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 기간입니다.
모두들 좋은 결과 있으시길....
============================= 과감하게 찍어라! =========================
애매한 감정들이 녹아있었다.
사랑하던 애인이 알고 보니 친오빠에
복수의 칼을 갈던 사부님의 원수인데
돈도 많고 잘 생겨서 포기하기 힘들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하는 표정이랄까.
지금까지 당한 게 억울하긴 하고
복수를 하기엔 지금이 절호의 기회인 듯한데
그 데미지가 초필살기급이라 함부로 쓸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이것을 빌미로 협상을 하기엔
상황이 여의치가 않고...
시커먼 속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김군의 표정변화에
박군 일당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지금 심판의 망치를 쥐고 있는 건 김군이었다.
=박군, 어깨. 덩치 사형. 땅땅땅.=
이런 것 까진 안 되겠지만....
경장
- 망설이지 말고 빨리 대답해봐!
상황을 알아야 조치를 취할 거 아냐.
집단 따돌림? 공갈 협박? 금품갈취?
집단 따돌림...
그런가? 난 따돌림 당하고 있었던 걸까?
하긴.. 내가 그렇게 두들겨 맞는 걸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지.
연출 당신은 맨날 구박만 하고...
어디서 깡패같은 녀석들을 불러다가
애들 훈련까지 시켜가면서 날 두들겨 팼어.
공갈협박...
......기억이 너!!
내가 너 때문에 불면증에 걸릴 지경이야!
내가 왜 밤마다 빚 독촉에 시달려야해?
그게 고작 얼마나 된다고?
잠깐, 내가 왜 돈을 꿨다고 생각하고 있지?
금품갈취?
이건 별 상관없는 것 같은데....아니지, 회계!!
사람이 쪼잔하게 한 번 안 받았으면 안 받는 거지
뻑하면 밀린 회비 내놓으라고..!!
김군의 시선이 사람들을 따라 이동하는 동안
우린 함께 마른 침을 삼켜야 했다.
여차하면 다같이 싸잡아서
파멸의 구렁이로 물고 들어갈 판국.
그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모두는 생각했다.
그게 무엇보다 무서운 점이었다.
=부원 여러분, 이건 실제상황입니다.
결국 비상계엄령이 내려진 가운데
부디 아무 일도 없기를,
만약 있더라도 자신은 무사하길 바라는
부원들의 간절한 염원이 경찰서를 메웠다.
‘김군, 기억해봐. 내가 지난번에 음료수 사줬잖아.’
‘김군, 나한테 꿔간 2천원 안 갚아도 돼.’
‘김군, 나에겐 홀어머니와 토끼 같은 자식들이 있어!’
‘김군!! 사랑해! 김군! 김구운~!!’
모두가 애절한 표정으로 김군을 바라보는 가운데
박군 일당 사이엔 비장한 각오가 흐르고 있었다.
덩치==우린....가더라도 함께 가는 거지?
어깨==걱정마. 신이 있다면...우릴 이렇게 내버려두진 않을 거야.
박군==갈 땐 가더라도, 김군, 너도 몸성히는 못 나간다.
뭐, 나도 그리 안전한 입장에 있는 건 아니었지만
항상 집요하게 협박하고 독촉을 해댄 것 외에
내가 무슨 해코지를 한 적은 없잖은가?
.....생각해보니 사실 가장 위험한 건 나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참을 고심하던 김군은
=그래, 인생 별 거 있냐.= 라고 한숨을 휘이 내쉰 뒤
차근차근 말을 이어나갔다.
김군
- 병원에서도 말씀드렸던 일이지만
저흰 연극 연습 중이었던 게 맞습니다.
단지 그 과정이 좀 과격해지면서 사고도 좀 있었고
덕분에 이런 사태까지 오긴 왔습니다만....
..................................
박군 - 이야~ 선배! 멋졌어!!
어깨 - 난 진짜 선배를 믿고 있었다니까요!
덩치
- 병원에서도 이미 말했던 거라잖아~.
응? 이미 우리가 걱정할 건 하나도 없었다고~.
뭐... 김군이 병원에서 무슨 말을 했었건
그새 마음이 변해서 =사실은.....= 으로 시작하는
눈물 어린 인생 드라마를 써버렸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됐겠지만....
잘 해결 됐으니 그걸로 된 거 아니겠는가?
김군
- 쇄키들이 형을 어떻게 보고...
형은 원래 존내 맞아도 그런 걸로 안 삐져.
10초 줄 테니까 믿어라. 8초, 9초 그런 거 필요 없다.
형이 다 애정이 있으니까
너희랑 연습하고 그런 거지,
내가 왜 너희 콩밥 먹일 말을 하겠냐?
어깨에 힘이 얼마나 빡세게 들어갔는지
표정과 말투까지 싱하형화 되어가는 김군.
그의 얼굴엔 이 한방으로 그간의 이미지를 탈피해 보겠다는
야무진 꿈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 이거 적당히 브레이크를 걸어줘야 겠는 걸.
난 김군의 뒤에서 조용히 접근해
그의 어깨에 손을 두르며
낮고 서늘한 어조로 읊조리듯 말했다.
기억
-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돈은 언제 갚을 거야?
오늘까지 밀린 이자만 얼만 줄 알아?
김군 - 돈은 꼭 갚겠습니다! 10...10초만 시간을 주시면..!!
거의 반사적으로 내게서 떨어진 김군은
벽을 등진 채 흠칫거리며
도망칠 길을 찾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 드디어 완벽하게 조건반사가 된 건가.
곧 주변에서 터진 웃음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김군은
부끄러움 반, 분노 반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김군 - 기억이~ 내가 너만은 집어넣었어야 하는 건데~!!
연출 - 이미 나왔는데 한 번 봐주시죠.
김군 - 에? 형 왜 저한테 존대말을 쓰세요?
연출 - 아, 넌 이거 모르지? 그런 게 있다. 풋....
김군 옆에 서있던 연출이
경찰서에서 내가 했던 말을 패러디하자
피해자(추정) 일행을 제외한 사람들은
또다시 왁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서로 2탄, 3탄의 응용멘트를 늘어놓으며
당시 상황까지 재현해 보이는 부원들.
난 머쓱한 기분에 두어 걸음 앞서 걸어가며
몰래 웃음 지었다.
=그러게 말이야.=
라고 썰렁하게 넘겨버리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제법 멋있게 보였을 것 같았다.
그 정도면.....믿음직스러웠겠지?
연출
- 아 진짜! 이거 이대로 집에 못 가겠는데?
우리 출소 기념으로 두부김치에 소주 한 잔 하자!!
김군 - 억... 저 지금 돈 없는데요.
연출 - 짜식, 형만 믿어 인마! 그렇지 회계?
회계 - 네가 쏘게?
연출 - ... 회비 좀 안 남았나?
회계 - 얼쑤.
회계의 냉담한 반응에 금방 기가 죽는 연출.
연극 공연을 앞두고 있는 지금
운영비가 모자란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자신의 한 마디에 이미 한창 들떠버린 부원들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고심하는 연출의 어깨를
회계가 툭툭 두드렸다.
회계 - 반띵,
연출 - ..... 콜!
그리고 이어진 술자리.
사람들은 너나없이 경찰서에서 느낀 감정들을 털어놓으며
정겨운 잔을 나누었다.
그 중 가장 눈에 띈 건
아직도 그 순간의 감동이 식지 않은 듯
김군을 칭찬할만한 구석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맞은편의 박군 일당.
박군
- 생각해보면.... 만날 빌붙어 다니긴 해도
많이 먹지는 안잖아?
어깨 - 맞아, 게다가 술자리에서 흘린 물건 있으면 다 주워오고...
........ 그렇게 칭찬할 게 없었나.
이후 별 시시콜콜한 점까지 다 들먹여봤지만
그조차 금방 고갈되어버리고...
박군 일당 사이엔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대체 우리가 이게 뭐하는 짓이냐... 될 짓을 해야지.=
라고 말하는 듯한 씁쓰름한 술이 한잔씩 돈 뒤
조심스럽게 재개되는 그들만의 대화 .
박군 - 야...우리 앞으로 머리는 밟지 말자.
어깨 - 그래, 어쩔 수 없는 때만 아니면 머리는 놔두자.
덩치
- 아...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난 왠지 때리다보면 이성을 잃을 것 같아서...
어깨 - 솔직히 말하면 나도 자신 없긴 하다.
..... 김군.
앞으로 맞는 게 조금 편해질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술자리가 무르익어 가면서
술이 센 편이 못 되었던 난
눈이 침침해오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주화입마의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체질적인 영향인지
안색은 점점 밝고 화사해져만 갔고
표정이나 행동에도 별 변화가 없었기에
사람들은 계속 술을 권했다.
연출 - 어유~ 우리 이쁜 업자님도 한 잔 받으셔야지.
기억 - 아.... 저 취할 것 같습니다만.
연출
- 멀쩡한데 뭘 벌써 엄살이야~.
자~자. 받으~시~오~. 졸졸졸졸졸졸...
마지못해 내민 잔에 술을 따라주던 연출은
그 상태 그대로 사고회로가 멈춰버린 듯
술잔이 가득 차서 넘칠 때 까지 ‘졸졸졸’ 만을 반복했다.
기억 - ....넘치고 있습니다만.
연출
- 어츠츠, 내 정신 좀 봐. 이 피 같은 술을...
이거 아까워서 어떡하나.
휴지에 적셔서 짜 마셔야지... 휴지가...어딨나?
기억 - .......
..... 미처 못 보고 있었지만
연출과 회계가 앉은 자리 밑엔
그 새 소주 10병 이상이 깔려 있었다.
잠시 후,
더 이상 마셨다간 정말 쓰러질것 같다는 생각이 든 난
잠시 바람을 쐬기 위해 가게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바람이 화끈거리는 뺨을 스치자
따스하던 X미호빵이 몹시도 그리워지면서
조금은 머리 속이 개운해 졌다..
그렇게 건물 밖 입구에 있는 계단에 앉아
한 숨 돌리고 있는 사이
나를 따라 나온듯한 민아가 옆에 앉았다.
민아 - ...... 많이 마셨어?
기억 - 아...뭐 조금.
가늘게 뜬 눈 사이로 몽롱해 보이는 눈빛이
나보다 더 위험해 보였지만
은근히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그녀.
그녀는 평소보다 훨씬 눈을 자주 깜빡거리며
졸린 듯 눈을 부비곤 했다.
그렇게 잠시 동안 아무 말 없이 나란히 앉아
바람을 쐬고 있던 중
그녀가 팔을 조금 비비꼬며 어깨를 기대왔다.
민아 - 아까... 고마웠셔~..
기억 - 아니...뭐....뭐 그런 걸 가지고.....
역시나 좀 취한 듯
발음부터 나긋나긋하게 늘어지는 그녀의 목소리.
붉게 상기된 뺨의 열기가
옷 위에서도 전해지는 듯 했다.
알 수 없는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전에 연습실에서 느꼈던 그 감각들이
다시 살아날 것 같았다.
침착해라...침착해라 기억아. 또 기절하지 말고....
민아 - 기억아.
기억 - ....응?
민아 - 기억아아~~.
기억 - 응?
민아 - ....기억아~아아~.
아무래도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 같았기에
내 발 사이만 내려다보고 있던 난
거듭되는 그녀의 부름에 반쯤 고개를 돌려
그녀의 무릎 언저리를 보았다.
설마 기어가라는 소리는 아니었겠지.
민아 - ......
그때, 옆에서 그녀의 머리가 불쑥 다가오면서
사붓하게 스치는 머리카락 촉감 사이로
촉촉하고 야릇한 무언가가 뺨 위에 닿았다.
그리고 그녀는 도망치듯 가게 안으로 사라졌다.
기억 - ........
지금..... 그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