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 너는 나의 적! > - 3
이른새벽, 하다의 성화에 일찍 잠이 깬 미우는 하다와 식탁을 사이에 두고, 심각한 얼굴로 마주하고 있었다. 미우의 손에는 하다가 뽑은 종이가 들려져 있었다.
“이게 뭐니?”
“너 한글 몰라? 말 그대로, 우리가 앞으로 함께 생활할 생활수칙이야.. 읽어보고 불만 있으면, 의견 제시해봐.”
미우는 짝눈을 만들어서는 하다가 내민 A4용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 미우와 하다의 독립생활 수칙 5 계명]
1. 각자 개인의 공간 청소와 빨래는 각자가 알아서 한다
2. 식사 당번과 공동 공간 청소당번은 일주일씩 번갈아가며 한다.
(청소상태가 불량할 땐, 일주일 연장된다)
3. ‘전미우‘는 한달에 적어도,두가지의 요리를 배운다.
(양식,한식을 통틀어 각각 20가지씩 마스터한다)
4. 귀가시간은 저녁 10시로 제한한다. 피치못할 경우, 꼭, 본가에 연락을 취한다.
(외박은 외박도 공적인 일이 아니면 용납할 수 없다.)
5. 쓰레기 분리수거는 일주일씩 번갈아가며 한다.
6. 가족을 제외한 이성을 집에 들이면 절대로! 안된다.
미우는 한숨을 쉬며, 하다를 쳐다보았다.
“다른건, 다 알겠는데. 귀가시간은 왜? 정한거냐?”
“회장님 지시도 있으시고,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라도 너무 늦은 귀가는 문제가 있지. 독립이란게. 규칙이 없으면, 방종으로 변하기 마련이거든..”
“그리고, 가족을 제외한 이성을 집에 들이면 절!대!로! 안된다? 야! 장하다! 이건 나한테 해당사항이 없는 일인데, 굳이 규칙으로 꼽을 이유가 있냐?”
“그건 모를 일이고... 또, 다른 불만은?”
“없어... 그런데.. 4번 조항 어기면 어떻게 되는데?”
“그 즉시, 회장님께. 보고드릴 참이야..”
미우는 벙찐 얼굴로 하다를 쳐다보았다.
100%아군일 것이라고 믿고 있는 하다가 어떻게 저렇게 똑! 부러지게 할머니께 이른다는 얘기를 서슴없이 하는거지?
“너... 그거 진심이야?”
“어, 괜히 어설프게 커버해줄 생각도 없고, 10시 이후엔 불시에 회장님께서 전화 하실지도 모르고..”
“그래, 만약 어기게 되면 어떻게 되는거냐?”
“즉시, 본가로 귀가조치지..”
미우는 앞에 놓인 물을 한컵 쭈욱 들이켰다.
“하다, 너... 나 없는 자리에서, 할머니하고, 어디까지 밀담이 오간거야? 너,, 내 친구 맞긴하니?”
“사적으로는 니 친구지만, 공적으로는 니 보호자 대리인이거든! 알겠어?”
“야.. 그래도 너무한다.”
“어쨋든. 니가 그토록 원하던 독립생활을 지킬려면, 이 수칙들 꼭! 지켜라..! 그리고, 니가 가장 불만인것 같은 4번 조항은 니가 어길일이 없을 것 같아 걱정 안하는데.. 1,3,5번조항이 심히 걱정된다.”
“하하. 얘가 날 어떻게 보고.. 그런 건 걱정마라~”
“글쎄다. 니가 이제까지 집안일을 한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어쨌든. 잘해보자~”
“알았다.!”
미우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지만, 하다는 미우의 그 자신만만함이 심히 걱정이였다.
그렇게 미우의 힘겨운 독립!아니... 신부수업이 시작되었다.
물론, 미우는 그 자체를 신부수업이라고 생각지 않았지만..
그들이 독립생활을 시작한지. 벌써 2주가 다 되어가고 있었고, 그들이 세워놓은 수칙이란 것은....
미우는 힘들었다. 걱정말라며, 호언장담했던 미우였건만.. 손끝에 물한방울 묻히지 않아보았던 미우로서는 어떤 공부보다 힘들었다.
청소를 나름대로 하고나면, 계속되는 하다의 잔소리와, 깨끗하게 치워져 있지 않은 구석구석...
식사는... 뭐, 할 줄 아는 음식이 있어야, 그것도, 식사준비지, 매번, 즉석 밥에, 인스턴트 음식을 식탁위에 올려놓은 미우를 향해, 하다는 칼로리와, 영양성분 등을 들먹이며, 달달 볶아대었다.
요리를 배우는 것도, 뭘 쪼묵딱 거리면, 뚝딱! 음식이 되는 하다의 손놀림이 신기할 정도였다.
차라리, 경영수업이 백번 나을 것 같았다. 아니, 학위하나를 더 따는것이..
그리고, 개인공간의 청소... 미우의 방은 대략 개판이 되어가고 있었다..
“미우야,, 가스렌지 옆에 기름때 끼잖아.. 수세미 들었을 때, 그 주변도 한번 닦아줘야지...”
“전미우, 넌 속옷을 세탁기에 돌리는 사람이 어디있니? 와이어 다망가지고, 레이스 엉망 되잖아...”
“얘, 그건 따로 담아야지, 분리수거 몰라? 분리수거! 잘못하면, 벌금문다..”
“우리.. 제발 밥 같은 밥 좀 먹자...”
하다의 잔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도대체, 쟤가 단짝 친구는 맞긴 한건지... 아주 사감선생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얻은 독립생활인데... 불만을 표 할수는 없었다.
하다의 말 한마디로,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으니.. 집으로 돌아가 할머니의 압박에 회사에서 일을 하며, 가식적인 사람들 틈에서 그 가식을 밟으려 머리를 써야하는 것보다는. 하다의 잔소리가 백배는 나을듯 하니까...
“알았어.. 알았다구... 야! 적응기간이라는게 있다. 익술해 질때까지 기다려 주는 쎈스도 없냐? 너 요즘 보면, 꼭! 울 고딩때, 결벽증 있는 윤리 여선생같아.”
“그니까, 좀 잘해라.. 어쩜 그 나이먹도록, 집안일을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니? 쓰레기나 버리고 오세요~ 미우 공주님~~..”
“알았어요... 장하다 사감님~~ ”
미우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터덜터덜 거리며, 현관문을 나섰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이렇게 이중으로 적응기간이 필요할 줄은...
회사에서 역시 태봉과 계속 까칠한 관계를 유지 중이였고, 알게모르게, 그런 미우의 모습에. 아직까지 사무실 사람들과 제대로 친해지지도 못했기 때문이였다.
하다가 아무리 잔소리를 해대도, 미우는 반박을 할 수 없었다..
어쨌든 2년을 함께 살아야 하는데, 자신이 미흡한 부분을 하다에게 채워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언젠가 정말, 혼자 독립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잔소리가 심해도, 배워두는 편이 훨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였다. 미우가 엘리베이터 앞에 발길을 멈추고 있자, 잠시 뒤, 또, 누군가가, 자신의 옆으로 다가왔다.
“쓰레기 버리러 가나봐요?”
태봉이였다.
“네...”
미우는 보면 모르냐는 표정으로 짧고 간결하게 대답을 하고는 고개를 돌리고 서 있었다.
태봉은 미우가 들고 있는 쓰레기봉투를 보았다. 분리수거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
“저기요,, 그거, 그렇게 버리면, 안되요.”
“뭐가요?”
“캔은 따로 분리를 해야죠.”
미우는 원래가 감정도 좋지 않은 사람의 참견에 신경이 발끈했다.
“남이사.. 신경끄세요..”
“거참, 매일 볼 사인데. 인제 그만 합시다. 매번 까칠하게 뭐에요?”
“그러니까, 매일 볼 사인데.. 굳이 밖에서도 아는척 할 필요 있냐구요?”
“하! 이 여자 단단히 꼬였네..”
“뭐에요? 이 여자?”
“그래요. 말 한마디. 예쁘게 하는 걸 못보겠네, 정말..”
“에~~ 제가. 원래 그렇거든요..”
미우는 태봉의 말에 한껏 비아냥 거려주고는 마침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이상하게, 자꾸만 이 사람에게 까칠해지는 게 한편으론 심했나 싶다가도, 태봉이 자신에게 무슨 말만하면, 곧이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태봉도 어지간히 기분이 상했는지. 둘 사이엔 냉랭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쓰레기 분기수거장으로 분주히 발걸음을 옮겼다.
태봉은 능숙하고, 깔끔하게 분리수거를 해 두고, 뒤 돌아 섰지만. 미우는 각각 분리수거할 분류대로 표기되어있는 통과 자신이 들고 나온 쓰레기들을 번갈아보고 있었고, 음식물 쓰레기가 있는 쪽에서 나는 악취에 연식 구역질을 해대고 있었다. 그런 미우의 모습을 보던 태봉은 혀를 끌끌차며, 뒤돌아 걸어갔다.
‘어이구~ 누가 데려갈진 몰라도, 살림은 영~ 젬병인가 보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구만, 쯧쯧,,’
그렇게 혀를 끌끌차며, 몇 걸음 옮겼을 때였다. 경비 아저씨의 목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아니, 아가씨, 이걸 이렇게 버리면 어떻게 해? 그저께도 아가씨가 그랬지.. 분리수거 할 줄 몰라?”
“죄송합니다.. 어떻게.. 해야..”
“아니, 이걸 왜 못해?”
태봉은 피식 웃으며 지나칠려고 했지만.. 발걸음은 미우쪽으로 되돌아 가고 있었다.
태봉은 넉살좋게 웃으며, 경비아저씨를 달래며 돌려보냈다.
“아이, 아저씨.. 이 사람이 뭘, 잘 몰라서 그런가봐요,, 제가 제대로 해 놓을테니까.. 화 그만내세요..”
“아니, 무슨 여자가 이런 것도 못해? 새신랑인가? 고생 좀 하겠어!”
아직 낯이 많이 익지 않은데다가, 태봉이 ‘이 사람’이란 말에 부부로 착각한 모양이였다.
미우는 그 말에 발끈하며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태봉이 얼른 저지했다.
적잖이 까칠해 보이는 여자가, 자기보다 나이도 많은 경비아저씨에게 쌍씸지를 키고 싸우려 들면, 아파트단지 안이 소란스러워 질것 아닌가? 갑자기 이 아파트안 느긋한 저녁의 평화를 지켜야겠다는 영웅심리가 발동한 태봉이였다.
“아니..저.”
“예.. 아저씨. 걱정마시고, 일 보세요..예...”
경비아저씨가 뒷짐을 지고, 사라지자. 미우는 방금 전에 목구멍까지 올라오다만 말을 태봉에게 퍼부었다.
“아니, 그쪽이 무슨 상관이에요? 그리고, 왜, 오해하게 만들어요?”
“이봐요, 도와준 걸 다행으로 생각해요, 저 아저씨한테 한번 잔소리 듣기 시작하면, 최소 30분이에요.. 그리고, 그런 오해 받은 나 역시도 그쪽만큼이나 기분 안 좋으니까. 그만 떽떽거리고, 이거나 좀 도와요.”
태봉은 미우가 씩씩거리든 말든, 미우의 쓰레기 봉투를 뺏어들어서는 손수 분리수거를 해 주었다.
미우는 그런 태봉을 아주 어의 없게 내려다 보았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다 있을까? 사사건건... 참견하면서... 자신을 훤히 꿰뚫어보는 듯한 태봉의 눈빛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왠지 막연하게, 독립생활을 고집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여기 있는동안, 이 ‘차태봉’이란 사람과 계속 역여야 할것 같으니...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정말.. 나, 재수 옴붙은거 같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