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의 유전
요즈음에는 서리라는 말이 곧 절도라는 엄청난 용어로 통한다. 훔쳤다는 말 보다는 그냥 서리했다는 말이 얼마나 정겨운지 모른다. 가난한 시절의 너그러움이 풍기는 말이다. 서울에서 자란 나는 시골에 관한 추억이라면 경기도 파주에 있던 외가댁에 놀러간 일이 전부였고, 흔한 과일서리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딱 한 번 딸기밭에 살금살금 기어들어가서 서리한 적이 있었다. 중학생 때였다. 일요일 아침에 일찍 친구 두 명과 함께 말로만 듣던 무전여행을 하기로 작정하고 서울역으로 갔는데, 기차를 훔쳐 타고 시흥까지 다녀오기로 했던 것이다. 1960년대 당시에 서울역은 철조망으로 엉성하게 주변을 둘러쳐서 소위 말하는 개구멍을 찾기도 쉬웠다. 매표소를 멀리 돌아서 철길을 엎드려 건너 기차에 올랐다. 우리 세 명은 떠나는 기차의 문에 매달려서 기고만장했다. 분출되는 모험심에 들떠서 조잘거렸다. 사실 시흥역에 누가 있어서 간 것도 아니고 그냥 하룻길이기에 택한 곳이었다. 역에 도착하자 매표소 반대쪽으로 내려서서 잽싸게 철길을 건너 또 엉성하게 쳐진 철조망 사이를 벌려서 빠져나갔다. 사방이 논과 밭이었다. 셋이서 어슬렁어슬렁 걷다가 방아깨비를 잡아서 뒷다리를 꼭 잡고는 펄쩍펄쩍 뛰는 방아질에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러다가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 모르지만 서리하자는 말에 기가 바짝 살았다. 시골에서 올라온 반 아이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무공담을 늘어놓듯 서리라는 말을 자주 했던 터라, 용감성의 상징인 서리를 서울태생인 우리들은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 다음에 크면 소설가가 되겠다는 포부를 가진 상철이라는 친구가 앞장섰는데, 언젠가 시골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 놀러갔을 때에 몇 번 해봤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사방을 둘러보다가 선택된 곳이 멀리 보이는 딸기밭이었다. 초여름이라서 한창 딸기가 무르익었을 때였으니, 나는 딸기가 나무에서 열리는 줄 알았는데 상철이는 기특하게도 딸기는 그 해에 심어서 그 해에 딴다는 사실까지 알았으니, 그저 꽁무니를 따라서 졸졸 딸기밭을 기어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점심때라서 그런지 멀리 삐죽 솟은 원두막이 비었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의 그림자를 찾아 볼 수 없이 햇볕만 쨍쨍했다. 우리는 딸기밭을 엎드려 기어가면서 빨갛게 익은 딸기를 따서 먹기 시작했으니, 그 맛이 참 꿀맛이었다. 모든 것을 다 돈을 주고 사 먹어야 한다는 관념이 박힌 서울뜨기인 내 머리로는 정말 신기했다. 그냥 먹어도 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친구 두 명도 역시 내 기분과 같았을 것이다. 나는 윗도리를 벗은 후에 속옷을 벗어서 목 부분을 꼭 묶은 후에 자루처럼 만들어, 딸기를 따 넣기 시작했고, 친구들도 손이 닿는 대로 따 넣었다. 하얀 속옷에 빨간 딸기물이 들었다. 이 속옷을 입고 학교에 가서 급우들에게 보여주며 우리의 무공담을 자랑해야겠다고 내심 쾌재를 불렀다.
두어 시간을 그렇게 딸기밭을 기어 다니다가 나와서는 전리품인 딸기가 가득 들은 속옷을 자루처럼 쥐고 시흥역으로 향했다. 내려올 때는 모험심에 가득하여 기차를 훔쳐 탔지만, 올라 갈 때는 남들처럼 표를 한번 사보자는 의견이었다. 왜냐하면 역무원이 손에 들은 펜치 같은 것으로 표를 꾹꾹 찍는데,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셋이서 역내로 들어서서 기차시간을 보니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사람도 뜸한 역내의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달랑달랑 흔들며 속옷자루에 담긴 딸기를 또 먹기 시작했다. 한참 그러고 있는데 밖에서 자전거가 삑 서는 소리가 들리더니 중년남자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 남자는 우리를 슬쩍 훑어보더니 서성서성 뒷짐을 지고 기차시간표를 보았다. 그러다가 옆에 앉더니 싱긋 웃으며 속옷으로 자루를 만들어서 딸기를 담은 것을 신기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아이구, 딸기를 그렇게 옷에 담으면 빨아도 물든 것이 안 빠지는데,”
사뭇 근심스런 목소리로 접근하더니,
“어디서 그렇게 많이 따온거유?”하고 물었다.
그 남자의 인상이 무척 좋았던 기억이다. 사실 서리는 절도라기보다는 남자만이 발휘할 수 있는 용감성의 상징이라는 생각이 앞섰을 것이다. 대뜸 내 입에서 튀어 나온 말이,
“헤헤, 저기 딸기밭에서 서리했죠.”하고는 옷을 벌려 보이며,
“아저씨도 한번 드셔보세요. 맛있어요.”했던 것이다. 옆에 있던 친구들도 합세하여 어깨를 들먹이며 손가락까지 들어올려서 서리한 밭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이렇게 하여 반들반들한 까까중머리를 흔들던 우리가 딸기밭 주인에게 정통으로 걸렸으니, 딸기까지 서너 개 얻어먹던 중년남자는 별안간 우리의 멱살을 쥐고는 밖에 대고 소리쳤다. 그러자 뒤이어 달려온 중년여자와 청년 두 명이 들어서서 우리를 삥 둘러쌌다.
얼마 후에 우리는 머리에 혹 하나씩을 달고 딸기밭에서 일하고 있었다. 잘 익은 것으로 따라는 주인의 호통소리를 들으며 출하할 딸기를 따서 소쿠리에 담았다. 해가 서산에 걸리자 주인아줌마가 저녁밥을 머리에 이고 왔는데, 주인아저씨는 저런 도둑놈들에게 먹을 것을 왜 주냐고 호통 치면서도 빨갛게 햇볕에 익은 얼굴과 빨간 딸기물이 든 손으로 허겁지겁 밥그릇에 달려든 우리를 모른 척 했다. 밥을 다 먹자마자 또 우리를 끌고 외양간에 간 주인은 바닥에서 소똥을 다 긁어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긁어낸 소똥을 또 통에 담아서 집 밖에 모아놓아야 했으니 다 거름으로 쓸 것이었다. 사방이 어둑해지자 우리는 주인에게 사정했다. 적어도 삼일은 일을 시켜야 서리해간 딸기 값을 뺄 것이니, 꼼짝 말라는 엄포였는데 내일 학교를 가야하는 것이었다.
“저...... 내일 학교에 가야 하는데요, 집에 좀 보내주세요.”
상철이가 더듬더듬 사정하자 주인은 눈을 부릅뜨고는 딱 잡아떼며 말했다.
“걱정 마. 내일 너희 학교에 연락해서 선생님보고 와서 데려가라고 할 테니,”
이 장면에서는 눈물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아침만 해도 모험심이 가득하여 잽싸게 철길도 건너뛰던 기개를 찾아 볼 수 없었다. 세 명이서 훌쩍훌쩍 주인에게 매달리며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밤 아홉시쯤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주인아저씨와 아줌마가 사주는 기차표를 들고 징징거렸다. 집에 가서 식구들에게 나누어주라는 딸기를 한보따리씩 안고 있었으니 일부러 엄포를 놓았던 아저씨와, 돌아서며 싱긋싱긋 웃던 아줌마가 고마웠다. 멀리서 기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나자 셋이서 나란히 개찰구를 빠져나가며 유심히 역무원의 손에 들린 펜치 같은 것을 보았다. 그것을 표에 대고 꾹 누르자 구멍이 뻥 났다. 뒤에 있던 내가 표를 내밀자 또 꾹 눌렀는데 구멍이 가운데 뚫린 것이 아니라 표 가장자리에 살짝 흠집을 내었다. 그래서 다시 표를 내밀며 “가운데에 꾹 찍어주세요”하자 딸기밭 주인내외는 까만 얼굴을 활짝 펼치며 웃었는데, 그 눈빛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지금 내가 그런 눈빛일 수 있을까, 재잘대는 중학생을 보면 무척 신기하고 귀엽고, 또한 웬만한 잘못을 다 어여삐 봐 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막상 서리를 당한 딸기밭 주인이라면 어떻게 할까, 아마 봐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거에 진 죄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고마움 때문에,
글 / 은하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