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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여우-10 (-11일째-)

붉은 여우 |2005.08.19 02:33
조회 1,025 |추천 0

 -11일째 -

  수연은  높은  고열로  이틀을  앓고서야   조금  정신을  차렸다. 

정신없는 듯한  꿈 속에서  소란스러움과  부산스러움이   여러 사람들이  다녀갔던 것도  같았지만 ... 열에  들떠있으면서   구토를  하느라   화장실을  기다시피  들락거리며,  열과  오한이  교대로  찾아와   수연이  정신차릴  틈을  주지 않았다.  차가운  물기가  뚝.뚝  안개처럼  수연의  얼굴에  떨어지고  있었다.   가습기의  축축함과   팔에  맞고 있는  링겔주사의  따갑고  불편한  느낌에  정신을  차리며,   두 눈을 뜨고  밝은 빛에  잠시  눈을  깜빡였다.  수연의   온 몸이  땀과  가습기의  물기로  젖어 축축했다.   기운없는  몸을  일으키려고  노력하며  몸을  움직였다.  자신의  입술이  바짝  말라 있었다.

" 수연아,  저.정신이  들어?  뭐?  물?  물 갖다 줄까? "

유림은  수연이  정신을  차리자  침대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일어나도록  도와주더니  부리나케  물병을  가지고  와서  물 한 잔을  따라  수연에게  주었다.

" 수연아,  선생님들도  왔다  갔어.  네 선생님도.  이.이젠  열이  조.조금  내렸네.  다행이다."

유림이  수연의  머리를  짚어보며  수연을  향해  따뜻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 언니,  나  많이 잤어?"

" 응, 오늘이  너 3 일째야.  어.어제까지   너 사람도  잘 못알아 봤어... 뭐라더라?  급성 편도염에  독감이라는  것  같던데?? ...  너  맞는 저 병에다   주사도  넣더라.  무.무슨 약인지는  잘 모르지만... 해열제도  먹이고... 너  막  식은땀도  많이 흘리고,  열도  안내려가서  우리도  걱정했다.  그리고,  우리 방에  1 명이  더  들어왔어.  너  자는 동안."

" 그랬어?  그런데  병실이  조용하네? "

" 응,  다.다같이  모여서  영화 봐. "

" 언니는  왜  안갔어?"

" 그냥,  가기 싫어서...  난  영화는  좀  벼.별로야.  이제  조금 있으면  끝나겠다."

" 간호원에게  너   이.일어났다고  말해야지."

유림은  다시  산만한  모습으로  병실을  나가고,   수연은  머리가  핑-돌며   다시  어지러움이   일었지만   침대에서  내려와   링겔를  바퀴달린  밀대에  옮기고   힘들게   화장실로  들어갔다.  소변을  조금  보고,  손을  씻자  거울 속의  여자가  보였다.  헝크러져  엉켜있는  단발머리의,  눈밑이  거므스름한   바싹 마른  입술을  가진  여자가  서 있었다.  흑-  목구멍에서  울컥하고   쓴 울음이  올라왔다. 

' 안 울어.  울지 않을거야... 강해질거야... 이젠...  이수연,  정신차려!  이게 뭐니...'

한 손으로  얼굴과  남은  한 손을  조금  씻고,  병실로  돌아와   유림에게   새 환자복  한 벌을  부탁해  유림의  도움을  받아  갈아입고  나자,  간호원이  병실로  새  침대 시트를  가지고  들어와   갈아 주었다.   뽀송뽀송하게  새로  갈아진  하얀시트의  느낌을   느끼며   이틀동안  누워서만   지냈던   몸을  세워  침대  등받이에  붙이고  잠시  눈을  감았다. 

" 이수연씨,  체온 좀  재 볼께요."

  간호원이   체온을  재더니  다시  주사를  놓았다.  혈관을  타고  약기운이  도는지   졸음과  나른함이  아직   열이  남아있는  몸에   조금씩  몰려오고  있었다.

" 38.5 ,  아직  조금  열이  남아있네요.  누워계세요.  지금  맞고 있는  병을  다 맞아야 해요.  조금 있으면  점심인데  먹을 수 있겠어요?  구토는  안 나고요?   먹을 수 있으면  가볍게  스프부터   먹어보세요.  몸이  회복될 때까지   푹 자고,  쉬는 것도  도움이  되니까   점심 먹고,  약 먹은 후에  주무세요.  가습기는  일부러  얼굴에   떨어지게  조정 해 놓은  거니까   수건이  젖더라도  그냥  놔두세요.  수건을  바꿔서  깔면  되니까.  아직  열때문에  몸이  아플거예요.  환자들과  이야기하지 말고   덮더라도  이불  잘 덥고  쉬세요."

여러가지  설명을  잔소리처럼   일방적으로  늘어놓더니  수연이  대답할  사이도  없이   김간호원이   휭-하니  나가 버렸다.

" 누워만  있으면  더  병되는데.  우리가  뭐  벼.병균인가? ... 수연아,  점심 먹을 때  깨울께  쉬어라.  하긴  너  아직  열이 있어서  푹 쉬어야지. "

" 언니,  나  부탁 하나만   들어줘."

" 응?  뭔데?"

" 내 수건갖다가   찬물에  짜서  이마에다  올려줄래?   집에서  열이 날때  쓰던  방법인데,  푹 잘 수 있어서  좋아.  열도 내리고.  아직  온 몸에  기운이 없네. 어지럽고,  으실으실  춥기도  하고... "

" 그래, 누워서  자.  해줄께."

유림이  찬 물수건을   수연의  이마에  올려주며  수연의  주위로  좀 더  단단히  이불을  덮어주자,  언제 일어났는가 싶게   수연은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느 새,  점심 시간이  되었는지  복도에서  "식사하세요."  소리가  울리고,  유림이  수연을  흔들어  깨웠다.  링겔은  다 맞았는지  주사 바늘이  없어지고,  주사바늘  자국만이  손 등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수연은  유림이  가져다 준   스프를  먹고,  조금  기운을  차려  앉아 있었다.   묽은 스프도  음식이라고  기운이  조금 생겼다.  아직도  누군가  몽둥이로  때린 것처럼  온 몸이  아프고,  속이  메슥거리고,  현기증이  나면서  기운이  없었지만... 스프와  약을  넘기지  않은 것을  보니  이제  조금씩  음식을  먹어도  될 듯 싶었다.  자신의  이마를  만져보니   열도  많이  내려간 것 같고...

  수연은  새로  들어왔다는  환자들을  바라보았다.   꽤나  입이  걸어보이는  인상의  새로 온  사람이  보였다.  20대 후반의  아가씨인지,  아줌마인지... 몸이  많이 나있는  사람이었다.

" 어,  벌써  다먹었어?  잠만  자더니.  난  선미야.  내가  나이가  더  많으니까  말 놓을께.  이쁘게  생겼네.  그런데  너무  말랐다.  잘 먹어야지   감기 같은 것도  안걸려.  "

  선미라는 사람이   밥을  게겔스럽게  먹으며,  친한척  반대편  침대에서  소리쳤다.

" 일어났네.  이제  좀  괜찮아?  난  조금  있다가  퇴원해.  에휴.  이 곳에서  쉬는 것도  좋지만,  하루 하루가  다  돈이라   부담되서...  난  나가니까  어서  몸 추스리고,  건강해져서  나가.  내  음식들도  많이 남았는데  다 주고  갈테니  잘 먹고... 아닌게  아니라  좀 쪄야지,  말랐어.  날씬한 것도  좋지만."

  간단한  인사만을  하고,  옥순아줌마가   퇴원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과자, 우유 등을  모두 수연에게  주고  떠나면서  수연을  잡고  이야기  했다.  마음의  응어리를   조금은  풀고  싶었나보다.    여자들은  수다만으로도  응어리들이  조금씩  작게  부서져  나간다고  한다.   남의  보증을  서줬는데  부도가   나서  아주머니가   뒤집어  쓰게 되어  갚을 길도  없고,  속도  막혀서  수면제를  구해  100 알이나  드셨는데,  남편이  대신  빚쟁이들에게  시달릴 것을  생각하니  더  가슴이  아프고  막혀서  죄스러워서라도  더 이상  누워 있을 수만  없다며   눈물을  두 눈 가득  담고   말하더니  퇴원했다.

  한국의  아줌마들은  강하다.  그런  상황에서  죽음까지  생각해놓고도  기왕, 살아난거  더  열심히  살아보겠다며   밝고  씩씩한  모습을  보이던  아줌마의  눈물에   수연도  눈물이  흘러  기분좋은  얼굴로   보내주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했지만,  자신의  힘든 일을  같이  울어주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  기운을  차릴 수 있다는 것을  수연은  아직 잘 몰랐다.

새 사람이  들어오자,   또  다른 사람이  나가고... 병동의  하루는  매일  이렇듯  시간이  흐르듯이  바뀌어가는 것 같았다.

 

  오후  3시,  수연이   점심 후  잠을 자고  잠시  일어나 있을  때,  수연의  담당의가  문가에  모습을  보이며   병실을  가로질러  수연에게  다가왔다.  안타까움과  걱정스러움을   담은  눈빛으로   담당의가   수연을  바라보았다.

" 이수연씨,  몸은  좀  어떠세요?  열이  내렸다는데...  오늘은  안색도  조금  좋아 보이네요."

그가  수연의  이마를   짚어볼 듯이  수연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다가,  자신의  행동에  당황했는지   주춤거리며   다시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 네.  조금 정신이  들어요.   그런데  아직은  누군가  건드리기만  해도  아프고,  오한이  났다,  열이 났다  그러네요.  토할 것 같은  기분도  조금  남아있고..."

" 열 때문에  그래요.  좀 더  푹 쉬시고,  내일쯤  상태봐서  이야기해 보려고  하는데... 괜찮겠어요? "

" 네. "

병아리가  어미닭을  찾듯이  수연은  그를  보자,  마음이  가라앉으며  편안해졌다.  그의  스치듯  하는  간단한  인사말  한 마디에도,  걱정스러움을  담은  그의  눈빛 하나에도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자신의  마음을  약해져  있는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간단한  안부만을  묻고  서두르는  기색으로  그가  돌아가고 나자,  김간호원이  들어와   팔에  주사를  놓은 후,  5분 뒤  다시  약을  주었다.  약 기운에  졸음이  스르르  쏟아졌다.  자꾸  토할 것 같아서라도  수연은  빨리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았다.

' 빨리  자고,  내일이  왔으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  그  앞에서는   왜 그리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것일까?  의사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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