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 속에서도 엇갈리는 예수의 행적
예수에 대해서 그의 실존성을 논함에 있어서 4복음서는 증거자료가 될 수가 없다. 우선 위에서 설명해 놓았듯이 역사적으로 상치되는 부분이 많고 4복음서 내에서도 서로 어긋나는 부분이 무수히 존재한다. 예수에 대해서 묘사한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서를 4복음서라고 말하는데 이중 요한복음은 매우 신비적이고 영지주의적인 저술로 인해서 요한복음을 뺀 나머지 3복음서를 공관복음서라고 한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복음서들은 예수에 대해서 세세한 점에서는 서로 어긋나고 있다. 우선 예수의 혈통과 출생에 대해서 알아보자. 오로지 두 복음서들만이 즉 마태복음 누가복음만이 예수의 혈통과 출생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두 복음서들도 서로 크게 상충되어 있다.
[마태복음 1장1절-16절] 아브라함 - 이삭 - 야곱 - 유다 - 베레스 - 헤스론 - 람 - 아미나답 - 나손 - 살몬 -보아스 - 오벳 -
이새 - 다윗 - 솔로몬 - 르호보암 - 아비야 - 아사 - 여호사밧 - 요람 - 웃시야 - 요담 - 아하스 - 히스기야 - 므낫세 - 아몬 -
요시야 - 여고냐 - 스알디엘 - 스룹바벨 - 아비훗 - 엘리아김 - 아소르 - 사독 - 아킴 - 엘리웃 - 엘르아살 - 맛단 - 야곱 - 요셉 - 예수
[누가복음 3장 23절-38절] 하나님(=야훼) - 아담 - 셋 - 에노스 - 가이난 - 마할랄렐 - 야렛 - 에녹 - 므두셀라 - 레멕 - 노아 -
셈 - 아박삿- 가이난 - 살라 - 헤버 - 벨렉 - 르우- 스룩 - 나홀 - 데라 - 아브라함 - 이삭 - 야곱 - 유다 - 베레스 - 헤스론 -
아니 - 아미나답 - 나손 - 살몬 - 보아스 - 오벳 - 이새 - 다윗 - 나단 - 맛다다 - 멘나 - 멜레아 - 엘리아김 - 요남 - 요셉- 유다 -
시므온 - 레위 - 맛닷 - 요림 - 엘리에서 - 예수 - 에르- 엘마담 - 고삼 - 앗디 - 멜기 - 네리 - 스알디엘 - 스룹바벨 - 레사 -
요아난 - 요다 - 요섹 - 서머인 - 맛다디아 - 마앗 - 낙개 - 에슬리 - 나훔 - 아모스 - 맛다디 - 요셉 - 얀나 - 멜기 - 레위 -
맛닷 - 헬리 - 요셉 - 예수
이것이 복음서에 있는 예수의 족보로 마태는 아브라함부터 내림차순으로 누가는 오름차순으로 기록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다윗에서 예수까지이다. 마태는 다윗이 예수의 27대조라고 기록한 반면 누가는 42대조라고 했다. 같은 성경 내에서 이럼 모순이 있을 수 있나?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정당하고 합법적인 왕은 아니지만은 다윗으로부터 솔로몬을 통하여 계승된 귀족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의 가문은 다윗의 집안으로부터 이어져온 가문이긴 했지만 약간 지위가 낮은 가문이었다. 특히 마태복음의 기자는 수비학 (numerology)에 기반을 두고 신비감을 조장하려고 한 흔적이 있다. 마태복음이 기자는 14씩 세 번에 걸친 역사상 분수령이 된 사건들에 예수의 계보를 위치시킨 것이다.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 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 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 네 대러라. [마태복음 1장 17절]
히브리어에서 일곱은 영적인 숫자이기 때문에 예수의 계보를 7로 나누어지는 묶음으로 만들고 그렇게 묶음으로써 예수의 탄생이 바빌론 유배와 다윗 왕 자신만큼이나 중요한 역사적 사건임을 표시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발견할 수 있다. 마태복음의 기자는 반으로 나뉘면 7이라는 숫자의 마법적인 특성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완전한 세 묶음의 14를 만들어 내기 위해 열왕기상 3의 계보에 나오는 요아스, 아마지야, 아조리야를 빼먹었고, 여고니야를 두 번 세는 실수를 범했다. 마태복음의 계보에 의하면 예수는 다윗왕 자신의 세 번 그리고 한 번의 일곱 번째 아들이라 말할 수 있는 것으로 실로 인상적인 계보이며 고대 세계와 특히 초기 그리스도교에 수비학이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초대교회시절 이교도 비평가들은 기독교도가 이집트 학자들로부터 배운 궤변(속임수)과 마법을 수행한다고 비난했다. 반면에 한쪽이 요셉의 계보이고 다른 한쪽은 마리아의 계보일 것이라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피력되었는데 불행하게도 그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 그런 주장을 하려면 마리아가 다윗 가문의 후손일 수밖에 없지만 요한을 낳은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사촌으로 묘사되어 있다. 엘리사벳은 레위 가문이었다. 또한 두 복음서 모두 예수의 바로 윗사람을 요셉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둘 중하나가 마리아의 족보라면 어째서 마리아의 이름이 없고 요셉의 이름만 등장하는가? 이러한 주장은 두 복음서의 불일치를 어떻게든 은폐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는 광신자들의 헛수고라고 말해두고 싶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출생 설화도 역시 천체에서 별들이 올바른 위치에 있을 때 예수가 태어나게 함으로써 점성술적 마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신화적인 요소들은 복음에 활력을 넣지만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마법적 특성을 부가시키는 이러한 첨가들과 예수가 태어날 때 동방박사(마법사)들이 방문했다는 이야기는 이교도 개종자들을 위해 예수를 그리스화 하기 위한 목적일 것이라고 가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예수의 가난한 목수의 전설이 생긴 것은 누가복음의 설명에 근거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두 개의 족보는 너무나 크게 불일치하기 때문에 스석들은 두 명의 상당히 다른 개인들을 가르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누가복음에 의하면 세례 요한과 예수는 친척인데 다른 복음서에서는 둘은 전혀 안면이 없는 모르는 사람으로 나온다. 복음서들 사이의 불일치는 예수의 가문과 족보에 관한 문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가 출생했을 때 목자들의 방문을 받았지만 마태복음에 따르면 그는 박사들의 방문을 받았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 가족은 나사렛에 살고 있었으며 인구 조사를 위하여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여행을 떠나 그곳의 구유 속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그러나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의 가족은 유복한 생활을 하면서 쭉 베들레헴에서 살아 왔었고 헤롯대왕의 유아 박해 때문에 예수의 가족은 이집트로 떠나게 되었으며 그들이 나사렛에 정착한 것은 이집트에서 돌아온 후였다. 정리하면 누가복음서는 나자렛-베들레헴-나자렛이라는 장소 이동을 따라 예수 탄생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 반면 마태복음서는 베들레헴-이집트-(베들레헴)-나자렛의 방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한편 두 이야기는 탄생 시기에 관해서도 전혀 견해가 다르다. 먼저 마태복음서는 예수가 헤롯대왕이 죽기 직전(BC 4년 이전)에 탄생한 것으로 묘사한다. 반면 누가복음서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인구 조사령을 내릴 때 그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가이사 아우구스도의 인구조사가 있었다고 가정해도 때는 AD 6년 이후에나 가능하다. 그렇지만 그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될 수 없다. 한편 누가복음의 그 다음 구절은 중요한 역사적 정보를 제공해준다. 그 때가 퀴리니우스가 시리아의 총독 재임시절(AD 6-7년)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이는 누가복음 2장 2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당시 인구조사가 있었을 법한 일이 있다. 그것은 헤롯의 영토 중 유다와 사마리아, 이두매 등을 상속받아 통치하던 헤롯 아르케라오스가 축출되고 로마 황제가 파견한 총독이 이 지역을 관할하던 시기가 바로 AD 6년이었던 것이다. 새로 부임한 총독은 자기 관할 지역의 조세부과를 위해 인구조사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 조사 지역은 나자렛이 포함된 갈릴래아 지방과는 무관하며 따라서 다른 통치자의 관할지에 살던 나자렛의 두 남녀가 베들레헴으로 와서 인구조사를 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아무튼 두 복음서는 예수의 탄생시기를 각각 BC 4년과 AD 6년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쯤 되면 베들레헴 탄생설을 논하는 성경의 묘사를 역사적 정보로서 받아들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했을 것이다. 실제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서의 탄생 이야기 부분(7회)을 제외하고는 신약성서의 어디에도 단 한번의 예외를 제외하고는(요한 7장 42절) 예수의 탄생지를 베들레헴으로 언급하는 경우는 전무하다. 반면 예수가 나자렛 출신임을 보여주는 본문은 얼추 30회 이상이나 된다. 나자렛이라는 지명이 구약성서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무명의 곳임을 감안할 때 또 베들레헴이 구약성서에 최소한 10회 이상, 특히 그 유명한 다윗의 고향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학자들이 베들레헴 탄생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데 합의하게 된 것은 지당하다고 하겠다. 어쨌든 이들 각자에 나오는 설명에 나오는 정보는 상당히 독특하며 인구조사가 있었다고 가정해 볼 때 전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정보 자체는 전혀 일치 하지 않으며 이러한 모순은 합리적으로 설명 될 수 없다. 기독교인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간에 그 복음서 둘 중에 하나가 잘못 되었던지 두 가지 모두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은 인정되야 한다. 그 복음서들이 서로 상충되고 있는데 어떻게 신성불가침의 것이 될 수 있는가? 마태복음 20장 29절-34절에 따르면 예수는 예리고를 떠날 때 맹인 두 명이 눈을 뜨게 해달라고 부탁하자 예수가 그들의 눈을 손으로 만지니 앞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가복음 10장 46절-52절에 따르면 바르티매오라는 맹인 한명이 예수에게 자비를 구한다. 두 사건은 똑같은 사건을 언급한 것으로 두 복음서 모두 예리고를 떠날 때 예수가 베푼 기적이었고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라는 맹인의 하소연이나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라고 묻는 예수의 말이나 모두 똑같다. 똑같은 사건이지만 맹인의 숫자와 그 치료방법도 각기 다르다. 마태복음 20장 20절-21절에 따르면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와서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반면에 마가복음 10장 35절-37절에 따르면 야고보와 요한이 직접 예수에게 부탁을 하게 된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들도 예수를 모욕하였다. [마태복음 27장 44절, 마가복음 15장 32절]
십자가 사건 때 누가복음에는 두 강도 중 한 강도는 회개해 구원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두 강도 모두 예수를 모독했다고 기록되어져 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의 예수의 마지막말에 대해서도 불일치하고 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다. 누가 복음에선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의 하는 것은 저들이 알지 못하나이다.” 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는 단지 “다 이루었다.” 라고만 되어 있다. 그리고 예수의 승천역시 문제가 있는데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에는 승천에 관한 말이 없다. 마가와 누가복음에만 예수의 승천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승천이라는 매우 중요한 사건을 왜 기록하지 않았는가? 참고로 가장 오래된 마가복음의 사본에서는 동굴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는 장면에서 끝을 맺는다. 즉 예수의 승천은 후대에 추가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의 부활도 역시 제각각이다. 마태복음에는 두 마리아가 예수에 무덤에 갔다고 하였으나 마가복음에는 두 마리아와 살로메가 요한복음에는 막달라 마리아 혼자서 예수에 무덤에 갔다고 나와 있다. 그 때 지진이 일어나고 무덤가에 부활한 예수가 나타났다고 기록한 것은 마태복음뿐이다. 새벽에 무덤에 가본 사람들의 숫자와 정체가 불분명하고 동굴 문바위가 치워지는데 지진이 나기도 하고 이미 치워져서 조용하기도 하고 문지기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무덤 안에 한 천사, 한 청년, 두 사람, 두 천사가 각각 서 있다고 하고 그 자리에서 예수를 보기도 하고 보 지 못하기도 하고 보고 만지기도 하고 만지지 말라 하기도 하고 베드로도 달려가 보기도 하고 가지 않았기도 하고 베드로 외에 또 다른 제자가 있다고도 하고, 부활 후 예수가 나타내 몸을 보인 횟수, 보인 무리, 장소, 승천하기 까지의 시간 등등에서 4복음서는 모두 다르게 기술하고 있다. 게다가 마태복음 27장 5절-8절에서 가롯 유다는 예수를 팔아서 얻은 은전을 성소에 내동이치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달아 죽었다. 대사제들은 그 은전을 주워들고는 “이것은 피값이니 헌금궤에 넣어서는 않되겠소.” 하며 의논 끝에 그 돈으로 옹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사도행전 1장 18절에 가롯 유다는 그 은전으로 밭을 샀고 가롯 유다는 땅에 거꾸러져서 배가 갈라져 내장이 온통 터져 나왔다 한다. 예루살렘의 시민들이 모두 이 사실을 전해 듣고 그 밭을 그들 말로 아겔다마(피의 밭)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마태복음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12제자를 파견하면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명령하는 대목 중에 사소하게 어긋나는 것도 있다.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마가복음 6장 8절]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마태복음 10장 10절]
마가복음에는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고 말했으나 마태복음에는 지팡이마저도 소유하지 말라고 나와 있다. 그리고 마태복음 6장과 누가복음 11장의 주기도문도 사소하게 어긋나고 있다. 또한 복음서들은 예수의 생에서 삼십 년 동안에 대해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다. 전도, 즉 그리스도의 공생활은 얼마나 오랫동안 행해졌을까? 마태, 마가, 누가에 따르면 예수의 공생활은 약 일 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 의하면 그의 전도는 삼 년에 걸쳐 행해졌다. 공관복음들은 예수의 공생활이 거의 전적으로 갈릴리에서 이루어졌으며 예루살렘에는 딱 한 번, 죽기 얼마 전에 갔을 뿐이라고 언급한다. 요한복음은 예수의 공생활의 대부분이 유대아에서 행해졌으며 예수가 여러 번에 걸쳐 예루살렘에 갔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갈릴리와 유대아 사이에는 사마리아 지방이 놓여 있다. 만일 예수의 전도 중 마지막 몇 주를 뺀 전부가 그의 고향 갈릴리 지방에서 수행되었다면 그 전도의 상당 부분이 두 지방이나 떨어져 있는 유대아에서 행해지지 못했음은 분명하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가 성전에서 환전상들을 쫓아 낸 것이 전도 초기에 일어난 일이지만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다르면 그 사건은 그의 전도가 끝날 무렵에 일어났으며 이 행위로 인해 그에게 유대교 사제들의 분노가 쏟아졌고 그래서 그들이 그를 처형시킬 방법을 찾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말씀이 서로 짝이 맞는 말, 즉 다른 구절과도 서로 뜻이 통하는 말이어야 하며 반대가 되는 말이 있다면 가짜요, 짝이 있는 말이라야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사야 34장 16절]
이라는 구약의 구절을 무색케 하는 신약의 복음서들.(사실 구약도 마찬가지이지만) 성서는 단지 짜깁기된 하나의 발췌록일 뿐이며 많은 점들에 있어서 어느 정도는 독단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구약과 신약에 모두 적용된다. 사실 성서는 수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책들과 기록들을 수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소실되어졌기 때문에 빠진 책들에 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어떤 책들은 고의로 제외 되었다. AD 367년에 알렉산드리아의 아다나시우스 주교는 신약성서에 수록될수 있는 작품들의 목록을 작성하였다. 이 목록은 393년에 의해 힙포교회 회의에 의해 제가되었으며 4년 후에는 카르타고 교회 회의에 의해 다시 제가 되었다. 이 교회 회의들에서는 신약성서를 발췌하여 구성하자는 데 의견이 일치되었다. 어떤 책들은 수집되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약성서를 협성하였으며 다른 것들은 단호하게 무시되었다. 어떻게 그런한 발췌과정이 결정적인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 어떻게 성직자들의 회의가 어떤 책들은 성서에 속하고 다른 책들은 속하지 않는가를 무모하게 결정할 수 있었는가? 특히 제외된 몇 권이 역사적 정확성에 대하여 완전히 확고한 자격을 가지고 있을 때는 어떤가? 더 나아가 오늘날 존재하는 바대로의 성서는 다순히 다소 독단적인 발췌과정의 산문일 뿐만 아니라 대단히 과감하게 편집되고 검열되고 개정되기도 하였다. 성서에 대한 점은 뒷부분의 성경에 대한 고찰에서 다루기로 하겠다.
~~~ 기독은 반듯이 박멸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