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메리칸사이코
데니스는 빨갛게 빛나는 그의 핸드폰을 향해 걸어갔다.
걸어가서 핸드폰을 잡자 기분이 묘했다. 꼭 그 때의 그 기분이었다. 정신적 정열을 느끼기 위해 카자흐스탄에서 도박하고 다키히스탄의 외인부대에서 용병을 하던 20대 중반 시절의. 핸드폰 벨은 그 때 데니스의 기분과 똑 같이 빨갛게 울렸다. 데니스는 모르지만 그때의 데니와 지금 똑같은 데니스를 아는 어떤 남자의.
데니스는 핸드폰 폴더를 열었다. 액정에 떠오른 넘버는 방금 전 리아의 핸드폰 넘버. 핸드폰 넘버 아래는 문자 메시지가 있었다.
---데니스 강?
우스웠다.
---누구시죠?
---당신은 알 필요 없어!
데니스에게 문자는 예상대로 몇 년 전 과거의 그와 같이 분기에 차 있었던 것. 데니스는 답하지 않고 잠시 액정으로 날라 오는 문자를 보기만 했다.
---꽤 잘나가는 미술가라고 그러니까 여자들이 별 포즈 다 취해주던가요? 리아는 어땠나요? 쓸데없이 내 여친 리아 불러내는 짓 따위 말고 꺼져.
마치 문구녕으로 모든 것을 형탐이라도 한 듯한 젊고 다소 어린 남자의 문자는 자신이 쿡쿡 눌러대는 핸드폰의 원래 주인 라아의 모든 것을 엿보아 다 안다는 투였다. 마침내 데니스도 진짜 꼴같잖다는 듯이 문자를 날렸다.
---흠, 지금 너 나하고 섹스게임이라도 하자는 거니?
“ 뭐라고요?”
문자는 대번에 후다닥 음성으로 바뀌었다. 예상대로 다소 어리고 분노에 찬 음성이었다. 데니스는 이런 얘들에 대해서 잘 안다. 별 걱정 없이 살면서 몇 년 전 데니스와 같이 몸에 힘은 남아돌아가고 세상 다 때려 부셔도 성이 안찰 정도로 정신은 붕 떠 무슨 일이라도 쳐야 될 것 같은.
“ 그래, 네가 바로 룸메이트 남자친구, 유지민?”
“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느라고 힘드셨겠네요?”
“ 글쎄, 뭐! 네 여자친구 예쁘긴 예쁘더군.
하지만,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네 여친하고 나 대단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야. 단지, 우린 통하는 것이 좀 있다는 거지?”
“ 우습군요.”
“ 우스운 건 너야.
난 아무 짓도 안했어.
문제는 너희가 함께 살면서도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거야.
같은 스타일의 옷을 입고 항상 같은 것을 함께 한다고 해서 뇌까지 서로 공유한다고 볼 수는 없어.
그렇지 않다면 네가 나한테 이렇게 쓸데없이 전화할 필요도 없고,
아까 말한 게임을 해도 네가 이길테니까?”
“ 그럼, 한번 증명해보시지?”
“ 하?”
유지민이란 자식은 생각보단 똑똑했다. 길길이 뛰는 음성에 데니스가 재미날 정도다.
“ 내가 대신 증명해볼까?
데니스, 당신은 아주 저속해!
아니라곤 말 못할 거야. "
그리고 핸드폰 통화가 데니스에게 일방적으로 탕 끊겼다.
“ 건방진 자식!”
한방 먹었다. 아침부터 한방 먹었다. 그것도 기분 좋게. 데니스는 자기도 모르게 묘한 웃음이 나오며 그의 힘찬 손가락으로 붓을 팍 꺾었다.
아프지는 않았다. 데니스는 화가 난다기 보다는 오히려 머릿속에 영상이 떠오르며 자신이 유지민이란 그 건방진 자식을 위해 확실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방금 전에는 리아란 여자애 때문에 신선한 에너지를 받았고 연달아 리아란 여자애의 남자친구로부터 한방 먹었기 때문이다. 20대 중반시절 그가 다키히스탄에서 용병을 할 때보다도 거친 그의 열정을 일깨우도록.
그것은 비둘기 전령처럼 데니스의 아파트에서 핸드폰 문자와 음성이 날아간 파크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민은 핸드폰 폴더를 팍 내리며 소파를 내려다보았다. 커다란 호숫가의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거실의 소파에는 호숫가의 풍경보다도 투명하고 예쁜 리아가 자고 있었다.
그녀가 잠든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는 채 행복감에 빠져 잠들어있었다. 그녀가 잠든 사이, 그녀의 남자친구가 그녀의 핸드폰을 훔쳐 문자를 엿보고 그녀의 비밀의 남자에게 대들기까지 하는데? 그러한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키스를 불러일으키는 입술은 지민을 분노케 한 어떤 성숙하고 나쁜 남자의 키스마크라도 마냥 간직하려는 듯 아주 나긋나긋 더욱 행복해보였다.
지민은 소파 건너 미니멀한 장식장에 있는 리아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았다. 사진은 예전에 스키장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었는데 그 때도 리아는 아주 투명하니 예쁘게 웃고 있었다. 지민은 사진 속의 리아와 소파의 리아를 번갈아보았다. 모두 예쁘다! 하지만?
지민은 소파속의 리아를 한 대 팍 때려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