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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7. 오! 인간이여)

헬렌마르티나 |2007.03.16 17:44
조회 338 |추천 0
 

7. 오! 인간이여

하나님은 인간을 아주 특별하게 만드셨습니다.

 “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 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6-27)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기에 만물의 영장이라 말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위임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


 인간은 정말로 존귀하게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리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시8:5)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유일하게 자신의 생기를 불어넣어 창조한 조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만 특별히 부여하신 영적인 성품입니다. 인간에게 영적인 성품이 주어졌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적인 성품을 가진 인간은 다른 동물이 할 수 없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깨달아 하나님을 알아볼 수 있는 영적 인식 능력을 말합니다. 영적인 성품은 유전자에 의해서 구현할 수 있는 생물학적인 기능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만 주권적으로 부여해 주신 아주 특별한 성품입니다.

 동물은 혼만 있고 영이 없는 존재입니다. “인생의 혼은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전3:21)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동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존귀함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원숭이를 인간의 조상으로 여기는 진화론자들의 주장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아닐 수 없지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며,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은 존귀한 인간은 동물과 동일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인간이 누구인지, 동무로가 비교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 인간은 무엇인가?

 원숭이와는 달리 인간은 아주 발달된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구상에는 대략 8000가지의 언어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언어들은 수십 만 개 이상의 어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어휘로 아주 다양한 표현을 합니다. 그 많은 언어들 중 특히 한국어는 아주 풍부한 표현이 가능한 언어입니다. 예를 들면, 노랗다;노르스름하다;누렇다;누르스름하다;샛노랗다;푸르다;푸르스름하다;푸르죽죽하다. 등 세밀한 표현을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이러한 정교한 언어를 활용해서 일종의 언어 예술인 문학을 합니다. 소설을 씁니다. 시를 씁니다. 편지를 씁니다.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편지를 쓰는 원숭이를 보셨습니까? 시를 쓰는 침팬지를 보셨습니까? 언어 구사 능력은 동물이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독특한 특권입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대화를 합니다. 연설을 합니다. 전화로 통화합니다. 말로 사랑을 표현합니다. 또한 문자 언어로 역사를 기록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일어낫던 사건들의 기록을 통해 교훈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인간은 참으로 존귀합니다.

 

 (2)인간은 사회적 존재입니다.

 동물들도 사회를 이루어 생활합니다. 하지만 인간만큼 사회적 결속이 뚜렷한 동물은 없습니다. 월급을 받고 직장에 다니는 동물이 있습니까? 인간은 법으로 사회를 통제합니다. 물론 동물도 그들만의 보이지 않는 질서와 법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법은 성문법입니다. 나라에는 헌법이 있습니다. 나라들 간에는 국제법이 있습니다. 각 주마다 그리고 도시마다 그들 나름대로의 성문화된 법이 있습니다. 거기에 판례법이 있습니다. 법에 따라 처벌을 하고, 중대한 법을 어긴 자들은 감옥에도 보냅니다. 동물사회에는 교도소라 불리는 감옥이 없습니다. 인간사회에는 사회의 질서를 위해 성문법을 제정하는 국회가 있습니다. 또한 그 법을 판결하는 사법부가 있습니다. 그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도 있습니다. 아주 잘 발달된 사회적 구조가 인간 사회 속에 존재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똑똑한 동물이라 하더라도 인간처럼 신호등을 만들어 놓고 이를 지키지는 않습니다. 자신들의 땅을 합법적으로 소유하기 위해 땅문서와 집문서를 만드는 동물도 없습니다. 학교를 세워 사회에 적응하는 훈련을 시키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습니다. 인간사회는 정말로 사회성이 고도로 발달된 집단입니다. 어쩌면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것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표징일 수도 있습니다.

 (3)인간은 철학적 존재입니다.

 철학하는 동물을 본적이 있습니까?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라고 고민하는 동물을 보셨습니까? 인생의 의미를 묻는 짐승을 보셨습니까?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낭만적이고 철학적인 말을 하는 동물을 보셨습니까? “이것이 합리적인가?” 아니면 저것이 합리적인가?“를 묻는 짐승을 보았습니까? 이성적인 판단과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모든 사건을 판단하는 짐승을 보셨습니까? 모든 사건을 실험하여 검증해보고 그 다음에 받아들이는 짐승이 있습니까? 인간만이 이러한 것들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인생에 대해 철학적으로 질문할 줄 압니다. 철학적인 사고를 하고 질문하고 답을 찾아 나갑니다. 또한 인간은 집단회의를 합니다. 그들이 한 일들을 비판적으로 토론하고 합리적인 제안을 합니다. 참으로 인간만이 철학적인 존재입니다.

 인간은 예술을 즐깁니다. 음악,미술,사진,조형물,스포츠를 즐깁니다. 돈을 내면서까지 음악회, 미술 관람회, 사진전, 각종 스포츠에 참가합니다. 스스로 옷을 입는 동물을 보셨습니까? 사시사철 다른 옷을 입고, 패션을 따지면서 옷을 입는 동물은 인간 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나체를 부끄러워합니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인간이 문화적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마도 하나님에게 죄를 짓고 하나님을 피하여 숨는 인간의 모습이 바로 옷을 입는 문화로 전환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죄를 지어 숨고 피하는 인간에게 하나님은 옷을 지어주셨던 것입니다. 인간은 옷을 입고 있어야만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동물들은 자신의 알몸을 보여주면서도 아무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렇듯 인간은 문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화재와 역사적 보물들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문화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존귀한 존재입니다.

 

 (5)인간은 도구적 존재입니다.

 자동차나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동물을 보았습니까? 컴퓨터로 인터넷을 즐기는 짐승이 있습니까? 우주여행을 하며 달나라를 다녀 온 동물이 있습니까? 탁구나 테니스를 치는 원숭이를 보았습니까? 아니면 골프를 치는 침팬지를 보았습니까? 인간은 과학을 통해 편리한 도구를 발명하는 아주 특별한 존재입니다. 동물사회에 병원이 있습니까? 의사가 있습니까? 초음파 기계가 있습니까? 아파트에 사는 짐승이 있습니까? 자신의 집을 자물쇠로 잠그고 다니는 동물이 있습니까? 저울을 만들어 무게를 정확히 재는 동물이 있습니까? 어디에서 이러한 도구를 만들 수 있는 지혜가 나오는지 참으로 신기합니다. 도구를 가지고 편리하게 사는 인간은 참으로 특별한 존재입니다.

 

(6)인간은 도덕적 존재입니다.

자신이 잡은 먹이를 놓고 이것을 잡아먹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는 짐승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한 일을 도덕적인지 아니면 비도덕적인지 평가하는 짐승을 보았습니까? 뇌물을 받는 동물이 있습니까? 또한 뇌물을 받은 자를 감옥에 집어넣는 동물을 보았습니까? 인간사회 속에는 도덕과 양심이라는 판단 기준이 있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어떤 일을 하고 싶어도 양심에 꺼리거나 사회적 윤리 기준에 걸리면 그것을 포기합니다. 아직도 인간 안에 하나님의 형상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 양심과 도덕을 강조하는지도 모릅니다. 도덕과 양심을 개인행동의 기준으로 삼는 인간은 존귀한 존재입니다.

  교회를 짓는 동물을 보았습니까? 시간마다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동물은 없습니다. 성경이나 코란과 같은 경전을 가지고 있는 짐승도 없습니다. 헌금을 하는 동물이 있습니까? 찬송하는 짐승이 있습니까? 많은 무리를 모아놓고 설교하는 동물을 보았습니까?

  그러나 우리 인간은 어느 민족이든 종교가 있습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영적인 분이신 하나님을 찾습니다. 영이 없이 혼만 있는 짐승들은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종교를 갖지도 않습니다. 종교적 존재로서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2. 그러나 인간은 타락한 존재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타락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죄를 지은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혹자는 기독교가 죄라는 개념을 만들었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죄는 모든 인간이 겪는 실존하는 현실입니다. 죄는 한 두 사람의 일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죄로 인해 시달리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전7:20)

 아무리 도덕적으로 훌륭하다고 해도 그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의인이 세상에는 한 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10,23)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는 죄의 보편성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우실 겁니다. 그렇다면 죄의 보편성에 대한 증거들을 한 번 살펴봅시다.

 

 (1)죄의 보편성에 대한 증거

 인간 사회에 왜 법이 필요합니까? 그것은 인간들끼리 평화적으로 분쟁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개인적 약속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법적인 강제성을 가진 계약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요즈음은 계약서도 교묘하게 속이는 시대이기에 우리는 계약서마저도 믿기 어렵습니다. 친구나 이웃, 친척에게 빌려주는 돈조차도 아무 증인이 없이 건네주면 낭패를 보게 됩니다. 언젠가 라디오 방송에서 남에게 돈을 빌려줄 때는 은행 계좌이체가 가장 좋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증거가 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는 집은 울타리와 대문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자신의 집을 자물쇠로 잠궈야 합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자신의 아파트를 다섯 개의 자물쇠로 잠그고 다닙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할 때 우리는 차표를 사고 차를 탑니다. 그 차표를 검사받아야 하고, 마지막엔 그 표를 내고 내려야 합니다.

 인간들은 사회의 질서 유지를 위해 법과 규범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부족하여 법을 어기는 사람을 단속하는 경찰과 검찰을 만들었습니다. 법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증거물입니다. 아무도 증거가 없는 발언을 믿어주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녹음하고 녹취한 증거가 있어야만 그것이 효력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서로를 신뢰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왜 공산주의가 실패하고 자본주의가 성공합니까? 철저히 이기적인 인간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면 열심히 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이기적인 속성을 부각시킨 자본주의는 성공한 것입니다. 인간의 건강을 점검하기 위해 개발된 초음파 기계로 우리는 아들인지 딸인지를 구별해서 우리가 원하는 자식을 갖기 위해 낙태를 감행합니다. 이간의 죄성은 이미 인간 삶의 현실 속에 가득 차 있습니다.

 

 (2)죄란 무엇인가?

죄란 인간이 하나님의 의도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을 때 하나님은 인간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불순종했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이탈되었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죄입니다. 이 원죄가 그의 자손인 인류에 전달되었지요. 우리는 이를 죄의 유전이라 말합니다. 우리에게 유전된 죄는 ‘죄를 지으려고 하는 성향’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인간의 내적인 악함’이 바로 우리의 죄입니다. 여러분! 유전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섭습니다.

우리의 나쁜 성격, 습관 등은 대를 이어 우리 자손에게 전달됩니다. 요즈음 현대의학에 의하면 당뇨, 고혈압, 갈질환 같은 질병들도 유전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인간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경향이 아직도 사람들 가운데 팽배해 있습니다. 그것이 현실 속에서 과학만능주의로, 철저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로, 무신론적 철학으로, 공산주의 유물론으로, 진화론으로 드러납니다. 살인하며 강도질하며 거짓말하는 인간들의 모습은 하나님을 떠나면서 타락하게 된 인간의 면모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죄인임을 보여주는 증거가 됩니다.

 당신은 인간의 도덕과 윤리를 내세우고 싶으실 겁니다. 당신은 스스로 다른 사람보다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선함은 하나님의 선함에 다다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덴마크의 유명한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는 인간의 윤리를 “가면”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시말해 인간은 도덕적인 삶을 살지 못하면서도 마치 도덕적인 삶을 사는 척 위선적인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윤리는 아이러니입니다. 윤리적인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이기심과 악함을 교묘히 숨기는 것입니다. 윤리적 삶은 이런 아이러니한 위선적 삶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위장된 삶의 반복에 절망하게 됩니다. 이 절망이 바로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우리는 실제 행하지 않더라도 머릿속에서 이미 많은 죄를 짓고 있습니다. 죄의 현실은 우리의 생각이라는 은밀한 곳에서 수도 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7-28)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요1서3:15)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통해 얼마나 살인하고 간음하는지 모릅니다. 실제로 우리의 죄악된 생각이 행동으로 나타나서 남을 죽이고 간음하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하며 질투하고 시기하는지 모릅니다.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하루에도 여러 사람을 생각으로 죽였을 것입니다. 혹자는 감옥에 있는 사람은 들킨 죄인이고, 감옥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은 들키지 않은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거짓말을 할 뿐만 아니라 진실을 교묘히 과장하거나 왜곡하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중상하고 비방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적수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뜨리고, 남을 우롱하는 농담을 하며, 거짓 증언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의도적으로 침묵함으로써 진실을 밝히지 않고 거짓을 옹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법과 윤리와 도덕은 인간들의 생각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죄악들과 교묘하게 행해지는 일상의 죄악들을 보지 못합니다. 인간은 악하고 더러운 생각을 감추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를 보고 계십니다. 죄악을 행하고 있는 우리 자신과 하나님만이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의 죄에 대한 유일한 증인입니다.


(3)죄의 결과는 무엇인가?

1.하나님과의 교제가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영적인 존재인 인간은 영이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생명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를 범하였기에 더 이상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발함이라.”(사59:1-2)

더 이상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이 경험하게 된 영적인 사망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한번 보십시오. 무신론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인간들은 저마다 하나님이 없다고 말합니다. 아니 하나님이 죽었다고 말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아도 그것을 가능케 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우주와 삼라만상의 질서를 유지하는 자연의 법칙을 깨달으면서도 하나님이 그것을 창조하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 말합니다. 우연히 큰 폭발에 의해 우주가 팽창하였다고 말합니다. 우연히 번개에 맞아 생명체가 탄생되었다고 말합니다. 우연히 단세포 동물이 진화하여 고등 동물인 인간에 이르기까지 발전하였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인간들의 아우성입니다. 자신이 영적으로 사망한 것도 모르고 엄연히 살아있는 하나님을 죽었다고 외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인간 내면 깊은 곳에 숨겨진 하나님의 흔적입니다. 영혼이 죽은 사람들은 갈증을 경험합니다. 세상에 있는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갈증을 느낍니다. 세상 천하보다도 더 큰 구멍이 바로 우리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에 아무리 큰 권력과 재물로도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고후3:5)

우리 영혼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때에 진정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우리 영혼이 비로소 숨을 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은 그 단절된 공간으로 인해 불안을 경험합니다. 인간들이 갖고 있는 까닭모를 공허함은 하나님과의 분리된 공간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 공간을 메우려고 온갖 시도를 합니다. 이러한 몸부림의 결과물이 신문 곳곳에 자극적인 뉴스로 등장합니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돈에 미친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며, 일가족이 함께 자살을 하고, 온갖 엽기적인 사건 사고들이 매일 새롭게 신문 위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또한 영화 속에는 불륜과 폭력과 보복이 난무합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세계 어느 곳이든 동일하게 술집이 즐비합니다. 마약이 극성을 부립니다. 레슬링과 권투 그리고 이종격투기와 같은 폭력 스포츠가 인기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인간이 근원적인 공허감을 메우기 위해 자극적인 폭력과 돈과 향락과 쾌락에 빠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2. 죄의 노예가 됩니다.

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킬 뿐만 아니라 죄의 노예가 되게 합니다. 죄는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를 잡고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인간이 짓는 많은 윤리적인 잘못들은 단지 외적으로 나타나는 죄의 현상에 불과합니다. 진짜 본질적인 죄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부패한 속성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렘17:9)

교육학자들은 교육을 통해 어린이들을 선한 인간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교육이론들이 만들어지고 실행되어 왔지만 세상은 여전히 악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3.인간은 하나님 없는 자유를 추구하지만 그것은 대단한 착각입니다.

하나님 없는 자유가 착각에 불과한 이유는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죄악된 본성이 자리 잡고 있고 그 본성으로 인하여 인간은 결국 죄의 노예가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홀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막7:20-23)

인간안에 있는 이러한 마음의 부패성은 하나님보다 우리 자신을, 그리고 세상의 물질과 쾌락을 더 사랑하려는 성향으로 나타납니다. 결국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자유롭지 못하고 죄의 노예가 될 뿐입니다.

 실제로 죄를 짓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는 죄입니다. 태초에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선하게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선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해도 무엇인가에 끌려가게 됩니다.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은 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게 됩니다. 생각으로는 진실을 말하려고 했는데 나의 입은 벌써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나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왜곡된 마음, 부패한 마음을 경험합니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롬7:15)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 도다.”(롬7:18-19)

 이것이 바로 인간이 지나게 되는 절망의 깊은 골짜기입니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바로 ‘죄의 성향’입니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7:20)

정직하고 선하게 살고 싶은 의지는 우리에게 있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게 막는 죄의 성향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착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악하게 살고 싶은 마음과의 전쟁에서 자주 패하게 되는 것이지요.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자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자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롬7:23)

죄를 이겨낼 능력이 없는 인간! 절망 중의 절망 가운데 있는 인간! 바울은 이것을 ‘사망의 몸’이라고 부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7:24)

우리에게는 해답이 없습니다. 이에 대해 상담해 줄 사람을 찾아보지만 그 역시 동일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인간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종교로 돌아가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의 비양심과 뻔뻔한 행위들에 상처받은 내 마음을 어떤 종교가 위로해 줄까? 그리고 점점 선함을 잃어가고 있는 나의 지치고 병듬 모습 속에서 점차로 멍이 들고 있는 나의 양심을 어떤 종교가 구원해 줄 수 있을까? 인간의 악함의 근원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고민했던 당신에게 이제 기독교가 보이십니까?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예수! 과연 그는 누구일가요? 항상 이상하게만 느껴지던 그가 나의 마음속에 손짓하며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예수!그가 내게 오고 계십니다.

 

- 참고문헌 : 예수 그가 다가온다 - 정성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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