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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여우-5

붉은 여우 |2005.08.16 04:16
조회 977 |추천 0

 " 지난 상담때  약혼식을  했다고  말씀 드렸었죠?  그 뒤로  벌써 3주가  됐나요?  그와는  중매로  엄마 친구의  아들을  만나  6개월을  사귀고, 약혼식을 했지만  그를 사랑하는지  제 감정에  자신이 없다고  말씀드렸었죠.   그 후,  그와  약혼여행으로  홍콩으로  다녀왔어요.  제  이미지가  강해보인다는 것  저도  잘알아요.  그러나,  결벽증같은 것도  심하게  있는 편이어서   남자친구들은  많았어도  특별한  감정을  가져본 적도,  상황도  되어 본 적 없어요.  전  결혼 때까지  순결을  버릴 생각은  없었어요.  사랑하지도 않는  일시적인  감정에  쉽게  버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왔고... "

 

   수연은  이야기를  풀어 나가며  다시금  눈물이  가득 차 올라   눈 앞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 그는  제가  처녀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나봐요.  약혼 여행 간 날,  그가  저를  강제적으로  덮치더군요.  반항할 수도  있었지만,  ' 이 사람과  결혼하는데...' 라는  생각과   결혼식을  한 달  앞두고   어떻게  할 수도  없다는  생각에  그와  첫날밤을  그렇게  치루었어요.  조금만   피가  나올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하혈이  심해서  1시간을   휴지로  막아야   했고,  그는  할 일을  끝낸  사람처럼   " 정말  처녀구나"  라는  소리만을  내뱉은 후  돌아누워  자는데,  저는  하혈도 막을겸  화장실에서  1시간을  보내며  왠지  한참을  울었어요.  제가  생각한  첫경험은  이렇게  고통스럽기만 한  이런게  아닌데  하는  아쉬움도  컸고...  이젠  꼼짝없이  저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울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2박 3일의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그 사람의  태도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어요.  조그만  일에도  짜증을  내고,  매일 같이  자고  가라고  조르기도 하고... 잠자리를  강요하는 일이  늘었지만   그  뒤로  잠자리를  안했어요.  왠지  제 마음의  벽이  아직도  있었나봐요.  그렇게  자주  신경질이  늘어가는  그가  왠지  불안했고,  일주일 쯤  지난  어느 날,  그가  절  신라호텔 커피솦으로  불러서  나갔어요.  키를  주며  같이  올라가자  했는데   제가  결혼식이   얼마  안남았으니  조금만  참으라고 했더니  화를  내며  나가버리더군요.   저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해서  고민했어요.  저 사람에게  무조건  내 성격을  죽여서라도  맞추어야  하는 건가?  고민스러웠죠.  사랑한다는  그런  뜨거운  마음도  생기질  않아서  더  고민이었고,  그냥   남들  다 하는  결혼,  나도  맞추어 보자  싶었지만... 문제는  어디까지  맞추어야  할지  저 스스로도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건데...   그 날  집으로  돌아와   전화해보니  안받아서  호텔 프론트에  전화를  걸어  방이  취소됐는지  확인했더니   취소하지  않았다고 해서  밤에  다시  차를  몰고,  호텔로  가서  벨을  눌렀죠.  갑자기  방 안에서  소리가  나더니  한참 있다   문이  열리는데  그가  누군가와  같이  있다  옷을  입었더군요.  둘 다  옷을 입었지만   당황해서  벌겋게  달아오는  얼굴과  흐트러진 모습,  구겨진  침대  시트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것  같더군요...흑.흑......"

" 어떤 사람과  같이  있던가요?  "

" ... 저의 동생...이요..."

 

  차분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던   담당의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 이 사실을  다른 사람은  아나요?"

"... 아니요 ... 이런  사실을  누구에게  말해요?"

" 그래서  어떻게 하셨나요?"

" 누군가  제 목과  심장을  으스려  쥐는 것처럼  숨이  막히고  앞이  하얘지면서  쓰러졌어요.  의식을 차렸을 땐  그만  혼자  앉아  저를  바라보고 있더군요.  제게  미안하다며,  제 동생을  사랑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무거웠지만   한번만  용서해주면   저를  가졌으니  저를  책임지겠다고  하더군요.

... 절 가져요?... 뭐가요?  저와 잤다고,  절 가진 건가요?   제 동생은요?...흑... 흑..."

  수연은  목이  매인 채  창훈에게  하지 못했던  울음을  토해냈다

" 제가 그렇게  약한 줄  그때  알았어요.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나오더군요.  동생을  사랑하지만  제가  처녀였고,  결혼식을  깰 수 없으니  저와  결혼하겠다는  그  말이.... 저를  너무  비참하게  만들었어요.  "

 

  담당의는  어두워진  눈빛으로  수연을  꿰뚫듯이  바라보았다.  

" 그래서요? "

" 용서할 수 없다고 했죠.  결혼하지  않겠다고... ... 그리고  집에  돌아와  많이  고민하며  울었어요. 그대로  있고도  싶었죠.  그러다가  모든  것들이  의미가  없어지면서  사라지고  싶었고,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받은  약들을  모두  한꺼번에  먹은 거예요.  내  삶이니까  내  손으로  끝내고  싶었죠.  저만  죽으면  다  될것  같았어요.  창훈씨는  절 버렸다는  오명을  쓰지 않고,  엄마는  처음에  가슴이야  아프시겠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곧  정신차리고  사신 것처럼  저도  시간이  가면  잊으실거라고  생각했어요.   살아야 할  목적도,  삶의  희망도  찾을 수가  없었죠.  결국  약을  먹음으로써  도망쳤지만요.  훗( 자조적 웃음 ) ... 그런데  우습죠?  죽으려는  순간에  그가  보이더라구요.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하진  않았는데... 이것을  무어라  해야  하나요?"

" 동생분과는  이야기 해보셨나요?"

" 아니요, 그 후로  못봤어요.  어제  그가  면회오기  전까지  그가  보고싶더군요.  이곳에  갇혀서  누군가를  의지하고  싶은  감정인지도  모르지만요.   그가  곁에  있겠다고  걱정말라더군요.  전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를  용서못하겠다는  감정과   이대로  그와  결혼해도 되는 걸까?  하는  감정들이  제 속에서  부딪치고  있어요.  이렇게  약한  제가  아니었는데... "

" 동생은  어떤 분인가요?"

" 예쁘고,  귀엽고,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연약함을  가진  아이죠.  이복  동생이예요.  아빠가  바람피워서  낳아온 아이... 사춘기부터  많이  방황해서인지  저와는  반대의  성격을  지닌  자유분방함과   애교가 있죠.  갖고 싶은  것은  가져야하는  이기적인  면도  있구요.  전  자라면서도  모범생  그  자체였죠.  자기 앞가림, 자기가  할 일들을  똑 부러지게  하는 면을  보면서  사람들은  제가  미인이라고 하면서도  제게  접근을  안해요.  대학 때   별명이  '얼음공주'예요.   차갑고  도도해 보이는  인상이  저죠.  알아요.  자라면서  지긋지긋하게  비교됐으니까."

 

  담당의의  표정이  다시금  무표정으로  돌아가며  물었다.

" 제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결혼은  다들  새로운  출발이라고  하는데,   이수연씨는  결혼을  왜 그렇게  힘들게  받아들여야만  했을까요?  어머니가  결혼을  강요했어도  선택은  이수연씨가  했을텐데요."

" 남자를  한 명도  안사귀는,  차가워보이는  제 모습에  결혼이  늦어질 거라고  생각한   엄마의  집요한  강요,  자라면서  한 번도  엄마의  말을  거역해 본 적도  없었고,  저를  위하는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하기 싫었던  저는  선을  네 번정도  봤죠.   거만하고  잘난척하는  외과 전문의,  물론  선생님 이야기는  아니예요,  권위적이고  눈매가  무섭게  생긴  경찰관,  굉장히  약해보이는  샌님같은  공무원,  외국 제약 회사  과장인  창훈씨... 그 중에서  외모나,  집안이나  저와  가장  무리가  없고  조건이  평범해서  저와  어울릴 것  같았죠.  여행을  좋아한다는  취미도  맞고... 맞는 옷을  고르듯이  골랐을  뿐이예요.  만나다 보니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했고,  이 정도면  결혼해도  무난할 것  같았는데...  엄마들이   친구들이시다 보니   가족들끼리  자주 어울렸는데  그 와중에  제 동생과   그렇게  됐나봐요.  그렇다면  차라리  일찌감치  사실을  밝혔다면  좋았을텐데...  제가  구식인가요?  아직도  제  마음 한 구석에선  그가  제 첫남자라는  사실과  제 동생과의  관계가   제 속에서  뒤엉켜 있어요.  마음이  많이  정리되어 가지만   아직도  괴로워요.   이것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새 출발을  하게  되는 걸까요?   "

  담당의는  내 뒤에 있는  벽시계를  힐끔 쳐다보더니  다시  돌아간  무표정으로,

" 그래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일요일은  제가  안나오니까  월요일에  뵙고,  다시  이야기 해 볼까요?  주말에도  푹  잘 쉬고요."

" 네. 수고하셨어요."

  담당의와  대화를  마치고  나니  수연 속의  덩어리가  조금은  더 가벼워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수연에게  오늘따라  하루종일  밖에서  지내던  지아가  기운이  좀 나는  모습으로,

  " 언니,  언니에게만  얘기하는데,   내 이름이  가리킬 지 (指), 아이 아 (兒)  거든.  난  내이름이  싫었어.  뭐를  가리키는  아이라는 건지.  그런데  ( 어두워지기 시작한  창밖의  불빛을 가리키며)  여기서  불빛의 선이  저기까지  이어져  있는데  불빛이  문득  여기서  저곳으로 이어져  보일거라는  것을  난  알수 있는거야.  빛이  이어지는  길들이"

" 지아야,  지아  네 이름이  얼마나  귀엽고  예쁜데."

" 성경을  펴면  '네가  어찌하여...(웅얼거림)' 이  보이고,  또  다른데  펴면 ' 너는 그리스도의  신부...

(웅얼거림)..' 이 보이고,   내 가슴속의  이야기들이  보이는 거야.  난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예수님의  부인이거든."

   수연은  지아가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동거남에게  머리를  맞았다더니  후유증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었다.  자신도  그렇지만  남.녀 관계 란게  감정의  미로처럼  잘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같기만  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축복받은 것일까...

다시  머리에  잡념이  생기는  가운데  담당의의  웃는  얼굴이  떠오르며  잠이 드는  수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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