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0년째....
모든 주부들은 다 똑같은 맘일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단 한번만이라도 차려주는 식사가 있다면 그것이 비록 밥한그릇에 간장 한종지라도 너무나 반가울 것이라는걸...
25살,,결혼을 앞두고 친정엄마가 아프기 시작했다.
수많은 병원과 검사..어떤걸 해도 원인이 나오질 않았다..
술취한 사람처럼 걸음걸이가 비틀거리고 머리가 아프다고 하셨다
결국 삼성의료원의 일주일간의 입원끝에 내려진 병명,,소뇌위측증
운동신경을 좌우하는 소뇌가 망가져가면서 온몸이 마비되는 증세다
당장은 걸을만 했지만 시간이 일년,이년 지나면서 엄마는 결국 누워서 생활하게 됬다..
대소변은 물론 식사도 혼자 못해서 떠 넘겨주어야 하고 지금은 누워서 대소변을 받아내며
호흡조차 불편해 기관지 삽관을 했고 코에 호스를 넣어 위까지 이어진 호스를 통해 음식물을 섭취한다.
한마디로 지난 십년간 엄만 살아도 산게 아니다.
아빠 역시 작년 암으로 이년간의 투병생활끝에 돌아가셨다..
외국에서 오래 있다온 오빠와 또 철딱서니 없는 올케,,(정말 자기밖에 모름)
6개월만에 태어난 울 조카를 키워내느라 비쩍 말라버린 내동생..
결혼 1년안에 우리 큰애가 태어나고 부터 내 친정살이는 그렇게 시작됬다.
아이를 업고 아침이면 엄마네로 출근을 한다
하루종일 엄마와 아기와 씨름하고 집안일을 하다보면 저녁이면 녹초가 되버린다.
집으로 돌아와도 밀려있는 집안일을 하고 나면 그야말로 몸이 천근만근이다.
넉넉한 친정형편에 파출부를 써도 그만이지만
환자가 있는 집안에 잘 오려하지도 않았고
또 아픈 엄마몸을 아무에게나 맡기고 싶지도 또한 엄마가 원하지도 않았다.
결혼을 해 남의집 며느리가 된 딸이지만 친정에 머무르는 시간이 더 많았고
딸이지만 엄연히 자식이기에 병든 엄마를 돌보는 일은 당연하다 생각해서
시집의 눈총이나 내 힘듬,,사생활 따위는 접어버렸다.
주말이면 시댁으로 건너가 하루를 자고 다시 한주가 시작된다.
주말에 친정에 갈수 없어서 토욜 오후까지 그 다음날 일욜 엄마와 아빠의 식사 준비를 끼니별로 쟁반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놓고 아빠에겐 엄마 화장실과 식사부탁만 하고 오면 내 일주일은 끝나는 것이다.
토욜 저녁에 시댁으로 건너가 시댁에서의 하룻밤과 담날 오전까지 보내고 다시
내 집으로 돌아와 주말동안 밀린 집안일을 시작하는게 지난 내 십년의 한결같은 생활이다.
아버지가 암선고를 받으시고 나서 쓰러져 운신이 어려워지고 나서는 아예 친정에서 살았다
다행히 동생의 아이가 어느정도 컸기 때문에 일박이일씩 교대로 지냈지만
나엮시 그동안 둘째를 낳았고 조금씩 미뤄둔 집안일은 몇년사이에 손댈수 없을만큼 지져분해지고
정리해야 할 살림이 산더미였다..
다행히 울 남편은 그런것들에 잘 불만을 나타내지 않는다.
친정에서 보내는 시간이 집에서 보낸 시간보다 훨씬 많은데도 울 신랑은 참으로 고맙게도
더 친정에 잘하라고 힘들어 하고 투덜거리는 나를 격려한다.
울 시어머니,,청상에 혼자 되셔서 아들 하나만 보고 사신 울 어머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어리광이시다.
더 자주 보고싶다고 전화않한다고,,애들 보고싶다고,,
볼멘 소리를 하시지만,,어쪄랴,,내 할수 있는 일은 결혼 십년까지 꼬박 주말이면 가서 자고 같이 식사하고 대소사에 힘들어 죽는 한이 있어도 참석하는 일뿐인걸....
얼마전,,울 엄마에게 전문 간병인을 붙였다..
큰 아이가 삼학년이 되면서 돌봐줘야 할 공부도 늘어났고
나도 솔직히 슬슬 꾀가 나기 시작해서 가족들과 의논해 간병인을 붙인것이다.
솔직히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맞다..
엄마가 저렇게 오래 누워있는동안
아빠 병수발을 병행하고 친정 살림과 내 살림을 꾸려가는 동안
난 너무도 지치고 지쳐서 황페해지고 짜증만 늘어나 못된 악만 남은 그런 여자가 되있었다.
아니 여자도 아닌 아줌마....
간병인을 붙이고 나니 몸은 좀 편해지고 내시간도 생겼지만
솔직히 맘까지 편한건 아니었다.
내가 돌봐온 엄마..내가 이렇게 아팠다면 울 엄마 끝까지 내 손을 놓지 않았을텐데..
난 그저 자식인지라..내 엄마 한테 난 부모가 아닌지라 엄마 손을 슬그머니 놓아버렸다..
그 십년동안,,내 남편 건강하고 사회에서 승승장구 하고..경제적으로도 풍요롭다..
울 아이들 내 손길이 구석구석 미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고 공부도 잘하고
무엇보다 예의바르고 어른을 어려워할줄 알고 노인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고 동정심도 많다..
얼마나 그런 모습들이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내가 내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투자한거에 비하면 지금의 내 가족들의 모습은 거의 횡재나 다름없다.
난 이것만으로도 배가 부르고 행복한데 또 배부른 일이 생겼다..
간병인으로 온 울 아줌마,,,
조선족 사람이다..첨엔 조선족 사람이라 꺼려했는데 추천한 사람이 너무 강력하게 추천해서 고용해보니 사람이 정 그 자체다..
사랑으로 넘쳐난다..항상 웃는 얼굴이다..
울 엄마 처음엔 내 힘들어 하는 모습에 마지못해 간병인을 허락했지만
낯설고 또 타인에게 당신의 몸을 맡긴다는게 굉장히 불안했었나보다..
아줌마가 오고 나서는 몇일 사이에 얼굴이 반쪽이 되있었는데
지금은 정서적으로도 안정되고 맘도 편한듯하다..
아줌마랑 엄마는 항상 스킨쉽을 나눈다..
아줌마가 일방적으로 하는 스킨쉽이고 움직일수 없는 엄마는 받는 스킨쉽이지만
그들 사이엔 벌써 뭔가가 끈끈하게 보이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 난 한시름을 놓았고 이 다정한 두사람때문에 또 배가 부르다..
배터지게 생긴일은
내가 친정에 갈때마다 울 아줌마 아주 정성스럽게 점심을 준비해준다..
친정에 와서 밥한끼도 안먹고 가냐면서..
울 엄마가 건강했으면 이러저러한 맛난 음식도 해주고 손주새끼들도 곰살맞게 이뻐할텐데
하면서 내 밥을 정말 정성스럽게 차려준다..
언젠가 내가 난 결혼해서 친정에 와서 밥한번 얻어먹은 적이 없다고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한적이 있는데 (물론 울 올케가 있지만 지금까지 단한번도 울엄마나 ,친정에 온 시누이들을 위해 밥한끼 차려줘본적이 없다)
그게 맘이 아팠단다..
오늘도 어김없이 친정에 들른 나는 정성스레 차려진 점심상을 받았다..
보기만 해도 아까워서 못넘기던 내가 지금은 잘도 받아먹는다.
오늘도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울 아줌마,,설거지 하는 나를 뒤에서 꼭 끌어 안으면서
'수아고모!!! 난 고모가 너무 좋아..이렇게 고생스런 일을 그동안 혼자 해낸거 보면 너무 대견하고 이뻐
나 중국에서 혼자와서 여기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수아고모가 와서 맨날 말동무 해주니까 내 친구같고 내가 너무 좋아' 하면서 말이다.
난 그순간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내 나이 서른다섯..아줌마 나이 쉬흔,,,혼자서 타지에서 고생했을 아줌마의 외로움과
지난 십년간 사생활 한번 없이 지냈던 내가 어딘지 모르게 같은 외로움을 겪었을것 같은 동질감..
그리고 그 한마디의 말에 지난 십년동안 힘들었던게 모두 위로가 되는것 같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누구를 위해 지난 십년을 한결같이 지낼수 있었는지..
내가 병석에 누워서 십년을 지냈다면 울 부모님은 그런 나를 위해 당신의 모든 삶을 포기 하고 서라도 날 지키려 했을것이라는걸...
난 지금까지 주위에서 효녀라는 온갖칭찬은 다 받았지만 그리고 난 할만큼 했다고 자부했지만
결코 그게 아니라는걸...
너무 당연한 일이라는걸...자식이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일이라는걸..그러니까 앞으로 더 혼자 남은 엄마한테 더 잘해야 한다는걸 결심한다....
그리고 친정밖에 모른다고 땍땍 거리시는 울 시어머니를 생각한다..
그분의 삶도 참 고단했을것이라고...청상에 혼자되 과부소리 들어가면서 키운 아들 하나 만 바라보는건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는걸,,,
울 남편외엔 손주도 필요없으시다는 분이지만 나와 울 아이들은 남편의 들러리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울 어머님꼐 맘을 드려야겠다는걸 다짐한다...
친구뻘도 안되고 고용주의 딸밖에 안되는 날위해 내일도 맛난 점심을 준비할
울 아줌마의 밥상이,,또 환하게 웃어주는 아줌마의 미소가 오늘도 내 맘을,,내 배를 터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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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다 쓰고 났는데 일본의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임신 6개월 둘째를 임신중인데
또 조산기가 있어서 입원을 해야 한단다..출산시까지..
그래서 애를 봐달란다..
내 동생또한 어디 치댈곳 하나 없다..시아버지가 대장암으로 투병중이라서 시댁은 어림도 없다.
큰애를 만6개월 900그램에 낳았는데 또 그럴수 있다는 통고는 아마도 청천벽력이었을것이다.
모두 살수 없을것이라 했다..자식을 멀리 일본서 그것도 간지 7개월만에 다시 한국으로 혼자만 보내야 한다는게 엄마로서 가슴이 미어졌을것이다..그래서 내가 이제야 겨우 한숨을 돌리고 있다는걸 알면서도 어렵게 어렵게 아이를 부탁했을 내동생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편하고 싶은 내 맘을 싸늘하게 가라앉힌다...그래도 언니라고 기대는게 안쓰럽고 불쌍해서........
6살이된 육개월만에 태어난 내 조카는 말 그대로 극성쟁이다..
얼마나 극성스러원지 딸만 키운 나로서는 감당이 안된다.
더구나 아직도 몸이 병약해서 여섯살에 14킬로그램뿐이 안나간다..
난 암만해도 일복이 터지나 보다..
그래도 울 엄마가 건강했음 당연히 봐줬을텐데 하는 맘이 순간 들었다.
간만에 생긴 시간의 여유를 놓치고 싶지 않았지만..별수없이 그러마 하고 했다..
주말에 제부가 일본서 데리고 온단다..
그래서 오늘 저녁도 난 또다시 생긴 일복으로 배가 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