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입니다.
어째 떡국들은 맛있게 드셨는지.
모쪼록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남는 분은 저도 좀 나눠주세요.
새해 복이 부족해서 미치겠습니다.
======================= 새뱃돈은 준비 됐냐? ==========================
Impossible is nothing....
12월 24일.
모두가 불가능이라 생각했던 목표를 달성하고
곤한 단잠에 빠져있을 때
분위기 파악 못하는 누군가가 내 전화를 울렸다.
=빠바밤빠밤빠바~빠바밤빠밤빠바....=
얼굴을 찌푸리며 손목시계를 확인해보니
지금 시각 3시 30분.
제길.... 누가 이 시간에 전화질이야?
기억 - .....크으으윽.... 여보세요.
?? = 응, 나 지웅이다.
기억 - 야 인마, 지금이 몇 신데 전화를 하고 그러냐...
지웅 = 지금? 세 시 반.
기억
- 아오 이 폐인아... 사람들이 다 너 같은 줄 아냐?
간만에 잠 좀 자려고 했더니....
지웅
= ..... 어이구? 지금 오후 세 시 반이거든?
폐인 소리를 들을 사람은 너 아니냐?
기억 - 뭐? 오후야?
그러고 보니 어제 침대에 누웠을 때
이미 해는 떠있었던 것 같다.
기억 - 아... 그래. 아무튼 무슨 일이냐.
지웅 = 크리스마스 기념 솔로 모임한다. 너도 나와라.
기억 - 응? 나 여자친구랑 보내기로 했는데?
지웅
= 잠깐, 통화상태가 안 좋은 것 같다.
환청이 들리네. 뭐라고?
기억 - 여자친구랑 약속 있어.
지웅 = 미친..... 구라치지 말고 그냥 나와 인마.
기억 - ..... 진짠데.
지웅 = .... 개새끼.
=삐리릭=
쯧, 자식이 부러우면 그냥 부럽다고 하지
왜 욕을 하고 그러냐...
그럼 난 부족한 잠이나 마저...
=빠바바밤빠밤빠바~ 빠바바밤빠밤빠바~=
그때 바로 이어 울리는 핸드폰.
이런 씨 또 누구야..
기억 - 여보세요.
?? = 나 대연이다.
기억 - 응. 무슨 일이냐.
대연 = 이런 삐리리.... 진짜냐?
기억 - 뭐가? 너 지금 지웅이랑 같이 있냐?
대연 = 그래 이 썅놈아!
기억 - 이놈들이.... 진짜야 인마.
대연 = ..... 예쁘냐?
기억 - 너도 봤을 걸? 예전에 같이 공연티켓 팔던...
대연 = 이런 사기꾼, 도둑놈! 개새끼!
=삐리릭.=
공대에서 솔로모임은 과모임과 규모가 동일하다고....
이미 제법 많은 수가 모여 있었는지
분노에 찬 전화 릴레이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쏟아지는 비난과 욕설을 들으면서도
그저 가소롭다는 생각만 들뿐.
오히려 내 자신이 자랑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누가 뭐래도 난 커플이고, 넌 솔로야! 으으으응~!
그리고 이후 몇 달 동안....
난 동기들로부터 단 한번의 연락도 받지 못했다.
오후5시 경
그녀와의 약속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난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눈 밑엔 다크서클이 지고
눈꺼풀은 졸음에 감겨왔지만
마음만은 날아갈 듯 들떠있었다.
이제 곧 신촌에서 그녀를 만난다.
그녀를 만나서 이 선물을 주면....
그 순간을 생각하니 내가 다 감동적이다.
적당히 머리 모양도 내고
옷도 신경 써서 골라 입은 다음
숄더백에 선물상자를 넣어
룰루랄라 집을 나서고 얼마 후,
또다시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기억 - 예.
?? = 나야, 민아.
기억 - 응~. 왜?
민아 = 저기... 오늘 약속 도저히 못 나갈 것 같아.
기억 - 응?!
이게 무슨 소리인가.....
갑자기 숨이 막히면서 눈앞이 캄캄해졌다.
잠깐만 민아야....
나 오늘 약속 때문에 정말 오랫동안 준비했거든?
일주일동안 잠도 거의 안 자면서...
기억 - 무... 무슨 일 생겼어?
민아
= 으응.... 그러니까... 설명하자면 좀 긴데....
정말 미안해... 그래서 말인데...
기억
- 으응... 아니.. 뭐.... 어쩔 수 없는 거면....
일이야 원래 있었다, 없었다 하는... 거니까...
민아 = 저기... 혹시 다른 약속 없어?
대신 공대생 솔로 모임이라도 나가라는 걸까...
지금 가면 맞아 죽을 걸?
기억
- 아...뭐... 괜찮아. 왜 그런 말도 있잖아.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라고...
민아 = 혹시 괜찮으면 나 좀 도와줄래?
기억 - 응?
민아 = 아, 아니야. 저기... 즐거운 성탄 보내
뭔가 마음에 걸렸는지
이내 말을 돌려버리는 그녀.
하지만 나에겐 방금 지나친 말이
오늘 못 본다는 말보다 훨씬 희망적으로 들렸다.
기억 - 어디로 가면 돼?
민아 - 응?
기억 - 도와달라면서.
민아 - 아.... 그게......
잠시 후.
그녀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반팔티셔츠에 무릎쯤 오는 반바지를 입고 날 맞이해주었다.
옷차림으로 봐선 오늘 하루 종일 집에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뒤로 보이는
엄청난 양의 상자와 포장 재료들...
기억 - ..... 어디 이사 가는 거야?
민아 - 음... 그러니까....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그녀는 몇 년 전부터 인근의 고아원에서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었다고 한다.
뒤에 있는 짐들의 정체는
그곳 아이들에게 보내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녀가 포장과 전달을 맡은 것이라고...
본래 이 일을 도와주던 솔로 친구 두 명이 있었으나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이루어진 미팅에서
좋은 남자 만나서 떠나버리는 바람에
일이 밀려버리고 말았다는 것이 사건의 전말이었다.
기억 - 그럼 진작 말을 하지.
민아 - 난 그래도 혼자 어떻게든 해보려고...
기억 - 에휴, 바보.
가끔 그녀를 보면
도움을 청하거나 받는데 매우 서툴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조르고 매달리는 것도 괜찮을 텐데...
아직 내가 부담스러운 걸까?
민아 - 그래도 성탄절인데 선물포장하다 보내는 건....
기억 - 난.... 아니, 아니다. 말하면 좀 그럴 것 같다.
민아 - 응? 아냐, 할 말 있으면 그냥 해.
난 지금 생각난 말을 하면
민망한 분위기가 될 것 같아 말을 줄였지만
그녀는 뭔가 안 좋은 말이라 생각한 것 같다.
차라리 그냥 말을 하는 게 나을까?
기억 - 난.... 공주님이랑 보낼 수 있으면 그걸로 돼.
민아 - ......
기억 - 그 봐..... 좀 그럴 것 같다니까.
염장이라고 욕해도 어쩔 수 없다.
내가 생각해도 닭살은 닭살이다.
적당히 분위기가 수습된 다음
난 가위와 스카치테이프를 들고 작업에 착수했다.
기억 - 어디보자.... 이걸로 싸면 되는 거야?
민아 - 응. 그리고 리본으로 이렇게 묶어주면 돼.
기억 - 허허.... 이것 참...
언뜻 봐도 제법 오래 고생해야 할 것 같은 양.
낭만적인 성탄전야는 물 건너 간 것 같다.
두어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선
그녀가 바닥에 엎드려 아이들에게 줄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고 있다.
색연필이며 반짝이 같은 걸 잔뜩 늘어놓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카드를 꾸미는 그녀.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도 나름대로 괜찮지?
기억 - 그런데 나 아직 저녁 안 먹었거든.
민아 - 나도 아직 인데.... 자장면 시켜 먹을까?
기억 - ........
그래, 나 이브 저녁에 자장면 시켜 먹었다.
자장면 배달부도 황당했는지 웃더라.
그래도 난 스테이크에 칼질하는 솔로보단
자장면 먹는 커플이길 택하겠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우린 다시 본격적으로 각자의 일에 착수했지만
작업 속도로 미루어 볼 때
남은 일은 오늘 밤 안에 끝내기에도 빠듯해 보였다.
결국 난 외박을 결정하고
미리 집에 연락을 해두기로 했다.
어머니 = 여보세요?
기억 - 예, 어머니. 저 오늘 아무래도 집에 못 들어갈 것 같습니다.
어머니 = 아까 민아 만나러 나간다고 하지 않았니?
기억 - 예, 지금 민아네 집입니다만....
어머니 = ....... 아들아. 잘 들어라.
기억 - .....예.
갑자기 엄숙해진 어머니의 목소리.
어머니
= 남자는 함부로 책임 못 질 일을 해선 안 된다.
생명이라는 건 한때의 실수로 만들고 지울 수 없는....
기억 - 저.....어머니, 너무 앞서가셨어요.
어머니 = 닥치고 들어! 지금부터가 중요해!
기억 - 아, 네...네.
난 결국 어머니로부터
올바른 성윤리에 대한 강론을 듣고
안전서약(?)까지 한 다음에야 전화를 끊게 되었다.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전까진 기숙사 사는 친구네서 잔다고 했으니...
아무래도 때가 성탄전야다보니 긴장하신 것 같다.
그래도 언감생심이지.... 어떻게 내가....
민아 - 음음~ 뚜두두뚜두~.
....못 할 건 또 뭐냐.
기억- 헉.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잠깐 반바지 밑으로 드러난 다리에 현혹되었었다.
정신 차리자, 정신!
....괜찮아, 원래 남자는 다 짐승이야.
기억 - 헉!
민아 - 응? 왜그래?
기억 - 아니야.... 아무것도.
아....어머니는 괜한 말씀을 하셔가지고....
일을 하는 내내 마음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이종격투기를 벌이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
그녀가 뭔가 생각난 듯 내게 다가왔다.
민아 - 저기.... 기억아, 괜찮으면.. 내일도 좀 도와줄래?
기억 - 응? 이거 오늘 밤이면 다 끝낼 수 있을 거 같은데?
민아 - 아니, 산타 옷 입고 선물 나눠주는 일이야.
기억 - 음....... 몇 시쯤 끝나는데?
민아 - 아마... 5시나 6시?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내일 저녁에 올인이다!!
기억 - 공주님 부탁이라면 얼마든지.
민아 - 뭐야~. 놀리지 마.
기억
- 놀리는 거 아냐, 한 번 공주님은 영원한 공주님이지.
분부만 내리시옵소서, 공주마마.
민아 - 이잇~ 진짜~!
그렇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꾸준히 작업을 계속 한 결과
우린 밤 12시가 좀 넘어서 모든 일을 마칠 수 있었다.
기억 - 다했...다~!!
민아 - 이쪽도 마무리!
일이 끝나자마자 체면 차릴 것 없이
바닥에 벌렁 드러누운 우리.
그리고 우린 그간 쌓인 피로로 인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선물 꾸러미들 가운데에서
사이좋게 잠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