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연은 그런 유가장을 쓰러뜨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유가장은 그렇게 쉽게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그렇다고 포기하기는 싫었다. 넘을 수 없다면 뚫어야 했는데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그 방법을 알려 주었다. 신분 상승의 절대적 조건인 정략결혼이라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것이었다.
즉시 정략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한 일에 착수한 위연은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먼저 앉으면 임자라는 방법과 정식 청혼, 그것도 쉽게 거절할 수 없는 얼굴을 앞세운 청혼이었다. 돈이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는 우선 무림맹주의 입을 움직여 청혼을 했고, 그 다음에 화령의 직접납치를 시도했다. 청혼을 하면서 납치를 한다는 지극히 뒷골목 출신다운 발칙한 발상은 순조롭게 진행된 게 아니고, 가장 중요한 두 번째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화령을 납치하는데 실패를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는 열매의 유혹이 너무 컸다. 그래서 잘못 끼워진 두 번째 단추를 다시 끼기 위해 무력시위를 택했다. 유가장의 후원을 받던 무술도장들을 비무를 명분으로 시비를 걸어 아예 박살내버렸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교응방의 위연은 지난며칠간 일어난 불미한 사건에 대한 해명을 빙자한 방문을 통하여 유가장에 대한 직접적인 무력시위를 총관 왕방과 아들 위진호에게 맡겼다.
‘말 안 들으면 죽어’식의 방법이 상상 의외로 잘 먹혀든다. 법은 돈과 주먹보다 보다 멀다. 교응방이 가진 건 돈과 주먹이다. 그런데 유가장은 교응방보다 돈이 많다. 이렇게 되면 교응방에게 남은 건 주먹뿐인데 돈은 주먹을 쉽게 살 수 있다. 때문에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유가장을 누를 방법이 없었지만, 위연은 찾아냈다. 그것이 소위 명문으로 불리는 가문들이 중시하는 것은 명예라는 약점이었다. 명예와 예의를 중시하는 사람은 상대가 막무가내로 나온다고 해서 자신도 똑같은 방식으로 대할 수 없다. 응징을 하려면 명분을 찾아야하는데, 개잡는데 도끼를 쓸 수는 없었다.
위연은 유가장의 장주인 유벽도 그런류의 가문의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으로 판단했는데 그것이 딱 들어맞았다. 유가장이 교응방 정도의 도발을 막는데 명문정파에게 손을 벌리기에는 유가장이 가진 이름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그렇다고 다른 무림인들을 사서 일을 처리한다면 쌓아온 명성에 흠집이 생기게 된다. 만일 꼭 그래야 한다면 비밀리에 처리해야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이런 틈을 위연이 놓칠 리 없었다. 잘만 이용하면 목적달성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워보였다. 이렇게 되자, 유벽은 위연의 도발에 대해 웬만하면 좋은 게 좋은 거라 대충 무마하는 수준에서 양보를 하고 한 발짝씩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틈도 허용되고 들어줄 수 있는 한도 안에서였다. 위연의 계획은 지금까지는 문제없이 잘 진행됐다, 한 가지 화령의 납치를 실패한 것 빼놓고. 하지만 마지막 한수로 택한 아들놈을 유가장에 보낸 것이 최고의 악수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예상치 못했다.
“소방주님, 유가장입니다.”
“후후, 드디어 나의 귀여운 새를 새장에 옮겨 놓을 때가 된 것 같군.”
화령을 처음 봤을 때의 떨림이 아직도 위진호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이었다. 마차에서 내린 위진호는 좀 전까지 당당했던 모습에서 기가 한풀 꺾였다. 물론 위진호뿐만 아니라 같이 온 일행들도 주눅이 들긴 마찬가지였다. 형주 제일가 다운 위용(?)을 자랑하는 정문 앞에는 미리 기별을 받은 듯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제기랄, 이건 완전히 성문이네.’
“야, 말을 그따위로 모는 거야, 너 죽고 싶어?”
애꿎은 마부가 위진호의 자격지심에 첫 번째 희생양이 되었다. 위진호는 자꾸만 주눅이드는 마을 털어버리려고 과장된 행동을 했다. 가진 자가 더 가진 자를 향한 질투가 엉뚱하게 발휘되기 시작한 것이다. 과시하는 게 빤히 보일 정도로 필요이상으로 크게 웃었고, 자기를 수행하고 온 일행들에 대한 말도 행동도 거칠게 했다
“어서 오십시오! 장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에이, 맘에 드는 게 없어! 그대는 누구인가?”
“유가장의 제이 집사 장하걸입니다. 앞으로 화령 아가씨의 혼사를 담당하게 되어 이렇게 손님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내 혼사를 준비하는 집사라고요! 장인어른께서 신경을 많이 써주시는군. 앞으로 잘해 봅시다!”
“소방주님의 혼사를 준비하는 게 아닙니다.”
“그게 그거 아니오?”
“틀립니다. 전 어디까지나 화령아가씨의 혼사를 담당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소방주님 말고도 여러분이 화령 아가씨의 혼사에 대해 관심이 지대한 관계로 장주님께서 저를 담당으로 세우신 것이니, 더 이상 오해를 하는 일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뭐, 뭐라고!”
“자 들어가시죠, 소방주님!”
위진호는 자신이 잘못들은 것은 아닌지 귀를 위심했다.
“야, 저게 무슨 소리야?”
“그, 글쎄요?”
“뭐가 ‘글쎄요’야! 너도 들었잖아 나 말고 혼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고.”
“저도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정확한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소방주님”
위진호의 옆에 있던 교응방의 총관 왕방은 자신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유가장의 혼사는 이곳 형주뿐만 아니라 주원에서 그런대로 이목이 집중되는 관심의 대상임에는 틀림없었지만, 장하걸의 말 속에는 무언가 다른 뜻이 숨겨져 있는 듯했다.
‘이거, 아무래도 방주님의 계획은 물 건너갔다는 느낌이 팍팍 오네. 여러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또 다른 사람이 청혼을 했다는 말인데, 감히 무림맹의 맹주가 나선 일에 발을 걸 정도로 뱃심 좋은 가문이 진짜 있다는 말인가?’
“일단 유 장주를 만나보면 이유를 알겠지요. 소방주님의 사부이신 무림맹주님께서 다리를 놓고 있는데 감히 딴생각을 하겠습니까?”
“그렇지, 감히 사부님께서 계신데 누가 내 길을 막겠어, 하하하!”
‘그래도 어찌 좀 불안하다. 히야, 안은 더 으리으리하군! 예쁜 여자에다…, 흐흐흐, 비리비리한 이집 장남 놈만 처리하면 이 모든 것이 덤으로 내꺼다! 기다려라, 내가 곧 너희들을 모두 안아주마.’
“어서 오시오, 위 소방주!”
위진호가 십여 명의 일행과 찾아오는 손님만을 맞이하기 위해 특별히 지어진 객사 앞에서 서성거리며 야무진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는 것을 깨는 묵직한 소리가 있었다. 돌아보니 초로의 노인이 하인들을 데리고 서있었다.
‘이 노인네가 장주 유벽이구나! 소문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네.’
“아, 장인어른! 그동안 무고하셨습니까?”
넉살 좋게 대답하는 모습에 뒤에 서있던 총관 왕방은 기겁을 했다. 위진호가 장인어른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유가장의 제일집사 우서진이었다. 우서진은 위진호의 경망스러움에 혀를 내두르며 어색한 웃음으로 어정쩡하게 서있었고, 위진호의 생각지도 못한 돌출행동에 당황한 교응방 총관 왕방이 사태 수습을 위해 급히 나섰다.
“하하하, 우 집사님 오랜 만입니다.”
“아, 왕 총관, 어서 오시게! 먼 길을 오느라 수고 많았네. 안에서 장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네.”
원래 명문대가의 손님맞이는 복잡하고, 손님의 격에 따라 영접하는 수준이 달라진다. 아주 중요한 손님은 주인이 직접 나서서 맞이하지만, 그렇지 않을 겨우 문지기하인에서 시작되어 여러 신분상의 계단을 거쳐 주인에게 안내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이 전혀 없는 위진호는 의례적으로 자신을 소방주라고 부르자 당연히 유벽이 나왔으리라 생각하고 넙죽 인사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가 유벽이라고 해도 총관인 왕방이 나서 자신을 소개하기까지 기다렸어야했다.
“소방주님, 이 사람은 유가장의 제일 집사 우서진이옵니다.”
왕방의 소개를 하자 우서진은 간단하게 포권과 목례로 인사를 했다. 위진호는 자신의 어이없는 실수를 깨닫고는 얼굴 한가득 짜증을 팍팍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거친 입은 왕망의 수습 의지를 꺾어놓기 충분했다.
“제기랄! 내가 실수했군. 집사면 집사답게 허리 굽혀 인사를 해야지 건방지게시리 꼿꼿이 서있냐, 엉! 뭘 쳐다봐, 빨리 안내나해!”
‘이 철없는 망나니야 여기서 이럼 어떻게 하니. 저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방주님의 꿈은 저세상에 간단 말이다!’
“소방주님, 여기서 이러시면….”
왕방은 갈수록 태산인 위진호의 행동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딴 세력을 삼키려면 아랫사람의 인심을 얻는 것이 중요한 법인데, 이건 완전히 방해 수준의 행동을 하고 있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이미 땅바닥에 쏟은 물이었다.
“허허, 이런 내 정신 좀 보게 애들아 위 소방주를 안으로 모셔라!”
우서진의 눈빛에 냉소가 흘렀지만 입에서는 버릇없는 손자를 달래는 인자한 할아버지의 웃음과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말을 끝내자 뒤도 안돌아 보고 부속 건물로 사라졌다.
‘에구, 이럴 줄 알았다. 엎질러진 물 주어 담을 수도 없으니…. 헌데 우 집사도 전과는 다르게 세게 나오는 거 같은데…!’
“소방주님, 아무래도 공기가 이상합니다. 조심하지 않음 크게 낭패를 볼 수도 있습니다.”
“뭐가 이상해, 이깟 장사치들이야 그냥…!”
위진호의 말은 도가 지나쳤다. 왕방은 더욱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 방주에게 우겼던 대로 위진호를 떼어놓고 오지 못한 게 더욱 후회가 되었다.
“소방주님, 그게 아닙니다. 이 유가장은 그냥 장사치가 아닙니다. 유현덕의 후손인 명문대가입니다.”
“유현덕이 누군데?”
“에구! 소방주님, 옛날 이 지역에 세워졌던 촉한의 황제였던 사람입니다.”
“알아 안다고! 그래서 그게 어떻다는 거야? 이미 천 년 전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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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이 국경일이 되는 그 날까지… 아자 !
한글을 사랑 합시다.
내글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