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땡아!뚱땡아! 10편
베이비의 깜찍한 윙크에 정신이 산만해졌다.
도무지 나한테 윙크를 할 리는 없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윙크 받을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고..
베이비는 느긋하게도 뒤로 쭈욱 몸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와 또 눈이 마주치자 베이비의 짙은 핑크빛 입술 사이로 분홍빛의 조그마한 무언가가 슬그머니 기어나왔다.
저..저게!
베이비의 윙크와 메롱 세례까지 받은 나, 화도 못내고 열을 삭히며 주문을 받고 물러나야 했다.
베이비 패거리들은 이번에도 나를 실망시키지않고 술을 짝으로 시켰다.
베이비의 옆에는 싸가지 친구가 앉아 있었다.
꼴에 멋낸다고 두건으로 머리통을 감싸고 그 위에 중절모 같은 모자를 눌러썼다.
옷 스타일도 약간 힙합 스타일인 듯하면서도 세미 정장 스탈이 물씬~?
참 내에~ 지가 무슨..세븐이냐아~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틈틈이 베이비의 테이블로 나도 모르게 눈이 갔다.
베이비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흘러가는 분위기상을 보니 거의 분위기 주도하는 놈은 싸가지 친구놈이었고,
베이비는 지긋이 눈을 감고 있거나 홀짝홀짝 술만 마셔대고 있었다.
베이비는 특이하게도 소주를 자기 앞에 한병씩 놔두고 소주잔도 아닌 콜라잔에다 양씬 따라놓고 혼자 먹고 있었다.
양쪽 귀에 이어폰까지 꽂고 말이다.
저런 행동은 정말 기본 매너가 아닌데..
같이 술 먹으러 온 친구들이 가만히 놔두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베이비는 가끔씩 양쪽 어깨를 들썩이기도 했고 고개를 까딱이기도 했고,
나지막히 입술을 들썩이기도 했다.
“화봉아, 7번 테이블 화채 써비스 좀 갖다드려라~”
“네에~!”
저 패거리들 먹는 양들이 장난이 아니기에 어마어마한 화채 써비스까지 나간다!
“화채 써비스 나왔습니다.”
화채가 나오자마자 환호성을 지르는 베이비 패거리들..
화채를 놔두고 돌아서려는데,
“물.”
“......?”
뒤를 돌아봤다.
베이비가 한쪽 이어폰을 빼고 팔짱을 낀채 빤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
모르면서도 아는 베이비와 나의 사이.
아는 체도 못하고..그렇다고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내 참..
“물...워러..오케이?”
저..놈이.. 지금 날 무시하는 겨?
“아..아, 예. 물 갖다드릴게요.”
손님은 손님.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니까.
잽싸게 냉수를 대령했다.
냉수를 빤히 바라보는 베이비.
“얼음물 말한 건데.”
..빠직.
그 냉수도 얼음물 못지 않게 시원하다오오오~!!
..그래, 이화봉 한번만 참자.
“아, 그러세요.
처음부터 얼음물이라고 말씀해주셨어야죠.
얼음물로 바꿔드리겠습니다.”
이는 빠드득빠드득 갈고 있었지만,
최대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방금 가져왔던 물을 다시 들었다.
왜냐면 베이비는 손님이고, 난 종업원이니까.
“뚱땡이 니가 무슨 물이냐고 안물어봤잖아.”
태연한 베이비의 말에 베이비 패거리들의 시선이 별안간 나에게 모두 쏠렸다.
뚱땡이도 모자라서 태연히 말까지 까는 놈..
싸가지 친구놈은 별로 관심도 없다는 듯이 술만 홀짝홀짝 마셔대고 있었다.
“얼음물.....갖다드릴게요.”
그 자리를 벗어났다.
얼음을 양씬 띄운 냉수를 베이비 앞에 잽싸게 갖다놓고 후다닥 벗어났다.
저 놈이 또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르니까 최대한 베이비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 후 바쁜 와중에도 희미하게 알 수 있었던 것.
베이비 앞에 앉은 꽤나 귀엽장한 여자아이가 거의 울 것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그러지?..
띵똥~
소리와 함께 7번 테이블이 호출이 들어왔고 그렇게도 피했던 베이비의 테이블로 나는 갈 수밖에 없었다.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새우깡이랑 땅콩 더 줘.”
역시나 베이비였다.
베이비 앞에 있는 여자아이의 입가에 희미한 과자가루가 묻어있는 걸로 봐서 누가 다 먹었는지는 족히 짐작이 되었다.
하지만 그 여자아이의 표정이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았다.
새우깡이랑 땅콩 리플을 갖다준 후 몇 분이 지났나 싶었는데 또다시 7번 테이블에서 호출이 들어왔다.
이번에도 분명 베이비일 것이다!
정말 가기 싫었지만, 다른 애들이 갔으면 했지만...야속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봉아, 7번 테이블 호출이 잦으니까 너가 신경 좀 써라. 알았지?”
라는 야속한 아주머니 말씀에 나는 이제 7번 테이블 전속 담당이 되었다.
왜..왜 하필 나냐구요오오, 아주머니!
도살장 끌려가는 것처럼 질질질 7번 테이블로 갔다.
정말 시작에 불과했다.
“숟가락 떨어졌어, 새로 갖다 줘.”
숟가락을 떨어뜨렸으면..
“계란말이랑 감자튀김 추가.”
안주를 더 시키고..
“찌개에 육수 더 부어줘.”
육수 추가를 원했으며,
“춥다, 에어콘 좀 약하게 틀어.”
건방지게 에어콘까지 간섭을 했으며,
“담배.. 환타지아 담배 사다 줘.”
심지어는 담배 심부름까지 시키는 것이었다!
...저 자식이!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저 손님..죄송하지만 담배 심부름은...”
“이모~!”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베이비가 이모를 힘껏 불렀고 거짓말처럼 아주머니가 나타나셨다.
“어머~ 승현이가 왠일이니! 아는 체를 다하구..”
아주머닌 베이비가 불러준 것에 대해 기쁘다는 듯이 활짝 웃고 계셨다.
“이모, 여기는 담배 심부름 안해줘요?”
베이비는 무표정, 아주머니는 활짝 미소, 나는 오만상 다 굳었음.
“해주지. 그 정도야 기본이지.
화봉아, 얼른 담배 사와라.
사러 가는 김에 던힐이랑 디스랑 에쎄 두보루씩 사와.”
“네?”
“담배 찾는 손님들이 많은데 지금 담배 거의 떨어졌네.”
“아..네.”
나의 완패였다.
베이비를 무섭게 한번 쏘아본 후, 천천히 7번 테이블을 떠났다.
아주머니가 만원 짜리 몇장을 내밀었다.
“담배 찾는 손님 있으면 드리고, 계산서에다 추가로 올려놓구. 알았지?”
“그런 건 선불 아니에요?”
“일일이 그 자리에서 선불하기 귀찮잖니. 바쁘니까 얼른 갖다오렴~”
“네에..”
힘없이 뒤돌아섰다가 다시 아주머니를 돌아봤다.
“아.. 진짜 베이.. 저 승현이란 애 이모에요?”
“어머~ 호호호! 그냥 단골이야.
남자애들은 좀 자주오나 싶으면 보통 이모라고들 많이 부르거든.
특히나 승현이 쟤는 단골이기는 한데 워낙이 말 수가 없고, 숫기가 없어서 친해지기 힘든 스타일이잖니.
가끔씩 이모라고 부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이뻐 죽겠다니까.
내가 진짜 이십년만 젊었어도~~”
“아주머니?”
“어머~~! 호호 농담이야. 우리 태미가 저런 놈 남자 친구라고 데려오면 좋을텐데..”
베이비 저 놈은 어디를 가나 이쁨을 받나보다.
부러운 것..
파라다이스 문을 열자마자 갑자기 내 위로 드리워지는 하얀 우산??
“......?”
“뚱땡아, 비 온다.”
베이비였다.
하얀 우산을 내 위로 쑤욱 내민 채 싱글 벙글 웃고 있었다.
지금 어마어마하게 얄미운 베이비놈.
안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내 혼을 쏘옥 빼먹을 정도로 나를 골탕먹인 놈!
..흥!
“뭐하러 나오셨어요, 손님~
이 몸이 직접 담배 사서 대령해드릴텐데..”
비꼬았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생글생글 웃는 베이비.
땡그란 눈동자가 웃자마자 슬그머니 휘어버리는 게 여간 예뻤다.
“뚱땡이 너 바보지. 환타지아 아무데서나 안 팔어.”
슬그머니 내 머리를 쥐어박는 놈.
니가 아무리 나보다 키가 커도 엄연히 내가 누나라구!..
라고 말을 해봤지 먹힐 리가 없었다.
“그래, 나 고생시키니까 재밌냐?”
“심심해서..”
“뭐?”
“날마다 와서 똑같이 앉아서 술 먹으니까 심심하잖아.”
그건 니가 애들하고 안 어울리는 거잖아!..
“그래서..심심해서 날 고생시키셨어요, 손님?”
더 화났다.
내가 무슨 심심할 때 건드리는 동네 북도 아니고..
“가자!”
아랑곳하지 않고 내 어깨를 감싸더니 거리로 뛰쳐나가는 놈.
얼떨결에 나까지 이끌려 나갔다.
정말......몇시간 전까지 하늘이 멀쩡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비가 내렸지?
비가 꽤나 많이 내리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우리를 바라본다.
아니, 베이비를 바라봤다.
그런 시선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베이비.
하긴...나같아도 쳐다보겠다..
남들이 보면 우리를 연인이라고 생각할까..
아마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내 어깨를 감싸않고 같은 우산을 베이비와 함께 쓰고 있는 폼은 영락없는 연인들의 포즈였지만
아무도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뭐, 기분은 괜찮았다.
마른 줄 알았더니 베이비는 내 거대한 몸을 충분히 감싸고도 여유가 남을 정도로 품이 넓었다.
아니, 팔이 길다고 해야하나?
“닳아져. 쳐다보지 마.”
“.......!”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불쑥 말을 내뱉는 베이비.
헉!
나도 모르게 베이비의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근데 저 놈은 어떻게 알았냐고!
뭐, 나도 모르게 쳐다보고 있었나 보다.
정말 단아한 베이비의 옆모습.
문득 가비가 떠올랐다.
가비도 옆모습이 굉장히 예쁜데..
“집에 가서 얼굴 홀쭉해져 있음 다 뚱땡이 니 탓이다.”
“왜 내 탓이야!”
“니가 쳐다봐서 얼굻이 닳은 거니까.”
“쳐다볼 수도 있지! 그리고 뭐 나만 쳐다보냐!”
“뚱땡이 니 시선은 다른 사람들 시선보다 두껍고 굵어서 니가 쳐다보면 몇 배로 닳아.”
얼토당토않은, 말도 안되는 대답!
이 놈이랑 말을 말아야지! 베이비랑 말해봤자 내 무덤 파는 꼴이니까..
베이비에게서 희미한 소주향이 느껴졌다.
나도 코가 이상하나보다.
소주의 알코올 냄새를 소주향처럼 느끼다니.
다른 놈들에게서 났으면 지독하고 맡기도 싫을 소주의 알코올 냄새가 베이비에게서 나니 소주향처럼 느껴졌다.
“너 준비성은 철저하다? 일기예보에서도 오늘 비온다는 소리 안했는데?”
“내 거 아냐.”
“그럼?”
“나갔는데 비오잖아. 그래서 여자애한테 주랬어.”
“여자애?”
“어. 파라다이스 마악 들어오던 여자애.”
“아아.. 아는 애야?”
“아니. 처음 보는 애.”
“그런데 우산 빌려줘?”
“빌린 거 아닌데.”
“그럼?”
“우산 이쁘다, 나 주라. 그러니까 머뭇머뭇거리면서 주던데?”
이런 순 뻔뻔쟁이 날도둑놈!
베이비다운 행동이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첨보는 놈한테 우산을 덥썬 준 그 여자애도 웃기다!
나중에 갈 때 어떻게 가려고.
나같았음.......베이비의 얼굴을 슬핏 쳐다봤다.
흠흠.. 나도 줬다.
“환타지아는 아무데서나 안 팔아.
저기 마트에서만 팔아. 잊어먹음 안돼, 뚱땡이..”
“내가 왜 알아둬야 하는데?”
“내가 자주 심부름 시킬 테니까.”
완전히 작정을 했고만!
“아저씨, 던힐..디스..에쎄 두보룩씩 주시구요. 그리고 그 뭐?”
“환타지아 한갑 주세요.”
아주머니가 주문한 담배와 베이비가 주문한 담배를 계산대에 내밀었다.
베이비가 말했던 환타지아란 담배..
뭐가 그리 비싸냐! 생긴 모양은 예쁘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저씨가 계산을 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비가 주륵주륵 내리는 밖으로 시선이 갔다.
그리고...........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모습.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힘없이 걸어가는 낯익은 모습.
가비........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