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로 이글은 상고사입니다 이전까지만해도 상고사는 사실이입증이되지않아
논란이 많앗는대 2월 13일부로 상고사가 사실임을 입증되었다는 기사가올라와
다시올립니다 이글을 읽으시면 기독교가 우리나라의 모든 역사와 뿌리를
깨부셨다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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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의 근원지인 중앙아시아
인류 문명은 지금으로부터 2만 년~1만 년 전 사이에 생겨나서 오늘날과 같은 문화로 발달되었다.
지금까지는 인류 문명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명확하게 제시된 자료가 없으나 인류의 문명은 지구의 중심인 중앙아시아의 에베레스트산에서 시작되었음을 정확히 밝힌다. 이곳은 우리 한민족의 하늘세계와 지상의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4천세계로 구천현녀께서 관리하던 곳이다. 중앙아시아의 히말라야 산맥으로 와서 다시 한텡그리산에서 천산산맥으로 내려갔다. 천산은 한인께서 최초로 한국을 세우신 곳으로 그 한국의 12지국 중 마지막인 수밀이국이 점차 세력을 넓히고 옮겨가서 오늘날 4대 문명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발흥시키면서 세계문명의 시발점이 되었다.
기원전 3500년경에 시작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 그 뒤를 이어 인도의 인더스 문명과 중국의 황하문명이 4대 문명 발생지로지금까지 알려져 있다. 이 4대 문명의 4대 발생지는 지구의 북반구에 위치해 있고 큰 강을 끼고 있으며, 기후가 좋고, 비옥한 옥토를 지닌 지역들이다. 문명은 산맥을 중심으로 발달되어 오다가 강을 따라 발전되어 오면서 그 화려한 꽃을 피웠다. 중앙아시아는 인류 문명과 문화, 각 종교의 도래지이며, 에베레스트산이 지구의 중심지이다.
중앙아시아에서 동, 동남, 서쪽으로 인류의 문명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동쪽으로는 우리 민족이 천부사상으로 천손자손의 뿌리를 이어 오고, 동남쪽으로는 동아시아, 동남아시아로 이동해서 불교문화가 형성되었다. 서남아시아에서는 유대교, 기독교, 천주교 등이 형성되었다. 기독교는 점차 유럽으로 퍼져나가 아메리카, 아프리카로 다시 6대륙으로 파생되어 세력을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다종교는 다시 우리나라로 밀려들어 모든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빠르고 깊숙이 삶에 침투되었다.
4. 한국의 힘과 T- O 지도
중세의 T-O 지도
이 지도는 중세 시대에 그들의 세계관을 볼 수 있는 자료이다. 지도의 전체가 원형으로 되어있으며 하나의 바다와 세 개의 대륙으로 형성되어 있다고 생각을 했다.
T는 세계의 육지를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으로 나누는 기준으로 돈강, 나일강, 지중해를 가리키며, O는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를 가리켰다. 지도의 중심에 그들의 사상의 중심인 예루살렘이 있다. 그러나 방향의 절대성을 가지고 있는 그 위에 Paradise가 있는 곳이 원래는 동쪽이나 지도의 북쪽으로 놓고 중심으로 삼았다. 이렇게 지도 속에서 숨겨진 의미를 찾아보면 그 서양의 종교의 중심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아시아를 Paradise라 생각을 했던 것이다. 북쪽으로 놓은 걸로 봐서는 우리의 북극수정님을 그들도 인정을 한 것이다. 그들의 허전한 마음의 자리를 찾아 Paradise를 꿈꾸었던 것이다.
그럼 우리는 이 지도를 보면서 그 용기백배 했던 한인, 한웅천왕, 단군 할아버지들의 기상을 떠올리며 생각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잃어버리고 찾으려 하지 않는 자손들을 어찌 할아버지들께서는 도와주고 싶으시겠는가. 지금도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그 힘에 겨운 삶을 보시는 할아버지들은 통한의 눈물을 흘리실 일이다. 우리가 우리 것을 잃고 지키지 못하고 있는 동안 다른 서쪽에서는 모방하고 탐내며 그것을 활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 단군 팔조교의 5항
“너희는 네가 하여야 할 일은 너희 손으로만 하게 하라. 그리하여 각기 너희 할 직분을 지켜라. 너희 할 책임을 견디라”이다.
이 말씀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함을 안다.
중세의 지도(T-O 지도, 900년경)이 T-O 지도는 중세 시대에 과학적으로 만들어졌으며 금성교과서 고등학교 지리부도 책에 나와 있다.
예수가 이 땅에서 사라진 뒤 그들은 나름대로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 시절에도 에덴동산이 중동지역에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내지 못했다. 그들이 지도에서 말하는 동쪽은 서남아시아를 지나 우뚝 솟아 있는 히말라야산맥을 줄기로 펼쳐진 중앙아시아를 말했다. 그들은 그 곳의 풍요로움과 넉넉함을 늘 그리워했던 것이다. 그 곳이 바로 아담과 이브가 있는 에덴동산을 말하는 것이다.
성경을 쓴 작가는 이 지도가 나오기 1000년 전에 터키의 어느 감방에서 폐쇄적인 공간 안에서 지상의 낙원인 에덴동산을 동경하며 소설을 썼다. 신도 버린 작열하는 사막의 땅. 그 뜨거운 태양아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을 동경하며 빛과 소금을 달라고 외치던 그들은 “하늘님이시여! 왜 아직도 우리를 버리시나이까?”라고 했던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들이 말하는 천당과 지옥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천당에 이르는 지름길이 있다. 바로 별을 보는 것이다. 천당의 모태인 칠원성군을 보면서 사는 것이 바로 신국이다.
우리는 태양을 보며 살아간다. 태양은 바로 칠원성군의 자식인 천지신명이다. 그 자식이 화가 나면 지상은 지옥이 된다. 지상에서의 천국은 바로 지상의 낙원인 한국, 신국, 천국이다. 지옥은 지금도 작열하는 태양아래 사막의 불기둥에서 괴로움을 겪으며 살아가는 곳, 바로 사막이다. 지옥에도 전쟁이 있고 삶이 있다. 서로 자기들끼리 잡아먹으려고 한다. 지옥은 신도 버린 땅이다. 이 땅에서 모진 생명의 끈을 버텨내야 하는 것이 바로 죄이며 그 고통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지옥의 땅이라 한다. 그 바람과 모래 바람이 날리는 죽음의 땅에서 그 불기둥 속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생명수’이다.
Ⅲ. 삼성의 시대
♣ 지구의 지상세계를 관리하는 세분의 성인을 삼성이라 한다. 삼성은 한국의 한인천제, 배달국의 한웅천황, 단군조선의 단군이시다.
♣환(桓)과 한은 같은 의미이다. 환인(桓因)은 삼신의 빛과 기운, 힘을 이어받아 얼을 살려 의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1. 한국의 역사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서 오늘날 힘을 잃고 살아가는 가장 큰 요인이 한국(하늘나라) 하늘님의 세계, 은하세계, 태양계에서 온 한인천제와 한웅천황님이 펼친 한국과 배달국, 단군조선을 역사에서 잃었기 때문이다.
* 한국(안파견)
삼성이신 한인천제는 누구신가?
한인천제께서 우주의 중심적인 북극성에 계시면서 지구를 내려다 보시고, “아, 저곳이 지상의 낙원이구나!” 하시며 한국, 신국, 천국인 하늘님의 나라를 세우셨다.
북극성은 하늘의 수도이며, 한 국가로 말하면 그 우두머리(영검: 하늘세계의 우두머리)가 기거하는 곳이다. 북두칠성은(청룡, 백호, 주작, 현무) 하늘의 4대문을 관장하시는 성군이시다.
한인천제께서는 만 여년 전 3월 16일 밝고 환한 빛으로 북극성을 위시해서 은하세계와 태양계를 거쳐 지구의 중앙아시아 히말라야 산맥의 북쪽에 자리 잡은 천산산맥의 한텡그리산에 하강하셨다.
한인 천제께서는 씩씩하고 광명의 빛을 발하시는 분이시며 영의 세계에서 광명의 빛을 내려 받고 신의 세계에서 일지성신을 관장하시는 칠성님들의 기운을 받아, 태양계의 혼이 실린 천지신명의 힘을 받아 인간세계에 얼(알)을 불어넣기 위해 강림하신 분이시다.
한인천제께서는 인물들에게 깨우침을 주셔서 본래의 영의 세계를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분이시다. 그 길이 바로 하늘(천상)의 길이다. 한인천제를 우리는 하늘님 또는 할아버지라 부른다. 하늘님이란 한 민족의 근원이시며, 하늘 세계를 우주라 칭할 때 큰 의미로 하늘세계를 총괄하시는 분을 하늘님이라 하고 하늘님의 세계나 세상이라고 한다.
할아버지의 어원은 환 + 아버지(환하고 밝고 크신 아버지란 뜻)이다. 환은 한으로 하늘 → 하느(하나) → 한이 변천되었다. 구전으로 전해오는 한배 - 할배라 하며, 할아버지 - 한아버지를 지금도 자손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잊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신의 존재를 할아버지라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하늘의 민족이며 그 직계자손이기 때문에 환한 아버지 즉 한민족의 후손인 우리들은 편의상 할아버지라 한다.
우주의 직계를 살펴보면 한인천제께서는 하늘님을 조부라 하고, 일지성신을 조모라 하고, 천지신명을 아버지라 하고 구천현녀를 어머니라 일컫는다.
한국은 중앙아시아 히말라야 산맥과 곤륜산맥 천산북로 바이칼 호수를 기점으로 그 땅의 넓이가 남북 5만리 동서가 2만리였다. 여기에 12연방국인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구다천국, 일운국, 우루국, 객현한국, 구모액국, 매구여국, 사납아국, 선비국, 수밀이국이 있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소중한 역사를 잃고 살아왔다. 우리는 단군조선 이전에 배달국, 한국의 역사시대가 있었으며 한국은 역년 3301년, 7대의 맥을 이어 왔다.
7세 한인께서 삼천대천(하늘세계의 한국, 신국, 천국의 대천에서 오신 분)의 무리들과 천부인(영, 신, 혼) 3개를 앞세워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한웅천황님을 내려 보내셨다.
2세 한인 혁서
3세 한인 고시리
4세 한인 주우양
5세 한인 석제임
6세 한인 구을림
7세 한인 지위리 (단인)
2. 수밀이국(수메르)이 세계 문명에 미친 영향
수밀이국은 한국의 12지국의 하나이다.
이 수밀이국의 사람들은 중앙아시아 히말라야 천산산맥 한텡그리산에서 서쪽으로 우랄산맥의 아랄해를 기점으로 거대한 집단을 이루고 있다가 서방세계로 이동하며 오늘날 4대 문명이라 일컬어지는 수메르 문화를 발흥시켰다.
수밀이국은 한국의 7세 한인지위리 시대 말기 배달국의 천부사상으로 이루어진 찬란한 문화와 더불어 이루어진 역사이다.
수메르인들은 아랄지역에서 메소포타미아로 이동할 때 흑해와 에게해를 거쳐 지중해 서쪽 연안을 따라 남하하다가 지금의 시리아 지역을 경유했다. 시리아 지역에 도착한 수메르인들은 메소포타미아로 일부는 이동하고, 이집트 방향으로 진출해서 이집트 문명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밖에도 인더스문명과 황하문명에도 영향을 미쳐 모든 문명의 근원이 되었다.
수밀이국인들은 한국에서 배달국으로 넘어오는 시점에서 형성된 우리의 문자를 가지고 가서 정착을 하면서 설형문자를 만들어 냈다. 그 것이 오늘날 유물에서 발견되는 쐐기문자이다.
그 문자의 근원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긴 세월 동안 어느 학자들도 해독할 수 없었으며 오늘날에 와서야 수밀이국인들의 찬란한 문화가 알려지게 되었다.
그 문명의 중심지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문명의 뿌리가 어디에서 온지도 모른 채 자기들의 문명화시켜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수밀이국인들은 천부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을 최대한 살리며 이용하는 지혜가 있었다.
한국의 비옥한 땅에서 이룬 농업 기술의 발달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농업과 함께 상업이 발달되는 틀을 마련해 주었다.
수밀이국(수메르)의 유물에서 출토된 인물들의 조각상을 살펴보면 그들의 종교관을 알 수 있다. 원래 삼신사상에 의해 하늘세계의 하늘님, 칠원성군님, 천지신명님을 섬기며 살아오면서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삼육대례법을 행했다.
이 수메르인들의 인물상에서 삼육대례법의 예를 올리는 모습인 두 손을 십자로 모아 태극모양으로 읍을 하는 모습이 그대로 표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수밀이국인들이 만든 ‘지구라트’는 삼신사상에 의한 삼위산을 그대로 옮겨 인위적으로 만든 산이다. 지구라트에 계단을 만든 것은 ‘삼일신고’에 나타나있는 ‘계만선 문만덕’의 이치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만개의 계단을 오르고 만개의 문을 열어야 하늘님을 친견할 수 있다고 했다.
수밀이국(수메르)인들의 문화 중 가장 빛나는 것이 과학이다. 특히 신들이 고유의 숫자를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이는 천부경의 원리를 나타낸 것이다. 천부경이 숫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서 곱셈과 구구단의 원리가 그대로 담겨져 있다.
수밀이국인들은 하늘세계에서 온 민족이기 때문에 우주삼라만상의 돌고 돌아가는 이치와 천지대자연의 섭리대로 살아갔다. 그래서 후대에 평을 할 때 천체운행에 따라 인간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최초로 믿은 사람들이라고 인식되었다.
수밀이국인들은 한인의 맥을 이어간 하늘의 자손으로 그들의 발자취와 그 업적은 앞으로 세계인들에게 더욱더 아름답게 빛날 것이다.
현재도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공화국, 연해주 사할린 등 세계 곳곳에 고려인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3. 배달국(신시시대)
* 한웅천황은 누구신가?
하늘의 남쪽에 계신 주작으로 남두육성을 관장하시는 천부성에서 오신 웅장하고 씩씩하신 한웅천황님은 한 민족이 곰자리자손, 신의 자손, 칠성자손으로 뿌리를 내리게 해주신 분이다.
한웅천황님은 한인천제의 명을 받아 하늘세계가 운행되는 것을 가장 잘 아시는 분으로 동두삼성과 서두사성, 북두칠성과 의논공론을 하여 북극성의 지휘계통으로 명령을 받고 지상을 평정하신 분이시다.
십방세계의 남섬부주에 있는 지구의 중심부인 중앙아시아의 히말라야 북쪽에 위치한 천산 산맥의 한텡그리산에 강림하신 한인천제를 보필하며 곤륜산맥의 남쪽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남동쪽에 위치한 태백산 신단수 아래 자리를 잡고 지상의 세계를 다스리셨다.
지상에서 가장 천연적인 요새의 땅, 기름지고 비옥한 땅에서 곡물을 가꿀 수 있도록 정착을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농사법을 가르쳐 주셨다. 또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천체의 움직임에 따라 계절별로 기후에 맞추어 작물들을 재배할 수 있는 교육을 가르쳐 주신 분이시다.
한웅천황님께서는 3천 대천의 무리들을 거느리시고 천부인(북, 검, 거울) 3개를 가지고 내려 오셔서 배달국(신시시대)을 여셨다.
배달국은 1세 한웅으로 시작하여 18세 한웅거불단으로 이어진다. 그 역년은 1565년이다.
한웅천황께서는 풍백, 운사, 우사를 시켜 곡식과 임금의 명과. 형벌과 질병과 선악 등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 다스리게 하여, 세상의 이치에 맞도록 교화하여 인간을 널리 유익하게 하셨다.
백성을 교화할 때 천경(천부경)과 신고(삼일신고)를 가르쳐서 백성들을 크게 깨우쳤다. 고시례에게는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책임을 맡겨 곡식을 주관하게 하였다. 신지혁덕에게 명하여 문자(녹두문자)를 만들게 하였다.
이에 신인이 각각 맡은 바의 일을 지극히 하다보니, 천지자연의 도에 화합하여 천하가 안녕해지고, 만물이 풍성해지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네 신인은 공을 이루고 각각 자신의 직분을 나타내는 물형을 만들어 소리를 냈는데 그것이 바로 사물이다. 이 사물은 능히 천지 만물을 고동 시켜 만물의 신령한 기운을 북돋우고 흥을 일으켜 사특한 기운이 저절로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능히 사람들과 곡식의 병을 다스릴 수가 있었고 곡식과 채소 등을 해치는 벌레까지도 박멸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하여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농악이라 이르게 되었다. 농악이란 바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모여 치는 굿이라는 뜻이다. 또한 이것이 능히 민물의 신령함을 일으키고 사특함을 물리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로써 재액을 쫓고 안녕과 복을 빌었던 것이다.
♠ 천부인의 의미
북 - 인간들의 육체인 가죽 옷을 입은 고름덩어리들이 짐승처럼 살아 간다. 그 인간들을 구름처럼 모이게 한다.
검 - 우두머리의 맑고도 밝은 빛을 바라보아라.
거울 - 거울처럼 자신을 비춰보고 깨우쳐라.
고시례에게 곡식을 주관하게 하시고, 신지혁덕에게 녹두문자를 만들게 하셨다. 소도에서 오가의 장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발귀리 선인을 시켜 원방각경을 만들었다.
✤ 5세 태우의 한웅(3512)
태우의 한웅께서는 백성들을 잘 가르쳐 나라의 질서를 바로잡았다. 백성(사람들)에게 가르치기를,
“반드시 가만히 생각에 잠기고(묵념), 마음을 맑게 하고(충심) 숨 쉬는 것을 고르게 하여(조식) 정기를 보전(보정)하면 오래 살고 늙 지 않는다.”
하며 신도의 기본 수련법을 가르쳤다. 태우의 천황께는 아들이 열둘이 있었는데 막내가 태호(복희) 할아버지시다. 복희 할아버지께서는 삼신산에 가서 하늘에 제사 지내고 천하에서 괘도를 얻어 천부경의 삼극을 응용하여 팔괘를 만들었다. 8괘인 건, 태, 이, 진, 손, 감, 간, 곤은 참전계경에서 성신애제 화복보응이라 한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팔괘를 자신들이 시작하였다고 하나 그것은 왜곡된 역사이다. 음양오행은 천부사상의 천부경에서 나왔으며 복희씨는 이 천부경과 팔괘로 환역을 만들었다. 이 환역은 주나라를 거치면서 주역이 되었다. 중국의 역사에서 삼황으로 일컬어지는데 복희 - 신농 - 황제는 우리의 선조이시다. 본래 서쪽에 있는 지나족의 우두머리는 수인이다.
복희 할아버지는 우사가 되어 청구국과 낙랑을 거쳐 진으로 옮겨 수인을 세력으로 제압했다. 그 곳에 나라를 세우고 여동생 여와를 왕위에 앉혔다. 복희씨의 후예는 크게 번성하여 8괘의 원리에 의해서 패, 관 ,임, 기, 포, 이, 사, 팽의 여덟 성으로 나뉘어졌다.
중국역사는 복희-신농-황제-소호금천씨-전욱-제곡고신씨-요순우탕하-은-주로 내려간다.
✤ 8세 안부련 한웅(3240)
안부련 한웅은 강수 지역의 나라를 지나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소전(곰씨에서 갈라진 자) 장군을 보냈다. 소전은 소호 금천씨와 함께 모두 고씨의 방계이다. 그의 아들 신농은 그곳에서 여러 가지 풀과 뿌리를 가지고 약을 만들었다. 오늘날 한방계통의 원 시조이다. 그 뒤 열산(중국 호북성 수현 북쪽)으로 옮겨 사람들이 서로 물건을 교역하게 하여 삶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신농씨는 여와가 다스리던 곳에서 지나족에게 농사짓는 법과 성 쌓는 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임금이 된 뒤부터 염제라고 불렸다. 미개한 지나족들을 깨우쳐서 오늘날 중국역사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역사는 그의 세력이 점점 커지고 지나족들의 신망이 두터워지자 신시에서는 강수 지역을 걱정하게 되었다.
서양에서는 기원전 3천 년경 메소포타미아(수메르), 이집트문명이
시작되었다.
✤ 10세 갈고 한웅(3071)
갈고 한웅께서 염제를 문책하고, 동족의 왕위를 찬탈한 것을 나무랐다. 이에 신농 염제께서는 사죄하고 지나족의 거수로 남아 있기를 간청해서 국경조약을 맺고 제후로 삼았다.
후에 신농씨의 후손들은 동족을 배반하고 치우 천황님과 황제가 싸울 때 황제 편에 서서 동족의 가슴에 화살을 쏘았다.
중국에서 삼황이라 일컬어지는 신농께서는 미개하나 지나족을 깨우쳐서 오늘날 중국 역사의 시발점을 만들어 주셨다. 중국 역사는 후에 백제에서 우리 민족이 왜놈들에게 천황제도를 전해주고, 역사를 세워준 것처럼 복희 할아버지께서 토대를 만들어 주시고 신농할아버지께서는 나라를 일으켜 세워 주셔서 그 역사가 시작 되었다.
✤ 제14세 자오지 한웅이신 치우천황(2707)
신국의 치우천황 할아버지께서는 우리 민족의 영원한 등불이다. 우리의 얼과 혼과 정신을 일깨워 주시면서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계신다. 치우천황 할아버지께서는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투구)를 하고 큰 안개를 일으켰으며 천둥과 번개를 다루셨다. 이는 치우천황 할아버지 시대가 철기나 청동기를 이용한 최첨단의 문명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치우란 우레가 크게 치고 비가 많이 내려 산과 강을 크게 바꾸라는 뜻을 지녔다.
치우천황 할아버지께서는 은하세계의 칠성님들의 힘을 받으셔서 백성들과 더불어 제도를 새롭게 하셨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땅을 가꾸고 인물들을 발탁하셔서 백성들의 삶의 질을 높이셨다. 또한 지혜와 힘과 덕을 갖추셔서 안으로는 병사를 기르고 밖으로는 세상의 변화를 관찰하셨다.
그 동안 나라의 국력이 쇠약해져 신의 자손으로서 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치우천황 할아버지께서는 윗대 선조들이 신의 자손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해 국력을 약화 시킨데 대해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하고 국력을 회복하기 위해 쇠를 캐어 도개, 모주, 큰활, 화살을 만드시고 천부경에 의하여 81명의 장수를 선발하여 유망의 탁록을 점령했다. 유망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패하여 성을 내주었다.
치우천황 할아버지께서는 배달국에 등을 돌린 아홉 개 거수국들을 점령하고 옹호산에 웅거하여 수금과 석금을 개발하여 창을 만들고 군사를 정리했다. 휴식 후 유망의 도읍지 공상으로 진격해서 소호와 싸워 크게 승리했다. 이 전쟁을 끝낸 후 소도에서 삼신(하늘님, 일지성신, 천지신명)께 예를 올리고 태평시대를 열 것을 맹세했다. 태평성대도 잠시 지나족의 우두머리인 황제 헌원이 싸움을 걸어 왔다. 황제 헌원은 중국의 오제라 일컬어진다. 결국 신농의 후손으로 우리와 같은 동족이었음에도 지나족으로 행세했기 때문에 적으로 간주했다.
치우천황님은 9군(구이족)에 명을 내리고 보병과 기병 3000을 거느리고 직접 탁록으로 나갔다. 탁록에 닿아 격문을 만들어 황제 헌원을 꾸짖었다.
“그대 헌원아! 너도 배달국의 사촌이 아니더냐! 짐의 꾸지람을 새겨 들어라! 곰자리자손으로서 신의 명을 받은 자, 칠원성군의 아들은 이 땅에서 오직 짐 하나뿐이라! 미개한 지나족과 한패가 되어 형제간의 싸움을 일으키느냐! 만세를 위하고 공동생활의 옳음을 위해 인간의 맹세를 다짐하여라! 그대 헌원아! 우리의 삼신 일체의 진리를 모독하였으니 삼신은 더러운 것을 싫어하여 짐에게 명하여 너를 토벌하도록 했노라! 그대 일찌감치 마음을 바로 하여 행동을 그칠 것이니라! 깨달음은 네 스스로 찾을 것이며 그대와 머릿속에 있으리라. 만약 명령에 순응치 않는다면 하늘과 사람이 함께 진노하여 네 목숨이 아닐 것이니라. 네 어찌 두렵지 않으리!”
마침내 탁록의 유웅 들판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치우천황님은 비호 같이 헌원의 방어벽을 분쇄하고 닥치는 대로 섬멸하였다. 역습을 가할 때에는 흙바람과 안개를 일으켜 적의 5관을 마비시켰다. 적들은 그 속에서 눈 , 귀, 코 , 입 ,숨통이 막혀 죽는 줄도 모르고 치우천황군대의 창칼 받이가 되어버렸다.
헌원의 전군은 반격할 능력을 잃고 멀리 달아났다. 전쟁은 언제나 치우천황 할아버지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그러나 헌원은 고집을 꺾지 않고 탁록으로 돌아와 전쟁 준비를 지시하였다. 성곽을 수리하고 군량을 준비하였다. 헌원은 싸울 때마다 패하자 치우천황을 본따서 병기와 갑옷을 만들고, 지남차를 만들어 싸움터마다 출전했다. 그러자 치우천황할아버지는 헌원의 군으로 하여금 감히 공격해 올 뜻을 품지도 못하도록 하셨다. 이 싸움에서 우리쪽 장수 가운데 ‘치우비’가 공적을 쌓으려고 서둘다가 죽었는데 <사기>에서는 치우천황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잘못 기록을 했다. 역사는 이렇게 아이러니컬하다.
치우천황 할아버지는 탁록을 중심으로 연의 회대 땅을 모조리 점령했다. 10년 동안 73회나 전쟁을 치렀는데 헌원은 한번도 이기지 못했다. 치우천황 할아버지는 헌원과의 싸움을 승리로 이끈 후 수도를 산동 반도의 청구국으로 옮겼다.
“치우 천황 할아버지!
천세 천세 천천세
만세 만세 만만세
영원무궁토록 우리 민족의 등불이 되소서.”
<한서>지리지에 의하면 치우천황 할아버지의 능은 산동성 동평군 수장현 관향성 가운데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먼 옛날 중국 땅에 우리의 배달국시대인 한웅천황시대가 역사적으로 증명됨에도 불구하고 후대에 세워진 단군조선(고조선)을 신화나 설화로 불렀다. 진나라, 한나라 때 주민들은 10월이면 빠짐없이 치우천황 할아버지의 능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능에서는 붉은 기운이 뻗어 나와 깃발 모양의 연기처럼 날리는데 이것을 치우의 깃발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붉은 기운을 치우천황 할아버지의 영혼이라 믿었는데 그 영혼은 천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현상은 헌원의 도읍지에도 나타났는데 헌원은 치우천황 할아버지의 영혼이 머무른다고 믿어 헌원도 영원히 치우천황할아버지를 따랐다고 한다. 치우천황 할아버지는 우리 민족의 불세출의 영웅이며, 중국 오랑캐들조차, 신의 자손을 알아보고 숭배하며 수호신으로 모셨다.
황제 헌원과의 싸움 이후 중국인들 사이에서 위급한 상황이 되면“36계 줄행랑을 치자.”를 외치며 도망가는 습성이 생겼다. 이것은 36궁에서 오신 치우천황 할아버지의 위력과 괴력에 두려웠음을 느껴 사시나무 떨듯이 도망가는데서 유래되었다.
치우천황 할아버지와 황제 헌원의 싸움은 우리 역사에서 분열의 시점이었다. 그 싸움은 후에 전쟁의 불씨가 되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줄 어느 누가 알았겠는가! 이는 우리 민족들이 역사적으로 치욕적인 수모를 당하고, 패배를 당하는 형제간의 싸움의 시작이었다.
◆ 도깨비
치우천황 할아버지는 예전부터 전해오는 도깨비 신으로 유명하다. 도깨비는 상상의 동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도깨비의 존재가 처음 나오게 된 것은 치우천황 할아버지의 용맹성에 의한 지나족의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 미개하게 살아가던 지나족들은 배달국을 신국(하늘님 나라)으로 알고 있었다. 그들은 배달국이 철기와 청동기를 이용한 그 시절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갑옷과 투구를 만들어 최첨단의 문명을 이루었다는 것을 모른 채 살아갔다. 그들은 치우천황 할아버지의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투구)를 하고 큰 안개를 일으키고 천둥, 번개를 다루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두려움에 떨며 도깨비 형상으로 본 것이다.
그 후부터 치우천황 할아버지를 ‘전쟁의 신’으로 우러러 봤다고는 하나 사실은 곰자리자손으로서 지상을 점령하신 것을 미개한 지나족이 봤을 때는 엄청난 괴력의 힘을 발휘하는 분으로 바라 봤기 때문에 그렇게 평가가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현존하는 사학계를 주름잡고 있는 민족 사관들은 치우천황 할아버지 존재조차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데, 중국 쪽 문헌 곳곳에서 높이 평가 된 흔적이 남아 있다. 후손들은 치우천황할아버지를 도깨비 상으로 해서 위용과 기상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건축물, 공예품, 무덤이나 심지어 제기 등에도 각종 장식 문양으로 즐겨 써왔다.
우리나라의 60년대 반공표어와 쥐약 광고에 도깨비 상이 그려져 있다. 자손들 중에 정신, 얼과 혼이 희미하게 살아있는 이가 있어 그 도깨비 모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사용해왔다. 반공 표어에 그려진 도깨비 모습은 머리에 뿔이 나고, 눈은 부릅뜨고, 귀는 크고, 무섭게 생긴 표정으로 창을 들고 서 있으면서 빨강색 옷을 입고 있다.
적색의 의미는 천산의 남쪽에 있는 태백산을 가리키며, 태백산은 하늘의 남쪽에서 지상에 내려와 오늘날 무속으로 전해오는 산신의 의복이 적색인 것과 같다. 빨갱이라는 어원은 지나족들이 우리의 치우 천황님의 모습을 보고 사용한 말이다. 지금의 중국과 북한의 국기가 빨간색 별로 되어 있는 것은 우주의 별자리인 은하세계를 뜻하며, 배달국을 흉내 내어 만들어졌다. 그래서 오늘날 남북이 갈라져서 북한군을 빨갱이라고 한 것처럼 보이나, 본래는 지나족들이 한웅천황님의 갑옷과 투구를 보고 무서워 도깨비로 표현하고 적색을 사용한 것이다.
쥐약 광고도 반공표어에서 나와 있는 도깨비의 모양과 비슷한데 치우천황님께서 지상의 천부적인 요새로 이룬 땅, 비옥하고 기름진 땅을 쥐새끼처럼 점점 파고들어 우리 땅을 훔쳐 먹는 것을 발로 밟은 모습이다. 여기서는 중국인들을 쥐새끼로 표현했다. 그러나 우리 자손들은 그것도 모르고 선조님들이 물려준 그 땅을 그림자도 밟아보지 못하고 있다.
기원전 2500년경 황하문명과 인더스 문명이 발흥되었다.
✤ 배달국 시대의 종교, 문화
배달민족은 삼신일체사상과 천부사상으로 살아왔다. 종교를 초월한 하늘의 민족, 하늘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이는 후에 모든 종교의 근본이 되었다.
삼신은 하늘과 땅, 인물이 사는 세상을 다스리는 신을 말한다. 하늘세계의 만물을 다스리는 신을 대일신(하늘님)이라 하고, 은하세계의 땅을 다스리는 일을 일지성신(칠성님)이라 하고, 태양계의 인물들을 다스리는 신을 천지신명(철인)이라 한다. 삼신일체는 삼일 신고를 말한다.
대우주, 중우주, 소우주를 관장하시는 분을 삼신일체라 한다. 천, 지, 인 삼신이 하나라는 우주관으로 천부사상을 가졌던 것이다. 삼성께서 종교, 정치, 문화의 최고 통수권자가 되는 것이다. 삼성께서는 소도를 쌓고 하늘에 제천의식을 치렀다. 소도를 신단이라고 불렀다.
해마다 5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소도에 나아가 천신께 제천의식을 주관할 때 주위에는 금줄을 그어 부정을 살만한 일을 삼가토록 했다. 지금도 아이를 놓으면 금줄을 쳐서 부정 타는 일을 막는데 유래는 우리 선조들의 제사의례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수국들이 모이는 태백산은 천부사상으로 천부적인, 천연적인 요새의 땅으로 비옥하고 기름진 땅이다. 그러나 단군 조선 개국의 성지는 잘못 알려져 평양으로 알고 있었다. 요즘에는 우리 민족의 성지가 현재의 한반도가 아닌 하얼빈의 완달산 또는 백두산으로 바뀌고 있으나 정확히 태백산 신단수이다. 예전에는 그렇게 비옥했던 땅이 지금은 사막화 되어가고 있다. 현재 그 땅에서 살고 있는 자들이 대지인 어머니의 뜻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한웅천황님의 정신혼과 얼이 담긴 지상낙원을 파헤치고 환경오염을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사스나 조류독감으로 인한 전염병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 하늘이 내린 벌을 그대로 받고 있는 것이다. 하루 빨리 정신 차리지 않으면 사막화되어 황무지가 될 것이다. 그 동안 중국사관들의 흉내를 낸 반도 사관들은 무지하고 나약한 자신들을 숨기며 자리 지키기에 바빠 우리의 소중한 역사를 잃어버리고 있다.
신시가 자리 잡히자 한웅천황은 고시례로 하여금 먹여 살리는 임무를 담당시키고 이를 주곡이라 했다. 이 고시례는 지금도 농촌에 가면 들밥을 먹기 전에 ‘고시례’하며 숟가락에 밥을 떠서 던지는 습관이 있다. 이는 한웅천황 시대의 고시례에 대한 감사의 예의다. 이 삼신할미는 한웅천황님의 역할을 말한다.
이 시대에 토주대감(터줏대감) 업주가리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토주 대감을 집터를 지키는 신으로 모셔졌고, 또 성조대군은 집의 발원을 비는 신이었다. 업주가리는 삼신께 곡식을 주셔서 감사함을 전하고 다음해에 농사지을 제일 알찬 곡식의 씨앗을 담는 그릇을 말한다. 봄에 씨앗을 부려야 가을걷이를 하는 이치이다. 한웅천황은 천부경을 기록한 신지혁덕에게 문자를 만들도록 명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신지씨는 대대로 황명을 받아 전하고, 출납의 의무를 맡은 천황님의 측근이었다. 그리고 돌이나 바위에 새겨 남기기도 했다.
어느 날 한웅할아버지께서 무리들을 거느리고 사냥을 나갔다가 사슴 한 마리를 보고 활을 날려 쏘려 했으나 사라졌다. 사슴을 찾다가 모래에 사슴 발자국이 찍힌 것을 보고 신지혁덕에게 문자를 만들게 했다. 신지씨는 그 명을 받아 만물의 모양을 관찰하여 문자 만드는 법을 깨달았다. 이 것을 태고 문자의 시작이며 지금의 중국 곳곳의 바위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한반도에서는 남해군 이동면 양아리의 계곡 및 경박호의 선춘령과 오소리 사이의 바깥쪽 암석에서 이상한 문자가 새겨져 있는 것이 발견 됐다. 이 시대에 문자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문화 민족이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선사시대의 음악은 무리들이 둘러서서 줄을 지어 합창으로 삼신을 기쁘게 하고 민족의 번성과 민심이 윤택해질 것을 빌었다. 이것을 공수, 또는 두열이라 했다. 이것을 삼국사기는 도솔이라 했다.
* '길위에서 헤매는 한국인'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