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가을, 중2 파릇파릇하던 나이에 유학을 왔습니다.
뭐. 지금 제가 어디있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으니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지금 고3(이제는 대학 발표가 났지만)인데다가 부모님이 모두 여기 와 계신 관계로 그동안 한국을 자주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친구들도 자주 못만났죠...
2002년 부터 지금까지 일주일씩 3번 밖에 못갔다 왔더랬죠..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엄마 아부지를 졸라서 한국을 다녀왔습니다!
2월 1일부터 2월 19일까지 혼자! 한국의 고모댁에 온전히 '놀러' 갔다 왔습니다.
정말 너무너무 좋더군요 ㅠㅠ
여기저기서 한국어가 들리는것도 너무 반갑고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지하철이 너무 좋고
최소 2년만에 보는 친구들도 너무너무 반갑고♡
다시 돌아와서 공항에서 아버지가 차로 저 픽업 해 가실때
'아. 이제 한국이 아니구나' 싶어서 조금 훌쩍 했을만큼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단. 하나를 제외하고....
문제는 제 초등학교 동창이었습니다.
한 두달쯤 전, 갑자기 제 싸이로 조금 익숙한 이름의 아이가 저에게 일촌 신청을 하는겁니다 "나 기억하지!! 우리 초등학교때 무지 친했잖아" 이러면서요;
'응? 이건 뭐지..?' 하면서 그래도 아는 이름이길래 승낙을 했습니다.
아는 아이더군요. 초등학교때 학교에서 조심스럽게 왕따를 당하던 아이였습니다.
그래도 절 찾아준게 조금은 반갑더군요.
게다가 제이름이 생년과 함께 검색 하면 싸이월드에서 70페이지 이상 뜨는 흔하디 흔한 이름인지라 그걸 또 뒤지고 있었겠구나.. 라고 생각하니 대단하기도 하고 그래서 정말 따뜻하게 대해줬습니다.
자주 싸이를 오가면서 서로의 근황을 묻기도 하고
한국에 간다는 얘기도 해줬고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기에 전화번호도 알려줬습니다.
고모께 빌린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자마자 연락 이 오더군요
"야아~ 우리 꼭 만나야지!! 내가 너 오면 맛있는거 사 주려고 돈 모아놨어!"
그래서. (굳이 맛있는걸 얻어먹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제가 그렇게 보고싶다는 아이인데 어떻게 합니까 ㅋㅋㅋ) 만나기로 했습니다.
원래 계획은 오전중에 송파구에 있는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증 (계속 유학중이어서 주민등록증을 만들 기회가 없었습니다)을 만들어서 4시쯤에 신사역에서 그 아이를 만나고 저녁때는 하계동에 사는 제 소꿉친구집에서 자기로 했었죠...
근데 그 아이를 만나기로 한 아침부터 조금 어긋났습니다.
먼저 제가 부천 고모님 댁에서 바로 여권을 들고 동사무소로 갔어야 했는데 그 전날 너무 늦게까지 노는 바람에 인천에 있는 다른 사촌 집에서 자게 되었습니다. 인천에서 부천. 차타면 얼마 안걸리는 거리지만 버스에 지하철까지 하면 최소 한시간 내지 한시간 반은 걸리는 거리더군요...
아침 9시에 인천에서 출발해서 씻고 옷 갈아 입고 하느라 2시쯤 여권을 들고 부천에서 지하철을 타고 정말 하염없이 갔습니다... 1호선 부천역에서 5호선 오금역 찾아 보세요;;; 정말 서울 지도 끝에서 끝으로 가는 험난한 여행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날 또 벼르고 벼르던 하이힐을 처음 신고 가던 길인지라 가다가 삐끗삐끗은 기본이요.. 혼자 걸어가다가 넘어지는 쇼까지 했더랬죠;;;
다행히 5시 30분쯤 오금역에 도착해서 주민등록증 신청을 무사히 마치고
오금동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몸도 너무 피곤하고 신사역까지는 가고싶지도 않고...
별로 보고싶었던 아이도 아닌데.. 차라리 이 오금동에 사는 친구가 전화를 받아서 시간이 된다고 하면 약속을 펑크를 낼 작정이었죠..;
불행히도 이 친구는 전화를 안받고.. 저는 신사역까지 또 지하철을 탔습니다..(알고보니 이친구 편의점 가면서 핸드폰을 안들고 갔을 뿐이라더군요 ㅠㅠ)
지도상으로는 정말 가까워 보이는 거리인데... 2번 갈아타기가 너무 귀찮고 힘들어서 그냥 한번만 갈아타기로 마음을 먹었더니 그것또한 한시간 걸리더라구요;;
(지루하시죠?? 이제 부터가 진짜 이야기 입니다^^ 죄송~)
가는길에 심심해서 이 문제의 아이에게 문자를 했습니다.
대충 오늘 내가 일이 있어서 미안했다. 그래도 화내지 마~
이정도의 애교섞인 문자 였던걸로 기억합니다.
"아냐아냐 괜찮아~. 근데 있잖아. 나 어제 지갑 잃어버려서 너 맛있는거 못 사줄거 같애"
대충 이런 답 메일이 오더군요..
응? 뭐야;;; 싶었지만. 거기다 대고 "아 그래? 그럼 나도 볼일 없는데 그냥 오늘 만나지 말자' 할수도 없는 노릇이고 자상하게
"아 괜찮아. 얼굴 볼라고 만나는거지 뭐 ㅋㅋㅋㅋ" 했지요.
그리고 3정거장쯤 남아서 제가 연락을 했습니다
원래 약속 안지키기로 유명한 아이여서
'나 도착했어 여기 8번 출구야 어디야?' 라고 조금 일직 보냈습니다.
그리고 답장이 오더군요
'조금만 기다려 곧 갈게!!!'
아. 이제 나가면 얘가 날 기다리고 있겠구나. 하면서 나왔는데 ..
없더군요;;;;
조금 기다리다가 전화를 했습니다.
어머님이 받으십디다;;;;
"어어~ 얘가 너 만나러 간다고 씻어"
........
씻는다고요;;;
씻는답니다;;;;
뭐..... 어이없음을 무릅쓰고 저는 그럼 근처 커피숍에 있을테니까 그쪽으로 찾아 올수 있게 해주십사 하고 말씀을 드리고 끊었습니다.
그리고 술집밖에 없는 그곳을 헤매고 헤매서 커피숍을 하나 찾았지요;
딱 앉아서 커피를 조금 홀짝이고있는데 전화가 오더군요..
"어디야?~ 너 못찾겠어 나 지금 신사역 8번출구인데 니가 데리러 나와~"
힘들고 지쳐있는데다가 커피도 시켜놓고 짐도 있고 그래서 못나가겠으니 니가 찾아오라고 위치를 아무리 가르쳐 줘도 못 찾더라구요;;;;
결국은 앞에 편의점까지는 데리러 나갔습니다;;;;
딱 앉혀 놓고 이제 좀 이야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때가 벌써 7시 반이더군요.... 소꿉친구와의 소중한 시간을 이녀석때문에 정말.......
근데 얘가 사람을 불러놓고는 대화를 할라치면 핸드폰으로 끊임없이 문자를 하는겁니다;;;; 카페에서 애완동물을 분양시키는 일을 한다나 뭐라나..
정말 미안한 기색없이 문자를 하고 내가 말을 하던중에도 문자가 오면 문자가 우선입니다; 제 말은 듣지도 않고요;
그놈의 핸드폰 때문에 얘기도 몇마디 못나눴는데 그중 추스려 보자면
1.
"너는 엄마가 선생님이니까 영어도 잘하는구나"
"너는 엄마가 선생님이니까 유학도 가는구나"
"너는 엄마가 선생님이니까 공부도 잘하는구나"
"너는 엄마가 선생님이니까 친구가 많구나"
"너는 엄마가 선생님이니까 착한거 같애"
-내가 제 요즘 생활을 이야기 하려치면
저 "너는 엄마가 선생님이니까" 로 시작하는 말을 막 내뱉기 시작하는데
정말 어찌나 얄밉던지...
[도대채 엄마가 선생님인거랑 영어를 잘하는거랑 유학 가는거랑 성격이랑 무슨상관이냐고!!!!!!]
2.
"나는 초등학교 졸업하고 나서부터 남자를 사귀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사귄 남자만 50명이 넘어.. 근데 지금 사귀고 있는 애는 진짜인거 같애"
"지금 남자친구랑 콩다방(다 아시죠? coffee b----)갔는데 거기서 모든메뉴를 다 시키고서 하나도 안먹고 나왔는데도 남자친구는 화도 안내"
"하아.. 남자를 유혹하는건 쉬운데 남자를 가지는건 정말 어려운거 같애."
-이 아이가 남긴 최고의 명언입죠;; 누가 그게 궁금하다고 했냐고!!!!!!
도대채 이게 만난지 6년만에 할 말이냐고요;;;;;; 게다가 남자친구... 미친거아니야!!!!! 라는 말이 정말 속에서 부글부글 끓더라구요;;
3.
"내가 어제 너 맛있는거 사주려고 돈을 50만원을 뽑았는데 버스에서 카드랑 같이 다 도둑맞았어"
-... 고등학생이... 50만원짜리 밥을 먹고 돌아다니면.... ㄷㄷㄷㄷㄷ
게다가 카드랑 다 도둑맞았으면 벌써 막 난리가 났어야 하는데 그렇게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다니....;
4.
"내가 3달 전에 교통사고가 나서 한 삼주정도 혼수상태여서 죽을뻔 했었어"
"내가 사고때 위를 좀 잘라내고 막 그래서 요즘은 밥을 못먹어"
-하하;;; 3달 전이라... 저한테 일촌 걸었을 시기랑 비슷하군요-_-.
뭐...
1시간반 동안 고작 한 얘기가 저것 뿐이네요-_-.
조금더 디테일이 붙기는 하겠지만;;;
여기서 끝났어도 정말 저 아이는 걷잡을수 없는 싸이코다 했겠죠;;
근데 이아이 갑자기 메뉴판을 보더니 "아~ 스프가 먹고싶다.." 하더라구요
안그래도 저도 점심 저녁도 못먹고 계속 돌아다닌지라 배가좀 고파서
"그래? 내가 오늘 점심때 부터 못 먹고 돌아다녀서 배가 좀 고프네... 나는 스프랑 샌드위치도 하나 먹어야겠다" 했죠/
그리고서 "그럼 내가 시킬게~" 하고 일어났습니다.
보통은 시키면서 돈을 같이 내기 때문에 "아 같이 가!" 라던가..
"아 그럼 내가 조금이따가 돈 줄게"라는 반응을 기대했는데
이 아이 당당하게.."응 갔다와~" 하더군요;;;
뭐.. 비싼건 아니지만 기분은 조금 껄적지근 하더라구요;;;
그래도 샀습니다.. 뭐..
제가 좀 착합니다-_-/
근데 샌드위치가 두쪽으로 갈라져서 나오더라구요;;
제가 한쪽을 집어서 막 먹고 있는데 이 아이는 스프만 홀짝 이고 있으니까
미안하더라구요;
그래서 예의상 '이거 먹을래?' 했죠.
그랬더니 기다렸다는듯이 덥썩 잡길래 '아.. 얘가 배가 고팠구나.' 싶었습니다.
근데 이 아이 샌드위치를 요리조리 살피더니
"나 집에서 갈비 많이 먹고와서 배불러. 싸갈래"
...;;;;
정말이지....;;;;;
참을인자를 3번... 아니 5번은 삼켰습니다-_-
대충 다 먹었겠다... 저는 다음 약속이 있는지라 어서 일어나야 될거 같애서
"나 이제 갈게~"
이러는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전화기를 들더니 전화를 하더라구요
"내가 밤을 무서워해서 남자친구 부르려고 괜찮지?"
이러길래
아.. 그래 그럼 내가 가고나서 남자친구 만나서 놀면 되겠네
하고 있었더랬죠.;
"그럼 나 먼저 갈게~"이랬는데
"남자친구 오면 내가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줄게 여기서 바로가는 버스 있어"
이러더라구요
그래서 기다렸죠.
근데 20분이 지나도록 남자친구가 안오길래
왜이렇게 안오냐고 물어봤더니
"응 남자친구 여기서 지하철 4정거장쯤 뒤에 살어"
.......
하아.....
결국은 남자친구 얼굴 보고 제 러블리 소꿉친구네 집에는 10시 반이 넘어서야 들어갔습니다... ㅠㅠㅠㅠ
정말 소꿉친구 얼굴을 보자마자 왜그리 서럽던지 ㅠㅠㅠㅠㅠㅠ
그 뒤로 이 아이에게서 몇번 연락이 왔지만
필사적으로 피했습니다..
나중에는 발신자표시제한번호로 전화를 걸어오더라고요;;
엉겁결에 받았다가 그만 ㅠㅠㅠㅠㅠㅠ
제가 이 이야기를 제 친구들한테 했더니
바로 인터넷으로 올리라는 친구들이 있고
믿을수 없다고
차라리 니가 소설을 쓴거라면 좋겠다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이거. 소설이 아니라
실화 입니다-_-!
조금 과장이 들어갔을 수는 있지만
절대로 틀에서 벗어나지 않을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싸이코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