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긴 얘기입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해본 적이 없는 얘기고요.
그냥 요즘 생각이 간절해지기에 두서없이 적어봅니다.
제가 그녀를 처음 본 것은 93년 2월 말 이었습니다.
3월 복학을 앞둔 저는 저녁무렵 집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교문 앞에서 오리엔테이션이을 마치고 돌아오는 후배들 일행을 만났지요. 저녁을 안 먹었다고 해서 그 많은 후배들을 데리고 중국집으로 가서 요기를 시켰지요.
그러던 중에 깜짝 놀랄 만큼 예쁜 신입생을 한 명 봤지요. 그녀 입니다.
삼십대 중반의 나이지만 아직까지 실물을 본 사람 중에 그녀보다 예쁜 사람을 본적이 없다면 믿으시겠어요. 그러나 정말입니다. 그녀의 입학으로 학교 전체가 술렁일 정도였으니까요. 물론 외모가 사람의 전부는 아니겠니만 그녀의 그때 그모습은 그 후 지금까지 그녀을 정의하는 이미지로 저에게 남아있습니다.
그 다음은 복학생과 신입생의 뻔한 얘기지요.
후배들 잘 챙기려 하는 오빠 정도의 관계에서 약간의 호감을 확인한 복학생의 대쉬, 신입생의 거부, 얼마 후 골인 이정도의 사연은 유치하다 싶을 정도로 공식이 되어있지 않나요. 우리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둘이는 진정으로 사랑했습니다. 주변이 부러워할 정도로.
그렇게 꼬박 6년 햇수로 7년을 사귀었지요. 봄 여름 가을 겨울 6번을 항상 둘이 함께 있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6년이 참 행복했던 시간이었네요.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당연히 상대방과의 미래를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고 지금 같이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시간을 이 사람과 같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감사했지요.
많이 싸운 것같지도 않았고, 가치관의 차이 정도는 이해하는 수준에서 서로를 아꼈지요.
물론 그 기간동안 한번의 위기는 있었으나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서로에게 너무 익숙해져 있는 우리들의 모습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복학생이 취직을 못하고 졸업 후 2년을 백수로 보냈고 결국 계약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아쉬운 얘기가 시작되지요. 졸업 후 유명 다국적 기업에 취직한 그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녀가 최고라 믿었던 남자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었지요. 기본적으로 미국 유명대학 MBA에다 알아주는 집안 등 그런 사람들만 모인 회사가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죠.
이 시기에 저는 무슨 구체적인 단서가 있어서라가 보다는 왠지 그녀을 만날 때 느끼는 분위기로 우리 사이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요. 오래 같이 있다보면 그런 막연한 감이 생기더군요. 그리고 헤어지자는 말을 먼저 했지요. 그녀는 너무 쉽게 이 사실을 받아들이더군요. 전에 제가 한 번 헤어지자고 했을 때와는 너무도 다른 반응..
왜냐고 물어본다는 것이 의미가 없더군요.
저는 더 이상을 물을 수가 없었습니다. 알고싶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나요? 아주 오랫동안 사귄 연인들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이별 준비로는 헤어질 수 없다는 것을( 물론 어느 한쪽의 용서할 수 없는 큰 잘못이 있어서 그간의 신뢰가 한꺼번에 허물어진다면면 얘기는 틀려지겠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도 한쪽 만의 이별 강행은 쉽지 않습니다.)
그녀의 살아온 삶을 알기에, 그녀의 상황과 성격을 알기에 그리고 나와 함께 했을 때 너무도 뻔한 미래로 그녀를 구속할 수 없기에 이별을 준비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워나 유명한 CC이다 보니 주변에서 쉬쉬하면서 갖은 말이 있었지만 단 한마디도 변명하지않고 단지 헤어진 사실만 인정하면서 지금 말로 cool하게 이별을 받아들였지요. 단 가끔 너무 그리울 때면 그녀 집을 멀리서 보는 정도 였지요.
명문대학교를 졸업했다고 하지만 2년 동안 공부한다는 핑계로 백수로 지냈고 IMF시절 보험외판원, 계약직을 전전하던 당시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녀을 행복하게 해 줄 자신도 없었고, 내가 놓아주기만 하면 그녀는 그녀가 원하는 그런 삶을 살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지요. 지금도 그 생각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는 이별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 아직도 믿고 있습니다.
헤어짐이 아펐던 것이 아니라 내가 그녀에게 더 이상 무었인가를 해줄수 없었다는 것이 슬펐고 그 속내를 그녀에게 솔직히 말할 수 없는 내 처지가 아쉬웠지요.
그리고 그녀는 다음해 결혼했지요. 저는 그녀가 결혼한 다음해에 결혼했고요.
같은 과를 졸업하다 보니 소식을 간간히 듣습니다. 잘 살고 있는 것같더라구요.
아직도 기도하는 자리에서는 그녀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바보 같지요? 그러나 저는 그녀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젊은 시절을 통째로 채워준 그녀에게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직 아니고 나중에 아주 나중에 연륜으로 욕정을 제어할 수 있는 시기에 다시 한 번 정도 그녀를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 젊음을 채색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두시간 정도만 서로의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나는 사랑을 이타적인 것이라 생각하는데 당신은 아직도 사랑을 이기적인 것이라 생각하느냐?"라고 웃으며 묻고 싶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가슴에 묻어두지만 여자은 안 그렇다는 말은 믿지 않습니다. 그녀의 20대 추억에는 항상 제가 옆에 있을 테니까요.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이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녀의 가장 좋았던 시기에 나와의 사랑을 기억으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 우리의 6년 사랑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생 행복하길 빈다. 너는 정말 좋은 여자였다.
글을 쓰다보니 옛 추억이 떠오르며, 잘 해준 것보다 못해줬던 것이 더 많이 떠올라 미안한 감정이 생기네요. 처음으로 제 사랑 얘기를 누구한테 말해보내요. 항상 마음 한 구석에 움크리고 있던 사연들을 배설하니 앓던 이 뺀 기분이네요. 긴 넉두리 읽어 준 여러분 고맙습니다.
참 저도 어려운 시기를 벗어나 누구나 부러워하는 자리에서 대우 받으며 살고 있지요. 지금 어려운 분들 현실을 인정하시고 거기에서 길을 찾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