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헤어져!"
"뭐???? 다시 말해봐 뭐라구??? "
"헤어지자구..."
"이유 간단히 말해봐!"
"니가 무서워..."
"간단하군...그래...헤어져 내가 무섭다는데 무슨 이유 있겠어...이 자식아!"
아주 가볍게 그애에 뺨을 스쳤을뿐인데 180이 넘는 큰 등치가 흔들거린다. 코피라도 안난게 다행이다 싶었는데 여자에 육감은 한번도 틀린적이 없는것 같다. 이 녀석은 다 좋은데 너무 약하다는게 흠이다. 공부 잘해 집안 좋아 등치 좋아 얼굴 반반해 그동안 나를 째려보는 후배 선배들 다 무시하면서도 나름대로 만족했었는데 드디어 오늘 그 끝을 보고 만것이다 그것도 쪽팔리게 차이고 만것이다.
아마 옥상을 내려서는 순간 저 문뒤로 우리가 무슨 대화를 하는지 궁금해서 미쳐버릴 그 수많은 녀석의 추종자들이 환호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난 절대 기죽거나 울지 않는다.
안그래도 오늘쯤 그애가 이런애기를 할거라고 예감하고는 있었지만 그래서 내가 먼저 시원스럽게 찰수도 있었지만 그동안 정이 있던터라 남자의 마지막 자존심이나 지켜줄려고 했더니 헤어지는 이유가 단지 내가 무서워서라니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한때는 좋아하고 또 좋아한다고 그 달콤한속삭임을 진심이라고 믿었었으니까...거울을 한참을 쳐다봐도 무섭기는 커녕 아주 가련하고 청순한 여학생만 보일뿐인데 도대체 내가 어디가 무섭다는 걸까??
나를 빤히 쳐다보는 친구에 얼굴이 심각하다.
"야 뭘 그렇게 빤히 쳐다봐? 내 얼굴에 뭐 묻었어?"
"모르겠니?? 상미야...넌 다 좋은데 너무 폭력적이야...야...지훈이 아직도 코피 안멈추고 있단다...우찔래?? 난리다...너 그러다 생매장당할까 무섭데이"
"생매장?? 설마...현미야 삽질 연습좀 해라...진짜 그럴수도 있겠다"
" 야 농담말구 지금 난리야..."
"내가 뭘 어쨌다고?"
"야 아무리 헤어지자고 해도 어떻게 쌍코피가 나도록 때릴수가 있어??"
"한대밖에 안때렸어...그냥 주먹에 힘이 들어갔나부지...야...나 오늘 기분 그렇다. 노래방 가자"
"하여튼 성격 독특해...독특해...연구대상이야...좋다고 난리일때가 엊그제다 엊그제...."
"세상에 남자는 많고 인생은 쿨하게...오케이??"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솔직히 맘이 편하지가 않다. 가슴 한켠이 허전하고 뭉클한게 하루종일 울리지 않는 핸드폰도 왠지 어색하고 아무리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가며 노래를 해도 풀리지 않는 뭔가가 가슴안에 가득한것 같다. 노래를 부르다 마이크를 던지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화가 나기도 하고 뭔가 괘씸하기도 하고 내가 뭘 그렇게 무섭고 잘못한게 있다고...곰곰히 생각해봤다.
지훈이에게 러브레터를 준 후배 녀석 원형탈모 한군데 만들어준거랑 지훈이에게 손수건 건네주던 선배가 조용히 나한테 뒷산으로 오라고 해서 조용히 따라갔더니 그 주위로 다른 선배들 모여서 내 얼굴에 침뱉길래 조금 거하게 끌어올려서 노란액체 한번 걸죽하게 건네주고 양호하게 이빨 두개 살짝 금만 가게 했을 뿐인데 그 외에는 아주 가벼운 터치 뿐이었는데 하지만 나도 그만큼 모진 수난을 감수해야 하는 아픔이 있었다구...억울했다 순간 그 억울함이 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올라 내 가슴속 화산을 분노하게 했다. 한번 끓어 오르는 화산은 터트려줘야 한다...강지훈 너 이대로 헤어져 주면 내가 억울하지...기대하시라...이별선언 제 2탄의 선물을 내일 돌려주마...
다음날 아니나 다를까 학교안은 우리의 이별소식으로 여기저기 말들이 많았다. 부잣집 아들과 체육관 관장딸이 만나서 하는 연애의 끝은 살벌했다라는 타이틀과 함께 여기저기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비웃음과 통쾌한듯한 표정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난 절대 기죽지 않는다...이게 내 인생 철학이니까...
점심때 조용히 주번을 불렀다. 5교시 체육시간을 빌어서 나에 마지막 선물을 줄 셈이다.
주번에게 교실 열쇠를 받고 지훈이에 가방에 나에 마지막 선물을 조심스럽게 넣어두었다.
체육시간이 끝난 6교시 전....
심각한듯 현미를 불렀다...그리고 놀란듯 현미의 표정이 변한다...현미의 단점인즉 장점은 모든일에 너무 심각하다는 것이다.
여기저기 소란스러운 말들이 퍼지고 나는 이내 조금은 심각한듯 미간을 찡그리며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6교시 시작종 소리가 울리고 수학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교실안이 산만하자 수학선생님이 출석부로 교탁을 치시고 무슨일인지 묻자 현미가 말을한다.
"선생님 상미 어제 체육관 회비 거둔걸 잃어버렸데요..."
현미에 저 심각한 말투와 호들갑스런 표정...아침에 일부러 회원수가 늘었다고 은근히 말하며 회비 거둔거라고 현미에게 오십만원을 보여줬다. 어제 통장에서 현금으로 찾아서 점심시간에 다시 통장입금한걸 현미는 모르고 있다.
"뭐?? 얼마나?? "
"오십만원이요...."
"넌 그 큰돈을 왜 가져온거야??"
"어제 아빠가 급한일이 계셔서 제가 갖고 있다 드린다는걸 잊어먹고 가방에 넣고 있다가..."
최대한 심각하고 최대한 어두운 표정을 리얼하게 해야 한다...이건 성격상 ab형의 나에겐 아주 쉬운 연기라고 할 수 있다.
벌써 수업시작 십분이 훌러덩 흘러버리고 이내 여기에서는 이런저런 말들이 많고 서로 누가 범인이고 누가 의심이 가는지 지목하고 난리가 아니다. 내심 이러다 정말 우애상할 일이 있지나 않은지 걱정스럽긴 하지만 큰일을 하기 위해선 언제나 희생이 따르는 법이다.
수학선생님에 표정이 일순간 굳어지더니 모두 책상위로 가방이 올라가고 하나둘씩 가방을 검사하는 선생님의 어두운 표정과 간혹가다 기분 상한듯 가방을 툭하고 올려놓고 지퍼도 열지 않고 궁시렁 하는 애들도 있다. 나는 사늘한 표정으로 지훈이를 바라봤다. 내심 나를 걱정하는 눈치인듯 하다. 내가 너무했나 싶을 정도로 그애 표정이 진심으로 걱정하는 눈치에 순간 당혹스럽고 또 내가 너무 했나 하고 생각했을때 이미 늦어버린 후회였다...맘이 약해진단건 때론 큰 화를 자초하는 지름길이다.
지훈이에 가방 지퍼가 열리는 순간 교실은 한순간 쥐죽은듯 조용해졌다.
선생님의 지휘봉 끝으로 뒤적거리다 뭔가가 지휘봉끝에 대롱 메달려 나오더니 순간 당황해하시는 선생님의 표정과 그보다 더 당황해하는 지훈이의 표정은 한편의 리얼영화를 보는듯했다.
지휘봉 끝에 매달려 나온건 촌스럽게 붉은 망사 브레지어...그것도 적어도 c컵은 무난히 소화할것 같은 사이즈에 가운데만 장미수가 놓여진 여자가 봐도 민망해 보였다. 점점 붉게 얼굴이 변하는 지훈이와 그걸 보고 어쩔줄 몰라하는 수학 선생님 교실은 이내 난리법석이 되고 말았다.
오십만원의 행방불명보다 지금 선생님의 눈앞에서 표정관리를 못하게 만드는 브레지어와 말문이 막힌듯 어쩔줄 몰라하는 지훈이의 표정은 그날 우리 학교의 최대의 사건이 되고 말았다.
선생님은 조용히 교실을 나가셨다 아마도 그때까지 총각이었던 선생님으로서도 감당하기는 조금 힘들지 않았나 싶었다.
수업이 끝나고 조용히 불러간 교무실에서 난 다시 한번 신중히 찾아보겠다고 말하고 제 잘못이니 애들탓하고 싶지 않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담임선생님 또한 그 소식을 들으셨는지 다른 말씀은 없으시고 찾으면 말해달라고 하시고는 그 이상 말씀이 없었다.
종례가 끝나고 모두 떠난 자리에 지훈이는 넋을 잃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생각해보면 참 순진한 녀석인데 부잣집 애 답지 않게 공부만 해온 녀석이라 아마 충격이 컸을텐데...자식...좀 안스럽지만 위로에 말이라도 한마디 건네고 싶어 조심스럽게 어깨에 손을 올리고 토닥거려주었다.
" 변태...촌스럽게 망사가 뭐니??"
돌
아서는 등뒤로 그애의 눈물이 책상위로 한방울 떨어지면서 짙게 퍼져가고 있었다.
하여튼 이 녀석은 다 좋은데 너무 약하다는게 흠이다. 좀더 강해질 필요가 있어....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