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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뎌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계속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하고 자극을 원하며
더한 충격과 화려함을 동경한다.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찌하지 못한다. 나약한 시도들. 식상하다. 변화는 어려운 일. 그래서 영화를
찾지만 마찬가지이다. 비슷한 포스터에 비슷한 배우들, 이야기들, 색깔들, 감독들.
대사들, 엔딩들. 지겹다. 긴더위와 빗소리만큼이나. 오랜 정체를 거듭하고 있는
이같은 단어의 짜집기만큼이나.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자기PR용 단어가 되버렸다
한때 난 정말 긍정적이야 라고 믿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이젠 이마저도 어렵고
불가능하다고 여길정도로 어려운 일이 되었다. 이런. 이런 한숨 소릴 들으려고
글을 열어본 것이 아닐텐데. 의무감이라도 가져볼셈이다. 목을 죄어봐야겠다.
자유는 구속의 반대말이 아닌 동의어일테니. 더이상의 멈춤은 돌아오긴 힘든 뒷걸음
이 될 수도 있을테니. 성의 없는 문장들. 휴, 피곤하다. 정말 미안한 마음.
만화같은 영화들을 접했다. 하나는 'skycaptin and world of tomorrow' 또 하나는
'sincity' 사이다를 병째 물고 콜라로 샤워하는 기분까지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재밌었고 종종 혼자서 낄낄대기도 했다. 필자가 남다른 유머코드를 지닌건지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다 검붉은 선혈를 머금다 못해 스크린
가득히 뿜어 넘치는 장면들이었지만 말이다. 팔다리가 공중분해되고 머리가 으깨어
지는 컷들이 흥미로웠다. 아까 내가 혹시 언급했나? 만화같다고?
죄를 짓는 자들과 그들이 짓는 죄로 가득한 도시. 스피드와 욕설이 낭자하고
검은 하늘과 빗줄기는 끊이지 않으며 피바람도 멈추지 않는다. 영웅은 난세를
택한다고 했는가? 아쉽게도 영웅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영웅인척
옷깃을 가다듬지만 그들은 단지 순정파일 뿐이다. 자신의 여자를 챙기는
작은 인연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도덕? 윤리? 이것이 단순히 자신의
감정손상을 치유받으려는 보상심리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몰라도 그들은
목적을 위해 수단까지 가리지 않는다. 사실 그들은 아무것도거침이 없다.
앞을 막으면 죽이면 되고, 말하지 않으면 말할때까지 뼈를 비틀면 된다.
한데 묶어 그들이라 표현하기엔 세개의 에피소드안에 세명의 그들이지만
그들은 주인공을 넘어 반영웅임이 틀림없다. 닮은 점이라면 자신의 여자를
위해 남을 죽이고 또 자기까지 죽일 수 있다는 점. 희생은 그들에게 선택의
고민거리가 아니다. 자기가 희생하거나 그녀가 아닌 다른이가 희생하면
되니까.
만화를 원작으로 한 뭇영화들 중에 가장 만화와 닮았고 가장 만화다운 재미를
지니고 있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 어처구니 없을 정도의 잔혹함이란.
상상의 여지를 위해 그 중 한가지만 귀뜸해준다면 보복을 위해서 상대편의
얼굴을 도로에 갈아버리는 정도? 다만 차가 150km정도로 달리는 중이었을뿐이다.
요즘은 스크린 앞에서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잔인함 앞에서 웃어 제끼고 말도
안되는 불사의 몸을 지닌 주인공의 죽음에 어이없는 반응을 보일 뿐. 그렇다고
폭력과 폭발앞에서 그저 무방비하게 내던진채 깡통처럼 길들여지기 싫어서
안달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끄적거려가며.
쉽게 웃고 넘긴만큼 쉽게 잊혀지겠지만 아무것도 머리에 남아있게 해주지 않은
이 영화가 조금은 고마워지는 이유는 최근의 내머리속에 지우개라도 넣고 온통
비워진 휴지통 상태로 만들고 싶은 개인적인 바램이 무의식중에 가득 넘실거리고
있기 때문일게다. 햇빛한줌도 감당못하면서 병명을 알 수 없는 이 우울만발한
정신머리란.. 정말 자책과 자학에 지치다 못해 자극에 싫증을 느낄 수위까지 치달았다.
영화를 꺼내도 도망치지 못하고 자아의 덫에서 패 벗어나지 못하는 이 옹졸한 여름.
나는 간절하게 진짜 영웅의 등장을 원한다. 망또를 굳이 걸치지 않았더라도 나를
네버랜드로 이끌고 갈 진정한 그녀가. 꿈일지언정 행복하고 싶다. 꿈의 도시일지언정.
sincity.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