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스토커란 단어 자체도 없던 때였다.
두 녀석을 다 유치원 보내느라 일단 가게를 데리고 와서 아침을 먹여서 유치원 보내느라 정신이 없던 시절이었다.
둘째는 아직 기저귀 차는 2살반을 보내야했다. 일명 '기저귀부대'이다.
처음엔 통학버스를 대절해서 아이들을 보냈지만 너무 많이 돌고 돌아서 애들이 멀미가 심했다. 그래서 그 통학일은 아버님이 아르헨티나에 계실 때는 맡아서 해주시기로 했다. 그나마 한국 방문을 하시든가 소규모로 남은 양봉을 관리하시러 시골로 내려가시든가 하면 내 책임이 되었다.
아이들을 유치원 보내고 아침을 먹고 노곤노곤한 시간이었다. 손님도 많이 오지 않는 한산한 시간에 전화가 때르릉 왔다.
"저.........사랑해요. 놀라지 마세요. 00씨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끊지마세요. 너무 사랑해요"
졸린 목소리로 여보세요 하다가 난 한국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런 말을 하길래 잠결에 내가 헛소릴 들었나 싶었다.
"누구세요? 장난하고 그래요?"
손님중의 누구던가, 아님 랑 친구 중 한명이겠지 싶어 일단 목소리 확인 작업을 하는데 도무지 짐작조차 안가는 목소리다.
"제발 전화 끊지마세요. 제가 지켜보고 있어요. 00씨 보기만해도 가슴이 뛰어요. 너무 아름다워요. 사랑해요. 잠을 못 자요 보고싶어서."
헉. 뭔 소리여. 웬 자다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여.
"저...전화 아무래도 잘못 거신 것 같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전화를 잘 못 걸은거다. 그러면서 전화를 끊었더니 다시 건다. 내 이름을 말하며 나 맞댄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고 아무리 목소리 분석을 해봐도 아는 목소리가 아니다. 랑 친구 중에 누가 장난전화 하는 거려니 하다가 괜히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저 애도 둘이고 남편도 있거든요?"
"알고 있어요. 그래도 사랑해요. 내 맘을 걷잡을 수가 없어요. 너무 사랑해요. 보고싶어서 매일 가슴이 타들어가는 거같아요."
"이것보세요~! 전 애기 엄마라구요. 어디다 이렇게 장난 전화에요?"
화를 내고 끊었다. 그 전화는 하루에 몇 번씩 왔다. 약간 떨리는 음색이 있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다. 누가 장난 하는가 싶어 주위에 있는 모든 남자의 목소리를 유심히 들었는데 내 주위에 비슷한 목소리도 없다. 시댁 눈치보느라 교회도 안나가니까 내 주위래봤자 랑 친구든가 아니면 손님들이 다다.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늦게까지 나랑 가게에 있다가 바느질 집이며 수집 등등 따제르들을 돌아야하는데 랑이 지방에 가 있으면 모든 일을 나혼자 해야했다. 게다가 컴컴할 때 가게문을 직원들과 닫고 공장은 애기들 데리고 나 혼자 가야하니 뒷통수가 땡기고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일단 가게로 오는 전화를 내가 안받고 여자거나 랑 전화인 것만 내가 받고 직원이 받게끔 했다. 그랬더니 어떻게 알았는지 이제 집으로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지금 샤워하셨죠? 아...너무 아름다워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만나주세요. 만나고 싶어요."
불안한 떨림의 음색이 있던 그 목소리는 온 몸에 소름이 돋게 했다. 내가 샤워했는지 어떻게 알았을까? 우리 아파트는 7층 단독이라 아무도 못 보는데......공포스러웠다.
"지금 남편 없는 거 알아요. 출장갔죠? 저 있는대로 와 주실래요. 제가 거기로 갈까요. 만나주세요. 제가 지금 아파트 밑으로 갈께요. 나와주세요"
시간에 관계없이 새벽 두시건 세시건 제 맘대로 전화를 걸어댔다. 잠결에 받으면 정말 잠이 다 도망갈 정도로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전화벨 소리만 나도 깜짝 놀라는 버릇이 생겼다.
밤 12시나 새벽 두세시까진 신경이 곤두서 있게 됐다. 랑에게 전화가 와서 울면서 얘기했다. 너무 무서워서 못살겠다고 했더니 심각성을 알고 중간에 돌아왔다. 그렇다고 지방 소매상에 주문 받으러 다니는 일을 그만두면 매상에 지장이 많으니 안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랑이 와서 자는데 다시 새벽 세시에 전화가 왔다.
"남편이 와 있네. 같이 자지마. 죽여버릴꺼야. 다 죽여버릴꺼야. 널 죽여버리고 나도 죽어버릴꺼야."
부들부들 떠는 화난 목소리였다.
난 자다가 놀래서 그대로 랑에게 전화기를 주었다. 랑이 "여보세요" 했더니 그냥 툭 끊었다.
랑은 나보고 병신같이 대꾸도 못했다고 화를 내었다. 살살 꼬셔서 만나기로 해야지 누군지 범인을 잡는데 왜 바보같이 아무말도 못하냐고 짜증을 냈다.
근데 난 도무지 그 목소리만 들으면 얼어붙어버려서 말도 안나왔다. 다리부터 후들후들 떨려오며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으앙~ 눈물만 나왔다.
주말 부부동반 모임에 나갔다. 요즘 온세와 아베쟈네다에 두 세 엄마들에게 그런 전화가 가끔 왔다고 했다. 일단 내게만 오는 전화가 아니라 다행이다 싶었다. 전화 받았다던 세뇨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떤 목소리였냐고 물었더니 내게 거는 사람하고 다른 인물인듯 싶었다. 게다가 두 번 전화하더니 안한다고 했다. 나한테 하는 사람처럼 끈질기게 하지는 않았나보다.
호세와 까리나 부부에게도 물어봤더니 까리나에게도 두번 정도 왔었다고 했다. 그리고 장난 비슷하게 하는 전화여서 신경도 안썼다고 했다. 물론 그 뒤로는 안왔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두 세번 오고 만다는데.....왜 난 몇 달씩 이렇게 사람을 공포로 몰아넣는지 몰라 그 스토커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랑은 화가 나서 방방 뛰었다.
그런 놈은 죽이지도 말고 다리를 부러뜨려놓아야 한다며 차에 원단 말려있던 종이봉 속에 쇠몽둥이를 껴 넣어 의자밑에 갖고 다녔다.
그리고 권총을 하나 샀다. 만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얘기해서 그 누군지 모를 스토커 귀에 들어가라고 소문을 냈다.
그 효과가 있었던가 며칠 뜸하더니 다시 그 목소리는 시작됐다. 다른 여자들에겐 이제 안걸려온다든데 왜 나한테는 유독 찐드기처럼 달라붙는지 몰랐다. 내 일거수 일투족을 다 영화보듯 보는지 몇 시에 뭘하며 지냈는지 다 알고 있었다. 왜 자기의 사랑을 안받아주냐고 원망했다.
랑은 지방에 갈때마다 믿을만한 후배들을 시켜서 내 보디가드 노릇을 하게 했지만 그것도 한 두번이지 참으로 못할 짓이었다. 고맙게도 주로 호세가 찾아와서 셧터맨 노릇을 해줬다.
밤에 전화 올 때마다 난 무서워 눈물이 났다.
처음에 전화 올 때는 후다닥 전화를 끊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얼어붙어 끊지도 못했다. 사람이 그렇게 무섭다는 걸 그 때 처음 알았다.
내가 자꾸 울었더니 그 스토커는 자기가 무섭냐고 진지하게 물어왔다. 그는 내가 우는건 정말 더 힘들다고 했다. 날 정말 사랑하지만 내가 힘들어하고 우는 건 더 자신이 힘들다고 했다.
전화를 끊었다. 그는 전화를 다시 걸었다. 어차피 내가 지가 할 말 다 안들으면 계속 할 터이니 들어주었다. 전화통을 잡고 한동안 흐느끼더니 말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정말 사랑해요. 평생 안 잊을꺼에요. 그 동안 죄송했습니다. 이제 연락 안할테니 편히 사세요. 제 방법이 잘못되었나봅니다. 너무 그립고 사랑하지만 00씨 우는 건 정말 못보겠어요. 안녕히계세요. 행복하십시오."
그 다음부터 전화가 안왔다.
고마웠다. 전화 안해서 속으로 정말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공포스러워 머리카락이 쭈빗 선다. 그 후유증인지 난 아직도 전화벨소리를 싫어하고 전화 받는 걸 즐겨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