은… 날…’
그때, 철기주가 말했다.
“3일씩이나 굶었으니… 우선 이 죽을 먹도록 해.”
무연은 심히 심기가 어지러웠다.
‘차라리 이렇게라도 좋은 것인가…? 나는…’
그녀는 지금 마음 한 구석에서 너무나 한스러웠지만, 철기주가 비록 자신을 운향이라고 착각을 하더라도 이렇게라도 그가 정상이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연.”
“…!”
철기주의 갑작스러운 이 부름에 무연은 그만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어떻게…”
“네가 내 앞에서 혼절했을 때… 그때 깨달았어. 지금까지 날 지켜준 것이 누구였던 가를… 그리고 결심했어.”
“…”
“이제 다시는 나 자신을 잃지 않겠다고. 널 슬프게 하지 않겠다고…”
“장군님…”
“그냥 무(誣)라 불러주면 좋겠군…”
“…”
“네 마음은 누구보다 잘 알아. 이제는…”
“…”
“하지만, 난 이미 한번 혼인했어.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그 아내는 이 내가 죽였지.”
“…”
철기주의 이 말에 무연은 침묵했다.
“나는 아직도 그녀가 왜 목진의 장수가 되어야 했는지는 의문이야. 그녀에 대해서는 역시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의문투성이야. 다만, 이것만은 알아. 적어도 미란은 적장 적령이 운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그녀의 연주대전에서의 필승의 전략이 무엇이었는지 말이야. 하지만, 난 미란 보다 그러한 모든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내 자신을 더욱 용서할 수 없어. 나 자신을…”
“그건, 장군님 잘못이 아니에요.”
“아니라고? 내 잘못이? 그렇지 않아. 모든 것은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것이 이 모든 일의 원인이야… 그러므로 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보다 먼저 죽어 버렸어. 나보다 먼저… 그리고 그것은 너에게도 마찬가지야.”
“네?”
“내는 지금 너에게 언젠가는 너를 사랑하겠노라고 약속할 수는 없다는 말이야. 그것은 너를 불행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너를 죽게 만들고 말 거야. 지금처럼…”
무연은 애타는 가슴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렸다.
“전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아무것도…”
“그래… 며칠 전까지는 나도 그리 믿고 있었어.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네가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내 곁을 지켜주기에 말이야.”
“…”
“하지만, 그것은 나의 이기적인 생각이었어. 넌 너무나 가슴 저미게 나에게 바라고 있었어. 내 사랑을…”
“…”
“그럼에도 나는 너에게 약속할 수 없어. 결국, 너를 상처입하고 죽게 할 거야. 그러니…”
“…”
“떠나라! 나를…”
“…!”
무연은 너무나 슬퍼 이제는 눈물도 흐르지 않았다. 이미 눈물이 모두 말라버린 것 같았다.
“약속한 분… 결국 저에게 스스로 죽으라 하시는 군요.”
“무연…”
“껍데기가 살아 있음이 무슨 의미가 있죠? 제 마음을 이렇게 무참히 죽이시고서…”
“미안하다…”
“그만해요! 그런 말…”
무연은 애타게 호소했다.
“약속 같은 것… 하지 말아요. 제게는…”
“무연…”
“필요 없어요. 그런 것… 다만, 제가 약속 할게요.”
“…”
“절대로… 절대로 장군님보다 먼저 죽지는 않겠어요. 절대로…”
“너…”
“절대로 장군님을 슬프게 하지 않을게요. 그러니 옆에서 지키게 해 주세요. 제발…”
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더 이상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인 것인가…?’
무연은 무에게 안겨 자신을 버리지 말아달라고 계속 그의 마음속에 속삭이고 있었다. 계속…
#03
운산의 겨울.
수년 동안 외부인의 발걸음이 없던 이곳에 비밀리에 사람들이 모여 들고 있었다. 그들은 황제 적룡(赤龍)과 미란(美爛)을 비롯한 제상 무린(撫麟)과 그의 아들인 무영(撫映) 이었다. 그리고 전날 무의 부장이었던 무비(戊比), 선경(宣璟)과 용의 맹장들인 정찬우(鄭燦宇), 요적란(要赤丹), 이서기(李暑氣), 자현룡(慈現龍), 함덕(含德), 유란(柳爛) 이었다.
“축하한다.”
“고마워요. 언니…”
“뭘… 사형을 살린 건 너잖아.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 것은 난데 뭘…”
“언니…”
“드디어 부부가 되는구나. 드디어…”
그날 운산의 산장에서는 작은 혼인이 있었다. 용국(龍國)의 영웅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신랑은 무 이고 신부는 무연 이었다.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폐하!”
황제가 두 사람의 결혼을 선포했고, 장수들이 그 증인이 되었다. 그렇게 측근만이 참석한 간단한 혼례를 통해서 무는 두 번째 아내를 맞이했다.
빙백.
이곳의 눈은 끓이지도 않고 또 녹지도 않고 있었다.
“으아악~”
갑작스러운 찢어질듯한 거대한 비명으로 만년설이 무너져 내일 듯 흔들렸다.
“스승님!”
“이제야 깨어난 모양이구나.”
“정말… 살아 있었다니…”
“무려 3년 만 이다. 3년…”
온 몸이 미라처럼 붕대에 감긴 한 사람이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비명을 지르며 피를 쏟고 있었다.
“이런, 어서 지혈을 해야겠다.”
양의찬은 서둘러 상처가 터진 환자의 피를 지혈하기 시작했다.
‘너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 반드시… 적령…!’
적령은 붉게 충혈된 눈에서 고통에 일그러진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컥!”
그녀는 계속 피를 쏟으면서 온몸에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정신만은 맑아지고 이었다.
“왜… 어째서 살아 있는 거야? 어째서…”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양의찬은 소름이 돋는 공포와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이것이다. 이 광기에 찬 살기와 공포! 이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다.’
운산.
오랫동안 운산에 머물 수 없었던 황제와 그 일행은 날이 어둡기 전에 이미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이 한꺼번에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다면 많은 신하들이 이를 이상히 여겨 자칫 은둔해서 살고 있는 철기주와 무연에게 폐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서둘러 산을 내려오며 황제 적룡이 미란에게 물었다.
“미란아. 너는 언제 혼인을 할 것이냐?”
“네? 사형도… 놀리지 말아요.”
“…”
“양보할 수는 있어도 잊을 수는 없는 모양이에요.”
“미란아…?”
“되었어요. 사형이 행복하게 된 것이니…”
“…미안하다.”
“이제 와서 그런 말 해도 소용 없어요. 전 이 일만큼은 죽을 때까지 둘째 사형을 미워할 거에요.”
“…”
“저 먼저 갈게요. 중림에 발걸음을 했으니, 땅을 한번 더 골라야죠.”
“그리 해라.”
앞서 가는 미란의 뒷모습을 보며 황제는 한없이 미안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이 일 만큼을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아직 미란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미란이 철기주를 따라 운산에 은거해 버린다면 그로서는 큰 낭패인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철기주는 미란을 단지 사매로 여길 뿐이었다. 그에게는 그것이 어쩌면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정말로 미안하다. 미란…’
한편, 황제 일행과 헤어진 미란은 곧바로 운원으로 향했다.
중림의 운원.
외상의 우두머리 유해수를 만다 담소를 나눈 미란은 다시 내상의 우두머리인 목경부와 담소를 나누었다. 그녀의 이러한 행동은 사실 순수한 것이라기 보다는 정치적인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충성을 다짐 받는 자리인 것이었다. 그렇게 일을 마무리 지은 미란은 지금 내상의 우두머리인 목경부의 저택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럼, 그만 돌아갈게요. 아저씨…”
“살펴 가시죠.”
목경부의 저택을 나와 중림의 번화가를 거닐던 미란은 불현듯 한 젊은이와 마주쳤다.
“나리!”
“응?”
그는 갑자기 미란의 앞을 가로막았다.
“누군데 감히 내 앞 길을 가로막는 것이냐?”
“저는 연기현(然基顯)이라 합니다.”
“그래서? 용무가 무엇이냐?”
“소개장을 하나 써 주시겠습니까?”
“소개장?”
“군사의 소개장이라면 언제라도 출사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군지 아는 것이냐?”
“그러기에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까?”
“그런데 내가 너에게 소개장을 써 줄 것이라 어찌 확신하는 것이냐?”
“저를 똑바로 보고 말씀 하시지요.”
“…!”
한참 기현을 바라보던 미란은 수행하는 수하에게 명하여 지필묵을 준비시키고 곧 그 자리에서 소개장을 써서 자신이 인장으로 봉인한 후에 기현에게 내어 주며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 이런 곳에서 소개장을 써 다랄 한 것이냐?”
“그것은… 화급하기 때문입니다.”
“화급하다?”
“그렇습니다.”
“무엇이 그리 화급하다는 것이냐?”
그녀의 물음에 기현은 잠시 침묵했다.
“내 물음을 듣지 못한 것이냐?”
미란이 재차 묻자 잠시 고심하던 기현이 미란에게 말했다.
“군사께서는 이제 곧 죽습니다.”
“뭣이?”
기현의 이 말에 미란은 크게 놀랐으며, 수행하는 자들은 칼을 뽑아 들었다. 그러나 미란은 수행하는 자들을 말리며 기현에게 물었다.
“어찌 그리 생각하느냐?”
“그리 정해진 일입니다.”
“뭣이라?”
“그래서 군사께서 죽기 전에 제가 출사할 때를 대비해 미리 소개장을 받아두는 것입니다.”
“내가 곧 죽을 운명이라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전란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르면서 수 많은 죽을 고비를 넘겨왔다. 그런데 전란이 끝난 지금 이제 와서 죽을 것이란 말이냐?”
“전란을 치르는 동안 필시 많은 원한을 사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일리가 있기는 하나… 날 죽일만한 자가 있겠느냐?”
“아마도…”
기현의 이 애매한 대답에 미란은 갑자기 알 수 없는 오한과 함께 노기가 치밀어 올랐다.
“썩 내 앞에서 사라져라! 그렇지 않으면 곧 네 목을 칠 것이다.”
“사형에게 진실을 밝히시는 것 만이 살 길입니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기현의 이 말에 미란은 크게 놀라며 더욱 노기를 발했다.
“닥치지 못하겠느냐?”
“…소인은 이만 물러갑니다.”
미란은 심기기 심히 불편해져서 당장이라고 저작거리에서 기현을 참하고 싶었지만, 그의 기품에 차마 그러지를 못하고 물러가는 그를 바라만 보았다.
‘젠장… 빌어먹을…’
황도로 돌아와서 며칠을 그날의 일로 고심하던 미란에게 제상 무린이 찾았다.
“어찌 이리 안색이 어두운 것입니까?”
“사실은…”
미란은 제상에게 기현과의 일을 이야기 했다. 그러자 제상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천하의 군사께서 그러한 일로 이리 고민이십니까?”
“그자의 기품이 예사롭지가 않았습니다.”
“그가 적이라면 어차피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때 대처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날의 모의를 그자가 알리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모두 입을 다물면 되는 일입니다.”
“…”
“잊으시지요. 누가 감히 군사를 해하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저 용에 불만을 품은 한 사람 때문에 내가 너무 예민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미란은 그날의 애써 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