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2-13화> 생일

바다의기억 |2006.01.10 14:34
조회 10,649 |추천 0

2006년이 된지도 벌써 10일이 지났습니다.

 

금연, 금주를 모토로 삼으셨던 분들...

 

어떻게 잘 지키고 계신지.

 

남은 355일 동안도 모두들 열심히~.

 

 

============================ 그렇게 말하니 막막한 내일 ======================

 

어느새 기말고사 기간이 끝나고


우린 겨울방학을 맞이했다.



그리고 난 지금 홀로 바닷가에 나와 있다.



=촤아아아악.....수아아악....=



얼음이 부서지는 듯


냉랭한 파도소리만 들려오는 청색 벌판.


가느다란 줄기를 이룬 바람이


몸 이곳저곳을 시리게 훑는 가운데


난 멍하니 갯벌 앞 모래사장에 앉아


바다 저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억 - .......



오늘은 내 생일이다.




=찰박.... 츄르르륵.....=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구름엔 황금빛 테두리가 드리우고


저 멀리 풀밭처럼 술렁이던 바다가


모래사장 바로 앞까지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드리울 어둠을 예고하듯 찾아온 추위.


난 옷깃을 고쳐 여미며 몸을 떨다가


미리 사놨던 소주병을 땄다.



=따각. 따라닥....따라닥...=



소주잔용으로 쓰는 조그만 종이컵에


스무 살 생일을 축하하는 기념주를 담아 단박에 들이키자


목에서 씁쓰름한 통증이 싸악 번지는 기분이 들었다.



기억 - 카악....쓰다.....아아....



난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강력한 쓴맛에


안주로 땅콩이라도 사올걸 실수했다는 뒤늦은 후회를 하며


화끈거리는 뺨을 문질렀다.



그렇게 반 병 정도를 비우자


눈앞의 파도가 끈적끈적하게 꿀렁거리면서


귓가를 지나는 바람이 뜨겁게 느껴졌다.



기억 - ..... 잘 지냈어요?


=찰박....=


기억 - 저도 잘 지내요.


=찰박찰박....=



술기운 탓인지 주절주절 나오기 시작하는 혼잣말.


그 서글픈 중얼거림은


내 15살 생일에 눈을 감은 그 사람을 향한 것이었다.



기억 - 여기.... 많이 춥네요.... 누난 안 추워요?


=철썩....=


기억 - 춥죠...?


=철썩....=


기억 

- .....그럼 누나도 한 잔 할래요?


이거 마시니까 좀 나은데...



=찰박찰박...=


기억 - 에이, 괜찮아요, 나도 이제 스무 살이니까....



그렇게 바다와 대작을 하다보니


남은 소주 반병이 금방 동이 났다.


고개를 젖히고 병 밑에 남은 몇 방울을 입안에 털어 넣을 때


문득 눈 밑이 시큰해지면서


그 사람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기억 - 미안...... 해요.....!


=찰박....=


기억 - 미안...... 해요.......!!!


=찰박찰박.....=



난 터질 듯 밀려드는 추억에


찢어지게 아려오는 가슴을 감싸 쥐며


모래사장에 엎드렸다.


눈물만 나온다면 목 놓아 울고 싶었지만


어느 날인가부터 막혀버린 눈물샘은


눈 밑에 찡한 아픔만 계속 전할 뿐이었다.



기억 

-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나 혼자 107일 동안이나 행복해서.....


....정말 미안해요.



=찰박....=


어느새 코앞까지 밀려온 바닷물이


엎드려있는 내 손끝까지 와 닿았다.



붉은 석양에 바다가 물들고


모래사장이 물속으로 흔적을 감출 무렵


난 비틀비틀 선착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춥다.... 시리게도 춥다.


아니..... 아픈 건가?


모르겠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모르겠다.



8시 30분, 마지막 배를 타고 육지로 나와


버스정거장으로 가는 길.


=We require more Alcohol=을 외치는 내장들의 요구에


난 근처 포장마차에 들러 소주 한 병을 시켰다.



기억 - 아주머니... 소주 한 병이요....


아줌마 - 응? 안주는 안 시켜?


기억 - 아. 뭐가 맛있어요?


아줌마 - 고갈비, 오돌뼈... 다 맛있어.


기억 - ....그게 뭔데요?


아줌마 - 모르면 그냥 주는 대로 묵어.


기억 - 예......



정체불명의 안주들을 벗 삼아


홀짝홀짝 술잔을 비우고 있을 때


주인아주머니가 혀를 차며 물었다.



아줌마 

- ..... 여자한테 차인 거여?


아님 어디 가서 맞은 거여?



기억 - .... 둘 다요.


아줌마 - 어이구.....오늘?


기억 - .... 아니요.


아줌마 - 글믄?


기억 - 차인 건 5년 전이고요..... 맞은 건 일주일 전이요.


아줌마 - 잉? 아저씨 나이가 어떻게 되는디?


기억 - ........ 올해 스무 살이요.


아줌마 

- 쯧쯧.... 어린나이에....


맘고생이 얼마나 심했으면....



무슨 뜻입니까 아주머니.....



아줌마 - 글믄... 아직까정 못 잊은 거여?


기억 - ....예.


아줌마 - 하이고미.... 어지간히도 순정이구마...


기억 - ..... 그래요?


아줌마 

- 아직 나이도 젊은데.... 그냥 빨랑 잊고 새출발 해~.


그 사람도 그냥 지대로 행복해라 그라고....



기억 - 헤헤....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오락가락하는 정신 탓에


난 거의 11시가 다 되어서야


그 소주 한 병을 다 비우고 포장마차를 나설 수 있었다.



얌전하던 길이 돌연 파도처럼 일렁거리고


저만치 있던 전봇대가 갑자기 돌진해오는


위험천만한 미로를 지나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 나.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싸늘한 바람에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며


난 조용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잠시 후 집에 도착했을 때


술은 어느 정도 깬 후였다.



기억 - 어무니~~ 문 열어 주세요~ 어무니...


=탁탁탁=


기억 - 어무니~~ 저 왔어요~!!!


=탁탁탁탁....=



...... 응? 대문을 두드리는데 소리가 왜 이럴까.



기억 - ......어라.



내가 왜 엎드려서 바닥을 치고 있는 거지?


희한하네....



어머니 - 아니 얘가 술을 얼마나 마신 거야......



잠시 후 목소리를 듣고 나온 어머니의 부축을 받아


비척비척 집으로 들어간 난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기억 - 으으....


어머니 - 아이고, 왜 현관에 눕고 그래. 안으로 들어가 안으로....


기억 - 아... 왠지 좁더라.....



난 꾸물꾸물 거실로 기어들어가


배를 위로 한 채 한가운데에 대자로 쭉 뻗고 누웠다.


일렁일렁 내게 손짓 하는 거실 천장의 무늬들.



기억 - .... 하하..... 알로하와이.....


어머니 

- 어이구, 어이구.... 골고루 한다....


민아라는 애한테 전화 여러 번 왔었다.


들어오면 꼭 연락해달라더라.



기억 - 에? 핸드폰으로 하라고 하지 그러셨어요...


어머니 - 핸드폰 망가졌다면서.


기억 - 아..... 맞다. 핸드폰 이단 분리 됐지....



그제야 수리비 6만원이 아까워서


집에서 고쳐보겠다고


완전분리 해놓은 핸드폰이 생각난 나였다.



기억 - 전화.. 전화가.....


어머니 - 나중에 술 깨면 하는 게 어떻겠니?


기억 - 아뇨, 아뇨.... 지금 해야죠. 어디보자....


어머니 - 너 지금 전화기 반대로 들었다.


기억 - 어이쿠쿠 이런.... 왠지 번호가 이상하더라.


어머니 - 에휴... 줘 봐라. 내가 눌러 줄게.



보다 못해 전화를 빼앗아 번호를 누른 뒤


귀에다 대주시는 어머니.


알콜의 여파로 귀차니즘의 궁극에 다다른 난


그 상태 그대로 그녀가 전화를 받길 기다렸다.



어머니 - 어이구? 빨랑 안 들어?


기억 - 에블레불레부르르르.....


어머니 - 어이구, 어이구?



=뚜르르르.......=



민아 = 여보세요?


기억 - 하이~~!!


민아 = 여... 여보세요? 누구세요?


기억 - 히히.... 기억이......


민아 = ...... 깜짝 놀랐잖아..... 술 마셨어?


기억 - 응~ 이쁘지? 잘했지?


민아 = .... 지금 어디야?


기억 - 집~~.


민아 

= .... 나 지금 근처 전철역에 있거든?


집 앞에 건물 큰 거 뭐있어?



기억 - ..... 어? 건물? ....... 전화국.


민아 - 그리로 빨리 나와.


=뚜...뚜....뚜...=


기억 - 여보세요? 응?



지금 11시 30 분이 넘었는데


이 시간에.... 무슨 일로 그러지?


처덕처덕 바닥에 달라붙는 것 같은 몸을 일으켜


문 밖으로 향하는 나에게 어머니가 물으셨다.



어머니 - 어디 가니?


기억 - 그러니까... 어브레블레불레...해서...아무튼 요 앞에요.


어머니 - ..... 조심해서 다녀라.



아무 생각 없이 슬리퍼를 직직 끌고


집에서 2~30m 떨어진 전화국 앞으로 나갔을 때


저만치서 뛰어오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기억 - .......어?



왠지 마주 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을 만큼


다급하게 뛰어오는 그녀의 모습에


난 뒤뚱뒤뚱 그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곧 나와 마주친 그녀는 거친 숨을 색색 몰아쉬며


내 가슴께에 편지 같은 것을 척 갖다댔다.



민아 - 하아.... 하아.....


기억 - 응? 뭐야, 이게?


민아 - ..... 선물이잖아 바보야!!!


기억 - ...... 응?


민아 - 오늘 생일이라며!!



.........



기억 - 어....? 어떻게 알았어?


민아 - 왜 말 안 했어?


기억 - 어떻게 알았냐니까.


민아 - 하아.... 집에... 전화했더니... 어머니께서...


기억 - 하하.......거 참.... 괜한 말을......


=짜악?=



순간 이상한 소리가 귓가에 쨍 울리면서


그녀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기억 - 응??



...아, 내 고개가 돌아간 거구나.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리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힌 그녀가 날 노려보고 있었다.



민아 

- 뭐야 대체! 난 그 말 듣고 놀라가지고


부리나케 쫓아와서 네 시간이나 기다렸는데!


자긴 친구들이랑 술이나 진탕 마시고,


기껏 만나서도 뭐? 괜한 말?


나는.... 나는.....!!



몹시 분한 듯 숨을 씩씩거리는 그녀의 눈에서


결국 눈물 몇 방울이 투둑 떨어졌다.



민아 - .... 생일 축하해. 갈게.



울분을 못 참고 휙 돌아서는 그녀를 보는 순간


가슴 중간에서 찡한 무언가가


코끝까지 올라와 맴도는 게 느껴졌다.



기억 - ..... 까...... 까먹었었어!


민아 - .......응?


기억 - 까먹었었다고....


민아 - 뭐, 뭐야~. 왜.... 왜 울어?


기억 - 으으응?!



그녀의 말에 깜짝 놀라 눈가를 휙 훔치자


정말 손등에 축축한 무언가가 묻어 나왔다.



기억 - 에헤헤...... 술.... 너무 많이 마셨나보다....


민아 - 우.... 울지 마, 바보야!


기억 - 너무 많이 마셨나 보다... 너무... 많이 마셨나보다....


민아 - 왜 그래? 응?


기억 - 모르겠어.... 아니.... 너무.... 기뻐서... 맞아.... 기뻐서...



막아놨던 둑이 터진 것처럼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줄줄 흘러나오는 눈물.


어느새 내 곁에 다가와 어깨를 다독이는 그녀의 품에서


난 한참동안 울었다.



미안해요.... 나 이 만큼이나 행복해서....

추천수0
반대수0
베플낙화유수|2006.01.10 15:46
오일이나 기다리게 하다니... ㅜ.ㅜ 담엔 이틀이나 삼일만..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