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원나잇 스탠드[29]. [30]

크레이지쑥e |2005.05.23 07:06
조회 2,661 |추천 0

 

원나잇 스탠드.[제29화]


한바탕 전쟁이라도 지나간 듯 이안의 공기는 적막함을 감돌게 했고, 앞에 앉아 불호령을 내리는 승하의 부친으로 인해 숨 막히는 광경이 펼쳐졌다.

이곳의 이상기류는 승하로부터 시초가 되었다.

그의 부친은 손에 잡히는 대로 마구 승하에게 집어 던지며, 분(忿)에 못 이겨 온갖 질타를 퍼부으며 언성을 높였다.


“네깟 놈이 뭐 잘난 게 있다고 거만이야?

해원이면 넙죽 절이라도 하고 데려가야

옳은데 어디서 적반하장 인 게야?

지금까지 내 말을 건성건성 들은 거냐?”


“아버지 제 말에 한번이라도 귀 기울여 주셨어요?”


반문을 하는 승하의 발언에 그의 부친은 손으로 목 언저리 뒤를 매만지며 끓어오르는

혈압을 진정시켰다.


“여태 내말을 헛들은 게야? 자꾸 같은 말 번복하게 만들지 마

결혼식 앞당길 테니 그리 알아. 이런 배은망덕한 놈을 봤나.”


“여보! 말씀이 지나 치시네요. 듣다듣다 화가 나서 못 참겠어요.

우리 승하가 어디가 어때서 혜원이를 넙죽 받아 들여야 하는 거죠?

전 승하 의견 따를 거예요. 그러니까 당신도 고집 그만 피우고

장관님 댁에 미련 끊으세요.”


예상치 못한 모친의 반격에 승하는 놀란 표정으로 마주앉은 어머니를 쳐다봤다.

그의 어머니는 몸을 파르르 떨면서도 자기 할말은 또박또박 내뱉었다.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부인의 말에 승하 부친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놀란 눈으로 파르르 떨고 있는 부인을 쳐다보았다.

30년을 넘게 한 이불을 덮고 살아오면서 오늘처럼 자신에게 말대답을 하거나 부친의

의견에 반대를 표명하는 일은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승하일로 흥분한 부친의 태도에 승하 모친의 한마디는 아군을 잃은 심정으로 크게 부친의 마음을 동요 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처음부터 혜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요.

늘 우리 승하가 밑진다는 생각 들었어요.

돈에, 명예에 팔려가는 당신 꼭두각시 같았다고요.”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모친의 마지막 말은 그의 아버지 화를 부채질한 격이 되고 말았다.

흥분을 넘어 광분한 그의 아버지는 몹시도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당신이 승하를 감싸고돌아도 내 뜻은 절대

굽히지 않아. 빠른 시일 내에 날 잡아서 통보 할 테니

서둘러 준비하도록 해. 그게 너도 그 아일 위하는 길이야

그쯤은 너도 알아서 판단할거라 믿는다.

더 이상 이일로 왈가왈부 하지 말자꾸나.”


승하의 부친은 말을 마치고 돌아서 서재로 들어가 버렸다.

맞은편에 앉아 승하를 돕고 나섰던 그의 모친은 승하의 옆으로 다가와 지그시

그의 두 손을 감싸 쥐었다.


“이렇게 네 손을 잡아 보는 게 얼마만이니?

그동안 엄마가 너한테 많이 무심 했던 거 같아.

솔직히 혜원 이가 맘에 안 드는 건 아니야.

그만하면 금상첨화지. 하지만 엄만 네 편에서

도울게. 너 가 싫다면 나도 억지로 보내고 싶지

않아 그렇지만 너의 이기심에 혜원 이가 다치지는

않았으면 좋겠구나. 마음이 여린 아이라

걱정이 많이 된다.”


따뜻한 눈으로 진심어린 충고를 하는 어머니의 손을 이번에 승하가 꼭 부여잡았다.


“걱정 마세요. 저를 믿고 따라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어머니 아들 멋있잖아요.”


짐짓 장난스런 아이 같은 말투를 흉내 내는 승하의 모습에 그의 모친이 환하게

웃었다. 승하도 따라 웃었지만 마음 한 편이 무거워 지는 건 사실이었다.


*****     *****     *****     *****     *****


마음을 다잡은 혜원은 결혼식을 앞당기자는 말을 하기위해 거실로 내려오다 갑자기 울려오는 전화벨 소리에 발걸음을 한 템포 늦추었다.

신문을 접고 수화기를 집어든 그녀의 아버지 통화 상대가 승하의 부친 인 걸 눈치 챈 혜원은 파혼을 알리는 전화 일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권이사, 그간 안녕 하셨는가 ?나야 늘 한결 같은 거 잘

알지 않나. 승하 놈이 정말 그랬단 말인가? 그놈이 이리

적극적으로 나오니 내 우리 혜원일 내주기 싫어지는구만

허허. 그래, 그래 내 조만간 학교로 찾아가리다. 그만 들어가시게.”


수화기를 내려놓던 그녀의 아버지는 계단에 서 있는 혜원을 보고 자신의 앞으로 불렀다. 혜원은 두 손을 맞잡고, 심판대에 올라서 판정을 기다리는 죄수의 심정으로 아버지의 앞에 앉았다.


“너도 동의 한거니? 승하 놈이 7월 마지막에

결혼을 하자는구나. 갑작스럽긴 하지만

아빠도 나쁠 건 없다고 본다.”


뜻 박의 말에 혜원은 눈을 크게 뜨고 아버지를 쳐다봤다.

하루아침에 태도가 돌변한 승하의 모습에 기쁨과 기대보다는 알 수 없는 불안전한 두려움이 더욱 크게 자리 잡았다.


“그 그럼요. 안 그래도 그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네 엄마가 준비는 다 해놓을 거야

넌 내일 가서 드레스나 맞추면 될 거야.”


혜원은 계속 울려 대는 심장소리에 더 이상 아버지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왔다. 승하에게 확인전화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닐까봐 두려운 마음이 앞서자 세차게 도리질을 치며 스스로 위안 삼았다.


‘사실이 아니라도 우린 결혼하게 돼 있어.

태어 날 때부터 짝지어진 운명 이니까, 더 이상

오빠도 날 거부할 수 없을 거야.’


*                    *                    *                    *                   

“시끄러운데, 사람 많은데 가자.

복잡한데 섞이고 싶어.”


무미건조한 내 말에 윤희는 피식 웃으며 내손을 이끌고 홍대 쪽의 시끌벅적한 락

카페로 들어섰다.

‘퀸’이라고 쓰인 이 클럽은 나이트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한껏 자아냈다.

내가 클럽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부터 난 그곳에 있는 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내 발걸음을 따라 그들의 시선 또한 함께 했고, 표정변화 없는 나와는 틀리게

윤희는 그들의 시선을 마음껏 만끽하고 이따금씩 눈길도 한번 주고는 했다.

자리에 앉아 맥주를 들이 키고 그곳의 밴드공연과 춤사위도 눈요기는 덜 됐는지 느닷없이 윤희가 엉뚱한 제안을 해왔다.


“유치한 게임하나 할까?”


“말해봐.”


역시나 메마른 내 말에 윤희의 이맛살이 살짝 찌푸려졌지만 이내 다시 환하게 웃으며

내 앞에 핸드폰을 내 밀며 내꺼도 달라는 손짓을 해왔다.


“요즘 가장 많이 즐기는 게임 이라는데,

동시에 문자를 넣고 가장먼저 이곳을

들어서는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것. 어때?”


본인 입으로도 유치한 게임 이라며 쑥스러워 하던 윤희는 막상 게임의 법칙을 다

나열 후에는 무척이나 관심과 기대를 보이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지금 문자를 보낼 만큼 생각나는 사람?

한참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나는 이미 모든 전송을 다 마친 듯 맥주를 들이키며

음악에 맞춰 고개를 흔들고 있는 윤희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린 묵직한 느낌에 살며시 뒤를 돌아다봤다.


“어머나, 이게 누구야?”


내 뒤에서 빈정대는 여자를 한참 쳐다본 후에야 그 여자가 우리 반 혜미 라는 사실을 알았다. 워낙 짙은 화장과 요란한 옷차림, 독특한 헤어스타일은 처음 혜미를 몰라보게 할 정도였다. 내 후각을 마비시킬 정도로 진하게 풍겨오는 향수냄새는 혜미에 대한 화와 더불어 내 미간을 절로 찡그리게 만들었지만, 난 억지스런 미소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웃어줄 때 알아서 꺼져!”


힘이 들어간 내 목소리엔 그날의 아픔까지 겸비해 치솟아 올랐고, 어느새 울컥하고 치밀어  오르는 분을 자제하기 힘들어 맥주병을 꽉 움켜쥐었다.


“어디하나 병신이라도 됐을 줄 알았더니

뭐야? 멀쩡하잖아, 기분 더럽네 하하하.”

“겁 대가리 상실한 애가 너였니?”


혜미의 말에 불끈한 윤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난 혜미의 빈정거림에 그녀가

술이 상당히 취해 있음을 감지하고 눈짓으로 윤희를 저지 시켰다.

하지만, 윤희는 내 눈과 마주 쳤음에도 불구하고 혜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술기운을 못 이기고 뒤로 넘어진 혜미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내가 손을 내 밀었을 땐 

다른 손이 나보다 먼저 혜미를 일으켰다.

그리고 고개를 치켜들어 그 손의 주인공을 올려다본  내 눈은 미세한 떨림과 함께

혜미를 일으켜 세운 그녀에게 시선이 박혔다.


“악연도 이런 악연이 없지.

잘 지냈어? 얼음공주님?”


방긋 웃으며 인사를 건네 오는 그녀의 출연에 멍해져버린 내게 순식간에 그녀의 발이

내배로 힘껏 돌진해왔다.

잠시의 방심을 틈타 기습을 해오는 그녀는 나를 대신해 달려드는 윤희를 두 명의

남자를 불러 움직이지 못하게 꽉 붙잡고 있으라는 명령을 했다.


“지민선배 아는 계집애에요?”


“예전에 빛을 많이 졌지.”


여전히 혀가 많이 꼬부라진 말투로 물어오는 혜미 에게 지민은 냉랭한 어투로 한마디 내뱉고 바닥에 앉아 배를 웅크리고 있는 내 머리채를 확 휘어잡았다.


“돈 있으면 살인도 무죄가 되겠더라?

그깟 돈 몇 푼으로 무마 될 거라 생각했어?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해! 그래야 공평하지.”


자유로운 한손으로 내 뺨을 세게 후려친 지민은 그날 자신의 모습을 내게 상기시키듯

그녀가  했던 말을 내게 똑같이 내 뱉었다.

살기어린 지민의 눈빛은 독이 오를 대로 올라 있었고, 나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손으로 내 뺨을 후려쳤다.

말이 없는 내 모습에 더 화가 나는지 지민이 올려붙이는 손바닥의 힘은 더욱 강도가 세졌다.


“박지민,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입 막아.”


막무가내로 돌진해오는 지민의 모습에 윤희가 큰소리를 쳤지만, 지민은 아랑곳 하지 않고 사내 둘에게 명령을 내리고, 그 사내 둘은 손수건을 꺼내 윤희의 입을 단번에 막아 버렸다.

‘퀸’의 수많은 사람들은 재미 난 싸움 거리를 놓칠세라 우르르 우리를 에워싸며 몰려들기 시작했다. 겁먹은 몇몇 여자들은 서둘러 밖으로 나갔고, 클럽의 밴드들은 계속해서 본인의 임무에 충실히 공연을 해 나갔고, 그곳의 종업원이나 주인은 말려도 말을 듣지 않는 지민의 일행으로 인해 골머리를 썩다가 결국 경찰서에 신고를 하는 듯 했다. 점점 지민의 몸이 내 몸을 압박 해오고 난 힘에 겨워 조금씩 바닥으로 쓰러져만 갔다.


“살고 싶으면 싹싹 빌어보라고!”


악을 쓰는 지민의 말에 난 그저 피식 웃고 말았다.

그 웃음에 지민은 커다란 의미를 부여했는지 혜미 에게서 맥주병을 건네받고 그것을

들고 내게 내리치려 하던 그 순간 이었다.


“꺄아악

그만해, 그만 하라고! 약속이 틀리잖아.”

몰려든 무리 안에서 찢어질 듯한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내 청각을 곤두 세웠다.


원나잇 스탠드.[제30편]


울음석인 여자의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많은 구경꾼들 가운데 하얗게

질린 얼굴로 울고 있는 유연이 내 두 눈에 들어왔다.

나는 온몸에 맥이 쫙 빠진 듯 털썩 바닥에 주저 않았다. 유연이가 내 앞으로 다가와 엉엉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


“난 그냥, 난 그냥. 흑흑”


말을 잇지 못하고 유연이가 울어대는 통에 지민 이는 짜증이 나는지 잠시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어느 순간 풀려났는지 윤희는 금 새 나에게 달려와 옆에 있던 유연이의 뺨을 한대 쳤다.


“못된 버릇 여전하구나.

유빈 오빠도 너 이러는 거 알고 있니?”


화를 참지 못하고 유연 이에게 달려들어 몰아 부치던 윤희는 유연의 눈물에 그만 바닥으로 내려앉고 말았다.


“뭘 잘했다고 울어? 정작 울 사람이 누군데?”


눈물 앞에서 마음이 약해진 윤희는 좀 전보다 한층 누그러진 음성 이었지만 그래도 화난 표정은 숨길 수 없었다.


“우리 오빠가 준희 뒤꽁무니 쫓아다니는 게

싫었을 뿐이야. 준희 네가 너무 얄미웠다고!"


유연이 말에 나도 윤희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우린 서로 눈을 마주보고 허탈한 웃음만 지었다.


“유연이 너 참 비인간적 이야!”


윤희의 말에 유연이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난 유연이 이해가 가면서도 그녀의 행동에 화가 났다.


“지금 이라도 늦지 않았어. 나를 조금 이라도

친구로 생각했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당장

여기서 나가.”


더 유연이를 마주하고 있다간 내가 이성을 잃을 것 같았다. 우선 그녀를 여기서 내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유연이는 생각보다도 한참 여리고, 약한 아이였다. 훌쩍이며 ‘퀸’을 빠져 나가는 유연이가 사라지고 나서야 지민이가 여유롭게 내 앞에 다시섰다. 여전히 그녀 뒤엔 술 취한 혜미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박 지민, 너 실수한거야.”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툭툭 털고 앞에 있는 지민 이에게 내가 주먹을 내뻗은 그 찰나였다. 나보다 더 커다란 손에 내 손목이 확 꺾였다.


“나한테 맡겨. 네 손 더럽히고 싶지 않아.”


내 손목을 잡은 사람은 다름 아닌 태후였다.

언제부터 이곳에 있던 건지 물어볼 틈도 없이 태후는 지민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여자 임에도 불구하고 지민에게 향하는 태후의 손과 발은 매우 빠르고 그 강도도 꽤 컸다. 느닷없는 태후의 등장에 좀 전에 윤희를 잡고 있던 두 명의 남자들은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줄행랑치듯 이곳을 빠져 나갔다.

잔혹 행위의 멈출 기미를 안 보이는 태후를 자제 시킨 건 혜미였다.


“태후야, 제발 진정해.”


태후의 등 뒤로 달려가 그의 허리를 꼭 감싸 안으며 혜미는 간절하게 말했지만,


“떨어져, 역겨우니까.”


태후의 입에선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냉랭한 말이 튀어 나왔다.

그리고 태후의 힘을 견디지 못해 바닥에 주저앉은 지민 이에게 더 이상 손대지 않았다. 태후가 몸을 돌려 나와 눈을 맞추었다.


“병신같이 왜 맞고만 있었어?”


헝클어진 내 머리와 얼굴의 작은 상처를 태후가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물었다.


“너.”


“주제넘게 또 참견 했다고 잔소리 하려고?”


뭐라고 말을 내뱉기도 전에 태후가 먼저 내 마음을 읽고 물어왔고, 난 작은 실소를

터트렸다.


“늘 그렇게 웃어줘라.

비웃음이라도 날보고 웃어 주는 게 좋다.”


태후의 목소리도 술에 취해 있었다.

말끝에 묻어나는 아쉬움은 내 마음에 작은  을 던져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기대 갖지 마. 실망이 클 거야.”


태후의 말에 솔직히 마음이 흔들렸지만 난 마음과 상관없이 냉정하게 내 뱉고 윤희

에게 나가자는 눈짓을 했다.

태후를 뒤에 두고 윤희와 ‘퀸’을 나서는데 또 한번 태후의 애절함이 묻어난 목소리가

가슴 아프게 들려왔다.


“나 좀 봐!

나도 좀 봐달라고 준희야.”


처절한 절규석인 태후의 음성은 내 발목을 잡기에 충분했고, 난 서서히 뒤를 돌아

태후를  쳐다보았다.


‘아직.......아직은 아니야.’


차마 내뱉지 못하고 내 속에서 맴도는 말을 태후가 알리 없었지만, 난 속으로 혼자

중얼거리듯 내 뱉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 ‘퀸’을 통해 서너 명의 경찰이 우리 쪽으로 걸어왔고 그곳에 있던 나를 비롯해 모두가 경찰서로 연행 되었다.


*                   *                    *                    *                   

지겹다.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는 건 역시 그들의  아비들을 닮은 천성인 듯 하다.

지금 그의 앞에 민준을 비롯해 앉아 있는 친구들은 하나 같이 모두가 호색한(好色漢)이었다. 물론 승하도 한창 그들과 어울려 룸싸롱 출입을 종종 했지만,그건 그저 잠시 지나가는 바람 이었다. 하지만 앞에 있는 친구들은 달랐다.

이곳의 출입도 잦을뿐더러, 종업원들에게 짓궂게 구는 행동은 남자인 승하가 봐도 심하다 싶었고, 참 저질스런 모습이었다.

오늘 그들이 이렇게 모인 이유가 민준의 귀국을 환영하는 술자리 였지만, 사실상 민준

보다는 앞의 친구들의 술 접대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특히 그 강도가 가장 센 친구는 준석 이었다. 준석과 승하는 물과불 이었다.

그 둘의 사이는 혜원으로 인해 더 안 좋아졌지만, 그전부터도 그다지 퍽 좋은 사이는

아니었다. 준석은 항상 승하에게 열등감을 느꼈었고,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났다 싶었는데 그 여자가 승하의 약혼녀 혜원이 였던 것이다.

그녀는 오로지 권승하 뿐 이었고, 그가 비집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승하와의 관계는 끝으로 치닫는 수밖에 없었다.

항상 승하에게 치어 빛을 보지 못했다는 사고를 갖고 살았다.

그래서 승하와 마주하면 못 잡아먹어 안달 난 맹수마냥 항상 날을 세우고 달려들었고,

차갑게 몰아붙이는 말투 정도는 예사였다.

오늘도 준석은 승하를 향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호시탐탐 시비 걸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야, 저기 저 녀석 옆에 가서 좀 주물러줘

나한테만 달라붙지 말고, 저 녀석 배경 좋다고.”


입 꼬리를 말아 올린 준석의 비웃음은 참 야비하다 싶을 정도였고, 승하를 쳐다보는 눈빛 또한 날카롭고 매서웠다.

준석의 옆에 있던 종업원은 그의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해서 준석의 어깨동무에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준석은 가라는 자기 말에도 자신의 품안에 파고드는 종업원이 무척 마음에 드는지 한손으로 그녀를 더욱 꽉 끌어 당겼다.


“내잔 받아라.”


준석은 여전히 경계의 눈빛을 풀지 않은 채 승하에게 술을 권했고, 승하는 사심 없이 그의 술잔을 가볍게 받아들였다.


“약혼녀는 어쩌고 이런 곳을 다 행차 하셨나?”


꽈배기 꼬듯 엮어 말을 하는 준석의 질문은 누가 들어도 뒤틀린 음색이 짙었다.

술을 마시던 그곳의 모든 눈이 승하와 준석을 향했다.


“부인 두고 오는 놈은 뭐고?”


생각 없이 내던진 승하의 말에 그곳의 종업원 몸을 주무르던 형우가 무안한 기색을 감추고 재빨리 술병으로 손을 옮겼다.


“쿡쿡 권승하 답군.

그래, 결혼날짜는 잡혔나?”


“준석아, 넌 좋은 소식 없니?”


혜원 과의 파혼을 알리 없는 준석의 물음에 승하대신 민준이 반문을 하자, 준석은

눈썹을 위로 치켜 꿈틀거리며 애써 웃음을 보였다.

언더락 잔에 얼음을 채우는 민준은 술을 따르고 준석을 향해 건배를 청했다.


“권 승하의 파혼을 위해!”


준석의 한마디에 순간 그 안의 공기는 싸해지고, 누구도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여종업원을 비롯해 승하의 친구들은 노골적인 준석의 말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준석은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면서도 승하를 향한 비웃음을 멈추지 않았고, 모두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양손을 들어올려 여유 있는 행동을 취했다.


“훗. 파혼을 고대하며!”


승하의 한마디에 이번엔 준석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그 감정을 숨기고 승하의 잔과 맞부디쳐 ‘짠’소리를 내며 한숨에 술잔을 털어 넣었다.


“그새 다른 여자라도 생긴 건가?”


승하의 잔에 술을 따르던 준석이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넌지시 물어왔다.


“그런 것 까지 보고 할 만큼

너랑 내사이가 돈독 했던가?”


이번엔 승하가 준석의 잔을 채우며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그 말에 준석은 이미 승하와 혜원이 파혼했음을 직감하고는 또 한번 술잔을 입안에 삼키며 엄지로 자신의 입술 끝을 쓸어내리고 승하를 쳐다봤다.


“야, 배경 멋있는 저 오빠 싱글 이란다.

가서 마음껏 갖고 놀아봐라.”


그리고 준석은 여 종업원 들에게 명령 아닌 명령을 하며 매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준석의 말에 어느 여종업원 하나가 기다린 듯 재빠르게 승하 옆으로 다가와 풍만한 가슴을 들이대고 온갖 야한 포즈를 취해가며 승하를 유혹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오빠, 처음부터 뭔가 틀렸었지.

자, 내술 한잔 받아 그거 마시고 2차도가자.”


거침없는 그녀의 유혹에 승하는 어이없는 웃음만 나왔다.


“예전의 잘 쓰고 잘 놀던 한량 권 승하가 아니다.”


승하의 말 한마디는 백 마디 말보다도 그 효력이 몇 배를 달했다.

그의 옆에 팔짱을 끼고 술잔을 들이대던 그녀는 민망한지 더 이상 아무 말도 잇지 못하고 룸 안에서 빠져 나갔다.

잠시 정적을 감돌던 그곳에 승하의 핸드폰 진동이 울려왔고, 승하는 생소한 번호에 누구지? 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받았다.


“네, 권 승하 입니다.”


한참 말없이 핸드폰을 들고 있는 승하의 얼굴이 조금씩 구겨져 왔고 그는 서서히 올라오는 취기에서 깨기 위해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 키고 알았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어버리고 준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김준석, 오늘 대접 섭섭지 않게 잘 받았다.”


“No, No! 무슨 그런 말씀을 어디 오늘만 날

이겠는가?7월 마지막 날 내 별장에서 파티를

하려고해. 물론 파트너 동반이고 주최는 내가

하지. 초대장이 있어도 파트너 없이 출입불가야.

그날 기대하지. 꼭 올 거지?”


자리에서 일어나는 승하를 향해 준석이 던진 말은 거부할 구실이 없는 약속을 강요했다. 승하는 상위 자켓을 들고 앉은자리 에서 홀로 나왔다.


“어디 가려고?”


“반 녀석이 경찰서에 있어.”


민준이 나가려는 승하를 향해 물었고, 그는 좀 전에 경찰서에 연행됐다는 태후와 준희로 인해 두통이 밀려왔다.


“같이갈까?”


걱정이 되는지 민준이 따라 나서려 했지만, 승하는 단번에 거절하고 그곳을 나왔다.

그리고 준희와 태후가 있다는 경찰서를 향해 빠르게 뛰어갔다.

 

.

 

.

 

.

 

.

 

.

 

con.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