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코너에서 이런 저런 안타까운 얘기들 읽다가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제 얘기 몇자 적어 봅니다.
전 선보고 3개월만에 결혼을 했어요.
중매로 하는 결혼이 대개 그렇듯 좋지도 싫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사천리로 모든 일이 진행 되고 날짜가 잡혔어요. 결혼이 늦어 워낙 집에서 시달림을 받던 터라 자포자기하는 심정도 있었고 뭐 별 남자 있으랴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너무 몰랐던 모양입니다. 결혼한 지 한달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그 후로 하루도 마음편할 날이 없었지요. 집 근처에만 가도 가슴이 두근두근.. 죽기보다 들어가기가 싫을 정도였어요. 경기도 살면서 서울에 있는 입시학원으로 출퇴근을 했었는데 집에 가는 길이 너무 싫어 차라리 이대로 차사고나 났으면.. 하고 바랬던 적도 많았어요.
그러다 아이가 2개월 때 들쳐업고 무작정 친정으로 들어갔어요. 죽으면 죽었지 그 사람과 한집에서 살수는 없었거든요. 막상 결혼생활을 할 때는 꼬챙이처럼 마르는 딸 모습에 마음아파 하시던 부모님도 막상 일이 그렇게 되고 보니 저보고 집안 망신 시킨 년이라면 원수보듯 하셨죠. 마주칠 때마다 쌍욕에 집에 누가 오면 아이 데리고 쫓겨나거나 골방에 숨어 있어야 했어요. 잠시도 쉴 틈 없이 일하면서도 눈치가 보여 밥도 마음대로 못 먹었어요. 아이가 조금만 칭얼대도 벼락같은 불호령이 떨어졌고 엄마는 늘 제가하는 음식이며 집안 일을 타박하셧거든요.. '너 같은 게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게 있겠냐.. 내가 저런 년을 왜 나서 말년에 이 고생을 하는지.. 등등..
그리고 '나는 애는 죽어도 못 본다. 네 새끼 네가 키워라..'하셨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마음 아팠던 건 아이 때문이에요.
네살 땐가.. 딸 아이 손잡고 하릴없이 집을 나섰는데 아이가 다른 애들이 햄버거 먹는 걸 보더니 자기도 먹고 싶다고 하더군요. 마침 버거 킹이라는 곳이 있어 들어 갔었는데 1,000원짜리 햄버거가 있더군요. 달랑 그거 하나를 주문했는데.. 기대하는 아이 앞에 나온 건 멸시하는 듯한 종업원의 표정과 딱딱하고 말라빠진 고기 한 덩어리 들어있는 빈약한 햄버거였죠. 잘 씹지를 못하더군요.. 너무 많이 딱딱했거든요. 다른 아이들은 그 화려한 햄버거를 한 입 가득 물고 맛있게 먹고 있는데..
또 한번은 제가 집에서 입던 치마를 줄여 아이 여름 잠옷을 만들어 줬는데 조카가 그걸 보더니 '야 너 할머니 같애'하고 놀리더군요.. 그 아이는 늘 공주같은 차림새였거든요..
그 불쌍한 아이 때문에 다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이렇게 멸시당하고 구박받으며 사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으니까요. 저 때문에 아이까지 함께 초라해 지는 것도 더더욱 견디기 힘들었구요...사대를 나와 교사자격증이 있던 터라 임용고사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렇다고 집안 일을 소홀히 할 수는 없어서 주로 밤에 아이 재워놓고 공부를 했죠. 길 가면서도,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놀이터에서 아이를 기다리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어요. 1년여를 하루에 세시간 이상 잔 적이 없었죠.
그리고 지금.. 중학교 영어교사로 있습니다.
작년에 발령이 났으니 올해로 2년째네요... 그 사이 작은 아파트도 하나 얻어 독립했고 작은 차도 하나 구입했어요.
아이는 유치원 종일반에 있다 제가 퇴근하면서 데리고 옵니다. 저를 보면 하나 가득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지요.. 같이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고 밤에는 침대에서 서로 안고 뒹굴며 장난도 칩니다. 주말에는 함께 계획을 세워 여기저기 놀러 다니기도 하구요.
서로에게 둘도 없는 친구지요..
그렇게 원수보듯 하시던 부모님도 이제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셨습니다. 내 딸 선생이라고 자랑도 하고 다니시고...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합니다. 너무 행복해서 겁이 날 지경입니다.
아이도 몰라볼 정도로 밝아지고 건강해졌어요.
이혼이 능사는 아니라고 하지만 행복한 엄마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혼을 생각하시는 분들..
아이 때문이라는 핑계로 자신의 인생을 망치지 마세요.
제가 간절히 드리는 조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