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깨어나 일어나보니.. 은미는 보이지 않고.. 세강이는 먼저 깨어 있었다...
" 은미는....?"
" 몰라.. 나 깨기 전에 먼저 집에 갔나봐..."
" 나 집에 갈래..."
" 아침은.. 먹고 가..."
" 아니.. 그냥 갈래.. 피곤해..."
" 내가..어제 실수 많이 했어...?"
그걸 말이라고.. 나는 힐끗 쳐다봤다....
" 너.. 열등감 느끼는 거야...?"
그러자 무슨 뜻이냐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본다...
" 무슨 열..등감...?"
" 어제 은미랑 둘이서 나 없을 때 무슨 얘기를 한거야..? 현욱이 이야기가 왜 나와...?"
" 난.. 그냥 전 남자친구보다.. 더 잘해주고 싶었고.. 어떻게 사귀었는지 궁금해서.. 물었을 뿐이야..."
" 그걸 왜 물어봐...?"
" 니 눈속에 아직 그 녀석이 보이거든..."
내 눈속에 아직 현욱이가 있단 소린가....?
" 무..무슨 소리야 그게...?"
" 내 맘이 급해서.. 니가 현욱이를 채 떨쳐내기도 전에.. 사귀자고 해버렸자나.. 아직 니 맘속에..
니 눈속에.. 현욱이가 있자나..."
아닌 척 해왔다.. 가끔씩.. 현욱이 생각도 하고.. 그리워했지만.. 세강이 앞에선.. 내색 안할려고 노력
했었는데...
" 그래서 뭘 어쩌자고.. 다 알면서 시작하자고 했던 쪽은 너야..."
" 조금만 더 나한테 맘을 기울여줘.. 알면서 시작한 나도.. 가끔은..힘들 때가 있어..."
그러길래.. 왜 힘들거 뻔히 알면서 나한테 사귀자고 했던 거야.. 그리고.. 나.. 박하은이.. 나도 잘한거
하나 없어.. 현욱이 못잊어하면서 다른 남자 사귄거.. 너부터가 잘못했어...
" 너도 알아챌 정도였다면.. 우리.. 계속 사귀는 거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
나는 도저히 세강이에게 상처 주기도 싫고.. 내 감정을 속이기 싫어서 세강이에게 헤어지자고 말을
했다.
" 무..무슨 소리야...? 난 헤어지자고 그런 말 한게 아니야..."
" 아니.. 우리가 서로에 대해서 아는 게 적을 때.. 감정이 깊어지지 않았을 때.. 헤어지는 게 좋겠어..."
" 난 너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아.... 내 감정도 니가 생각하는 것만큼 얕지 않다구..."
" 니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 "
" 알아.. 적어도.. 니 감정이 어떤지는 알아.. 너 현욱이 못잊고도 나랑 사귄거.. 그리고 나서도...
계속 현욱이 생각한거.. 그치만.. 나에게도 조금씩 맘을 열어가려고 노력하는 거.. 이런 내가 가엾다고
느끼는거.... "
세강이는 나에 대한 감정을 정확히 꿰뚫었다. 도저히 이건.. 세강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못할 짓이라고
몇번이고 생각을 했었다.
" 나 그만 집에 가봐야겠다..."
하며.. 짐을 챙겨서는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세강이가.. 앞을 가로막았다..
" 뭐하는거야...?"
" 못가.. 헤어지잔 말 취소해..."
" 취소안해.. 비켜줘..."
" 취소해.. 부탁이야..."
" 비켜.. 나 갈꺼야..."
그러자 갑자기 무릎을 꿇는 세강이다. 나는 놀래서
" 너 왜이래..? 너 이런다고 나 바뀌지 않아.. 일어서.. 야... "
" 노력할께.. 헤어지자고 하지마.. 너 이렇게 가 버리면.. 나 내 자신을 평생 저주 할 것 같아..."
나는 그런 세강이를 모른 척 하고 나와버렸다. 그러자 세강이도 서둘러 나를 따라 모텔을 빠져나왔다.
나는 말 없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런 내 옆에서 세강이도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 정말.. 마지막이야..이게...?"
세강이가 물었지만 나는 아무 말 할 수가 없었다...
곧 버스가 왔고..나는 버스를 올라탔다.. 예전처럼 나를 뒤따라와서 버스를 타지 않을까..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러지 않았다.. 축 처진.. 어깨를 한 세강이를 뒤로 한채 나는 그렇게 매정하게 집으로
가버렸다.
어제 은미와 세강이 때문에 몸이 찌뿌둥하니 너무 피곤했다. 샤워를 하고 거실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었다. 날씨가 더욱 더워져서 바깥 대문까지 열어놓고.. 온집안 창문이란 창문은 열어두었다..
저녁을 먹고.. 포도를 후식으로 먹으면서 쇼파에 걸터앉아 티비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전화가 왔다..
응..? 이건 우리 동네 번혼데.. 가운데 자리가 우리동네 번호라서.. 나는 별 뜻 없이 전화를 받았다..
" 나..세강이야..."
헛...? 무슨 일이지...?"
" 나 여기.. 농협 앞에 정류장에서 내렸어.. 너네집 찾으려고 왔는데..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어.. 밖은
깜깜하고.. 다 여기서 내리길래..나도 여기서 내렸어.. 너 잠깐만 나올래....?"
농협에서 내렸다면.. 우리 집에서도 2정거장 전이다. 지금이....8시다.. 이 시간에 나간다고 하면..
곱게 봐 줄 우리 엄마가 아니다..
" 나 못나가.. 그리고 정류장 2정거장이나 앞에서 내렸는데.. 내가 어떻게 거기까지 가...?"
" 너 얼굴이라도 보고 갈께.. 나 동전 없어서 끊...."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다.. 농협 앞에 있는 공중전화로 전화를 한 모양이다. 나는 어떻게
할까 생각 해 보았다. 그렇게 30분 동안을.. 가볼까..말까..하고 망설였다.. 무작정 우리집 가는 버스를
타고 온 세강이가.. 걱정이 되긴 한다.. 나는 엄마한테 잠깐.. 하영이네 집에 간다하고는.. 핸드폰과..
지갑을 챙겨 농협쪽으로 걸어갔다.. 말이 2정거장이지.. 걸어서는 5분도 안걸리는 가까운 거리다.
농협 앞으로 걷다..뛰다시피 해서 갔건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세강이는 보이질 않는다.. 뭐야...
벌써 간건가....? 마침 핸드폰 무료통화를 다 써버려서.. 100원 짜리 동전 3개를 넣고 세강이에게 전화
를 걸었다..
" 너 어디야...? 농협 앞에 왔는데 너 없자나..."
그러자
" 나 너 기다려도 안 오길래.. 버스 타고 나가고 있어.. 응..? 여기가 어디쯤이냐면.. 죽림리....라고
써 있네...? 아니야.. 기다려.. 내가 갈께..."
다시 되돌아오겠다는 세강이다. 버스가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나는 무리라고 생각해서.. 그냥 전화
를 끊었다.. 동전 80원이 남았지만.. 100원으로 거슬러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수화기를 위에 올려놨
다. 나는 되돌아오겠다는 세강이의 말을 무시한 채 다시 집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가로등이
몇 개 켜져 있지 않아..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 빠른 걸음을 재촉해 집으로 갔다..
한참.. 40분쯤 흘렀을까.. 아까 그 공중전화번호로 다시 전화가 왔다..
" 나 세강이.. 너 어디야..? 나 택시타고 다시 돌아왔단 말이야...."
뭐..? 택시를 타고 돌아와...? 나는 기가 막혔다..
" 동전 없어.. 끊어지..."
전화는 또 그렇게 끊겼다.. 나는 되돌아가라는 말만 하고.. 다시 세강이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지금 시간이 몇신데..
나는 조금은 세강이가 걱정이 됐지만.. 포도를 계속 먹으며.. 티비를 시청했다.. 그러고보니...
핸드폰 고리에.. 신랑의 몸통이 떨어져 나가있었다.. 뭐야...? 갈때만해도 붙어있었는데.. 오다가..
떨어뜨렸나..? 낼 아침 되면..찾아봐야겠다..생각을 했다...
그 때.. 언니가 쇼파 옆에 앉으면서..
" 밖에.. 어떤 남자가 자꾸 서성인다.. 무서워서 들어와버렸어..."
" 무슨 남자...?"
" 몰라.. 우리 또래쯤 보이는데.. 자꾸 여기저기 두리번 거려... "
혹시..세강인가...? 나는 살짝.. 기웃해서 밖을 내다보았다.. 역시나..세강이었다. 우리집 근처에..
병원이 있단 얘기를 듣고.. 병원 앞에서 그렇게 기웃거린것이다. 나는 세강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 되돌아가.. 너 막차 끊겨.. 안그럼.."
" 밖으로 나와봐.. 줄 게 있어.."
" 너한테 받을 거 없거든...? 그냥 돌아가..."
" 나올 때까지 기다릴께..."
그리곤 먼저 끊어버리는 세강이다.. 나는 기가 막혔다.... 그래..기다리든 말든..막차를 놓치든 말든..
그건 니 맘이지.. 라고 맘 먹고는 나도 신경 꺼버린 채 그렇게 들어와서는 티비를 봐버렸다..
갔겠지...? 시계를 쳐다보니.. 2시간이 흘렀다.. 이쯤하면..막차도 끊겼을텐데.. 지가 안가고 배겨...?
나는 다시 창문쪽으로 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여전히 맞은편 돌담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는 세강이다..
저게.. 아직 안갔어...? 아..진짜.. 나보고 어떡하라고..자꾸 이렇게 거머리처럼 붙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