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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유교는 무엇이 다른가?

헬렌마르티나 |2007.03.11 22:50
조회 134 |추천 0

기독교와 유교는 무엇이 다른가?

 

 유교에는 초월적인 하나님에 대한 신관이 없습니다. 또한 천국과 같은 사후세계에 대한 내세관도 없습니다.

기독교는 인간을 죄인으로 보기 때문에 죄를 용서하는 메시야가 필요한 데 반해 유교는 인간의 선함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기에 예수와 같은 구세주를 따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 유교는 인간의 도덕과 윤리를

장조합니다. 유교는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는 관계성의 종교이지요

 

 기독교도 역시 인간관계를 중요시하지만,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를 우선시하는 점이 유교와 크게

다른점이지요. 기독교의 십계명 중 첫째에서 넷째 계명까지는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다룬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죠.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 22:37~40)

 

 기독교에서는 인간관계도 중시하지만 하나님과의 수직관계를 더 중요하고 우선시되어야 할 관계로 봅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는 반드시 인간관계를 통해 완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기독교의 신앙이지요.

 공자는 유교의 가르침을 제시한 도덕선생입니다. 물론 예수님도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가르쳤고 또한 몸으로 살신성인하여 모범을 보여준 도덕선생입니다. 하지만 도덕선생에 머물러 있는 공자와

달리 예수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중재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종교적 특성이 있습니다.

 

 예수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막혀진 관계성을 풀고자 이땅에 찾아오신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죠.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중략)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엡 2:14, 16)

 

 또한 기독교는 이웃사랑의 기초를 자신의 인격에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둔다는 점에서 유교와는

전적으로 다른것이지요. 유교는 성선설의 입장에서 삶의 원리나 원칙을 제시하지만, 기독교는 타락 후

성악설적인 입장에서 은총적인 윤리를 제시합니다.

 

 즉 타락 후 인간은 근본적으로 악한 속성을 갖게 되었다. 이제 인간 스스로가 선하게 살 수는 없다.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선 먼저 사랑을 받고 변화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윤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먼저 입은 후에

그 사랑에 감격하여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될 때 가능해진다는 것이죠.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한일서 4:10 ~ 11)

 

발열체의 한계가 유교의 한계

 

 유교의 입장에서 인간의 윤리는 인간 스스로 빛과 열을 발하는 태양과 같은 "발열체"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입장에서 인간의 윤리는 하나님이 비춰주신 사랑을 단지 반사하기만 하는 달과 같은 "반사체"에 불과한것입니다.

 

 기독교 입장에서는 타락 후 인간의 선함과 도덕성은 거의 무기력한 상태라고 봅니다. 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로마서 3:10)라고 주장하며 동시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3:23)"라고 말합니다.

 덴마크의 유명한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의 윤리를 자신의 위선을 가리기 위한 '가면'으로 보았죠.

 

 05년 11월 24일자 국민일보 신문에 "억세게 운 좋은 칠면조"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11월 22일 백악관에서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칠면조 사면 식을

거행한 것이다. 칠면조 사면 식은 추수감사절 식탁에 오를 약 4500만 마리의 칠면조 중

한마리만을 골라 살려주는 행사이다. 이 행사는 1947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 때 대량도살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올해의 사면대상은 마시마로우 라는 이름을 가진 칠면조가

선정되었다. 43,999,999마리 칠면조를 도살하고 그 죄책감을 덜기 위해 한 마리 칠면조를

살려주는 행사를 하는 인간의 도덕이라는 것은 결국 가면에 불과하다.

 

 

성도의 발열체는 예수 그리스도

 

 

 공자의 인(仁)과 예수의 사랑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신을 실천 하는

방법이나 정도에서 차이가 있죠. 공자의 인 사상에 있어서 인간관계의 원칙은 서(恕)입니다. 서(恕)를 우리가

종신토록 실천해야 할 원칙이라고 말하죠. 공자의 仁의 실천방법인 恕는 인간관계의 소극적인 측면입니다.

 

예수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12)"는 황금률을 통해 사랑의

적극적인 실천방법을 제사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는 비폭력을 주장하며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아주 비범한 사랑을 가르쳤죠.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39~44)

 

 예수의 사랑은 자기희생을 의미하는 원수 사랑을 이야기 하지만 공자의 인 사상 안에는 원수 사랑의

개념이 없습니다. 공자는 가까운 이를 먼저 사랑하여 점차 이웃으로 확대하는 차등적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황금률은 상호주의를 넘어서는 인격적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공자의 서(恕)는 상호적인 관계에 기초한

인격적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공자의 인과 예수의 사랑은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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