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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구미호 (7) : 밤을 사냥하는 자들

니르바나 |2005.06.23 02:19
조회 368 |추천 0

 

구九미尾호狐




밤을 사냥하는 자들


서울 근교의 러브호텔들이 밀집한 지역―.

모든 존재가 잠든 밤이다. 바람도, 별빛도 없다. 오직 하나, 러브호텔들이 길게 늘어선 일대의 뒤편으로 인접한 야산의 정상에 휑하니 홀로 뜬 보름달은 핏빛 같은 붉은 기운을 머금은 채, 음산한 요기(妖氣)를 꾸역꾸역 토해내고 있었다. 그 기운에 눌린 탓인지 너무나 조용한 밤이다. 간혹, 들리던 부엉이의 울음도 오늘은 없었다.

그런데…….

시계바늘이 새벽 2시를 향하고 있을 무렵, 그렇게 동이 틀 때까지 계속 될 것 같았던 정적을 깨는 소리가 있었다.

“하아, 하아…….”

러브호텔들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야트막한 야산의 숲에서 들려오는 젊은 여자의 거친 숨소리.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헐떡거리는 것이 뭔가 몹시 긴박한 지경에 처한 것 같다.

“하아, 하아…….”

껍질이 벗겨져 헐벗은 나무들이 달빛을 받아 희뿌옇게 빛나는 모습은 까닭모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만큼 숲을 둘러싸고 있는 음산한 기운은 설사 해가 중천에 떠있는 대낮이라 하더라도 섣불리 들어서지 못하게 만든다. 건장한 사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별히 입산을 제한하지 않는데도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산을 쳐다보는 것조차 꺼려할 정도다. 어쩌다 무속인들이 기도발이 잘 받을 것 같다며 찾아오기는 하지만, 그들도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듯 하산하는 일이 허다하다. 그런 숲속을 젊은 여자가 숨 가쁘게 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그녀의 모습이 달빛 아래에 드러났다.

아마도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제대로 된 원피스를 걸치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여기저기 헤지고 찢겨진 상태고, 앞부분은 길게 찢어져서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가슴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속옷은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벗겨진 모양이다. 신발도 오른발에만 신고 있어서, 왼발은 수풀에 긁혀 상처투성이였다. 눈물을 흘려 화장이 검게 번진 얼굴에는 절박함과 두려움이 혼재했다. 누가 보면 실성한 여자로 오인할 만큼 몰골이 엉망이었다.

여자가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을 때, 두려움의 실체가 모습을 나타내었다.

“흥! 네년이 뛰어봤자 벼룩이지. 우리한테서 달아날 수 있을 것 같아. 어림도 없지!”

“그래 잡히기만 해라, 두 다리로 서 있지도 못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체격이 건장한 두 사내였다. 그 중 한 사람은 러닝셔츠 차림으로 훤히 드러난 두 팔뚝에 각각 ‘일심(一心)’과 ‘충효(忠孝)’라고 새긴 문신이 선명하게 보였고, 트레이닝바지의 뒷주머니에 도주 중인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 분홍색 브래지어를 쑤셔 박고 있었다.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경쟁적으로 달리고 있는 사내는 안 그래도 피부색이 검으면서, 위아래 모두 검정색 티셔츠와 기지바지를 입었고, 오른손에는 날카롭게 예기를 발하는 잭나이프를 쥐고 있었다. 인상만 보더라도 둘 모두 여자에게 호의적인 인물은 아닌 듯싶었다.

실제로 두 사내는 부녀자만을 노리는 악질적인 강간범들이었다. 밤늦게 귀가 중이던 여자를 차로 납치해서 러브호텔로 끌고 와 겁탈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빈틈이 생겼고, 그것을 놓치지 않고 여자가 숲으로 도망쳐 왔던 것이다. 시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매우 비관적이었다. 특히 문신 사내의 사타구니를 찬 것은 아주 나쁜 선택이었다. 그로 인해 사내에게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일말의 양심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험악하게 일그러진 인상으로 보아 손에 잡히기만 하면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만 같았다. 물론 충분히 욕심을 채우는 것이 먼저다.

두 사내는 광기어린 눈빛을 번뜩이며 먹이를 노리는 사냥개처럼 여자의 뒤를 바짝 좇아갔다. 앞서 달리기는 했지만, 지형적인 불리함은 여자에게 더 크게 작용했고, 설사 평지라고 하더라도 연약한 여자가 건장한 남자들을 따돌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두 늑대들에겐 충분한 동기가 있었고, 그것을 왕성한 체력이 뒷받침했다.

“이런 썅!”

순식간에 간격을 좁힌 문신 사내가 손을 뻗어 여자의 어깨를 우악스럽게 움켜쥐었다. 여자는 중심을 잃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뒤따라온 검은 사내가 바닥에 엎어진 여자를 단단히 눌렀다.

“악! 이거 놔!”

여자가 몸을 비틀며 완강히 저항하자, 검은 사내는 잭나이프를 흔들어 보이며 으름장을 놓았다.

“뒈지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있어라, 응?”

확실히 잭나이프는 효과적인 위협도구였다. 여자는 잭나이프의 시퍼런 날을 보고 겁에 질려 입을 다물었다.

“흐흐흐, 이제야 조용해졌군. 진작 그렇게 나와야지. 괜히 야밤에 오빠들 고생이나 시키고 말이야. 그건 그렇고 우리 아까 못 다한 일을 마무리 져야지?”

문신 사내가 징그럽게 웃음을 흘리며 여자 위로 올라타려 하자 검은 사내가 어깨를 잡으며 방해했다.

“왜?”

“야, 이번엔 나부터 하자. 넌 아까 재미를 좀 봤잖아. 그리고 네가 한눈을 파는 사이에 이년을 놓칠 뻔 했고. 그러니 이번에는 네가 양보해. 나도 좀 즐겨보자.”

“새끼야, 하던 게 있는데 마저 끝내야지. 너 같으면 밥상 다 차려놓고 밥숟가락 떠서 엄한 놈 주고 싶냐? 다 알면서 왜 그래, 정말.”

“뭐라고? 엄한 놈? 야, 장승호! 너, 이 새끼 정말 많이 컸다. 빵에 있을 때, 나한테 형님이라고 살살거리던 새끼가 이제 나랑 맞먹으려고 드네.”

“맞먹어? 이 자식이 말이면 단 줄 아나. 그래도 감방 동기라고 같이 어울려줬더니 지가 나랑 레벨이 같은 줄 아네. 출소해서 갈 데 없는 그지 새끼, 내 불쌍해서 거둬줬더니 그 은혜도 모르고 까부는 거냐.”

두 사내가 여자를 두고 으르렁대더니 급기야는 서로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주먹을 날릴 기세로 팔을 들었을 때다. 느닷없이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두 사내의 귓전으로 파고들었다. 웃음소리는 바로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깜짝 놀란 사내들은 서로 멱살을 놔주고 황급히 고개를 쳐들었다.

“에이, 좀 더 싸우지. 벌써 끝난 거야? 둘 다 소리만 요란하지, 벌 거 아니잖아. 구경은 그저 불구경이랑 싸움구경이 최곤데 말이야. 이거 싱겁게 끝나버려서 조금 아쉽네.”

이제 갓 스물이나 넘겼을까? 무척이나 앳된 얼굴의 청년이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길게 휘어진 가느다란 나뭇가지 위에 올라서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입가에는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뭐야, 저 새끼는…….”

두 사내는 갑작스런 청년의 등장에 처음에는 당황하는 기색이었지만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차츰 냉정을 되찾았다. 그럴만한 것이 상대가 자신들보다 나이가 훨씬 어렸고, 키는 비슷했지만 체격은 호리호리해서 그다지 힘을 쓸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계집애처럼 곱상한 얼굴이며, 길게 자란 머리를 뒤로 질끈 묶어 내린 모습 또한 유약한 이미지가 강해서, 사내들을 충분히 방심하게 만들었다.

“꼬마야, 어른들 노시는데 괜히 끼어들지 말고 조용히 꺼져라. 분위기 파악 못하고 설쳐대다가 칼침 맞는 수가 있다. 알아들었냐?”

검은 사내가 여자를 위협할 때 유용하게 썼던 잭나이프로 한 차례 허공을 긋고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청년을 위협했다.

“야야, 너무 겁주는 거 아니냐? 그러다가 저 새끼, 바지에 오줌 쌀라. 자라나는 새싹인데 좀 살살 달래봐.”

문신 사내가 킥킥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청년은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귀찮다는 투로 말했다.

“나도 당신들 하는 꼴을 보면 별로 끼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 없을 것 같네. 왜냐면 저 여자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니던 사냥감이거든. 그러니까 당신들이 양보해줬으면 좋겠어.”

사내들은 청년의 말에 안색이 바뀌었다. 나름대로 점잖게 경고를 했는데도 말을 듣기는커녕, 오히려 여자를 넘기라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명백한 도발이오, 건방진 도전이었다. 사내들은 생각을 바꾸어 청년부터 손봐주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크나큰 착각이었다. 무엇보다도 청년이 내뱉은 ‘사냥감’이란 말을 순전히 자기들 방식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승호야, 우리 저 싸가지 없는 새끼부터 버릇을 고쳐놓자. 이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말이면 단 줄 아나. 너…….”

왜 일까? 승호라는 사내가 대꾸를 하지 않는다. 검은 사내는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리며 욕설을 내뱉다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는 입을 한껏 벌린 채 그대로 얼어붙었다.

가장 먼저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머리 위에 떠 있는 만월보다 훨씬 선명한 붉은 빛을 띠고 있는 피였다. 그야말로 새빨간 피가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며 그의 발치까지 흘러왔다. 피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니, 동업자인 승호가 하얗던 러닝셔츠를 자신의 피로 붉게 물들이고 부릅뜬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숨이 끊어진 후였고, 그것을 입증하듯 심장이 있어야할 왼쪽 가슴에 커다랗게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그 구멍으로 튀어나온 것은 생전 처음 보는 흉측한 짐승의 팔이었다.

“으으으…….”

사내는 두려움으로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시선을 좀 더 위로 옮겼다.

허억! 실제로 물리적인 충격이 가해지지 않았는데도 가슴을 짓누르는 듯이 강렬한 통증이 엄습하고 자신도 모르게 고통스런 신음이 토해진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처럼 정신이 혼미해졌다. 하지만 기절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만일 그랬다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얼어날지 장담할 수가 없다. 어쩌면 동업자와 같은 꼴이 될지도 모른다. 사내는 그런 생각을 하며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간신히 버텼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그 외에는 다른 어떤 행동도 취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눈동자조차 움직이지 못했다. 차라리 눈이라도 감고 싶었다.

도대체 저것이 무엇인가! 파르르 떨고 있는 시신의 어깨 위로 무시무시한 형상의 짐승이 붉은 안광을 내뿜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다음은 네 차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여자는 보이지 않는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바닥에 죽은 듯이 누워서 흐느끼고 있었는데…… 가만? 그렇다면 저 짐승이 바로……?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 너무나 혼란스럽다. 혹시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내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혀를 깨물었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지만 지금 겪고 있는 일은 현실이었다. 그리고 눈앞의 짐승도. 그런데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그래, 생각났다. 저 짐승은 분명 여우다. 동물원이나 백과사전에 봤던 형상과는 분명 다르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여우라고! 비록 두 다리로 서 있었지만 길게 자란 주둥이하며, 윤기가 흐르는 털, 등 뒤로 솟아오른 기다란 꼬리……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들었던, 사람의 간을 빼먹는다는 구미호, 전설의 고향이라는 TV드라마에서 봤던, 바로 그 여우가 틀림없었다.

여우가 승호라는 사내의 것으로 보이는 생간을 우적우적 씹으며 느릿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바로 그때 나뭇가지에서 아무런 동요도 없이 한가롭게 관망하고 있던 청년의 일갈이 사내의 추측을 확고하게 해주었다.

“흥! 정말 참을 수 없는 여우로군. 그새를 못 참고 살생을 범하다니! 단단히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오늘 내가 아주 벼르고 왔거든? 알겠어? 이 고약한 요괴야! 갈!”

청년이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나뭇가지 위에서 바람처럼 몸을 날렸다. 동시에 ‘여우’도 시체를 내버리고 길게 울부짖으며 청년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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