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존재하지 않는 자의 눈물
어둠속의 격전
“……결박하라.”
소년의 목소리가 담담하게 어둠을 후려쳤다. 매섭게 날아간 부적들은 공동파의 두 제자 앞에 당도하자, 더 빠른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어억?”
연검을 쥔 큰 제자의 눈이 부릅떠졌다. 깜짝 놀란 나머지, 심장이 쾅쾅거리기 시작했다.
화르르-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그의 팔다리를 휘감고 돌던 부적들은, 허공에서 한줌의 재가 되어 바스러졌다.
덥석
두 팔과 두 다리를 툭 불거 잡는 소름끼치는 손길!
그는 재빨리 눈을 돌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검을 들고 뛰던, 자신의 사제역시 어쩔 줄을 모르고 허공에서 몸을 움찔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팔다리를 두리번거리며, 급하게 시선을 이동했다.
“커억!”
큰 제자는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뒤로 꺾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 어떻게? 마, 말도 안 된다. 허공에서 움직임을 봉쇄하다니……”
그는 쥐어짜듯이 외쳤다. 말은 할 수 있었지만 손과 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꽁꽁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산에 꽉 붙들린 느낌이었다.
간질간질
자세히 보니 수십 개의 투명한 손들이 허공에서 자신의 팔다리를 꽉 붙들어 매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소년을 살폈다. 그리고 곧 화들짝 놀랐다.
소년이 서 있던 자리가 텅하니 비어있었다. 아무것도 없이 휑한 빈 공터만 남았을 뿐이다.
이대로 당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그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 일.
큰 사제는 전신의 기운을 두 팔과 두 다리로 집중시켰다.
콰직
소름끼치는 소리가 주변을 메웠다. 자신의 다리를 결박하고 있던 보이지 않는 힘, 몇 가닥이 뜯겨져 나가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의 힘으로는 고작 몇 가닥 끊어내는 것이 다였다.
‘소, 소악귀(小惡鬼) 놈은 어, 어디에?’
그 순간 목덜미에 와 닿는 서늘한 느낌.
마치 등골을 칼로 후벼 파는 것만 같은 전율이 온 몸에서 일었다. 등 뒤에서 소년이 불쑥 나타났다.
소년은 얼굴을 가까이 드밀었다. 둘의 눈은 서로 가까기 접근하며 마주보았다.
반투명한 뿌연 막이 씌워진 눈과 마주하는 순간, 큰 제자는 그제야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끝없는 암흑과 깊은 심연이 그 눈 안에 들어있었다. 뿌연 막으로 가리고자 하였지만, 그 공포는 절대로 가려질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심장이 불규칙하게 펄떡거리기 시작했다. 순간 소년이 아주 작게 속삭였다.
“결박하라. 태양의 양기를 다시는 보지 못하도록.”
“어억!”
대롱대롱
순간 큰 제자와 넷째제자의 몸이 허공에 매달렸다. 큰 제자의 눈이 찢어질 만큼 부릅떠졌다.
그리고 그의 앞에 펼쳐진 세상은 순식간에 암흑이 되었다.
간질간질
방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힘이었다. 투명한 실 같은 기운들이 순식간에 그의 동공을 막아버렸다. 그리고 그 기운들은 두 팔과 두 다리 그리고 전신을 꽁꽁 묶어버렸다. 마치 누에가 고치 속에 꼭꼭 숨어버리는 것처럼 온몸을 결박당했다. 큰 제자는 보았다. 자신의 동공이 반쯤 암흑 속에 먹힐 무렵, 소년은 서슴없이 서문탁에게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뭐라고 고함이라도 치려던 순간, 입안으로도 투명한 실이 잔뜩 밀려들어와 목구멍역시 틀어 막혀버렸다. 동시에 눈앞의 세상이 암흑이 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문탁은 비형랑을 멀찌감치 집어던졌다. 그의 어깨에는 서문탁의 손에서 뻗어 나온 세 줄기 검은 기운이 잔인하게 박혀있었다. 비형랑을 헤집어놓던 검은 채찍은 사정없이 그의 몸을 내동댕이쳤다.
“끄아아악!”
구석에 처박히면서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어깨가 이미 넝마가 되어 너덜거리고 있었다. 팔은 기괴한 방향으로 비틀어진 채, 달랑거리며 겨우 붙어 있었다. 그 고통스러운 와중에서도, 비형랑역시 입을 딱 벌리고 다가오는 도화를 보고 있었다.
천천히 걸어오는 소년이 분명히 도화였다.
허나 그의 심장은, 그의 가슴은……. 소년이 분명히 도화가 아니라고 외치고 있었다.
어두웠다. 칠흑만큼 어두웠다. 그것은 밝고 명랑했던 소년이 내뿜던 환한 기운이 아니었다.
그리고 차가웠다. 설원의 빙곡(氷谷) 만큼 시린 혹독한 추위가 보랏빛 기운을 넘실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비형랑은 흐르는 핏물을 닦으며 소년의 얼굴을 보았다.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하얗게 질린 얼굴. 너무 희다 못해 푸르스름한 얼굴.
그리고 그 크고 아름답던 검은 눈동자는 소름끼치는 뿌연 막에 덮여져 있었다.
도화는 자신을 힐끔 쳐다보고는, 이내 고개를 돌리고 서문탁을 향해서 주저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서문탁은 두 발에 힘을 주고 서있었다. 이상하게 자꾸 소년을 보니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만 같았다.
소년의 손이 허공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쫙 펴진 소년의 손이, 짧은 순간 확 오그라들었다.
우드득
보이지 않는 힘이 서문탁의 목덜미를 꽉 움켜쥐었다.
“끄아아악!”
서문탁의 입에서 처음으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허공에서 목덜미를 움켜쥔 모양을 한 도화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어찌나 목을 짓누르는 압력이 거셌던지 단숨에 목뼈가 으스러져 나갈 것만 같았다. 서문탁의 이빨이 딱딱딱 소리를 내며 맞부딪쳤다.
덜덜덜
그의 턱이 마구 경련을 했다. 힐끗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서문탁의 표정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의 눈에 각오의 빛이 서렸다.
상대는 더 이상 얕잡아 볼 소년이 아니었다. 분명히 그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목뼈가 바스라 질것만 같은 고통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서슴없이 오른쪽 팔을 들어 자신의 왼쪽 중지를 끊어냈다.
뿌각-
손가락이 떨어져 나감과 동시에 분수처럼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보던 비형랑은 두 눈을 사정없이 찌푸렸다. 끔찍한 자. 허나 그의 눈동자는 다시금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피, 피가 검다?!’
비형랑의 중얼거림과 마찬가지로 뿜어져 나오는 피 분수는 분명히 시커먼 흑색임이 틀림없었다.
묵묵히 마주서있던 도화의 눈동자가 꿈틀거렸다.
아찔했다. 뿜어진 검은 피는 허공에서 푸스스 타들어가며 산화했다. 덮어진 피는 허공에서 기괴한 문양을 만들고 있었다. 서문탁은 자신의 목을 부서트릴 기세이던 투명한 기운이 사그라짐을 느꼈다.
허공에서 검은 피와 맞부딪친 도화의 기운은 녹아들며 무위로 돌아갔다.
소년의 팔이 서서히 제자리로 내려왔다.
허나 그 얼굴은 무표정했다.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했고 담담한 것 같기도 했다.
서문탁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윙윙
극도로 긴장한 탓인지 몸 안의 검은 피가 평소보다 훨씬 빨리 돌았다. 그는 소매의 장삼을 확 걷어 올렸다. 그의 푸르스름한 괴손이 장삼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도화의 뇌전공격으로 터졌던 손등은 다시 원상태로 회복되어있었다. 다만 진득하게 흘러내리는 녹색의 독액들이 그 흔적을 대신 말해줄 뿐이다.
그의 두 손이 정확하게 도화를 향했다.
즉시 검은 바람이 일었다. 뒤이어 검은 빛이 공간을 갈랐다.
슈와왁
그의 양손에서 뻗어나간 열 가닥의 기운이, 순식간에 도화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검은 뱀처럼 꿈틀거리며 약동하는 기운!
비형랑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고작 다섯줄기만으로 감당하지 못해서 이 꼴이 된 자신이다.
있는 힘을 다 짜내어 힘껏 고함을 질렀다.
“화야! 피해라! 그 기운을 맞닥트려서는 안 돼!”
허나 그의 외침은 한 발 늦은 것만 같았다. 그 기운들은 소년의 몸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암흑의 고통을 심장에 쑤셔 박아라! 결코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
서문탁은 다시 한번 호통을 터트리며 힘을 가세했다. 그는 두 눈을 암흑으로 물들이며 명령했다.
도화의 여린 몸은 가차 없이 찢겨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비형랑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것은 서문탁도 마찬가지.
불쑥-
도화의 얼굴에서 울룩불룩한 피부가 튀어 오르는 것만 같았다. 마치 반투명한 가면이 얼굴위로 쑤욱 밀려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그 가면의 얼굴은 잔뜩 화가 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섬뜩하게 쭉 찍어진 눈은 용맹하고 호방한 전사의 면모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썽둥
순식간이었다. 도화가 팔을 휘저음과 동시에 검은 기운들이 허공에서 반 토막 났다.
허나 미쳐 잘라내지 못한 나머지 하나의 기운이 사정없이 도화의 팔을 휘감았다.
성난 가면의 얼굴이 비릿한 조소를 띄었다.
콰르릉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뿌연 먼지가 일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암흑과 먼지 속에 가려졌다.
잠시 후 먼지가 걷히고 주위를 구분할 수 있게 되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뒤로 넘어져 나뒹굴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서문탁.
그의 전신에는 누런 뇌전의 여운이 아직까지도 타닥거리며 남아있었다.
그는 더듬더듬 떨리는 목소리로 도화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 어찌? 그, 그대는? 이것은 인드라의 뇌전……?”
그 순간 도화의 얼굴에 불거져 있던 가면이 거짓말처럼 내면으로 싹 가라앉았다.
그리고 곧바로 보랏빛의 새로운 얼굴이 쑤욱 밀려올라왔다.
아까의 얼굴이 용맹한 전사였다면, 지금의 얼굴은 밤하늘의 시린 달과 같았다.
“어리석은 인간이여. 그릇된 허망에 사로잡힌 불쌍한 영혼이여.”
낮은 쇳소리 같이 거친 음색이 서문탁을 작열했다. 마치 그 소리는 자신의 귓구멍을 후벼 파는 것만 같았다. 고막이 터져나갈 것만 같은 섬뜩한 느낌이 뇌리를 꿰뚫었다. 실제로 지금 그의 귓구멍에서는 검은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이 목소리는……. 소마신의 권능?”
서문탁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갔다. 동시에 그의 괴손이 크게 부풀기 시작했다. 그의 눈동자가 급하게 떨렸다. 소년의 몸이 길쭉하게 늘어지고 휘어져 보이는 착시현상.
소년은 대답이 없었다. 대신 달빛과 같이 시린 얼굴은 말없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부정이 아닌 긍정. 긍정이라기보다는 부정에 가까운 중립.
허나 이미 두 가면을 본 순간, 서문탁 그의 뇌리는 새하얗게 비어버렸다.
그는 확신했다. 자신의 추측을.
‘두 신이 저 소년의 몸에 강신한 것이 틀림이 없다! 허나, 허나……. 분명히 아무런 의식 없었어. 이, 이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강신이다. 더군다나 두 개의 신을 한 몸에 받는다는 것은 들어 본적도 없는 일이다! 아무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소년은 놀란 그를 아랑곳하지 않고 비형랑 쪽으로 걸어갔다. 어느덧 도화의 얼굴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작은 조약돌 크기의 밝은 빛 덩어리 수십 개가 소년의 손등을 뒤덮었다.
마치 빠르게 자라나는 거대한 포도송이 같았다. 그리고 그 빛 무리는 곧 손바닥 전체를 보랏빛으로 감싸 안았다. 묘한 파공음을 내뿜으면서.
웅웅-
비형랑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도화를 보았다.
반대로 소년은 무표정한 눈으로 그를 쓰윽 훑어보았다.
넝마가 된 그의 어깨로 빛 무리가 앉은 손을 가져갔다. 신경을 불에 지지는 듯한 고통이 순식간에 어깨를 휩쓸고 지나갔다. 고통은 지극히 순간이었다. 놀랍게도 흐르던 피가 멈추고 찢어진 살들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넋 놓고 보던 서문탁은, 엄청난 돌멩이가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 같았다.
‘아, 아니 아직 저 아이는 의지를 잃지 않고 있어! 두 신에게 밀리기는 하지만, 분명히 제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의 머릿속이 엉클어져 버렸다. 어찌나 놀랐던지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렇다면?
브르르
그는 몸을 떨었다. 전율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비형랑을 어루만지는 소년의 등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서문탁.
무시무시했다. 뇌가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자신의 주인을 인간계에 모셔오기 위해서, 그동안 그가 공 들였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그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아찔하게 현기증이 났다. 더 이상 소년의 등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 소름끼치는 위압감!
지금이 유일한 기회였다. 서문탁은 품안으로 손을 넣어 허연 뼛가루를 한 움큼 끄집어내었다. 그리고는 주저 없이 그 가루들을 도화의 등 뒤로 뿌렸다. 동시에 날카로운 검으로 그의 왼손을 그어 내렸다.
부룩-
아까는 손가락 하나였지만 이번에는 왼손을 통째로 잘라내어 버렸다. 끔찍한 고통이 그의 팔을 타고 쭉 밀려올라왔다. 동시에 검은 피가 허공을 뒤덮었다.
“크아아!!”
섬뜩한 비명이 동굴을 가득 메웠다.
‘나, 나의 주인님이 내 팔을 보, 보상해 주실 것이다! 어떻게든 여기를 뚫고 나가야 한다!’
서문탁은 오로지 한 가지 생각에만 매달렸다. 허공에 날린 뼛가루 위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검은 불꽃은 더욱 환하게 타오르며 두둥실 허공을 날아올랐다.
그 모습을 노려보던 서문탁은 입술을 들썩이며 낮게 주문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화라락
불꽃은 드디어 도화의 등위에도 타올랐다.
소년의 육신을 산산이 부서 버릴 듯이 무섭게 타오르는 검은 불꽃!
소년은 서서히 일어섰다. 그리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소년의 얼굴위에는 이미 쭉 찢어진 두 눈을 번뜩이는 용맹한 인드라신의 얼굴이 솟아올라와 있었다.
쩌적, 쩌저저적!
소년은 왼손에서 몰려있던 둥그런 뇌전 덩어리를 사정없이 서문탁에게 내뿜었다. 구형으로 뭉쳐져서 치직거리고 있던 누런 뇌전덩어리는 하얗게 응집되면서 날카롭게 솟구쳤다.
허나 대부분의 뇌전은 서문탁의 주위를 둘러싼 검은 불꽃이 삼켜버렸다. 도화의 몸에 일렁였던 검은 불꽃은 뇌전의 기운과 충돌하며 허공에서 부서졌다.
콰앙 쾅
몇 가닥의 뇌전은 불꽃을 뚫고 그의 몸에 직격탄을 날렸다. 서문탁의 육신을 둘러싸고 있던 옷가지가 단번에 바스러졌다. 허나 드러난 근육은 약간 그을렸을 뿐 큰 상처 없이 건재했다. 다만 수십억 개의 땀구멍들을 비집고 검은 안개가 스멀스멀 새어나오고 있었다.
인드라의 뇌전은 그의 거죽을 내버려둔 채, 몸속의 장기를 태워버렸던 것이다.
“크악!”
서문탁의 입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새어나왔다. 동시에 그는 중얼거림을 멈추고 정면으로 소년과 눈을 마주쳤다. 그가 막 주문의 마지막 단계를 완성시키려는 순간이었다.
검은 불꽃들은 무섭게 춤을 추며 주위를 회전하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검은 소용돌이를 보는 듯했다.
도화의 눈동자에 씌어진 흰 막 또한 더욱 두텁게 짙어졌다.
‘그, 그것만 있었더라도!’
그 순간 서문탁은 의식의 장소에 놓여져 있던 주인님의 창을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든지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으로 이 상황을 이겨내야만 했다.
꿀럭꿀럭꿀럭
그의 근육들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몸뚱어리가 반배이상 커졌다. 몸은 푸르스름한 청동색으로 변해버렸다. 부분적으로는 짙은 암흑색으로 덧입혀져 있었다.
서문탁은 천천히 괴손을 들어올렸다.
“받아라. 나의 주인님이 하사하신 손이다. 죽어라!”
낮은 비명을 내지르며 도화를 향해 달려들었다. 부풀어 오른 그의 몸뚱어리는 검은 불꽃이 휘감아 타오르며 보호하고 있었다.
흐릿한 잔영만이 남을 만큼 빠르고 쾌속한 몸놀림이었다. 그는 도화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되었다! 죽어라. 최악의 고통을 선사해주마.’
서문탁의 입 꼬리가 슬며시 말려 올라갔다. 그리고는 울퉁불퉁한 팔 근육을 총동원해서 마구 휘둘렀다. 허나 소년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전신의 모든 기운을 괴손으로 집중시켰다. 그리고 모아두었던 지독한 독액을 소년의 피부 틈으로 밀어 넣었다.
꿀럭꿀럭-
연녹색의 독액이 소년의 몸으로 흡수되어 들어갔다. 서문탁은 더욱 힘을 쏟아 부었다.
와드드득
소년의 뼈가 잘게 부스러지는 소리가 스산하게 울렸다.
도화의 얼굴이 울룩불룩하게 들쑥날쑥 거리기 시작했다. 화난 얼굴의 인드라가 쑤욱 불거져 나오는가 하면 바로 다음 순간 차디차게 시린 기운의 소마가 튀어 올라왔다.
'옳거니! 아까는 우연이었구나! 아직은 받아들인 내부의 신들을 다루지 못하는 모양이군! 좋다. 태산 같은 신이라 해도, 작은 그릇에 봉해져있다면 그저 그릇일 뿐이지!’
기회를 놓치지 않은 서문탁이 더욱 힘을 끌어 올렸다. 두 신이 무서운 기세로 저항해 들어왔다. 서문탁이 잡은 소년의 팔은 검은색으로 쭉 물들어 올라갔다가 다시금 흰 빛으로 쭉 밀려 내려왔다. 서문탁은 내부의 검은 피를 빠르게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콰콰콰콰
검은 불꽃과 도화의 보랏빛 막이 서로를 향해 무섭게 충돌해 들어갔다.
서문탁의 검은 불꽃이 약간 우세한 듯이 보였다. 소년의 팔이 빠른 속도로 검게 물들어갔다. 그때였다.
불쑥-
도화의 얼굴에서 또 다른 얼굴이 쑤욱 밀려나왔다.
그는 소년의 얼굴을 뒤덮은 또 다른 가면을 보았다. 그 얼굴은 새빨갛게 붉은 색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서문탁의 동공이 크게 확대되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자신이 단단하게 붙든 소년의 팔목에서 화르륵 소리가 나면서 시뻘건 화염이 솟구쳤다. 자신의 괴손은 불 따위에는 끄덕도 없을 만큼 강했다. 허나 불길은 괴손을 감아 안은 다음, 순식간에 서문탁의 몸으로 번져 올라갔다. 성난 듯이 춤추는 붉은 불꽃에 휘말린 순간, 서문탁의 검은 불꽃은 거짓말처럼 사그라졌다.
슈가각
솟아나온 얼굴은 순식간에 허리춤까지 쑤욱 밀려올라왔다.
마치 소년의 얼굴이 불을 토해내는 듯이 섬뜩한 광경이었다. 불덩어리는 쏘아진 불화살처럼 서문탁의 얼굴을 할퀴었다. 그리고는 거짓말처럼 다시 소년의 얼굴로 쑥 빨려 들어갔다.
이글거리는 화염이 일렁이며 서문탁의 시야를 왜곡시켰다. 소년의 얼굴이 휘어져 보였다.
하지만 그는 똑똑히 보았다. 무섭게 분노하며 번뜩이는 세 개의 눈!
우당탕
그는 소년의 손목을 맥없이 놓았다. 또한 풀썩 엉덩방아를 찧은 후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크아아악!”
그러나 고통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붉은 화염은 그의 몸 위에서 춤을 추듯 타들어 갔다.
피부는 멀쩡했다. 다만 그의 검은 피가 끓어 넘치고 있었다.
부글부글
뜨거운 피는 그의 근육을 굳히고 내장들을 괴사시키고 있었다. 자칫하다가 심장이 손상을 입으면 피가 역류할 터였다. 그의 눈앞이 캄캄하게 굳어져 왔다.
“너, 너는 아, 아그니……!”
도화의 얼굴에 덧입혀진 화염의 신은 다름 아닌 ‘아그니’.
마귀를 태워 죽이는 아그니의 화염은 끊임없이 서문탁을 괴롭히고 있었다. 타오르는 불의 신인만큼, 아그니의 성격은 앞의 두 신보다 포악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소년은 온몸으로 거친 폭발력을 내뿜고 있었다. 비형랑조차도 그 뜨거움의 여파에 몸을 구르며 뒤로 물러서야 했다.
덜컹-
한바퀴 뒤로 몸을 굴리던 비형랑은 무엇인가에 부딪쳐서 급히 몸을 멈추었다. 그는 고개를 홱 돌려서 대상을 확인했다. 자신이 아까 내동댕이쳐질 때 이쪽으로 날아온 것 같았다.
‘아아! 묵운이라는 사내!’
그리고 쓰러진 묵운의 옆에는, 온몸으로 피를 흘리고 있는 흰둥이가 널브러져 있었다.
비형랑은 문득 묵운이라는 사내의 눈이 깜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재빨리 묵운의 상태를 확인했다.
‘도화가 한시진이라 하였는데……! 시간이 없다!’
비형랑의 손길이 닿자, 쓰러져 있던 묵운의 눈꺼풀이 힘겹게 떠졌다. 비형랑은 깜짝 놀랐다.
묵운은 절박한 눈길로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했다.
“이, 이 영물의……. 크으으…….”
힘겹게 흰둥이를 가리키려고 들어올리던 손가락을 풀썩 떨어트리는 묵운.
비형랑은 시선을 옮겨 고슴도치같이 처참한 야호를 보았다.
허나 흰둥이는 질퍽하게 핏물에 잠긴 채로 미동도 없이 쓰러져 있었다.
묵운은 더욱 안타까운 눈빛으로 비형랑을 보았다. 그는 마음속으로 절박하게 중얼거렸다.
‘이 영물이 지금까지 당신들을 지켜보고 있었소.’
묵운은 주변이 소란스러운 틈에 깨어있었다. 허나 온몸을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벌어지는 모든 광경을 목격하면서 그저 마음속으로 응원할 뿐이었다. 흰둥이가 죽어가는 모습도 보았던 그다. 놀라운 일은 그 다음부터 벌어졌다. 소년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 나가는 순간, 죽은 듯이 쓰러져 있던 흰둥이의 눈이 번쩍 뜨였다. 묵운은 정말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흰둥이는 눈을 부릅뜬 채로 모든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허나 그 눈빛은 자신마저도 간담이 서늘해 질만큼 섬뜩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화의 몸에서 아그니의 기운이 뿜어지는 것을 본 영물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마치 그 눈빛은,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되겠다고 안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쓰러져있던 자세 그대로의 원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곧 죽기 직전의 위태로운 상황 그대로.
그때마침 비형랑이 자신을 건드린 것이었다.
허나 이러한 일을 알 턱이 없는 비형랑은 둥그렇게 눈을 뜬 채로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묵운은 왠지 그냥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쓰러져 있는 영물이 이들에게 해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또한 지금의 상황이 그만큼 급박하기도 했다.
묵운이 토해내는 낮은 비명소리를 들은 사람은 비형랑뿐만이 아니었다.
그 소리는 불길에 타들어가는 서문탁의 귀에도 똑똑히 들렸다. 그는 두리번거리며 급히 눈을 돌렸다.
심장 뛰는 소리가 귀에까지 들렸다.
그리고 구석에 쓰러져 있던 묵운을 발견했다.
“어떻게 네 놈이 여기 있는 것이냐! 크아아! 안된다. 너, 너는!!”
묵운을 발견한 순간 서문탁은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만 같았다.
두근두근두근
그의 심장이 불규칙하게 펄떡이기 시작했다. 머리가 띵 울렸다. 어지러웠다. 저자는 주인을 받아들이기 위해 선택된 몸! 그분의 분노를 떠올리는 순간 온몸이 오싹해져왔다.
차곡차곡 준비를 해두었던 몸인데. 자칫하면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생겼다.
구석에 몰린 쥐는 고양이도 무는 법.
서문탁은 주인의 분노를 떠올린 순간 이미 이성을 잃었다.
일단은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그리고 저 놈을 다시 의식의 제단위에 눕혀야 했다.
그는 재빠르게 눈을 빛냈다.
서문탁은 버럭 소리쳤다.
“모두 죽어버려라! 그 분이 곧 오실 것이다!”
그는 얼른 자세를 가다듬고 재빨리 손을 내뻗었다.
다섯줄기의 기운이 노린 곳은 다름 아닌 비형랑과 묵운!
무서운 힘이 벼락처럼 비형랑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마지막 발악을 하려는 듯이 그의 전신을 휘감으며 검은 불꽃이 화르륵 타올랐다.
그의 몸을 괴롭히던 붉은 기운들이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검은 줄기에서는 무시무시란 파괴력이 꿈틀꿈틀 요동쳤다. 쇳덩이라도 갈기갈기 찢어 놓을 듯한 기운을 내뿜었다.
그 속도까지도 아찔하게 빨랐다.
비형랑의 얼굴이 노랗다 못해 하얗게 질렸다.
그는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리고 묵운의 몸을 확 덮쳐 안았다. 자신이 모든 고통을 감당할 생각이었다. 꼼짝도 못하는 이 청년을 또다시 고통의 지옥 안으로 밀어 넣을 수는 없었다. 쓰러져 있던 묵운의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보던 서문탁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제길!’
그는 재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소년의 움직임을 민감하게 주시했다.
역시 신이 지배하고 있었지만, 소년의 의지는 분명히 남아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소년은 주저 없이 비형랑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몸 전체를 보랏빛 막으로 둥그렇게 휘감았다.
그것이 바로 서문탁이 노렸던 바.
사실 그의 계략은 비형랑을 공격하고 그 틈을 타서 묵운을 끼고 이 자리를 피하는 것이었다. 허나 첫 번째 계획은 무참히 실패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에게 날아드는 공격을 보면 피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서문탁은 다섯줄기의 기운을, 묵운과 비형랑의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찔러 넣었다.
허나 비형랑이 오히려 사내를 감싸 안아버린 것이다.
서문탁은 재빠르게 눈알을 굴렸다. 그리고 그의 눈에 들어 온 것이 두 사형.
허공에 고치처럼 말려있던 두 사형을 본 순간, 그의 눈에 섬뜩한 안광이 서렸다.
콰아아앙-
땅거죽이 튀어 올랐다.
서문탁은 무서운 힘으로 힘껏 땅을 굴렀고, 그 공격은 땅을 일직선으로 뒤집어엎었다.
마치 급속도로 파동이 전파되는 것 같았다. 땅바닥이 수면처럼 출렁거렸다.
도화는 중심을 잡으며 잠시 주춤거렸다.
사방은 메케한 흙먼지가 가득 피어올랐다. 시야를 구분하기조차 몹시 힘들었다.
그 와중에도 도화는 비형랑의 앞을 완벽하게 막아섰다. 그리고 만발의 준비를 갖추었다.
허나 먼지가 가라앉고 주위가 조용해 졌을 때는, 이미 서문탁은 사라지고 없었다.
또한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그의 두 사형들도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 후였다.
도화의 손에 매달려 있던 뇌전의 구체가 사정없이 동굴 벽으로 작열했다.
콰콰쾅
엄청난 충격과 함께 동굴의 벽이 우수수 부서져 내렸다.
털썩
마침내 꼿꼿하게 서있던 도화의 몸이 앞으로 꺾였다. 그동안의 위력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양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소년.
소년의 얼굴은 평범하게 돌아와 있었다. 눈동자의 막도 깨끗하게 거두어져 있었다.
투명하리만큼 까만 눈동자는 잔뜩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소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쓰러져 있는 세 사람을 차례로 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은 마지막으로 누워있던 흰둥이에게 잠깐 더 오래 머물렀다.
피가 울컥 솟아올랐다.
억눌렀던 피가 한꺼번에 목구멍을 타고 넘어왔다. 자그맣게 벌려진 창백한 소년의 입술에서 시뻘건 선혈이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 피는 주변을 붉게, 더없이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간혹 선혈들 사이에는 시커멓게 죽은 빛깔의 내장조각들도 튀어 올라왔다. 소년의 몸이 허물어져 내리고 있었다. 하얀 소년의 뺨을 타고 굵은 눈물 한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쿠쿵-
가녀린 소년의 몸뚱이가 바닥에 쏟아졌다.
그 모습을 보던 비형랑이 한쪽 어깨를 내던지며 사납게 달려들었다.
쓰러지는 소년의 모습은 그의 가슴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피에 젖은 소년의 모습은, 그의 피를 거꾸로 솟구치게 만들었다. 그는 머릿속이 텅 비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머리가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숨 한번만 잘못 내쉬어도 그대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는 소름끼치는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악!! 도화야!!!”
* * *
후우우웅-
무섭게 부딪히는 두개의 기운이 집무실의 넓은 허공을 뒤엎었다. 일대에는 뿌연 안개가 자욱하게 일렁거렸다. 무서운 압력이 주변에 도열에 있는 사람들을 짓눌러 터트릴 것처럼 밀려들었다.
우가가각
집무실을 빙 둘러서있던 정예병들의 방패가 종이조각처럼 구겨지기 시작했다. 형태를 잃은 쇳조각들은 스르륵 뭉그러져버렸다. 아무리 훈련을 잘 받은 정예병들이라지만 이런 경우는 일찍이 당해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황하고 있었다. 아니, 당황한다는 표현보다는 경악하여 허둥거린다는 표현이 옳았다.
우두두둑
소름끼치는 뼈 부러지는 소리가 스산하게 집무실을 메우기 시작했다. 압력을 이기지 못한 몇몇의 병사들은 자신들의 뼈가 부스러지는 소리를 두 귀로 들어야했다. 곁에 선 병사들의 얼굴도 서서히 공포로 물들었다.
막강한 힘!
충돌하며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두 힘이 완벽에게 주위를 휘감고 있었다.
동시에 그 균형이 약간이라도 어긋나는 곳에서는 엄청난 압력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바로 그 힘의 중심부에는 의선작약과 소림의 혜능대사가 서로를 노려보며 서있었다.
힘겨루기가 가장 심각하게 진행되는 곳은 역시 중심부였다. 혜능과 작약이 서 있는 중심부는 풍경마저도 일그러져 보이기 시작했다. 무섭게 짓눌려오는 압력에 작약과 혜능의 얼굴역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자칫하다 한쪽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압력에 휩싸인 한쪽은 가루처럼 몸이 부서져 버릴 터였다.
작약의 곁에 선 한영 역시 견디기 괴로운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온몸이 굳은 팽가주와 노부가 고통을 삼키는 중이다.
집주와 당설희 낭자 그리고 유가는, 병사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편한 표정이었다. 자세히 보니 그들의 뒤에선 당노인이, 진기를 발휘하여 반투명한 보호막을 둘러치고 있었다.
작약의 몸 전체로 뿌연 아지랑이가 몽클몽클 피어오르고 있었다.
내심 작약은 크게 놀라는 중이었다. 자신이 인세에 인연을 두어, 삼백수가 훌쩍 넘어서는 지금, 곤륜산의 검선을 제외하고는 적수가 없을 것이라 짐작해오던 노파다. 허나 지금 그의 아집은 허공에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마주선 혜능의 등 뒤로도 계속해서 퍼런 기운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혜능의 표정역시도 딱딱하게 굳어가는 중이었다.
굳은 결심을 한 작약은 자신의 단전을 활짝 개방하였다. 폭포처럼 덮쳐드는 압력에 저항해서 모든 기운을 몸 밖으로 뿜어내었다.
푸아아악
작약의 전신에서 눈이 시릴 정도로 환한 빛이 폭발적으로 피어올랐다.
그 기운은 충돌의 틈새를 타고 혜능에게로 넘실넘실 밀려들었다.
작약은 다시 한번 기운을 끌어올려 몸 밖으로 내뿜었다. 끝없이 쏟아내고 또 쏟아냈다.
혜능은 이빨을 꽉 깨물고 닥쳐오는 힘에 저항했다. 혜능의 등 뒤로 솟아오르는 푸른 기운도 점점 더 진해지고 있었다. 이윽고 쫙 펴진 날개와 같이 활강하는 기운! 한꺼번에 과도한 힘을 발산하느라 혜능의 입가로 가는 핏줄기가 내비쳤다.
그래도 등 뒤의 날개가 쫙 펴지면서, 혜능의 몸을 짓누르던 압력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러자 그에게도 약간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혜능의 눈썹이 묘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크억! 어찌하여 느껴지는 기운 속에 사이함이 없다는 말인가! 오히려 이것은 지독히 맑은 청(淸)기다!’
작약역시 속이 타들어가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미 시작하였으니 쉽게 거두어들일 수도 없었다.
섣불리 기운을 조절했다가는, 여차하면 이곳이 통째로 잿더미가 되어 버리리라.
그때였다. 저기 앞에 서서 날개를 펼쳐든, 피골이 상접한 중놈이 힘겹게 말을 걸어왔다.
“시, 시주. 어찌하여 죄 없는 중생들을 핍박하는 것이요? 시주에게 느껴지는 기운은 사이함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되오만!”
작약도 인상을 찌푸리며 힘겹게 맞받아쳤다.
“이 빌어먹을 중놈아! 너야 말로 어찌하여 이유도 묻지 아니하고 대뜸 앞을 막아서는 것이냐! 쯧쯧쯧 땡중이로다, 땡중!”
노파의 말을 들으며, 순간 혜능의 머릿속으로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혹시?
“그렇군요. 아미타불. 소승의 생각이 짧았소. 팽가주를 핍박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오해했구려. 소승의 이름은 혜능이라고 하오.”
땡중이라는 말에도 혜능대사는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오히려 홀가분한 표정으로 자신의 소개를 했다. 작약의 얼굴에도 묘한 호기심이 일었다. 혜능이라?! 어쩐지 낯이 익은 이름인데?
“내 이름은 작약이라고 한다. 남들은 나를 의선(醫仙)이라고 마음대로 칭하더군. 클클”
노파의 입 꼬리가 묘하게 말려 올라갔다.
쿠쿵
혜능대사의 심장이 덜컹하고 내려앉았다.
반대로 작약의 표정은 쫙 펴졌다.
‘곤륜산의 검선, 그 순둥이가 말했었군. 자신과 적수가 될 이로 소림의 혜능이 있다하였지.’
또한 지켜보던 모두의 시선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팽가주와 노부 그리고 집주는 물론이고 모든 병사들까지 입이 딱 벌어져 버렸다.
허나, 당가 일행의 눈빛은 이들과는 약간 다른 모습으로 크게 동요되고 있었다. 당설희는 놀란 눈을 들어 당노인의 소맷자락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녀는 작약과 당노인을 바쁘게 번갈아 보는 중이었다.
한영은 주위를 둘러보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 모든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의선 작약이라니?
정말로 실존했던 인물이라는 말인가?
그들의 눈에는 깊은 의문이 가득했다. 그저 전설상으로 떠도는 이름정도로 알고 있는 이들이, 절반 이상이었다. 한영은 그들의 황망한 얼굴을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4개월 여전, 작약이 천외봉을 찾아왔을 때에도 자신도 저들과 같은 표정을 지었었으니.
천외봉이 머릿속에 떠올리자, 단영이모와 백아삼촌 그리고 환한 도화의 얼굴이 차례로 스쳐지나갔다.
흐드러지게 만발한 복숭아 꽃(桃花)처럼 활짝 웃는 소년의 얼굴!
‘화야! 무사하니?’
덜컹
도화를 생각하니 갑자기 한영의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아무래도 여기서 너무나도 시간을 허비한 것 같았다. 갑자기 동생의 안위가 미친 듯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상하리만치 불길한 예감이 그녀의 가슴을 엄습해왔다. 그녀는 재빠르게 작약에게 눈짓을 보냈다.
작약은 그 의미를 금방 알아차렸다.
세상이 숨을 죽이는 것처럼 조용해졌다.
--------------------------------------------------------------------------------------
오랜만이어요. 너무 많이 기다리셨지요?![]()
깊숙히 절하며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연말이라 헤일처럼 들이닥치는 일거리에 파묻쳐있기도 했지만,
약간의 외도를 하는 바람에
..
기다리시는 분들께 다시한번 죄송하다는 인사말을 올립니다.
헤헤.
그나저나 여기 아래의 (32)화의 조회수는 어찌된 일인지... 혹시나 테러를 당한것이... -_-;;;
그래도 기분은 행복했답니다.
열심히 공들인 제 자식같은 녀석들을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신다는 말이니까요(^_^)헤헤.
꼬리말을 남겨주시는 사랑스러운 님들~!
그리고 추천을 날려주시는 고마우신 님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__) 꾸벅!![]()
파안의 가호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한 10회의 연재가 지난 후면 파안이 등장하겠군요 ^^;; (쿨, 쿨럭!))
날림작가는 오늘도 후다닥 저편으로 도망치듯 사라집니다!
멋진 주말 되세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