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라디폰 공작이 외쳤지만 상대는 듣지 못한 듯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죠?"
라디폰 공작이 주먹을 꽉 쥐며 에릭을 쳐다보는 동안 카엔시스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고문한 흔적이 보였다.
"분명히 살아 있지는 않습니까."
"로튼 그놈은 어디 있느냐?"
"로튼 님은 일이 있으셔서 나오지 못하셨습니다. 하지만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번 거래는 저와 하셔도 되니까요"
"여기까지 온 마당에 영양가 없는 대화는 그만 나누지요 . 석판을 건네줄 테니 당장 에릭 씨와 해독약을 건네줘요" 카엔시스가 드물게 앙칼진 목소리로 말햇다.
그러자 캐스나는 품속에서 작은 약병을 꺼내 허공으로 던졋다.
"이제 석판을 넘겨주십시오."
"그보다 에릭 경은?"
보나인의 질문에 캐스나가 숲속으로 눈을 돌리며 말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군요. 석판을 넘겨준 즉시 숨어 있는 자들을 풀생각이셨겠죠? 이걸 알면서 순순히 에릭 경을 풀어드릴 수는 없지요"
공작 일행은 캐스나의 말에 흠짓했다. 그렇게 많은 수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들은 마법으로 모습을 숨기고 소리마저 지우고 있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에릭 경은 예정대로 돌려드리죠. 단 여러분이 직접 찾으세요. 탑 안에 있으니까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안에 무슨 함정이 있을지 모르는데 들어가란말이냐?"
루시아의 반박에 캐스나가 다시 입을열었다
"여러분은 거부할 입장이 아닐 텐데요
"읔"
"따라오시죠. 단 여덟 명만입니다. 그 이상 들어오면 에릭 경의 안전은 보장할 수없읍니다"
캐스나는 미련없이 등을 돌려 탑안으로 들어갔다.
공작일행은 보나인 가스톤 죠안 미첼로 페리오 루시아 카엔시스 그리고 성기사가 탑안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가장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라디폰 공작이었지만 문관인 그로서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사람에게 양보하는 수밖에업었다
"걱정하지마세요. 저희가 반드시 에릭씨를 구해오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검이나 지팡이에 들고 탑을 노려보고 있어 카엔시스만이 라디폰 공작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탑으로 들어선 사람들은 안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캐스나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빠져나갈 수 있는 곳은 그들이 들어온 입구뿐이며 1층에는 계단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케스나는 여덟명이 모두 들어온 것으 ㄹ확인하고 말없이 2층으로 올라갔다
보나인 일행은 계단을 올라가면서 계단의 폭이 넓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상하군. 밖에선 본 탑의 높이로 보면 좀더 계단이 있어야 할텐데 2층에서 끝나다니'
보나인의 생각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않았다. 비록2층이 상당히 높은 곳에 있따지만 전체적인 탑의 높이로 보아 분명히 윗공간이 있엇다. 그런데 위로 통하는 입구 같은 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따.
"여기부터는 여러분들이 알아서 가십시오"
캐스나가 앞을 가리키며 말하자 보나인들은 주위를 살피던 눈을 돌려 전방을 주시했따. 그들의 앞에 버티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여덟 개의 길이었따
"이건...."
카엔시스의 중얼거림에 캐스나가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보시다시피 길입니다. 이중 한곳으로 가면 에릭 경이 있을 겁니다. 그럼 석판을 넘겨주시지요. 지금 에릭 경 옆에는 부하가 한 명 있으니 넘겨주시는것이 좋을 겁니다"
캐스나의 협박에 가스톤은 이를 갈며 석판을 던졌다.
그리고 캐스나가 허리를 굽혀 그것을 주으려는 순간 미첼로가 몸을 움직였다. 검을 빼들며 앞으로 뛰어간 미첼로는 무방비 상태의 캐스나의 목에 검을 들이밀었따
"자, 이제 그부하에게 당장 이곳으로 에릭 경을 데려오라고해"
"죽일 수 있으면 죽여보시죠. 그럼 에릭 경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캐스나느 ㄴ자신이 석판을 주우려는 순간 상대가 덤벼들 것을 알고 있었다. 캐스나에게 위협이 통하지 않음을 안 미첼로는 물러날 수밖에없었다
"젠장"
에릭이 잡혀있는한 절대적으로 불리한것은 자신들이었따.
"하나씩 확인해보는 것도 괜찮지만 서두르는 것이 좋을 겁니다"
"무슨 뜻이냐?"
가스톤이 싸늘하게 묻자 캐스나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간이 가슴을 관통당하고도 살 수 있는 시간 안에 에릭 경을 찾아야 한다는 거죠"
"뭐!"
"저희 부하가 소심한 나머지 제가 위험한 것을 보고 놀라서 찌른 모양입니다. 하지만 급소는 아니니 서두르면 될 겁니다. 물론 한 길씩 확인할 시간은 안 되겠지만요"
보나인 일행으 ㄴ캐스나르 ㄹ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참 입구는 이미 봉쇄되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분발하셔야 할겁니다"
"젠장"
끄들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가라앉히며 각자 하나의 통로를 선택해 뛰어갔다
한 줄기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작은 방. 어둠에 묻힌 이곳에 두사람이 존재하고 있었따
"드디어 당신을 구하러 사람들이 온 모양이군"
차가운 벽에 기대선 한 남자는 눞아의 영상을 보며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했다
"마리엔 공주가 안보이는군"
상대의 말에는 비웃음이 담겨있었다. 그 말에 에릭은 안도하면서도 가슴 한 켠이 마비되는 느낌을 받았다.
"너 버림받았군"
상대는 상황이 재미있는지 히죽거리며 마리엔이 없음을 들먹였따
"그거.....으읔,, 다행이군"
목소리는 갈라지고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작았지만 그 말에 상대는 인상을 썼다
"끝까지 마음에 안 드는 놈이란 말이야. 뭐 가만이 놔둬도 그 몸으로 살기는 틀렸찌만 확실히 해야겠지. 이것도 명령이니까 원망은 하지말라고"
"으윽"
에릭은 신음을 내뱉었다. 상대의 다른 손에 들린 단검이 오른쪽 가슴에 박혔다.상대는 왼손에 힘을 주고 단검을 한 바퀴 돌렸지만 기대하던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아 흥미를 잃고 단검을 힘껏 빼버렸다
"헉"
에릭은 거친 숨을 토해내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재미 없는 놈이야"
그는 뒤로 물러나 작품을 감상하듯 에릭을 위 아래로 홅어보았다.
"그럼 천천히 기다려보라고. 혹시 알아? 운이 좋아 죽기 전에 동료의 얼굴은 보고 죽을지"
브러버드가 말을 마치고 떠나자 이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은 에릭 혼자뿐이었다.
보나인은 불안에 떨리는 마음을 애써 다잡으며 안으로 안으로 뛰어갔다. 뛰어가는 와중에도 그의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생각으로 혼잡했다. 과연 에릭은 무사할까? 석판을 빼앗겼으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사람이야 그렇다 쳐도 무력이 없는 카엔시스는 무사할가? 하지만 그의 고민도 오래가지 못했다
"젠장. 또냐?"
보나인은 검을 높이 쳐들고 가고일에게 달려들었다. 가고일은 동작이 느린 탓에 날개를 몇 번 퍼덕이기도 전에 보나인은 검으로 가고일의 날개를 힘껏 내리칠 수 있었다..하지만 보나인의 검은 가고일의 몸에 아무런 상처도 남기지 못한 채 퉁겨져나왔다.
'부딪혔으면 그대로 저승길이었군'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보나인은 갑자기 몸의 모든 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보나인은 식은땀을 흘리며 재빨리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런 그를 보고 가고일은 콧김을 씩씩 불어대며 위협적으로 날개짓을 해댔다.
보나인은 낭패한 얼굴로 가고일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을 노려보는 가고일의 까만 눈이 슬쩍 웃었다고 생각했다.
'저놈의 새대가리를. 눈이 웃고 있잖아. 빌어먹을.......잠깐 눈?'
"덤벼라 세대가리!"
보나인은 도전하듯 검을 가고일 쪽으로 휘둘렀다. 돌연 가고일은 갸르르르거리는 소리를 멈추고 날개짓만했다. 그리고 갑자기 날카로운 부리를 쳐들고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보나인을 향해 돌진했다.
난데없는 공격에 보나인은 오른쪽으로 몸을 피했찌만 아주 족므 늦어버렸다. 바람이 그르 ㄹ휩싸는 순간 그는 왼쪽 어깨에 극심한 충격을 느꼈다.
"에잇. 이거나 먹어라"
보나인은 검을 손에서 놓고 손가락으로 가고일의 눈을 찔렀다. 보나인에 의해 두눈을 잃게 된 가고일은 이리저리 벽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이걸로 끝이군"
위레 산맥는 험준한 산세나 아름다운 경치 같은 것으로 유명한 곳이아니다. 그곳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산맥전체에 분포하는 유적지와 던전때문이었다.
공작 무리가 끝내 석판을 가지고 떠나버렸기에 나는 최선책을 포기하고 차선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로튼 무리와 만나기로 했떤 탑과 가까운 곳에 이끌고 온 사람들을 대기시킨 나는 홀로 산길을 올랐다.
거의 다왔군. 내딛는 발걸음에 더 힘을 주려는 찰나. 바람에 섞여 친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괜찮겠나? 입구가 막혀버렸으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이곳은 이동의 탑으로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마법진이 탑안 어딘가에 있습니다"
낮선 목소리 뒤에 들려온 것은 라디폰 공작의 목소리였따. 벌써 몇은 안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이 에릭을 구하로 온 순간 상대의 관심은 자연히 그들에게 쏠리게 되어 있었다. 그 틈을 노려 로튼을 치는거다. 놔두고 온 자들을 데리고 오는 것도 좋겠지만 은밀히 행동하기에는 혼자가 적당했다.
나는 공작 일행에게 들키지 않도록 투명화 마법을 건 후 다시 움직였다.
탑의 입구로 보이는 곳에는 이미 강철문이 내려와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여기저기 갈색의 녹이 묻어 있었지만 오랜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히 단단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다시 한번 탑을 올려다보았다. 탑의 윗부분에 눈처럼 나있는 구멍이 시선을 사로잡았다.그리고 반 바퀴 정도 돌아 앞쪽에서는 볼 수 없는 위치에 섰을 때 손끝에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응?"
내가 지금 손대고 잇는 곳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회색의 네모난 돌 로 이루어져 있는 곳이었다. 벽을 문질러 보았지만 지금까지 지나쳐온 곳과 같은 감촉이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환영 마법. 시각은 물론 촉감까지 속일 정도라면 상당한 수준의 마법사의 작품이었다. 순간 흔들리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갔을 게 분명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결국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돌진하듯 탑의 한 부분으로 뛰어들었다. 점점 벽이 가까워진다. 시야가 좁아지며 회색이 온 세상을 뒤덮었다. 그리고 어느순간. 눈에 가득 들어찼던 회색은 사라지고 나는 텅빈 건물 안에 들어와 잇었다.
탑의 1층으로 보이는 이곳의 한쪽 구석에 위로 통하는 계단이 있었다. 그런데 2층에 도착하기 직전 익숙한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전해져왔다
"어떻게 됐지?"
낮익은 목소리. 하지만 반갑지 않은 목소리.
"처리했습니다"
"분명히 에릭 경의 왼쪽 가슴을 찌르라고 했을 텐데."
"물론 그렇게 했습니다. 이단검으로 심장을 찔렀죠"
말을 한 사내는 자랑처럼 단검을 치켜들었다.
"그럼 왜 당신의 왼쪽 가슴에 피가 튀어있지?"
"그게....하하하. 역시 캐스나 님은 못 속이겠군요"
"............"
캐스나가 책망하듯 쏘아보자 사내가 변명조로 말했다.
"단번에 죽이는 것보다 천천히 자기가 죽어가는 걸 느끼는게 좋을 것같아서요. 설령 죽기 전에 발견한다 하더라고 구하지는 못할 겁니다"
사내의 말에 캐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다른 자들은 놔둘 겁니까?""
"석판도 받았고 어차피 남은 인원도 별루 없잖아."
"하긴 캐스나 님 말슴대로 인원이 부족하긴 하죠. 누가 전쟁터에서 싸그리 죽어버릴 줄 알아겠어요"
대강의 대화를 마친 캐스나와 애꾸눈의 사내는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걸었다. 그들이 발을 멈춘 곳은 벽돌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오른쪽 벽이었다. 긜고 그 앞에 멈춰선 애꾸눈의 사나이는 벽의 한 부분을 눌렀다.
달칵.
그와 함께 근처의 벽이 스르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나는 재빨리 그 사내가 눌렀던 부분을 머리속에 기억시켰다. 벽돌이 하나같이 같은 모양이라 위치를 기억하지 않는 이상 스위치를 찾기가 힘들었떤 덕분이다. 나는 두 사람이 완전히 사라진 것으 로학인한 후에 투명화 마법을 거둬들였다. 이곳을 따라가면 로튼이 이겠군. 네놈. 감히 날 우습게 봤었다 이거지.
나는 그길로 들어섰다가 힐끔 뒤를 쳐다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여러개의 갈림길이 보였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간다고 해서 바뀌는건 없었다. 회복 마법에 영 소질이 없던 내가 가봐야 말이다. 무엇보다 어느 길이 에릭이 있는 곳으로 열결된 건지도 모르잖아. 시선을 거둬들인나는 다시 몇걸음 움직였다
"으흠. 그쪽으로 가시게요?"
난데없이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나는 홱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몸이 허락하는 최대한의 속도로 뛰어갔다. 코너가 나올때마다 방향을 바꾸려면 힘이 들고 머리가 제멋대로 나부꼈지만 그래도 속도를 줄일 생각은 없었다.
주위의 배경은 자꾸 바뀌었다. 중간중간 나오는 이동 마법진에 의해 전혀 다른 장소에 서게 된 적도 꽤 있었다. 그러기를 몇 차례. 생각을 하지 않으며 지나쳐서 그런지 지나온 곳의 기억은 거의없었다.
하지만 긴복도 너머로 보이는 문을 보며 나는 목적지에 다 왔음을 직감할수 있었다.
문을 열자 그 안에 갇혀 있던 어떤 냄새가 밀려나왔다. 그 냄새는 덮지듯 내 몸을 휘감았다. 피비린내.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은근히 좋아하는 냄새다. 하지만 이번만은 강렬한 그 냄새에 머리가 띵해져왔다.
어둠에 휩싸여 있던 작은 공간이 문이 열리면서 조끔씩 그모습을 드러냈따. 그리고 정면으로 보이는 벽에 매달려 있는 하나의 인영이 보였다.
만족하냐고? 만족하지 않는다. 빌어먹게도 후회한다. 그런데도 나는 왜 여기 있는걸가? 모른다. 에릭을 포기한 것은 캐스나의 제안을 들은 그 순간부터였다. 그 이래 생각에는 벼함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순간 나는 왼쪽 길에 들어서 있다. 나는 벽에 머리라도 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문을 활짝 열리면서 어슴푸레 보이던 방의 모습이 완전히 눈에 들어왔다.
"에릭!"
나는 내가 어떻게 다가갔는지도 모르게 그에게 다가갔다. 에릭의 눈동자와 마주치자 나는 왠지모르게 미안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마...........리엔........??"
"그래, 나야"
나는 마법으로 쇠사슬을 끊으며 말했다. 후회. 불만족. 미안함. 이런 감정들이 몽땅 섞여 나는 혼란의 도가니 속에 빠져버렸다.
내가 혼자서 온갖 잡생각을 하는 사이 쇠사슬의 구속에서 풀려난 에릭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덕분에 나는 쓰러지려는 에릭을 안아야했다.
"크윽"
내가 조심히 바닥에 눕히는 사이 에릭이 입술을 깨물며 비명을 삼켰다.
"왜....왔지?"
"무슨 말을 그 따위로하는거야. 이멍청한 자식아? 이 모든 게 네가 잡혀서 생긴일아니야?"
하지만 그뒤의 말은 차마 내밷지 못하고 목구멍 안으로 꿀꺽 삼켰다. 왜 웃고 잇는거지? 에릭이 아주 작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 얼굴이 예전에 죽어버린 누군가들과 겹쳐 보여 나는 순간 울컥했다
"네가 그러고도 로열 기사냐? 그러고도 페드인 왕국 제일가는검사냐고!"
나는 괜히 에릭에게 화를냈다.
"..미안...하..다"
에릭은 사과 같은건 모르는 놈이었다. 그런데 다른 때도 아니고 왜이런 순간에 사과를 하는거냐고?
"젠장"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거칠게 말을 내뱉었다. 나는 재빨리 회복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얀빛이 상처로 빨려들어가도 에릭의 얼굴이 편해지는 것도 상태가 호전되는 것도 아니었다. 내 회복 마법이 부족해서만은 아니었다. 회복 마법은 살아갈힘이 남아 잇는 자에게만 효과가 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주문을 외웠다. 그러나 이번에도 내 손에서 나온 빛은 덧없이 사라졌다.
"으윽. 그만해"에릭의 말에 나는 울상을 지었다
"빛...때문에 ....윽....네 얼굴이 보이지 않아"
뭐냐, 이 바보같은 이유는. 그런데 이상한것은 에릭의 말에 내가 정말로 주문 외우던 것을 멈췄다는 사실이다. 내가 더이상 마법을 사용하지 않자 에릭의이 손을 들어 살짝 내 얼굴을 만졌다.
"정말로......진짜 군...네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왜 ...기쁜거지? 네가 여기 오면 곤란해진다는걸 아는데.......이기적인가?"
"이제 말하지마. 내가 어떻게든 해줄께"
나는 점점 의식을 잃어가는 에릭을 보며 다급해져서 소리쳤다
"그럼 가만히 ...있어"
에릭의 손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복잡한 마음에 눈을 감았다. 하지만 나는 다시 눈을떴다.
"읍"
입술에서 피맛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건 내 피가 아니다. 에릭의 피다. 그렇지 안하도 혼란스럽던 내 머리는 그 순간 정지했다. 덕분에 나는 그를 밀쳐내지도 못하고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에릭은 힘든듯 고개를 숙였다
"쿨럭" 거친 기침소리와 함께 피비린내가 다시 코끝을 자극했다
"에릭?"
"세린은...괜찮.....아?"
"응"
속삭이는 듯 물어오는 에릭의 질문에 대답했다
"다행이.....내가 없어도...."
"치료해줄 테니까 이거 좀 놔" 그러나 에릭은 내말이 들리지 않는지 자신의 말만했다
"으윽. 이제야 말하는건데...........나는 ....난"
침묵이 흘렸다. 무거운 침묵이.....
"에릭? 에릭....야!"
나는 에릭을 불러보다 온힘을 다해 그를 떨쳐냈다. 에릭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죽게 내버려두자고 말한 적도 있었따.
"야! 남을 이 고생 시켜놓고 이런 법이 어딨어!"
"웃기지마. 이대로 곱게 죽을 수 있을 것같냐?"
나는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탈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남아 있어야한다. 그런 짓 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래. 어쩔 수없는거야.
설령 여기서 에니그마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에릭이 살아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에니그마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도박이었다. 게다가 그걸 사용하면 나도 정신을 잃고 마는데 그럼 로튼에게 좋은 일만 하는게되잖아. 처음부터 각오한 일 아닌가. 잠시 흔들렸지만 이걸로 된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