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관계
(20) 내 인생의 돌발 상황
부르르- 떨던 핸드폰 진동이 한참을 울다 겨우 멈췄다. 울리다 멈추다를 반복한지 10번도 넘었다. 핸드폰이 우는 것을 영효는 멍하니 쳐다만 볼 뿐이었다. 받고 싶지도, 핸드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온 전화인지도 그 무엇도 알고 싶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세상사는 것이 지겨워 졌다. 살아 숨 쉬는 것도 지겹고, 인생이 지겨워 졌다. 거실 바닥에 누워,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서 울고 있는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하.........”
요즘 들어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흘렀다.
“박영효, 너 언제부터 이렇게 슬픈 영화 속 여주인공이 되어 버린 거야? 비련의 여주인공 역할 같은 건 너한테 어울리지 않잖아! 넌 캔디가 훨씬 잘 어울려. 이런 비련의 여주인공 같은 건 너한테 어울리지 않아.”
팔을 들어 눈 주위를 가려버렸다. 울먹이는 모습이 미치도록 싫었다. 이렇게 연약한 모습 따위는, 기억 속에 남기고 싶지 않았다. 팔등으로 눈가에 말라붙어버린 눈물을 쓱쓱 문지르고, 몸을 일으켰다.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이렇게 사랑이라는 것이 빠져, 모든 인생을 허물어트리고 싶지 않았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그것을 찾고 싶었다.
“뭐든 미치도록 빠질 게 필요해. 미치도록.........”
그때, 벨이 울렸다. ‘올 사람 없는데....... ’ 라고 중얼 거리며, 영효가 현관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작게 난 구멍 사이로, 주혁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영효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영효가 보고 있는 구멍 사이로 핸드폰을 들어 보였다. 거기에는 ‘내 사랑 땅꼬마’라고 적혀 있고, 밑에는 영효의 전화번호가 떠 있었다. 드르륵- 기다렸던 것처럼 거실에서 빙그르르 돌며 울리는 핸드폰.
“문 좀 여시지?”
주혁이 기다리기 지쳤다는 듯 개 구진 표정으로 문을 똑똑 두드렸다. 도대체 저 남자는 어제의 일 따위는 기억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에게 불리한 기억들은 들은 즉시 없애 버리는 묘한 재주가 있는 사람일까? 마치, 어제의 일 따위는 전혀 생각나지 않는 다는 표정이었다. 연신 영효 빨리 열어달라고 문을 두들기는 주혁이었다. 영효는 포기한 표정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하얀색 남방에 옅은 청바지 차림의 그가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있자니, 영효는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영효보다 영효의 눈이 그가 보고 싶었다는 듯 재빨리 움직였다. 그를 눈 안에 담아 버릴 듯 눈동자를 막아버리려, 영효는 두 눈을 감았다.
‘박영효. 너 왜이래……. 이러지 마. 이러면 너 힘들단 말이야. 이러지 마.......’
애써 시선을 피하는 영효를 보던 주혁은 짧은 한 숨을 내 뱉었다. 여자의 저런 태도, 예상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영효의 저런 태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생각 하고 왔는데도, 외면하는 여자의 태도는 힘들었다. 주혁은 숨을 깊게 들이 마시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가 줘.”
주혁이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영효가 재빨리 그를 향해 말했다. 그가 빨리 나가주길 진심으로 바라는 목소리로. 단호하다 못해 날카롭기 까지 한 말투로. 그녀의 그런 말을 외면 한 채, 주혁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
“내가 왜 나가야 하는 거야? 내가 왜! 네 마음속에서 나가야 하는 거야?”
입술을 잘근 깨물며,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주혁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영효는 고개를 숙였다. 상처받은 눈동자로 자신을 쳐다보는 주혁을 안아주고 싶은 손길을 붙잡으며, 그를 보았다. 가슴이 뛰고, 숨이 막히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그의 품 안에 당장이라도 안겨 울고 싶었다. 힘들었다고, 나 힘들다고.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영효는 잘 알고 있었다. 힘든 관계. 남들이 보기 이상한 관계 더 이상은 만들고 싶지 않아 입술을 깨물었다. 터진 입술 사이로 비릿한 피 맛이 흘러 나왔다. 터진 입술을 더 꽉 깨물었다. 고통을 즐기듯, 그 고통을 느끼듯 그렇게 더 입술을 꽉 깨물고 그에게 말했다.
“네가 싫어..........”
“다시 말해봐!”
싫다는 영효의 말에 주혁이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성큼 성큼 걸어 영효의 앞에 섰다. 둘 10cm도 되지 않을 정도로 바짝 다가온 주혁에게서 달콤한 향기가 묻어나왔다. 그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스치자 영효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달콤한 향기만큼이나, 달콤한 그의 얼굴.
‘자꾸 다가오지 마. 너 다가오면 나 흔들려. 자꾸 다른 것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진단 말이야.’
“다. 시. 말해봐.”
거짓을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눈빛으로 주혁이 영효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런 그의 집요한 시선을 피해버리면서 영효가 다시 ‘네가 싫다고.’ 매정하게 말했다. 그런 영효의 틀어진 고개를 주혁이 잡아 자신의 눈빛을 마주 보게 돌렸다. 그의 손을 뿌리치며 영효가 ‘뭐하는 짓이야!’라고 소리 쳤지만, 주혁은 잡은 그녀의 얼굴을 놓아주지 않은 채 다시 또박 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다. 시. 말. 해. 봐.”
“네가 싫다고!”
악에 바친 소리로 말 하는 영효의 입술을 향해 주혁의 달콤한 입술이 부딪혔다. 막무가내로 들어온 그의 입술로 인해 터진 입술의 상처는 더 벌어졌다. 쓰라리고 아픈 입술만큼이나, 그 만큼이나 달콤한 그의 입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반항 하는 영효의 두 손을 한 손으로 잡아버리고, 주혁은 그녀를 벽으로 몰아붙였다. 한참동안 그녀의 입술을 헤매던 주혁이 다시 그녀를 보며 물었다.
“다시 말해봐.”
“네가..........”
이번엔 영효가 싫다고 미처 말하기 전에 그의 입술이 들어왔다. 처음 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입술. 애절하게 그녀를 간절히 원한다는 듯 달콤한 입술. 그의 입술에 영효는 눈을 감아버렸다. 주혁은 영효의 감은 눈을 바라보았다. 사랑스러운 여자. 가지고 싶은 여자. 주혁은 그녀의 입술에서 떨어지기 싫어하는 자신의 입술을 간신히 떼고 다시 그녀의 얼굴을 똑 바로 바라본 채 물었다.
“다시 한 번 말해봐. 정말 내가 ..........”
다시 한 번 싫다고 말하면, 진실을 말 할 때까지 밀어 붙일 듯한 그의 빨간 입술을 바라보았다. 빨개진 그의 입술이, 향긋하고 달콤한 그의 향기가, 그녀를 향한 진심어린 그의 눈빛. 영효는 젖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힘들어. 내가 아무리 널 좋아한다고 해도..........”
“아니, 그만! 날 사랑해? 아니면 싫어해? YES OR NO! 딱 그 두 개만 대답해봐. 거짓말 할 생각은 하지 마. 다시 한 번 거짓말 하면, 이번엔.............. 널 가져버릴 테니깐!”
단호하게 말하는 주혁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정말 진심으로 그럴 것이라는 한 치의 거짓도 없어 보이는 주혁의 눈빛. 그에게 진실을 말해야 할까?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내 마음이 그렇게 되 버렸다고 진실을 말해야 할까? 진실 너머 닥칠 일들을, 그 고통을 알면서도 말해야 할까?
“대답해........... 날 사랑하지 않아?”
제발 사랑한다고 말해 달라고 애원하는 주혁의 눈빛. 그의 눈빛하나에 행복과 지옥을 오가는 것을 주혁은 알고 있는 걸까? 그의 눈빛 하나에 반응 하는 가슴을 주혁은 알고 있는 것일까?
‘난 언제부터 당신이 이토록 좋아지기 시작한 걸까? 난 상현을 사랑한다고 믿었었는데, 그를 향한 내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안타까움 이었나봐. 이 일을 어쩌면 좋지? 나 어떻게 해야 하지?.........’
“하, 내가 미치겠다. 내가 정말 너 때문에 미치겠다. 그래! 널 사랑해! 됐냐?”
단념한 표정으로 덤덤히 그를 사랑한다고 수긍하는 영효를 보던 그의 얼굴이 빠르게 무표정에서 행복함에 가득 찬 표정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의 행복한 얼굴을 외면하며 영효가 말했다.
“널 사랑은 하지만, 너와 관계를 발전시킬 생각은 없어.”
주혁은 영효의 대답을 듣더니, 피식 웃었다. 남자 웃는 모습이 저토록 예뻤던가? 저 남자 저렇게 매력적이었던가? 주혁의 몸짓 하나, 행동 하나에 언제부터 이토록 떨리고 벅찼었는지 영효는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를 사랑하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너 보고 결혼하자고 했니? 아니잖아. 왜 미리 걱정을 하는 거야? 단지 우리는 사귀는 것뿐이라고. 그러다 서로 정말 좋아져서, 결혼까지 가고 싶으면 그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잖아? 안 그래?”
주혁의 기다란 손가락이 영효의 볼을 장난스럽게 튕겼다.
“하지만.............”
“더 중얼거리면, 확! 키스 해 버린다!”
마치 한 번도 키스를 하지 않은 사람처럼, 눈을 똥그랗게 뜨고 협박하는 주혁을 보면서 영효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런 협박 먹히지 않아!’ 라고 말하며 영효가 웃음을 지었다. 주혁의 말이 맞는지도 몰랐다. 단지 연애를 하자는 것 그것뿐이지 않는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 까지 고민할 여력 따위는 없지 않은가?
“5살이나 어린 녀석이랑 사랑에 빠질 줄은 꿈에서 조차 생각 해 보지 않은 내 인생의 돌발 상황이야.”
“그래서 싫어? 또 거짓말 하면.......”
“또 거짓말 하면 어쩔껀데!”
영효가 주혁에게 대들며 물었다. 영효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주혁이 ‘또 거짓말 하면, 이렇게 할 거야!’ 라며 그녀의 허리를 간질였다.
“꺅, 하지 마, 하지 마. 항복!”
“쿡쿡.”
방금 전까지 그렇게 슬펐던 사람들이 맞는지, 방금 전 까지 그렇게 세상 다 산 사람처럼 했던 사람이 맞는지, 영효는 자신이 낯설었다. 이렇게 환하게 웃을 줄은 몰랐다. 이 사람 때문에 이렇게 환하게 웃을 줄은……. 영효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다고 말하던 주혁이 떠올랐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즐거운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언젠가 터져버릴 시한폭탄처럼 가슴이 아렸다. 왜 그토록 가슴이 아렸는지, 영효는 그때는, 그때는 미처 몰랐었다.
제 글이 재미가 없나? 리플이 넘 적어서 막 막 마음이 상해요ㅠ.ㅠ)^
오늘 여러편 올렸으니깐, 내일은 쉬어요~ ㅋㅋ 또다시 소설을 써야 하니깐! 이해해 주세요~
좋은 하루 되시구요~ 오늘도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