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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제3부)

나뤼 |2005.06.22 01:00
조회 255 |추천 0

그가 돌아가고 난 뒤 희채는 테이블 앞에 앉아 티켓을 바라보며 밤을 꼬박 세웠다.

마지막 인혁의 말이 밤새도록 희채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돌아간다...

변해버린 무결을 감당하지 못하고 뉴욕으로 도망쳐온 그녀였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 결심한 그녀였다.

다시 돌아간다면 무결을 볼수 있을까?

아무렇지 않게 살아낼수 있을까?

그녀는 자신이 없었다.


인혁 역시 집으로 돌아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오디션에서 그녀를 본 그 순간부터 그의 맘속에 와 박혔던 그녀였다.

드디어 말을 했는데...다시 그녀를 볼수 있을까?

그녀가 나를 따라와 줄까?

그 역시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불안해 졌다.


그리고 일주일이 흘렀다.

더 이상 그녀의 연락을 기다릴수 없었던 그는 희채를 찾아 갔다.

희채는 집에 없었다.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희채를 찾아간 인혁은 하루 종일 그녀를 기다리다 돌아왔다.


닷새가 되던 날...저녁...

저만치서 그녀가 샐쭉해진 모습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인혁의 가슴이 쿵하고 떨어졌다.

그는 한걸음에 달려가 그녀를 안았다.

그의 품에서 희채가 말했다.


“차 한잔 할래요? 들어와요.”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아 서로를 말없이 쳐다보다 희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 물어볼 말이 있어요.”

“그래.”

“나 안아프게 할 자신 있어요?”

“그래.”

“나 상처 안 받게 지켜줄 자신 있어요?”

“그래.”

“분명히 그 사람 보면 나 무너지고 흔들리고 미칠거예요.

그래도 나 잡아줄 자신 있어요?“

“그래.”

“죽을때까지 내 눈물 받아줄 자신 있어요?”

“그래.”

“내가 그 사람이 돌아와서 놓아 달라면 놓아줄 자신있어요?”


마지막 질문에 인혁은 말문이 막혔다.

희채가 초점없는 멍한 눈으로 인혁을 쳐다 보았다.


“그가 돌아온다면 받아줄건가?”

“그럴꺼 같아요. 지금 같애선...

숨겨진 여자로 살래도 감사해서 죽을꺼예요. 아마두...“


그의 머릿속에 멍해졌다.


“당신은 온전히 내게 올수는 없나?

내가 당신을 위해 모든걸 걸고 당신을 지켜내겠다는데 내게도 희망 하나쯤은 줘야 하는거 아닌가?“

“그럼, 내 머릿속에서 그 사람을 파내세요.

당신이 그 사람을 파낸 자리에 내가 당신을 담을께요.“


인혁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그녀를 우선 재웠다.

침대에 누운 희채는 금새 새근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 보면서 인혁은 만감이 교차했다.

참으로 많이도 울었을 것이다.

수많은 생각을 하면서 괴롭고 힘이 들었을 것이다.

이 자그마한 체구로 모든 것을 견디어 내며 여기까지 온 그녀였다.

이런 그녀를 자신이 얼마나 괴롭혔는가...

인혁은 복잡한 심정에 눈물이 흘렀다.

자신을 가질려면 그 사람을 파내라는 그녀의 말이 귓전에 맴돌면서 그의 가슴을 후벼 팠다.


잠에서 깨어난 인혁은 자신이 침대에 누워 있는걸 보고 정신이 들었다.

벌떡 일어난 그가 방문을 열자 주방에 서있는 희채가 눈에 들어 왔다.

방문 소리를 들은 희채가 뒤를 돌아보고 씽긋 웃고는 다시 돌아섰다.


“이달말에 가요.

여기두 정리해야죠.

그냥 사라질수는 없잖아요.

정리할려면 아마 시간이 좀 걸릴꺼예요.

참~! 된장국 끓이는데 괜찮죠?

한국 사람은 된장을 먹어야 힘을 낸다고 아줌마가 항상 그랬었어요.“


재잘대며 요리를 하는 희채 뒤로 조용히 다가가 살포시 그녀를 안았다.

아무런 미동도 없이 그녀는 그의 품안으로 들어왔다.

품에 안긴 그녀의 향기가 코 끝으로 스며 들었다.

그 향기에 인혁은 아찔해짐을 느꼈고 곧 온몸에 피가 거꾸로 솟았다.

인혁은 팔을 뻗어 가스레인지의 불을 껐곤 그녀를 안아 들고 방으로 향했다.

인혁의 품에 안긴 조그마한 희채는 앙칼진 고양이 마냥 바둥거리며 내려 놓으라 떼를 써댔다.


희채를 침대에 조심스레 내려 놓은 그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 주며 그녀를 쳐다 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오디션장에서 본 기분좋던 빗소리로 돌아와 있었다.

그렇게 갈구했던 그녀가 그를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꿈이 아님을 확인하려는 듯 그는 살며시 그녀의 입술에 그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그녀는 파르라니 떨고 있었다.

희채의 머릿속이 아득해졌고 그녀가 그에게 자신을 맡기자 인혁은 희채의 입술을 부드럽게 간지럽히며 키스를 했다.

잠시후 따뜻한 햇살아래 그녀는 알몸이 되었고 너무나 사랑스런 그녀의 가슴에 입을 맞추며 그는 그녀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희채는 그의 손놀림과 입맞춤에 세포 하나하나가 뜨거워짐을 느끼며 그 전율에 몸을 뒤틀었다.

그의 부드러운 얼굴을 바라보며 희채는 그를 받아 들였다.

그를 들어오는 순간 처음 남자를 받아들인 아픔에 낮은 신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괜찮은 거냐고 묻는 그의 표정에 그녀는 엷은 미소로 대답을 했고 그렇게 인혁과 희채는 하나가 되었다.


꿈같은 사랑을 나누고 난 후 희채는 이불로 온몸을 감아 돌아 누우며 그에게 등을 보였다.

부끄러움에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인혁은 그런 그녀를 안고 욕실로 향했다.

물을 받아 논 욕조에 그녀를 내려 주고는 먼저 샤워를 했다.

샤워가 끝나고 물기를 닦은 후 그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머리를 감겨 주고...

그녀의 몸을 씻거 주고...

그녀의 몸을 닦아 주고...

그녀에게 가운을 입혀 주었다.

그녀를 안고 방으로 다시 돌아와 그는 그녀의 머리를 말려 주었다.


머리가 다 마르자 그녀는 주방으로 콩콩콩 뛰어가 다시 아침을 준비했다.

그러한 그녀를 눈으로 쫓으며 너무도 감사한 마음에 인혁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침을 먹고 난후 두 사람은 마주앉아 차를 마셨다.


“앙탈여왕께서 왕자의 입맞춤에 깨어나셨군.”

“입맞춤? 입맞춤만 했다면 당신을 왕자라 인정했겠지만 그게 아니니 인정 못해요.”


살짝 홍조를 그녀가 장난스레 그의 말을 받아쳤다.


“당신이라...아직 그렇게 부르기는 이르지 않은가?”

“국어공부가 좀 부족하시군요. 그 당신이 그 뜻이 아님은 아실텐데요.”

“그럼 국어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호칭 변경을 좀 하자구.”

“호칭 변경?”

“내가 그대보다 2살 위이니 오빠가 좋겠군.”

“어머~! 28이였어요? 대박이네.”

“대박?”

“난 한 삼십대 후반쯤 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어쩌시겠다는 것인지?”


그녀가 잠시 생각을 하다 말문을 열려 하자 전화벨이 울렸다.

희채는 콩콩콩 뛰어가 수화기를 들었다.


“Hello~어~!엄마.”


한참을 재달대던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 졌다.

인혁에게 불안함이 엄습했다.

조용히 수화기를 내려 놓은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이 결혼을 한대요...”


그 자리에 얼음조각처럼 서 있는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인혁은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

조심히 돌아선 그녀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부터 게임이 시작되는 거죠?

난 당신에게 모든걸 맡기겠어요.“


다음날부터 희채는 분주하게 다니면서 뉴욕의 생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인혁 역시 희채를 도와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나갔다.

정리를 하는 동안 희채는 위태위태해 보였다.

그러한 그녀에게 인혁은 한시도 눈을 땔수가 없었다.

잠시만 눈 밖에 벗어나도 그녀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집을 정리하고 모든 짐을 한국으로 부쳤다.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희채가 인혁의 손을 잡았다.

시선은 정면을 향해 있지만 그녀의 눈빛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내 마음이 어떤 것인지는 아직까지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말할수 있는건 난 당신을 믿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그렇게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나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중심을 잡아요. 오빠.“


15시간의 긴 여행을 마치고 두 사람은 인천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마자 희채는 두 팔을 벌리고 크게 숨을 들여 마셨다.

그리고는 나지막히 속삭였다


"드디어 돌아왔군.“


희채의 부드러운 표정에 인혁은 우선 마음이 놓였다.

가방을 들고 문을 나서자 희채의 부모가 나와 그들을 반겼다.

희채와 얼싸안고 빙글빙글 도는 희채의 엄마는 아직도 스크린의 여왕의 모습 그대로였다.


“엄마 아빠, 저기 강인혁씨”

“어서오시게..희채 애비되는 사람일세.”

“안녕하십니까? 강인혁입니다.”


인혁이 정중히 인사를 했다.

인혁을 쳐다보던 여정이 희채를 쳐다보며 누구냐는 눈짓을 해 보였다.

그러자 희채가 종종 걸음으로 인혁의 팔짱을 끼고는 씨익 웃었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희채는 그야말로 쉴새없이 조잘대고 있었다.

뉴욕에서 했던 첫쇼의 상황을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설명하고 인혁과 데이트를 했던 강변의 레스토랑의 절경을 묘사하고...말문이 막혔다 터진 사람처럼 쉴새없이 떠들어 댔다.


집으로 도착하자 그녀는 껑충껑충 뛰어 집으로 들어갔고 인혁은 준섭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며 그녀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바로 이런 느낌이 아닌가? 집이라는 느낌은...

희채는 인혁이 손님방에서 짐을 푸는 것을 도왔다.


“저녁에 밖에서 바비큐 파티를 할꺼예요.

우리집 정원이 아주 멋스러워요.

아빠가 직접 관리를 하시거든요.”

“당신한테 이런 모습이 있는 줄은 몰랐는걸?”


새초롬한 표정의 희채가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는 투로 그를 보았다.


“그렇게 조잘대며 애교스러운 사람인지 몰랐다는거야.

아주 새롭고 신선한 모습이였어.“

“그래요? 그런데 말이죠?

왜 나한테 반말해요?“

“오빠가 그대에게 반말을 하는건 당연한거 아닌가?

억울하면 그대도 하시지 그래?“

“그러지뭐.”


희채는 침대에 풀썩 주저 앉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자신의 집에 인혁이 있는 모습이 너무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그냥 이런 느낌 이대로 쭉 이어졌으면 더 이상 바랄것이 없는 희채였다.

그의 모습이 한없이 든든하고 뿌듯했다.


“대충 끝났으면 나가자

엄마가 차 준비해 놓으신다고 하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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