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존재하지 않는 자의 눈물
하늘의 눈을 피하고, 땅의 경계를 피하고(2)
우우우우-
우우-
음울한 노랫소리가 어둠을 타고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수십의 시체들이 한결같이 낮은 노래를 읊조린다. 멍하게 입을 벌린 여인의 시체들.
썩어 가는 목구멍을 비집고, 끊임없이 어두운 음색이 흘러내린다.
단순히 입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내부로부터 울리는 영혼의 비명.
‘이는 분명 사람의 목소리가 아, 아니야…….’
비형랑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음울한 노랫가락은 그의 사기를 무력화 시켰다. 보이지 않는 힘이 팔다리를 옭아매고 바닥으로 주저앉히는 것만 같았다. 그의 동공이 줄어들고 커지기를 반복했다.
하얗게 질린 얼굴이 몽롱하게 풀리는가 하면, 바로 다음순간엔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후들후들
두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시체들이 내뱉는 노래는 잔혹한 속삭임이 되어 그의 깊숙한 내면을 유혹했다.
털썩-
두 무릎이 풀썩 꺾였다.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리고, 더듬거리는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견디기 괴로운 듯, 고개를 마구 저어대는 그의 얼굴이 점차 잿빛으로 굳어가고 있었다.
「눈을 감아… 달콤한 안식이 기다리고 있단다.」
「이제 편히 쉴 때가 됐어. 그만 하면 되었어… 」
「이리 온… 아가… 내 아기…」
아기? 고개를 떨군 비형랑의 얼굴이 순간 멈칫거렸다. 떨리던 표정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온몸의 피가 일제히 끓어오르고, 살기가 강하게 일었다.
튀어나올 만큼 부릅떠진 두 눈엔 시뻘건 핏물이 고였다.
“크아아아아!!!”
주먹을 꽉 쥔 채로, 고개를 치켜들며 분노를 토해내는 비형랑!
광량한 포효가 동굴의 벽을 뒤흔들었다.
쿵쿵쿵쿵
가슴이 세차게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점점 더 창백해져 가는 도화의 얼굴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 곁에 쓰러져 있는 묵운과 흰둥이도 흘깃 보았다. 반드시 지켜야 할 이들!
왼손에 쥐여진 청룡검에 더욱 힘이 실었다.
웅웅
우우웅
주인의 의도를 간파한 명검은 검신을 격렬하게 떨며 그 부름에 답했다.
앙다문 이빨을 비집고 단호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단념하면 바로 그 순간이 죽음이다. ……막는다! 물러서지 않는다!”
투욱-
가벼운 동작으로 청룡검을 허공으로 던져 올렸다. 그리고 손잡이를 거꾸로 쥔 다음, 검날의 끝을 거침없이 한바퀴 휘저었다. 검의 잔영이 허공을 대각선으로 갈랐다.
서걱
소름끼치는 살 베이는 소리가 마지막이었다.
주르륵
그의 두 뺨을 타고 뻘건 핏물이 흘러내렸다. 검으로 자신의 귓가를 베어버린 비형랑.
반쯤 잘린 두 귀가 덜렁거리며 가까스로 제 위치를 지키고 있었다.
아슬아슬한 깊이로 파인 상처덕분에, 다행히 움직이는데 필요한 감각기관은 무사한 것 같았다.
쓰러질 것만 같은 아찔함도 눈 깜박거릴 찰나였다.
뺨을 적시며 흘러내리는 핏물의 뜨거움과 함께 세상의 모든 소리가 텅하니 비어버렸다.
내면의 의식이 안정을 되찾았다. 시체들의 곡소리가 귓가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끈적거리며 팔다리를 잡아끌던 기운들도 거짓말처럼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비형랑 주변의 공기가 무겁게 발을 짓눌렀다.
땀과 피가 흥건한 그의 전신으로 모락모락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귀가 잘려나가도 좋다. 다시는… 들을 수 없게 되어도 좋다.
허나 이 순간이 다시 온다하여도 나는 이렇게 할 것이다.”
흘러내리는 피로 엉망인 얼굴이었지만, 굳건한 두 눈엔 매서운 푸른빛이 번뜩였다.
‘아이를 잃은 애타는 모성의 진혼곡이었더냐?! 누구를 위한?! 처참하게 죽어서도…무엇이 너희들의 발걸음을 잡아, 누워있던 시체를 일으켜 세우더냐…’
결연한 그의 눈빛에 언뜻 슬픈 물기가 스쳤다.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는 시체들.
저벅저벅-
한걸음씩 다가오는 시체들의 몰골은 더없이 처참했다.
갈라진 뱃가죽은 허연 내장덩어리와 괴사한 살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어떤 시체는 죽어서도 한 팔로는 자신의 배를 꼬옥 부여잡고 있었다.
마치 소중한 그 무엇을 지키려는 것처럼.
나머지 한 팔을 다급하게 뻗으며, 휑한 눈으로 구슬픈 노랫가락을 처연하게 읊조린다.
드디어 두어 장 앞까지 다가온 벌거벗은 여인의 시체들.
비형랑을 반원 모양으로 빙 둘러싸며 서서히 옥죄어 오고 있었다.
살이 썩어 들어가는 지독한 악취와 짙은 피 비린내가 일대를 삼켰다.
비형랑은 입술을 꽉 깨물며 시체들이 내뿜는 가공할 사기(邪氣)를 견뎌냈다.
단지 견지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배에 힘을 꽉 주고 청룡검을 가슴 높이만큼 척 들어올렸다. 이미 그의 몸은 너덜너덜한 만신창이에 가까웠다. 허나 그 대단한 정신력은, 마지막 한줌의 기운까지도 짜 내어 검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억울한 시신들이여, …본래의 육신을 놓아두어라. 이제 영원한 소멸을 맞으라. 태청검 제 사(四)장… 비상룡(飛翔龍)!!”
화라락
청룡검에서 푸르스름한 불길이 치솟았다.
팔에서부터 타오르기 시작한 불길은, 날카로운 검날을 타고 거침없이 쭉 내려갔다.
나선형으로 휘몰아치는 광폭한 청룡! 검신을 타고 뻗어나가는 성난 청룡(龍)은 푸른 불길을 험하게 내뿜었다. 비형랑은 두 눈을 부릅뜨고 똑바로 시체들을 노려보았다.
왼손에 쥐여진 청룡검의 검신이 스스로 공명하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댔다.
웅웅
웅웅웅
가장 앞에 서있던 시체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죽어랏! 베고 또 베리라!”
검을 가로로 휘저으며 비형랑이 선포하듯 외쳤다.
타앗-
힘껏 도약한 그는 사선으로 검을 내리 그었다. 검로(劍路)가 흐릿한 잔영으로 남을 만큼 빠른 쾌검이었다. 단칼에 허리춤을 가로로 절단했다.
검에서 뿜어진 푸른 화룡(火龍)은 시신의 잘려진 상반신을 가차 없이 휘감았다.
「꾸아아악-」
끔찍한 비명을 지르던 몸뚱어리는 힘없이 쓰러졌다.
주르륵
쏘아지는 청룡의 반동으로 그의 몸이 서너 걸음 뒤로 밀려났다. 비형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입가에는 푸들푸들 경련이 일었다. 한 줄기 핏물이 가늘게 흘러내린다.
허나 그것은 시작일 뿐.
그 광경을 보고 잠시 주춤거리던 시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캬아아!」
시체들이 포효를 지르며 비형랑에게 달려들었다.
눈코입이 하나로 뭉뚱그려진 징그러운 얼굴, 수십 개가 비형랑을 덮쳤다.
“오너라! 베어주마. 내 어깨를 내어주고 네 목을 거두리라!”
비형랑은 이빨을 더욱 꽉 깨물고 마지막 남은 한 자락의 힘까지 마저 끌어 올렸다.
다리 근육을 비틀어 더욱 강하게 몸을 회전시켰다. 주변에 달라붙어 움직임을 봉쇄하는 것들을 베고 또 베었다. 청룡검은 어지럽게 허공을 수놓으며 시체들을 하나하나 처단했다.
설사 이대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모든 시체들을 눕히리라 마음먹었다.
웅웅-
끊임없이 몰아치는 사악한 기운이 괴로웠던지, 청룡검은 허공에서 검날을 떨었다.
동시에, 검신에 칭칭 휘감겨 있던 누런 고름들과 자욱한 핏물을 가뿐하게 허공으로 털어내었다.
용맹하던 청룡의 위용은, 이미 처음보다 많이 사그라져 있었다.
허나 쏟아지는 시체는 끝이 없었다.
우두둑-
잠시의 틈을 빌어, 더 많은 시체들이 순식간에 비형랑에게 달라붙었다.
덥썩!
한 놈이 비형랑의 종아리를 덥석 물었다.
무는 힘이 어찌나 강했던지 종아리 근육이 끊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이- 노옴!”
노성을 터트리며 재빠르게 세로로 검을 내리 찍었다.
썽둥
목만 남은 얼굴은, 그래도 끈덕지게 물고 늘어졌다. 무는 힘은 전혀 줄지 않았다.
잘린 목 위로 다시 한 번 더 청룡검의 푸른 화마가 휩쓸고 나서야, 가까스로 물은 입을 풀고 종아리에서 떨어져 나갔다.
데구르르-
나가떨어지는 머리통은 입 한가득 벌건 살덩어리를 베어 물고 있었다.
한두 놈이 아니었다. 베어도, 베어도 끝이 없었다. 동시에 수십 개의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이 비형랑의 몸뚱이를 할퀴었다. 검에 의해 잘린 시체의 팔다리는, 스스로 생명을 가진 것처럼 꿈틀거리며 또다시 비형랑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우아아악! 비켜! 비켜라! 모두 눕히리라!”
비형랑은 악을 쓰며 절규했다. 날아드는 공격을 인정사정없이 검으로 내리그었다.
점점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와는 반대로, 달려드는 시체들은 지칠 줄을 몰랐다.
몸뚱이를 잘라도 그 잘린 몸뚱이가 또 다시 기어와서 그의 육신을 물어뜯었다. 검을 휘두르는 두 팔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손목 아래로는 저릿한 느낌만이 아련했다. 그의 강철 같은 정신력이나, 천하의 보검인 청룡검이 아니었다면 골백번은 더 쓰러졌을 터였다.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려 정신이 가물가물해져 오려고 했다. 허나 바락바락 악을 썼다.
마지막 남은 발끝의 기운 한 자락까지 끄집어 올렸다.
투두둑-
시체들의 우악스러운 악다구니에 칭칭 묶어 두었던 오른쪽 어깨의 천이 홱 뜯겨져 나갔다.
와드득
넝마가 된 오른쪽 어깨가, 아까보다 한층 더 흉하게 내려앉았다.
피부가 잿빛으로 굳으며 괴사하고 있었다.
벌어진 피부가죽 틈으로, 시체들의 피고름 낀 손톱이 파고들었다.
벼락같은 고통이 전신을 관통했다. 순간적으로 그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 틈을 타고 수십 개의 텅 빈 눈동자가 비형랑을 노리며 와르르 달려들었다.
비형랑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호흡마저 멈추어 버린 것 같았다.
몸에 난 터럭 한 올마저 꼿꼿하게 멈추어 버렸다.
자신의 귀를 베어버린 순간부터 비형랑에게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고요했다. 무(無)의 정적.
다만, 다만 펄떡이는 자신의 심장소리만이 하얀 머릿속을 크게 두드렸다.
털썩-
무릎을 꿇어 버렸다. 수십 개의 손과 발이 거침없이 전신을 난자했다.
허나 이미 오래전부터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쿵쿵쿵쿵
무서운 속도로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쓰러진 비형랑은 반사적으로 뒷걸음치며 도화를 감싸 안았다.
두 눈을 꾹 감아버렸다. 그리고 방패처럼 무작위로 청룡검을 휘둘렀다.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그는, 소년의 신변을 지키고자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저 세상은 조용했다. 불규칙적으로 울리는 심장소리만이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소년의 몸 위에 엎드린 채 정신없이 팔을 휘두르던, 그때였다.
지금까지 시체들이 풍기는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존재감이 등 뒤에서 느껴졌다.
온몸의 세포들이 바짝 얼어붙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단하다! 이 엄청난 위압감!
그의 뇌리에 잔혹하게 떠오르는 존재는 단 하나.
‘아아아… 아니 된다. 서문탁 그 자인가…!’
비형랑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더 이상 검을 휘두를 기운은 털끝만큼도 남아있지 않았다.
‘동귀어진(同歸於盡)…. 같이 죽자. 할 수만 있다면!’
신발 품안에 넣어든 비도를 슬그머니 끄집어 들었다.
천천히 셋을 센 다음 단번에 요혈을 노릴 참이었다. 일다경이상 쓰러지지 않고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가 막 둘을 센 다음이었다.
홱-
조마조마하게 방심하던 차에,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홱 끄집어 돌려 누였다.
상대의 당황스러운 급습에 놀라, 그만 들고 있던 단도를 떨어트렸다.
챙그렁-
절망이 깊이 묻어나는 눈으로, 고개를 들어 대상을 확인하는 비형랑!
‘아아아아……!’
시원하게 벌어진 두 눈으로 굵은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피와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은, 상대를 올려다보며 서럽게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리곤 어린아이처럼 히죽히죽 웃었다.
비형랑은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힘겹게 끌어 올려 소년을 들어 안았다.
푸르스름한 잿빛으로 굳어가는 소년의 얼굴.
쿠쿵-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비형랑을 내려다보는 이는, 바로 맥궁을 쥐어든 한영이었다.
* * *
한영은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막았다.
눈동자가 무섭게 떨렸다. 뭔가가 잘 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그녀의 뇌리를 사로잡았다.
뒤에서 급히 뛰어온 작약이 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찌된 일이냐!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팽가의 집주와 당설희의 호위무사인 유가는 곧바로 땅을 박차며 힘껏 몸을 도약했다.
단 한번의 도약으로 일행의 머리를 훌쩍 뛰어 넘었다. 목표는 걸어 다니는 여인의 시체들.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만 같았다. 시체 무리에게서 느껴지는 섬뜩한 사기(邪氣)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그들의 육감은 상황을 피하라고 다급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정말로 이들의 말이 맞았다는 말인가!’
하지만 다급한 이 순간, 그들은 절실한 마음의 경고를 외면해야했다.
비록 방금 전, 당노인과 혜능대사의 절묘한 합공으로 시체들이 동굴의 한쪽 구석으로 몰리긴 했다. 허나 아직 그 가까이에는, 온통 피를 뒤집어쓴 세 사람과 처참한 몰골의 개 한 마리가 널브러져 있었다. 살아있을 지도 의심스러울 만큼 몹시 위태로워 보였다.
저들이 사파의 악인이고 아니고는 일단 두 번째 문제였다.
그들이 평생 믿고 따르는 신념은, 끔찍한 모습으로 버젓이 걸어 다니는 시체들로부터 살아있는 생명을 구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성깔 꽤나 있어 보이는 사파의 여고수 신궁과 전설상의 존재인 의선역시 쓰러진 이들 곁으로 한걸음에 달려가는 모습이 얼핏 보였다.
자신들의 주군인 팽가의 가주와 당설희 역시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저 쓰러진 자들이 아까 말했던… 이 사기(邪氣)의 끝을 쫒던 나머지 일행인가?’
피투성이의 세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집주와 유가는 망설임 없이 시체더미로 한 가운데로 몸을 내던졌다.
후오옹
두 사람의 검(劍)과 도(刀)에서 시린 아지랑이가 거창하게 피어올랐다.
따당땅당
집주의 도가 크게 회전하며 시체들의 막무가내 공격을 튕겨냈다.
기이하게도 쇠와 쇠가 맞부딪히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넓은 도신(刀身)과 시체의 손발이 부딪히며 불똥을 튀겼다. 허나 시체들의 악력은 대단했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공격을 굳건하게 방어하는 이상, 그 자리에서 꼼짝 할 수도 없었다.
조금 떨어진 곳의 호위무사 유가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쐐애액
힘차게 세로로 검을 내리긋는 유가! 한 치의 오차가 없는 몸놀림이었다.
더없이 날카로운 쾌검이 여인들의 관절과 약점을 노리며 매섭게 파고들었다.
후두두둑
십여 개의 팔다리가 허무하게 잘려져 나갔다. 안도하는 것도 잠시.
꿈틀꿈틀
벌레가 기어오듯 잘려진 팔다리가 유가에게 달려들었다. 두 무사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빌어먹을! 검으로 베고 도로 부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척척척척
뒤늦게 쫒아온 팽가의 정예병들은 시신들의 주변을 단단히 포위했다.
쿠쿵
방패를 힘껏 땅위에 내리꽂았다. 한결같이 긴장된 눈으로 자신들의 상관인 집주의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얼굴 하나하나에는 처음 보는 광경에 대한 두려움과 집주를 걱정하는 충정이 뒤엉켜 있었다. 누구하나 대열을 이탈하는 이가 없었다. 각자의 자리를 의연하게 지키며 이어질 상관의 명을 기다린다. 눈알 구르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였다. 안타깝고 걱정스런 수십의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당노인이 슬그머니 앞으로 걸어 나왔다.
두 무사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던 노인의 주름진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그는 시체들의 상태를 단번에 꿰뚫어 보았다.
“괴이한 지고! 인술이구나, 이는 분명 인술이야! 존재해서는 아니 되는…….”
당노인은 슬쩍 고개를 돌려 혜능대사의 얼굴을 살폈다. 시체 무리를 바라보는 혜능대사의 눈썹역시 파리하게 떨리고 있었다. 비쩍 마른입을 비집고 탄식이 새어나왔다.
“오호… 통재라, 통재라…. 이곳 하북성에 지옥이 열렸구나… 아미타불…!”
당노인은 고개를 크게 끄덕인 후 품안에서 한줌의 흰 가루를 꺼냈다.
사람의 몸을 한 줌에 녹여버릴 지독한 독분(毒粉)이었다. 오른손을 수평으로 뻗어 주변을 한바퀴 휙 휘감았다. 주변의 공기가 밀집되는 것처럼 파장을 이루더니 노인의 오른손 안으로 모여들었다. 가루를 모아 쥔 오른손을 망설임 없이 활짝 열었다.
화르륵
흰 뼛가루 같은 독분이 허공에서 시꺼먼 색으로 불타올랐다.
당노인이 침잠한 얼굴로 작게 중얼거렸다.
“인술을 해지할 수 없다면, 죽은 육신을 모두 없애버려야 해. 쯧쯧. 그것만이 해법이다.”
“성불의 기회조차 잃어버리는 구나… 아미타불!”
허공에서 타오르던 검은 불꽃들이 순식간에 범위를 넓히며 시체더미들을 휘감았다.
검은 불꽃을 본 유가가 재빨리 검을 거두고 집주의 팔을 잡아 당겼다. 굳은 얼굴로 낮게 외쳤다.
“이보게, 어서 여기를 피해야 해! 곧 당어른의 독무(毒霧)가 여기를 휩쓸 것이니!”
“당가의 비전인 독무?!”
팽가의 집주는 재빠르게 유가를 따라 시체더미에서 발을 뺐다. 머리위의 허공에서 춤추고 있는 검은 불꽃들을 보아하니 결코 예사롭지가 않았다.
당가의 호위무사 유가와 팽집주가 무사히 빠져나온 것을 본 당노인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곧바로 두 눈을 꾹 감고 정신을 모았다. 두 중지를 하나로 합친 후 낮은 목소리로 주문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손가락에서 검은 빛 덩어리가 반딧불처럼 피어올랐다.
“모든 것을 삼킬지니, 모든 것은 무(無)로 돌아가게 할지니… 자비롭게 품어라. 독무!”
노인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동시에 검은 불꽃들이 거짓말처럼 사그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서 짙은 흑색의 안개가 내리 깔리기 시작했다.
몽클몽클
허공에서 쏟아진 시꺼먼 흑안개는 뭉클거리며 시체무리 위로 내려앉았다.
「꾸으으읍」
「꾸악-」
시체들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안개에 닿는 부분은 거짓말처럼 녹아들었다.
치지치칙-
츠츳-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독무! 강철까지도 무위로 돌아가게 하는 극독의 안개여!
독무 안에 갇힌 시체들이 정신 사납게 괴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팽집주나 병사들의 등허리를 타고 차가운 한기가 흘러내렸다.
그 오싹한 모습에, 여기저기서 낮은 신음성이 토해졌다.
“으으으…”
굳은 얼굴의 혜능대사가 한발 앞으로 나섰다. 삐쩍 마른 노승은 피골이 상접한 두 팔을 어깨 높이로 들어 올렸다. 대사의 이마위에 찍힌 세 개의 점이 짧은 순간, 누런빛을 띠었다.
동시에 그의 갈비뼈 부근이 꿈틀거렸다. 날개와 같은 푸른 기운이 쭉 솟아올랐다.
슬픈 눈으로 녹아드는 시체들을 보는 혜능. 작은 소리로 무어라 속삭였다.
“……성불하라.”
후웅 후우우웅
등 뒤에서부터 뻗어 나간 기운은 엄청난 크기의 날개와 같은 형상이었다.
푸른빛의 향연은 뭉클거리는 독무 전체를 온전하게 감싸 안았다.
손발이 꽁꽁 얼 만큼 눈이 시린 푸른 기운이었다.
혹은 너무나도 맑아 잡다한 색이 없는 청(靑)기 이기도 했다. 혜능의 날개는 독무를 감싸 안았다.
그 이름은 자비(慈悲).
독무에 녹아들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대던 시체들이, 푸른 날개의 품안에서 허우적거리던 손발 짓을 멈추었다. 멍하니 서서 휑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체들.
그렇게 서른 구가 넘는 시체들은 저항을 멈춘 채 한줌의 재도 남기지 못하고 녹아들었다.
츠츳-
독무가 걷히고 날개가 거두어진 자리에는 작은 돌멩이 하나, 이끼 한 포기 남지 않았다.
당노인은 저벅저벅 앞으로 걸어 혜능 대사의 곁으로 갔다.
“의선의 말이 사실이었군요! 분명히 서문탁이라는 자가 무엇인가를 꾸미고 있습니다.”
“아미타불…. 그것은 노승이 이미 짐작하고 있던 바 이지요. 아마도 상황이 더 심각해진 듯싶습니다. 통재라, 통재….”
“대사, 내 평생 누워있던 시체들이 버젓이 돌아다니는 꼴은 태어나서 처음 봅니다.
혹여 그자가 벌써 일이 벌인 것은 아니겠지요?”
“시주께서는 저 동굴 안쪽에서 울려오는 이 음습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아미타불… 소승의 힘으로 과연 저 힘을 대적할 수 있을지 조차 의문입니다.”
“어째서, 어째서 정파의 기둥인 하북성의 한가운데에서 이런, 이런 일이…!”
“이 모든 것이 아집으로 뭉친 우리의 과오입니다. 이 어리석은 노승조차도 가주의 집무실에서 편견에 사로잡혀 신궁과 의선을 경계하고 칼을 뽑아들었지 않았습니까…! 아미타불….”
“……그, 그건!”
당 노인은 말문이 막혀 그만 입을 딱 다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방대편의 일행을 바라보았다.
한쪽에서는 작약이 쓰러져 있던 일행들을 급히 진맥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의 시선이 의선작약에게 머물렀다.
* * *
일다경 전까지만 해도 작약과 혜능은 가주의 집무실 안에서 팽팽하게 접전하고 있었다.
허나 신선의 초입을 바라보는 그들은, 서로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운에 의문을 품었다.
혜능대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의도를 알아차린 작약이 현명하게 응수했고.
두 사람은 폭발할 것만 같았던 기운을 거짓말처럼 거두어 들였다.
의미심장한 대화를 이어가며 서로간의 오해를 대충 풀 수 있었다.
작약과 신궁이 팽가주를 헤하려 잠입한 자객이 아니었음이 분명하게 밝혀졌다.
또한 한영은 팽가주가 서문탁과 함께 일을 벌이는 원흉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허나 그대로 물러설 수는 없는 일.
한발 물러선 작약은 놀라운 이야기를 토해냈다. 팽가주의 낭군인 서문탁의 행적과 그간의 행실들.
그리고 지금 그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괴이한 일들까지.
한영이 중간 중간 이야기에 끼어들며 분노를 터트렸다. 놀란 표정을 다물지 못하는 당가의 일행과는 반대로 팽가주를 비롯한 집주와 군사들의 표정은 암울하게 굳어갔다.
치부. 감추어 두려고만 했던 곪아가는 썩은 상처. 무언의 시인.
모두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을 때였다. 하북성 전체가 커다란 기의 파동으로 흔들렸다.
절정고수인 작약과 혜능이 그 불긴한 파동을 놓칠 리 없었다. 그들은 두 말없이 근원지로 몸을 날렸다.
모두들 내심 짐작하고 있는 바가 있었다.
‘설, 설마 우려하던 일이 벌어진 것인가!’
작약과 한영 그리고 혜능이 가장 앞장섰다. 그 뒤를 굳은 얼굴의 팽가주와 노부가 급히 따랐다. 당설희낭자와 유가 그리고 당노인은 눈빛을 빛내며 빠르게 뒤를 쫒았다. 마지막으로 집주가 정예병을 인솔하며 일행을 호위하듯 몸을 날렸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벌어진 광경을 본 일행은 그 끔찍함에 치를 떨었다.
지독한 악취와 피비린내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꺄아아악!”
가녀린 당설희는 두 뺨을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그녀를 부축하는 팽가의 가주!
당노인은 곧바로 우보법을 밟아 시체들을 결박했다. 혜능은 기다렸다는 듯이 막강한 권풍을 쏘아내어 우왕좌왕하는 시체무리를 우르르 구석으로 몰았다.
동시에 집주와 유가가 시체들의 한가운데로 날아들었었다.
시체들이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는 세 명의 처참한 육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신궁과 작약은 한달음에 그 쓰러진 인영들에게 달려갔다.
우그러진 표정의 노부와 그 곁에 선 팽가주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쪽을 긴장된 눈으로 보았다. 가공할 위력의 혜능과 당노인. 그리고 시체들 한가운데서 전혀 물러섬이 없는 유가와 집주의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고는 굳게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을 짚어본 노부와 가주는 작약과 신궁이 소리치는 쪽으로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 * *
“너희 두 녀석을 이리로 보내는 것이 아니었어…. 그래, 아니었어…”
작약은 계속해서 자조적인 말을 읊조리며 도화와 비형랑을 상태를 살펴보고 있었다.
퉁퉁퉁퉁
노파의 거친 손이 빠른 잔영을 남기며 소년의 몸을 훑어간다.
꽃잎 같은 두장의 입술이 벌어지며 낮은 신음을 토해냈다.
창백한 얼굴에 얼핏 핏기가 돌았다.
“하아아…….”
계속해서 입가로 흘러내리던 가느다란 핏물이 점점 잦아들기 시작했다.
작약은 망설임 없이 소년의 몸을 뒤집어엎었다. 그리고 힘껏 척추뼈 사이의 숨을 요혈을 강하게 가격했다. 더 없이 위험한 혈(血)자리였다. 자칫 힘이 과했다간 한순간에 절명하기 십상이요, 힘이 덜했다가는 평생 불구가 될 판이었다. 허나 소년을 주무르는 노파의 손은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투툭-
연이어 엉덩이 뼈 사이의 혈을 꾹 눌렀다. 동시에 발목부터 종아리에 이르는 사혈들을 쭉 밀어 올리며 더듬었다. 작약의 양손에서 허연 빛 무리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처음엔 주먹만 한 크기였던 것이 이제는 팔목을 지나 팔꿈치, 그리고 어깨까지 새하얗게 물들었다.
그만큼 작약은 강력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작약의 손이 스칠 때마다 소년의 몸이 들썩들썩 허공에서 부르르 떨었다.
울컥-
소년의 목구멍을 타고 시커먼 덩이리가 내뱉어졌다.
물컹거리는 죽은 내장 덩어리는 어린아이의 머리만한 크기였다.
소년이 목표물을 토해내자 작약은 낮은 탄성을 내뱉었다.
“됐다, 됐어…. 살았다!”
소년에게서 손을 놓은 작약은 풀썩 주저앉으며 이마위로 흐르는 땀을 닦았다.
소년의 숨소리는 매우 미약했다. 허나 비교적 규칙적으로 뱉어지고 있었다. 잿빛으로 식어가던 얼굴도 서서히 혈색을 되찾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소년에게는 딱히 겉으로 보이는 큰 외상은 없었다. 작약은 주변을 홱 둘러보고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을 딱 벌리고 있는 당설희 낭자를 지목했다.
“이 아이를 보살피어라. 숨소리만 확인해!”
“에, 예? 아아아…. 네에…!”
당설희는 얼떨결에 소년을 안아들었다. 하얀 치마폭이 소년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그 곁에는 팽가주가 지키고 섰다. 가주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이분은 진정 …의선이구나! 내 눈으로 기적을 본다!’
잠시 숨을 돌린 작약은, 숨을 헐떡이며 쓰러져있는 비형랑을 돌아보았다.
몰골이 처참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다. 덜렁거리는 두 귀하며 온통 핏물을 뒤집어 쓴 얼굴.
지금 뚝 떨어져 나간다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너덜거리는 오른쪽 어깨.
시체들에게 할퀴고 물어뜯긴 상처가 온몸 가득했다. 숨이 붙어있다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석상처럼 굳어있던 한영은 동생의 안위를 확인하고는 굵은 눈물을 뚝 떨어트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막힌 물고가 트인 것처럼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영아! 이리와. 이 녀석을 팔다리를 잡아 보거라! 어서!”
작약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굳어있던 한영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걸음에 다가갔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로 비형랑의 어깨를 고정시켰다.
“…크으으윽!”
외마디 비명과 함께 잠시 정신을 잃었던 비형랑이 힘겹게 두 눈을 떴다.
그리고 한영을 보고는 부르터진 입술을 비틀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작약은 그 모습을 보며 끌끌 혀를 찼다.
재빨리 품안에서 가느다란 신침(神針), 그리고 여러 가지 색의 단약과 흰 비단에 묶여진 금창약을 꺼내었다. 일단 황갈색의 엄지손톱 크기만 한 환단을 꺼내어 비형랑의 마른 입안에 쑤셔 넣었다.
“이, 이놈이 곧 죽어도 실실거릴 테냐? 가만히 있어! 힘을 개방해라. 근육을 풀어!”
비형랑은 대답 없이 신음만 흘렸다. 그리고 힘겹게 한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갈라진 목소리가 목구멍을 비집고 새어나왔다.
“…도화도령은?”
한영은 목이 메여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눈물만 뚝뚝 흘리며 급히 고개를 아래위로 힘차게 끄덕거렸다. 그 모습을 본 비형랑은 맥이 탁 풀렸다. 괜찮다는 말이구나!
그는 다시 한번 힘겹게 말을 이었다.
“약속… 도화도령을 지켜주겠다는 약속… 지…키지 못해서 미…안.”
그 말을 마지막으로 비형랑은 서서히 의식의 끈을 놓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허나 세상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고요하기만 했다.
다만 이 순간 한영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적막. 쥐죽은 듯한 고요-
이미 오래전부터 비형랑의 귀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흐릿해져 가는 그의 마지막 시야에는, 한영이 다급하게 입만 벙긋거리고 있었다.
두 눈 한 아름 슬픔을 줄줄 흘리면서. 비형랑은 그녀의 입모양만으로도 그 뜻을 읽을 수 있었다.
「괜찮아? 지켰어. 넌… 약속을 지켰다고! 살아, 꼭 살아야해! …고마워.」
작약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노파의 주름이 가득한 손은 거침없이 사내의 근육과 피부 가죽을 이어 붙이고 있었다. 정갈하게 씻고 소독할 겨를은 없었다. 급한 대로 위급한 상처들만 추려내었다. 귀신같은 손놀림으로 근육을 이어붙이고 잘린 피부를 꿰매어 들어갔다. 잘게 부서진 어깨의 뼈에는, 보랏빛의 금창약을 사이사이에 바르며 조심스럽게 온전한 뼈 형태로 붙여나갔다.
순식간이었다. 몇 번의 숨을 고르는 찰나에 모든 일을 마친 작약은 마지막으로 터진 귓가를 살펴보고 있었다. 다행히 상처가 생각보다 깊지는 않았다.
“제 귀를 왜 베어버린 게야? ……듣기 싫을 만큼 고통스러운 소리라도 있었더냐! 끌끌”
귓가 주무르는 작약의 섬세한 손놀림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몹시 조심스러웠다.
귀 아래에서부터 뒷목에 이르는 부분은 온 몸의 신경이 연결되는 통로가 있는 곳으로 조심에 조심을 더해야 했다. 곁에서 지켜보는 한영은 부들부들 다리가 떨려왔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그래서 그랬던 거야?’
한영의 뺨을 타고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방금 전 비형랑을 막 발견했을 때가 떠올랐다. 시력이 뛰어난 한영은 누구보다도 먼저 비형랑과 도화를 알아보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 허나 등을 돌리고 앉은 비형랑은 묵묵부답.
자신의 외침에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저 소년을 품에 안은 채로, 허공을 향해서 난자하게 칼부림을 하고 있을 뿐. 한영이 어깨를 잡아 돌려세우고 나서야, 자신을 알아보고 팔을 멈추었던 그였다.
작약 마지막으로 꿰맨 상처들 위에 연녹색의 금창약을 두껍게 펴 발랐다. 살점이 뜯겨나가 휑한 자리에도 금창약으로 메워 넣었다. 다시 한번 기운을 두 팔로 끌어 모은 작약.
빛 무리가 둥그렇게 맺힌 노파의 손이, 비형랑의 전신을 빠르게 훑었다. 금창약이 급속하게 피부 속으로 스며들며 녹색의 뜨거운 증기기 아지랑이처럼 뿌옇게 피어올랐다.
온몸이 타들어 가는듯한 극통 때문에, 잠시 비형랑이 정신을 차렸다. 깊은 신음을 토했다.
“…크아아아!”
힘겹게 눈을 뜬 비형랑은 갑자기 무엇이 생각난 듯 입술을 들썩였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힘겹게 어딘가를 가리키는 것만 같았다.
털썩-
모퉁이를 지목한 비형랑의 팔이 맥없이 땅위로 떨어졌다.
비형랑은 마지막 기운을 짜내어 입을 열었다.
“저, 저기 묵…운.”
묵운? 상처를 붕대로 여미던 작약은 물론이고, 울고 있던 한영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묵운이라고? 화란부인이 서신으로 부탁했던 살수인 묵운?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비형랑이 말한 구석으로 향했다.
과연 어둠속에는 분명히 사람의 형체로 보이는 듯한 커다란 물체가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수백 개의 표창을 받아낸 흰둥이의 핏빛 육신이 자욱한 핏물에 잠겨 있었다.
도화를 소중히 품안에 안은 당설희의 눈도 놀란 토끼처럼 크게 떠졌다.
곁에 선 팽가주가 서너 걸음 앞으로 다가서려했다.
그러자 노부가 팔로 뻗어 가주의 움직임을 저지했다. 대신 자신이 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영도 주저 없이 그쪽으로 몸을 옮겼다.
시체들을 처리한 혜능대사와 당노인 그리고 유가와 집주도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다만 작약만이 묘한 눈길로 쓰러진 야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봉인이 풀릴 만큼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다는 말인가?! 흐음…’
작약은 자신의 손녀 ‘현’과 같이 대면했던, 야호 속에 봉인된 사신 백호를 떠올렸다.
이 녀석들이 이정도가 될 만큼 험한 싸움이었을 텐데. 위급한 상황은 아니라니!
작약의 아미가 몹시 찌푸려졌다. 앞으로 무엇이 버티고 있길래?! 도대체 누가?!
가슴이 몹시 답답해져 왔다. 사신이 봉인되어 있다 해도, 지금은 영물의 육신일 뿐.
흥건하게 바닥을 적신 피만 보아도 상태가 몹시 위중해 보였다.
비형랑을 치료했던 금창약과 기구들을 대충 챙겨서 일행을 따라 흰둥이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상처를 치료해야 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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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잘 지내셨어요?
넘 오랜만에 침묵을 뚫고 올라옵니다(^_^)/ Hi! Everybody!![]()
많이 기다리셨지요?
더이상 죄송하다는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앞으로는 더욱 분발하여 주 1회 이상의 연재속도를 꼭 지키도록 할께요!!!
죄송합니다 (--)(__)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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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말을 달아주시는 고마우신 님들!!
남은 연말 잘 보내시구요~
미리 인사드릴께요~~
사랑하는 울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여러분 모두에게 파안의 가호가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멋진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