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백승권
|2006.01.23 13:30
조회 1,099 |추천 0
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참 많이도 들었었다. 두글자로 점철된 화제작들이 줄을 선 가운데 그 스타트를 끊은 태풍은 장동건과 이정재라는 두 거대배우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프린트된 붉고 검은 포스터만큼이나 세간의 관심을 끌어모으기에 충분했다.
500만은 목표가 아니고 뭐 거뜬히 넘을 듯 하지만 들어간 돈을 생각하면 처음부터 경쟁작은 태극기가 세운 1200만이었을 것이다. 3주차에 겨우 본 다음에야 후기를 긁적이기야 하지만 사실 예고편부터 이전의 기대를 모았던 블록버스터와는 사뭇 달랐다고 해야 했을까? 아쉬움, 투캅스를 만든 대한민국 최고의 실세인 감독이 실미도를 만들 때와, 쉬리를 만든 감독이 태극기를 개봉할 때의 기대감과는 뭔가 달랐다. 남북의 대치상황이라는 소스는 일관적이었으면서도 그 경쟁구도를 민족이라는 거대집단의 충돌이나 비극적인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한 작품들과는 접근 방식이 판이했다. 사실 영화자체나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는 기대와 달랐고 그래서 기대이하였다 라는 것 밖에 할말이 없다. 조금 아는 수준의 극장밖의 이야기를 해보지면.
사실 기대이상이었다면 모든 단점들이 장점이 되었겠지만 어떤 기대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먼저 표해본다. 자본도 우월하고 캐스팅도 더할나위 없이 나름대로 충분했지만 감독은 수많은 고민끝에 모든 것을 다 보여주자고 결심했었나보다. 드라마에 강한 감독이 액션연출이라는 점에서 솔직히 크레디트가 올라갈 즈음에 혹시 차기작을 위한 연습을 한건아닌지라는 버릇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장동건이라는 월드스타는 해외판촉용으로 제대로 장착된 무기였을텐데 설마 그럴리가 하고 금새 접기는 했지만. 액션의 여운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난 그리 영화를 많이 열심히 본 사람이 아닌데 저 장면은 여기서 또 저기서 따온듯 했다. 10년전에 보았던 이현세의 만화 '남벌'이 떠올랐고 편지를 읽거나 출동하는 장면등 잘 생각이 나지는 않지만 유사한 느낌을 많이 들게 한 것이다. 연출력을 문제 삼고 싶지 않아도 영화으 묘미란 어쩔 수 없는 이전작들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감추며 색다른 매력과 긴장감으로 상황을 전개하는 것일텐데. 그만큼 많은 숙제가 놓여있었고 어떻게 조합해야 이러저러한 작품이 나올텐데. 서민적인 감정을 이끌어 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던 감독은 많이 망설였던 것 같다. 액션도 살리고 드라마도 살리고 추억도 살리고 배경도 살리고 스케일도 살리고 우정도 살리고 대사도 살리고 배우도 살리고 조연들도 살리고 다 살리자고 했지만 150억은 적었는지 런닝 타임을 맞추려다가 가위질이 심했었는지 여운이 단절되는 상황이 자주 반복되었다. 수십분을 기다려가며 겨우 예매한 극장안은 어떠한 장면에서도 탄성이나 여타의 반응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전체적인 조화에서의 문제였지 어떤 장면에서는 이건 감정이입의 극치야 라는 감동이 새어날 틈도 없이 몰입하게 했음이다. 그 장면에 대해서는 마지막에 풀어내기로 하고. 멜로영화와 대중음악을 주로 다룬 음악 프로듀서가 영화음악을 맡은 것은 정말 치명타였다. 연출력의 틈새를 OST로 메울수야 없겠지만 태극기에서 한국의 엔리오 모리꼬네로 칭송받는 이동진이 맡았다면 이정도는 아니었을텐데. 아쉬움이 자꾸 들었다. 보는 내내 저 음악은 아니야.. 저건 아닐거야.. 샘플링만 따다가 이어붙였다고 하면 망발이겠지만 저런 화면 때깔에 음악은 너무나 철지나 있었다. 전문가가 아님에도 BGM이 너무 부실히 들렸다. 수많은 스텝들의 공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만 결과물이 이리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몰입을 방해하는 가장 큰 실망점이였으리라.
단점은 찾으면 계속 나오고 점점 더 커지며 결국엔 이미 본 사람들조차 단점의 일부로 만들어버릴 염려가 있기에 이정도 우려표명으로 마무리짓겠다. 150억을 넘게 들인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대명제 아래 프로젝트를 추진하긴 했지만 감독이 자신의 장기를 살려 드라마를 더 강조했으면 어땠을까 한다. 특수부대의 우정이나 여타 성분들의 비중을 좀 줄이고 혈육의 드라마와 거친 액션을 교감시켰다면 말이다. 내겐 20년간 떨어져있던 두 혈육이 해후하는 장면이 가장 아름다워 보였다. 그 떨림, 그 눈물, 얼어붙었던 심장이 해동되는 느낌. 장동건이 왜 대배우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이미연은 그 적은 비중으로 가장 또렷한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정말인듯, 스무해전에 아프게 친혈육과 헤어졌다면 정말 저렇게 아프게 만나며 끌어안았겠지라는 생각이 스며들었다. 언어가 그 어떤 말들이 소용이 있었을까. 다시는 떨어지지 못할 듯 부둥키며 그렇게 그동안의 설움과 외로움을 전이하는 수 밖에. 그 강한 남자가, 그 거칠고 수척한 여인이 그렇게 만나서 얼마나 행복했을까. 참 많이도 아프게 본 장면이었다. 장동건의 분노가 이해될만큼. 저정도로 자신의 부분을 잃어가며 견딘 시간들이었는데 얼마나 앙갚음 하고 싶었을까. 목적은 분노의 피울음이 아닌 그저 존재의 부각이었는지도 몰라. 모두의 죽임이 아닌 하찮고 비참하기만 했던 삶에 대한 알림. 이정재의 깊은 울림을 지닌 목소리보다 장동건의 날선 얼굴보다도 더 선명히 기억되는 건 동생을 살리기 위해 내던져진채 그 사연조차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이미연의 눈빛이었다. 잊을 수 없는 과거와 차마 잡을 수 없는 희망을 꿈꾸며 창밖을 응시하며 흐느낌 섞인 노래를 웅얼거리던 그 눈빛, 가장 강한 서정적인 요소였고 장동건과 이정재의 균형을 이루게해 준 또 동시에 무너뜨린 진정한 히로인이었다.
지난 해 태극기나 실미도에 대한 후기를 채 가라앉히지 못한 흥분으로 적어내려 갔을 때를 떠올려본다. 색다른 감정이입에 대한 풀이없이 초대형으로 예상했던 태풍에 대한 감상평을 이렇게 실망의 주.객관적인 이유나 장면, 배우에 대한 평가 들로 채운 것에 대해 필자도 슬프기 그지없다. 마케팅이 시작되는 초기부터 여러 사안들을 살피며 조금씩 균열이 일어날 것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전체적인 여파로 남을 줄은 몰랐다. 해석의 여지는 청중의 타입에 따라 백이면 백 다를 수 있기에 부족한 글귀들이 참고사항은 되지 않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