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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32화> 출소

바다의기억 |2005.10.06 14:01
조회 13,231 |추천 0

중간고사 기간입니다.

 

모두들 좋은 결과 있으시길....

 

 

============================= 과감하게 찍어라! =========================

 

 

김군의 표정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애매한 감정들이 녹아있었다.



사랑하던 애인이 알고 보니 친오빠에


복수의 칼을 갈던 사부님의 원수인데


돈도 많고 잘 생겨서 포기하기 힘들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하는 표정이랄까.



지금까지 당한 게 억울하긴 하고


복수를 하기엔 지금이 절호의 기회인 듯한데


그 데미지가 초필살기급이라 함부로 쓸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이것을 빌미로 협상을 하기엔


상황이 여의치가 않고...



시커먼 속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김군의 표정변화에


박군 일당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지금 심판의 망치를 쥐고 있는 건 김군이었다.



=박군, 어깨. 덩치 사형. 땅땅땅.=



이런 것 까진 안 되겠지만....



경장

- 망설이지 말고 빨리 대답해봐!


상황을 알아야 조치를 취할 거 아냐.


집단 따돌림? 공갈 협박? 금품갈취?



집단 따돌림...


그런가? 난 따돌림 당하고 있었던 걸까?


하긴.. 내가 그렇게 두들겨 맞는 걸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지.


연출 당신은 맨날 구박만 하고...


어디서 깡패같은 녀석들을 불러다가


애들 훈련까지 시켜가면서 날 두들겨 팼어.



공갈협박...


......기억이 너!!


내가 너 때문에 불면증에 걸릴 지경이야!


내가 왜 밤마다 빚 독촉에 시달려야해?


그게 고작 얼마나 된다고?


잠깐, 내가 왜 돈을 꿨다고 생각하고 있지?



금품갈취?


이건 별 상관없는 것 같은데....아니지, 회계!!


사람이 쪼잔하게 한 번 안 받았으면 안 받는 거지


뻑하면 밀린 회비 내놓으라고..!!



김군의 시선이 사람들을 따라 이동하는 동안


우린 함께 마른 침을 삼켜야 했다.


여차하면 다같이 싸잡아서


파멸의 구렁이로 물고 들어갈 판국.



그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모두는 생각했다.


그게 무엇보다 무서운 점이었다.



=부원 여러분, 이건 실제상황입니다.



결국 비상계엄령이 내려진 가운데


부디 아무 일도 없기를,


만약 있더라도 자신은 무사하길 바라는


부원들의 간절한 염원이 경찰서를 메웠다.



‘김군, 기억해봐. 내가 지난번에 음료수 사줬잖아.’


‘김군, 나한테 꿔간 2천원 안 갚아도 돼.’


‘김군, 나에겐 홀어머니와 토끼 같은 자식들이 있어!’


‘김군!! 사랑해! 김군! 김구운~!!’



모두가 애절한 표정으로 김군을 바라보는 가운데


박군 일당 사이엔 비장한 각오가 흐르고 있었다.



덩치==우린....가더라도 함께 가는 거지?


어깨==걱정마. 신이 있다면...우릴 이렇게 내버려두진 않을 거야.


박군==갈 땐 가더라도, 김군, 너도 몸성히는 못 나간다.



뭐, 나도 그리 안전한 입장에 있는 건 아니었지만


항상 집요하게 협박하고 독촉을 해댄 것 외에


내가 무슨 해코지를 한 적은 없잖은가?




.....생각해보니 사실 가장 위험한 건 나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참을 고심하던 김군은


=그래, 인생 별 거 있냐.= 라고 한숨을 휘이 내쉰 뒤


차근차근 말을 이어나갔다.



김군

- 병원에서도 말씀드렸던 일이지만


저흰 연극 연습 중이었던 게 맞습니다.


단지 그 과정이 좀 과격해지면서 사고도 좀 있었고


덕분에 이런 사태까지 오긴 왔습니다만....



..................................




박군 - 이야~ 선배! 멋졌어!!


어깨 - 난 진짜 선배를 믿고 있었다니까요!


덩치

- 병원에서도 이미 말했던 거라잖아~.


응? 이미 우리가 걱정할 건 하나도 없었다고~.



뭐... 김군이 병원에서 무슨 말을 했었건


그새 마음이 변해서 =사실은.....= 으로 시작하는


눈물 어린 인생 드라마를 써버렸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됐겠지만....


잘 해결 됐으니 그걸로 된 거 아니겠는가?



김군

- 쇄키들이 형을 어떻게 보고...


형은 원래 존내 맞아도 그런 걸로 안 삐져.


10초 줄 테니까 믿어라. 8초, 9초 그런 거 필요 없다.


형이 다 애정이 있으니까


너희랑 연습하고 그런 거지,


내가 왜 너희 콩밥 먹일 말을 하겠냐?



어깨에 힘이 얼마나 빡세게 들어갔는지


표정과 말투까지 싱하형화 되어가는 김군.


그의 얼굴엔 이 한방으로 그간의 이미지를 탈피해 보겠다는


야무진 꿈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 이거 적당히 브레이크를 걸어줘야 겠는 걸.



난 김군의 뒤에서 조용히 접근해


그의 어깨에 손을 두르며


낮고 서늘한 어조로 읊조리듯 말했다.



기억

-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돈은 언제 갚을 거야?


오늘까지 밀린 이자만 얼만 줄 알아?



김군 - 돈은 꼭 갚겠습니다! 10...10초만 시간을 주시면..!!



거의 반사적으로 내게서 떨어진 김군은


벽을 등진 채 흠칫거리며


도망칠 길을 찾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 드디어 완벽하게 조건반사가 된 건가.



곧 주변에서 터진 웃음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김군은


부끄러움 반, 분노 반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김군 - 기억이~ 내가 너만은 집어넣었어야 하는 건데~!!


연출 - 이미 나왔는데 한 번 봐주시죠.


김군 - 에? 형 왜 저한테 존대말을 쓰세요?


연출 - 아, 넌 이거 모르지? 그런 게 있다. 풋....



김군 옆에 서있던 연출이


경찰서에서 내가 했던 말을 패러디하자


피해자(추정) 일행을 제외한 사람들은


또다시 왁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서로 2탄, 3탄의 응용멘트를 늘어놓으며


당시 상황까지 재현해 보이는 부원들.


난 머쓱한 기분에 두어 걸음 앞서 걸어가며


몰래 웃음 지었다.



=그러게 말이야.=



라고 썰렁하게 넘겨버리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제법 멋있게 보였을 것 같았다.


그 정도면.....믿음직스러웠겠지?



연출

- 아 진짜! 이거 이대로 집에 못 가겠는데?


우리 출소 기념으로 두부김치에 소주 한 잔 하자!!



김군 - 억... 저 지금 돈 없는데요.


연출 - 짜식, 형만 믿어 인마! 그렇지 회계?


회계 - 네가 쏘게?


연출 - ... 회비 좀 안 남았나?


회계 - 얼쑤.



회계의 냉담한 반응에 금방 기가 죽는 연출.


연극 공연을 앞두고 있는 지금


운영비가 모자란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자신의 한 마디에 이미 한창 들떠버린 부원들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고심하는 연출의 어깨를


회계가 툭툭 두드렸다.



회계 - 반띵,


연출 - ..... 콜!



그리고 이어진 술자리.


사람들은 너나없이 경찰서에서 느낀 감정들을 털어놓으며


정겨운 잔을 나누었다.


그 중 가장 눈에 띈 건


아직도 그 순간의 감동이 식지 않은 듯


김군을 칭찬할만한 구석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맞은편의 박군 일당.



박군

- 생각해보면.... 만날 빌붙어 다니긴 해도


많이 먹지는 안잖아?



어깨 - 맞아, 게다가 술자리에서 흘린 물건 있으면 다 주워오고...



........ 그렇게 칭찬할 게 없었나.



이후 별 시시콜콜한 점까지 다 들먹여봤지만


그조차 금방 고갈되어버리고...


박군 일당 사이엔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대체 우리가 이게 뭐하는 짓이냐... 될 짓을 해야지.=


라고 말하는 듯한 씁쓰름한 술이 한잔씩 돈 뒤


조심스럽게 재개되는 그들만의 대화 .



박군 - 야...우리 앞으로 머리는 밟지 말자.


어깨 - 그래, 어쩔 수 없는 때만 아니면 머리는 놔두자.


덩치

- 아...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난 왠지 때리다보면 이성을 잃을 것 같아서...



어깨 - 솔직히 말하면 나도 자신 없긴 하다.



..... 김군.


앞으로 맞는 게 조금 편해질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술자리가 무르익어 가면서


술이 센 편이 못 되었던 난


눈이 침침해오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주화입마의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체질적인 영향인지


안색은 점점 밝고 화사해져만 갔고


표정이나 행동에도 별 변화가 없었기에


사람들은 계속 술을 권했다.



연출 - 어유~ 우리 이쁜 업자님도 한 잔 받으셔야지.


기억 - 아.... 저 취할 것 같습니다만.


연출

- 멀쩡한데 뭘 벌써 엄살이야~.


자~자. 받으~시~오~. 졸졸졸졸졸졸...



마지못해 내민 잔에 술을 따라주던 연출은


그 상태 그대로 사고회로가 멈춰버린 듯


술잔이 가득 차서 넘칠 때 까지 ‘졸졸졸’ 만을 반복했다.



기억 - ....넘치고 있습니다만.



연출

- 어츠츠, 내 정신 좀 봐. 이 피 같은 술을...


이거 아까워서 어떡하나.


휴지에 적셔서 짜 마셔야지... 휴지가...어딨나?



기억 - .......



..... 미처 못 보고 있었지만


연출과 회계가 앉은 자리 밑엔


그 새 소주 10병 이상이 깔려 있었다.



잠시 후,


더 이상 마셨다간 정말 쓰러질것 같다는 생각이 든 난


잠시 바람을 쐬기 위해 가게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바람이 화끈거리는 뺨을 스치자


따스하던 X미호빵이 몹시도 그리워지면서


조금은 머리 속이 개운해 졌다..



그렇게 건물 밖 입구에 있는 계단에 앉아


한 숨 돌리고 있는 사이


나를 따라 나온듯한 민아가 옆에 앉았다.



민아 - ...... 많이 마셨어?


기억 - 아...뭐 조금.



가늘게 뜬 눈 사이로 몽롱해 보이는 눈빛이


나보다 더 위험해 보였지만


은근히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그녀.



그녀는 평소보다 훨씬 눈을 자주 깜빡거리며


졸린 듯 눈을 부비곤 했다.



그렇게 잠시 동안 아무 말 없이 나란히 앉아


바람을 쐬고 있던 중


그녀가 팔을 조금 비비꼬며 어깨를 기대왔다.



민아 - 아까... 고마웠셔~..


기억 - 아니...뭐....뭐 그런 걸 가지고.....



역시나 좀 취한 듯


발음부터 나긋나긋하게 늘어지는 그녀의 목소리.


붉게 상기된 뺨의 열기가


옷 위에서도 전해지는 듯 했다.


알 수 없는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전에 연습실에서 느꼈던 그 감각들이


다시 살아날 것 같았다.



침착해라...침착해라 기억아. 또 기절하지 말고....



민아 - 기억아.


기억 - ....응?


민아 - 기억아아~~.


기억 - 응?


민아 - ....기억아~아아~.



아무래도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 같았기에


내 발 사이만 내려다보고 있던 난


거듭되는 그녀의 부름에 반쯤 고개를 돌려


그녀의 무릎 언저리를 보았다.



설마 기어가라는 소리는 아니었겠지.



민아 - ......



그때, 옆에서 그녀의 머리가 불쑥 다가오면서


사붓하게 스치는 머리카락 촉감 사이로


촉촉하고 야릇한 무언가가 뺨 위에 닿았다.


그리고 그녀는 도망치듯 가게 안으로 사라졌다.



기억 - ........



지금.....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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