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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잇 스탠드[13]

크레이지쑥e |2005.05.18 11:23
조회 2,583 |추천 0

 원나잇 스탠드.[제13화]


‘당신은 내 선생이 아니야. 애초부터 당신은 내 선생이 될 수 없었어.
당신 스스로 자초한 일이야. 나에게 선생으로서 예우는 일찌감치 접어.
날 기억하지 못하는 당신의 죄 값이야. 느껴. 날 느껴보라고 제자가 아닌
여자로 느껴봐. 그리고 지금 마음껏 즐겨. 즐길 수 있을 때 즐겨.
웃을 수 있을 때 마음껏 웃으라고.’
.
.

내 입술이 닿을듯 말듯,
그의 애간장을 태우며 아쉬움의 묘미를 남기고 더욱 그의 육신을 자극했다.
사탕을 핥듯이 ,솜사탕을 베어 먹듯이 그의 혀끝을 짜릿하게 공략 했다.
나와의 유희에 심취된 승하는 무아지경 이었다. 내 어깨를 잡은 승하의 손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내 허벅지 사이로 내려왔다. 자유자재로 날 점령하려는 승하의 행동을 저지 한건 요란하게 울려대는 내 핸드폰 이었다.

 

“휴.”

 

승하의 표정을 알 수 없었다. 다행에서 오는 안도의 한숨인지, 실망에서 오는 아쉬움의 한숨인지, 승하는 한숨과 함께 눈짓으로 ‘받아’라고 나에게 무언의 눈짓을 한다.

 

“말 해.”

 

[나와. 그만 돌아가자.]

 

“그러자.”

 

차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윤희였다.
적절한 시기에 맞추어 전화한 윤희로 인해 손쉽게 승하를 떨쳐 버릴 수 있었다.

 

“어쩌지? 만족을 못 시켜서.”

 

“천만해. 오히려 다행이야.”

 

겉옷을 주워 입던 난 승하를 놀리듯 말했지만, 정작 승하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말을 툭 내 뱉는다.

 

“여자라면 다 이래?”

 

“........”

 

“뭐야, 너무 쉽잖아. 시시해.”

 

“넌? 너는 남자라면 다 이래?”

 

“난, 당신한테만 그래.”

 

난 장난감에 실증 난 어린아이 같은 투정 아닌 투정을 하며 그에게 살짝 미소를 보이고, 그의 집에서 나왔다. 들어오기 전에 기대어 서있던 곳에 똑같은 포즈로 다시 등을 대고 섰다. 마음 한 구석에서 씁쓸함이 베어 나오고, 승하가 그랬던 것처럼 알 수 없는 한숨이 연거푸 흘러 나왔다. 난, 결코 처녀가 아니었다. 순백색의 실크로 날 칭칭 휘어 감는다 한들 난 깨끗한 처녀가 될 수 없었다.
그저 그것을 흉내 내는 빈껍데기 허수아비일 뿐 이었다. 그가 내 몸뚱아리를 가졌다면, 나 역시도 그의 몸을 취할 것이고 그의 심장까지 빼앗을 것이다.
그의 모든 걸 지배 할 것이다. 나에게 빠져 허우적대는 꼴을 보고 말 것이다.
내가 아니면 살 수 없게 만들 것이다. 담배 보다도, 마약 보다도 이 세상 어떤 중독성 강한 카페인보다도, 더 잔인하게 내 존재를 부각시키고 인식 시킬 것이다.

 

*                   *                    *                    *       

         

권승하, 미쳤다.
준희를 볼 때 마다 스스로 재어가 안되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준희는 승하도 모르게 빠져드는 위험한 블랙홀 이었다.
아니, 그녀는 마녀다. 발을 빼려고 안간힘을 쓸수록 더욱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마력이 있었다. 더 이상 끌려 갈수는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준희 와의 어설픈 관계에 종지부를 찍어야 했다. 그렇게 복잡한 머리를 휘저으며 교실에 들어섰을 때, 준희는
책상에 엎어져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준희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
평소 그의 수업시간에 저런 자세를 갖고 수업에 임했던 학생은 없었기에
준희의 행동에 아무런 제제도 가하지 않는 승하의 모습에 반 아이들은 술렁거렸다.
그러나 승하는 무 덤덤히 수업을 해 나갔고, 수업도중 느즈막히 태후가 어슬렁거리며 들어왔다.

 

“또, 그쪽으로 나가야 합니까?”

 

“이유. 시합도 아닌데 늦은 이유.”

 

강경한 어투로, 뒷쪽에 서있는 태후에게 승하가 아무감정 없이 말했고, 태후는 양쪽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씨익 웃는다.

 

“자리로 가 앉아.
골프도 중요 하지만 그래도 수업이 먼저야.
요번 중간고사 에서 우리 반이 일등 하려면 갈 길이 멀다.”

 

“하하 선생님도 일등 을 원하세요? 이 꼴통 학교 에서?
누구 말대로 돈지랄 하는 부모 빽으로 들어와 시간만
떼우다 가는 빈수레 가득한 곳인데 일등 을 원하신다?”

 

“서 태후! 반 친구들 을 너무 비하 시키지 마라.
공부를 원하는 친구도 있어. 너의 생각이 전부는 아니야.
난 선생이기에 너희들에게 그럴 권리와 의무가 있고,
너희는 학생이기에 따라올 의무가 있는 거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자리 가서 앉아.”

 

“선생님이 원하는 일등 해 드리죠.
하지만, 그건 선생님의 의무와 권리로만 되 는게 아닙니다.
내. 기. 하셔도 좋아요.”

 

알 수 없는 승하와 태후의 묘한 신경전. 그리고 내. 기. 라는 말을 태후가 내뱉은
그 순간, 누워있던 준희가 부시시한 모습으로 고개를 들었다.

 

‘탁.’

‘쫘르륵.’


승하의 손에 쥐어져 있던 교과서와 분필이 맥없이 축 떨어졌다.
화장기 없는 청초한 그녀의 모습에 승하의 맥박이 조금씩 빨라왔다.
지금 승하와 마주친 준희의 눈은 온갖 불신과 상처로 울부짖으며 말한다.
당신에게 처녀를 유린당한 하룻밤 상대가 나라고.
당신에게 간절한 애원을 했음에도 무참히 짓밟힌 여자가 나라고.
어떤 커다란 놀라움보다도 한심하고 어이없는 마음이 더 앞섰다.
이제야, 모든 의구심이 풀리는 승하였다.
준희의 도발적인 유혹도, 자신을 가지려던 탐색전도, 바보같이 이제 서야 알게 된
승하였다.

 

‘하. 이건, 하늘의 농간이다.’

 

머리속이 텅 비어지고,아무 말도,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준희가 지금까지 행한 그 모습들이 다 이유 있는 응징 이었으리라.
준희에게 끌린 것도 그의 마음에선 이미 그녀임을 알고 있었으리라.
자신을 원망하고, 증오 할거 란 생각은 수도 없이 많이 해왔지만, 이렇게 학생이란 신분으로 버젖이 교복을 차려입고 나타나  그를 우습게 만들고, 괴롭게 할지는 꿈에도 생각 못 했던 일이었다.
등하불명(燈下不明).말 그대로 등잔 밑이 어두웠다.

 

“선생님.왜 그러세요?”

 

“이 준희, 수업시간에 자빠져 잘 거면 나가.
그 따위로 신경 거슬리게 하려면 그냥  나가버려 상관 안 할 테니.”

 

걱정을 물어오는 태후의 질문에, 승하는 동문서답을 하고, 준희는 씨익 웃기만 한다.
준희와 승하를 번갈아 쳐다보는 반 아이들의 시선이 분주하게 움직였고,
한순간 바보가 된 승하는 더이상 그 자리에 있을수가 없었다. 자신의 입에서 어떤 말이 튀어 나올지 몰랐고, 준희의 얼굴을 마주 하기가 거북했다.

 

“나중에 보충하자.”

 

승하는 떨어진 책을 주워 임무를 미루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양손으로 얼굴을 일그러트리던 그는 세면실로 들어가 쏟아지는 물줄기에 하염없이
얼굴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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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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