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3일 개천절.
..... 나이스.
======================== 오빠 달려 ~ ============================
늦은 저녁 무렵.
경찰서 한 쪽 벽에 있는 접이식 의자에
나란히 붙어 앉은 연극부 부원들.
김씨, 허씨, 김군이 병원으로 실려간 상황에서
우리의 결백을 증명해줄 사람은 우리 자신밖에 없었고
그 말을 믿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현재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경찰 - 야 인마. 손 똑바로 안 들어?
참고로
경찰서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아, 잠깐만요~. 좀 놔 봐요~!!=
라고 저항하던 박군 일당과 연출은
한바탕 소란 끝에 제압당하고
현재 줄 맨 끝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머리위로 들고 있다.
자고로 이런 일이 있을 땐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과
자신의 증언이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음을 명심하고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를 적절히 활용하며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거부하면서
얌전히 있는 게 상책이다.
민아 - ........ 우리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기억
- 글쎄... 우선 현행범체포라고 해도
범행사실이 확정된 상태가 아니니까
피해자 진술을 통해 사건 전황을 확보한 뒤
주변 증거자료를 조사하게 될 거고
범행 여부가 입증되면 조서 작성으로 넘어가겠지.
아무튼, 별 일 없을 거야.
내 대답에
=응? 방금 뭐가 지나갔냐?=
라는 표정을 짓는 주변 사람들.
롹커개 3년이면 7옥타브라는 말처럼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뒤를 따라
경찰서를 내 집처럼 드나들던 나로선
이 상황이 그리 낯설지가 않았다.
..... 혹시나 이 말을 오해할까봐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경찰관이시다.
경찰2 - 뭘 또 쑤군닥쑤군닥 거려? 조용히 안 해?
뭐, 물론 그렇다고 해도
내가 직접 이런 대접을 받는다는 건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지만...
119에 신변이 위급하다는 전화가 걸려오고
연습실 안에서 집단 폭행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신고 전화가 3통 이어지면서
긴급 출동한 경찰관과 구조대에 의해
전신 타박상을 당한 피해자 3명이 발견되고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흉기까지 확보된 상황에서
=우린 죄 없어요.= 라고 주장하는 건
확실히 신빙성 없는 소리다.
..... 우리 정말 큰일 나는 거 아냐?
김씨나 허씨가 다시 미지의 세계에서 헤매버리거나
김군이 설움을 주체 못하고 과장10%의 하소연을 해버리면
정말 X되는 수가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면서
상황이 생각보다 더 꼬일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아닌데.... 쯧쯧.
영 떨떠름한 기분에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몸을 기대는 순간
미미한 촉감에 겨드랑이 사이를 내려다보자
내 팔꿈치 뒤쪽 소매를 쥐고 있는 민아의 손이 보였다.
..... 불안한 걸까.
그 위로 내 손을 덮어주거나 하기엔
위치의 압박이 너무 거셌기에
난 그저 말없이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 하필 그런 델 잡을 건 또 뭔가?
아무튼 지금 그녀가 나에게 의지하고 있는 이상
난 최대한 침착하고 냉철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침착하고, 냉철하고, 이성적이면서, 의지할 수 있는....
그로부터 2시간 뒤.
기다리는 피해자 증언은 나올 기미도 보이지 않고...
사람들은 어느덧 자세가 풀어지기 시작해
다리를 꼬는 건 기본사양에
졸거나, 일어서서 돌아다니는 옵션까지 사용하게 됐다.
박군 - 당신들 이래도 되는 거야? 응? 인권 침해라고!!
어깨 - 더 이상 못 해! 안 해! 이건 위헌이야!!
그리고 아무 조치도 없이
=무릎 꿇고 손들어= 자세로
2시간 동안 방치된 박군 일당 사이엔 거센 저항이 일어났다.
이젠 복싱의 파이트 포즈처럼 변해버린 폼으로
부들부들 떨면서 바락바락 악을 쓰는 그들.
덩치 - 아악!! 쥐, 쥐, 쥐~!!!!
그 때, 박군 옆에 앉아있던 덩치가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며 옆으로 쓰러갔다.
박군
- 덩치야!! 이런 잔인한!!
사람이 이 지경이 될 때 까지!!
박군은 다리에 쥐가 났다고 소리치는 덩치를 구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결국 사정은 거기서 거기.
박군 - 아악!! 나도 쥐!!
어깨 - 안 돼, 박군 너마저!!
연출 - 움직이지 마!! 지금 움직이면 너도 쓰러져!
그렇게 떠들썩한 소동을 벌이고야
다른 사람들과 나란히 의자에 앉게 된 박군 일당.
그들은 서로 팔과 다리를 주물러 가며 울분을 삭혔다.
민아 - 하아..... 우리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는 거야?
기억 - 글쎄. 피곤하면 잠깐 눈이라도 붙여.
민아 - 그치만....
긴장도 한 때라고
그녀도 이젠 지치고 지루한 기색이 역력해 보인다.
다시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여기저기서 작은 아우성이 일어났다.
회계 - 하아.... 안군만 있었어도 금방 해결됐을 텐데.
그중 근처에 앉아있던 회계의
다소 뜬금없는 푸념이 귀에 들어왔다.
기억 - 안선배가 있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회계
- 응? 아... 안군네 아버지가...
소이 빽 좀 된다는 사람인가 봐.
지난번에 좀 사소한 일이 있어서
같이 끌려왔었는데 전화 한 통으로 끝나더라고.
회계의 말에 귀가 솔깃한 몇몇 부원들이
지금 전화라도 해보는 게 어떻겠냐며 수군거렸다.
왠지 민아의 반응이 신경 쓰였다.
민아도 안군에게 도움을 청하길 바라고 있을까?
민아 - .........
내 걱정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눈을 설핏 감은 채
진폭 0.07m, 주기 4sec 로 진동하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옆에 나도 있고 하니 좀 기대면 좋을 텐데
왜 이렇게 똑바로 조는 걸까?
잠시 예전에 전철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고 있을 때
우리를 맡고 있는 듯한 경장과 순경의 대화가 들렸다.
경장 - 뭐? 연극 연습 중?
순경 - 예, 부상도 단지 사고로 생긴 것뿐이라고...
경장 - 허허, 내 참. 게다가 지금 이리로 오고 있다고?
순경 - 예. 지금 잡아놓은 녀석들은 모두 풀어주라고...
대화 내용으로 미루어 보면
경찰들은 김씨 일행에게 상황 설명을 다 들은 것 같다.
....다행이 정상적인 상태에서.
경장 - 야, 야, 야. 안 일어나?
예상하던 답변을 듣지 못해 화가 났는지
서류철을 세로로 세워 졸고 있는 부원들의 정수리께를
탁탁 두드리며 순회를 도는 경장.
그 모습에 난 서둘러 민아를 깨웠고
그녀는 몸을 한 번 흠칫 떨며 눈을 떴다.
하지만 그 사이 너무 가까이 다가와 버린 그.
정의의 서류철은 여지없이 민아의 머리위로 떨어졌다.
=탁.=
기억 - ........
경장 - ........
민아가 깜짝 놀라 눈을 질끈 감는 사이
무의식적으로 튀어 올라간 내 손은
서류철과 민아의 머리 사이를 막았고
황당함과 분노가 섞여있는 그의 눈빛을 마주한 난
잠시 망설이다 최대한 정중한 말투로 말했다.
기억 - 저.... 이미 일어났는데 한 번 봐 주시죠.
경장 - 허.... 참나 원....
그는 기가 차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가
서류철 옆면으로 내 머리를 내려쳤다.
이번 것 까지 막았다간 진압봉으로 구두룡섬 맞는 수가 있었기에
난 별 저항 없이 그의 공격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그는 자리로 돌아갔고, 다시 평화는 찾아왔다.
민아 - .....왜, 왜 그랬어~.
내가 안도의 숨을 내쉬는 사이
놀란 토끼 눈 파워 업 버전이 된 그녀가
내 소매를 잡아당기며 책망하듯 물었다.
기억 - ....그러게 말이야.
난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기에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였다.
뭐, 그냥저냥 잘 넘어갔으니까 오케이 아닌가?
김씨 - 여~ 진짜 다 잡혀 있었네?
그 때 문을 열고 들어서는 김씨 일행.
골머리가 아프다는 듯한 표정의 경장 한 명이
그들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그는 경찰서에 있던 담당 경장에게
바톤을 넘기는 듯한 제스처를 취해 보이곤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뒤 다른 곳으로 들어갔다.
김씨 브라더스와 김군을 마주하고 앉은 담당 경장은
그들을 한 번 쓱 둘러본 뒤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에 들어갔다.
경장
- ..... 자, 너희들의 신원은 우리가 보호해 줄 테니까
안심하고 솔직히 말하면 돼.
왜 저 녀석들한테 맞은 거니.
금품갈취? 아니면 단순 폭력?
허씨 - 저요?
경장 - 그래, 너부터.
허씨 - 전 쟤들한테 맞은 적 없는데요.
경장
- 후우...... 그럼 왜 거기 쓰러져 있었어?
누구한테 맞아도 맞았으니까 다친 거 아냐?
허씨 - 맞기는 얘한테 맞은 건데요.
아주 태연한 표정으로 옆에 앉은 김씨를 가리키는 허씨.
그의 손가락을 따라 김씨를 쳐다본 경장의 표정에
스트레스 게이지 증가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경장 - ...... 그럼 넌 누구한테 맞았어?
김씨 - 얘한테요.
다시 허씨 쪽으로 돌아온 화살표.
이내 사건의 전말은 미궁에 빠졌다.
경장 - .... 둘이 치고 받고 싸웠다 이거야?
김씨 - 말하자면... 그렇죠.
경장 - 왜?
김씨 - 이 녀석이 마리를 죽였거든요.
경장 - 뭐? 마리는 또 누구야?
김씨 - .... 그러고 보니.. 누구였더라?
허씨 - 그러게.
김씨와 허씨의 개 봉창 뜯어먹는 답변에
심각한 회의감마저 느끼게 된 경장은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혹시 이 녀석들... 정신이상은 아닐까?
그래서 횡설수설하는 건가?
혹시 지나친 폭행으로 인한 후유증?
역시 약물검사를 먼저 했어야 하나?
그가 참 많은 가설을 세우고 지우는 동안에도
김씨와 허씨는 파트라슈 시절까지 되돌아가
마리의 정체에 대해 해명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결국 그들에게서 더이상 희망적인 대답을 들을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화살표를 김군에게 돌렸다.
경장
- 맞아, 너, 제일 불쌍하게 생긴 놈.
넌 애들한테 맞고 있다가 발견됐으니까
다른 놈들이랑 치고받았단 소리는 못 하겠지.
네가 다 말해봐라.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고, 왜 그런 일들이 있었는지.
김군 - 에? 저, 저요?
뭔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가 정신을 차린 듯
김군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는지 주변을 쓱 둘러보는 김군.
그의 시선이 우리들을 지나
박군 일당에게 머무르는 순간
묘한 긴장감이 그들 사이에 피어올랐다.
김군==호오라....이런 시츄에이션이였어?
박군==이런 닝기리....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