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용중 일부 핵심증거 요약 (중복되는 부분도 있으니 이해 바랍니다.일부 내용은 알기쉽게 글을 약간 다듬었읍니다.)
1. 110층 건물 2개가 단지 비행기 충돌로 단 10초만에 와르르 물건 떨어지듯이 자유낙하 속도로 무너져 내릴수 있는가?--동영상을 보면 건물을 폭파해서 무너뜨리는 장면이 연상된다.단지 위층에서 부터 무너지는게 다를뿐이다.(일반적인 건물폭파공법은 아래층부터 붕괴됨)
2.오후 5시20분 오전에 무너진 세계무역센터와 두블럭 떨어져있고 항공기 공격도 받지 않았던 47층자리 부속건물까지 순식간에 와르를 붕괴됐다.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일이다.하루동안 세계 각국의 사람들 3천여명이 사망했다.
3.가장 견고한 재질의 블랙박스 4개가 사라졌는데 약한 종이로된 여권은 살아남았다? 이상하지 않은가?
4.단지 5m의 비행기 구멍에 견고한 110층 건물이 무너지는가?
5. 9/11 비행기 납치 당시 항공관리국 직원과 미국방공사령부원으로 추정되는 자들의 대화 내용.--<지금 요격기 띄우는 걸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들이 지금 다 나가고 없는데요..>
6. 19명의 비행기 납치범들이 4대의 미국 비행기를 납치해서 2시간 동안 미국 정부와 군대의 제재를 받지 않고 미국상공을 활보할수 있다는게 가능한 일인가? 미국은 이전에 승무원과 관제탑 간에 교신이 안됐을때 바로 전투기가 출동했던 일들이 여러번 있었다.그보다 더 위급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왜 그날은 유독 단 한대의 전투기도 출동하지 않았는가?
7. 9/11 테러 직전에 최소한 10개국 이상에서 테러에 관한 정보가 제공됐다는 사실과 9/11 사건 당일 아침 여러명의 군장성들이 민항기 탑승을 취소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8. 9/11 테러후 유가족들의 의문제기로 미국 정부 차원의 9/11테러조사위원회가 발족되서 몇년간 조사후 발표했지만 유가족들은 조사위의 발표가 거짓말이라며 더 큰 의혹을 갖게 됐다.
9.첫번째 납치된 비행기가 관제탑과 교신이 두절되고 항로를 이탈한뒤 여승무원이 조종실과 연락이 안된다는 정보까지 보내왔는데도 그 25분 동안 연방항공관리국과 북미 방공사령부는 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두번째 항공기가 납치되서 뉴욕으로 향하는 사실을 안 항공관리국이 북미 방공사령부에 알렸으나 그 후 20분 동안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결국 그 비행기는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충돌했다.
그후 세번째 항공기가 워싱턴 펜타곤(국방부)에 충돌했고 그뒤 네번째 항공기가 펜실바니아에 추락했다. 처음 비행기의 납치사실을 알고도 그 뒤 두시간 동안 납치된 4대의 비행기에 대해 왜 미군 전투기가 출동하지 않았는가? 미국은 24시간 내내 전투기가 출동할 태세가 갖춰져 있고 그 빠른 전투기로 단 10분 이내에 항공기를 추적할수 있었다. 즉 납치가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되면 즉시 전투기가 출동하는 표준행동절차가 유독 이날만은 지켜지지 않았다.
10. 47개의 거대한 철골기둥이 바닥에서부터 하늘로 치솟는 거대한 구조를 가진 110층 짜리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단지 비행기 충돌뒤 화재로 인해 순식간에 10초만에 물건이 떨어지는 자유낙하속도로 무너진다는게 있을수 있는 일인가?
브링엄 영 대학 물리학과의 스티븐 존스 교수가 증언하기를 <세계무역센터를 설계한 건축가들이 말하기를 이 건물들은 보잉707기의 다중 충돌에도 견딜수 있도록 설계 돼었다고 했읍니다.게다가 당시 화재의 온도는 그다지 높지 않아서 결코 강철을 녹일 정도는 아니었읍니다.>
항공기 연료로 인한 화재는 800도씨가 최대인데 강철기둥을 녹이려면 1500도씨의 온도가 필요하다.
9/11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세계무역센터의 청소부와 한국인 회사원,소방수들 모두 인터뷰에서 분명히 엄청난 폭발음을 여러번 들었다는 증언을 했다. 그리고 항공기 충돌이 없었던 다른 건물이 오후에 무너져 내린 이유가 무엇인가?
스티븐 존스 교수는 무너진 두개의 세계무역센터 건물과 7번 건물의 녹은 강철조각표면에서 폭발물의 일종인 테르밋이 검출됐다고 했다.
11. 9/11날 아침 초등학교 책읽기 행사에 참석했던 부시는 세계무역센터가 두번째 비행기 공격을 받았다는 보고를 받고도 10여분이나 그 자리에 있었다.국가위기 상황인데 이게 말이나 되는가? 그리고 부시는 대통령전용기에 올라타고 1시간 반동안 전투기의 호위도 받지 않고 비행했다.국가위기상황에서 이건 도저히 있을수 없는 일이다.
12. 9/11 당시 백악관의 테러담당보좌관 이었던 리처드 클라크는 청문회에서 2001년 초부터 알카에다의 테러위협을 부시에게 경고했지만 계속해서 묵살당했다고 증언했다.
2004년 4월 청문회에 불려나온 라이스(9/11당시 국가안보보좌관)는 9/11테러 직전 8월6일 알카에다의 테러위협에 관한 정보를 대통령에게 보고했냐는 상원의원의 추궁에 '그것은 모두 오래된 정보이고 새로운 위협이 전혀 아니다.그리고 미국내에 위협이 있다는 어떠한 구체적인 내용의 경고도 아니다'라며 보고하지 않았다고 거짓증언했다. 그러자 상원의원이 그 정보의 제목을 기억하느냐고 묻자 '빈 라덴이 미국 내 테러를 결정했다'로 기억한다고 말했다.이 말을 들은 방청객들 모두 탄식을 했다. 하지만 '대통령 비밀 보고' 문서가 드러나면서 라이스의 이 증언은 거짓이고 부시는 이미 빈 라덴의 테러를 알고 있었다는게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리고 부시는 9/11 테러에 대한 비공개 조사를 받는 자리에 따로따로 조사 받는게 당연한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체니 부통령과 함께 참석하기를 고집한다.입을 맞추기 위해.그후 주된 조사내용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원숭이 같은 얼굴로 얼버부리는 대답만 한다.
13. 2000년 대선 당시 가까스로 당선된 부시는 지지기반이 약한 상태로 출발했다.그리고 9개월 후에 9/11 테러가 터졌다.9/11을 계기로 신보수주의를 표방하는 네오콘 그룹이 미국 행정부 내에서 주도권을 갖게 됐다.
그런데 그들은 이미 몇년전 부터 강력한 미국재건을 핑계로 내세운 '새로운 진주만'사건을 애타게 원하고 있었다. 존 알바니즈(9/11 관련 독립영화 제작자)의 증언에 따르면 '보수파조직의 씽크탱크는 실제로 1990년대에 '미국의 새로운 세게 프로젝트'를 계획했다.거기엔 이라크 침공이나 아프카니스탄 침공 등 모든 목표들이 들어있었다.'새로운 진주만' 같은 급박한 사건이 없다면 국민이 이런 전략에 쉽게 동참하지 않을것이므로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새로운 진주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그리고 보수파가 집권하고 나서 1년도 안돼 정말로 진주만 같은 공습을 받게 됐다'고 증언했다.
14. 9/11 테러 4주후 네오콘의 계획대로 테러의 배후인 빈 라덴을 처치한다는 명분 아래 아프카니스탄 침공이 시작된다.하지만 부시는 오히려 빈 라덴의 탈출을 방관했다. 폴 톰슨(9.11 테러의 진실에 관한 다큐제작)의 증언에 따르면 '9.11 직후 토라보라에서 유명한 교전이 있었을때 파키스탄에는 토라보라에서 나올수 있는 출구가 두개 있었다.부시는 정보요원들로부터 출구 중 하나는 막히지 않았다는 것을 들었다.그리고 수주동안 빈 라덴을 포함한 알카에다 구성원들은 막히지 않은 그 출구로 계속 탈출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부시는 바로 테러와의 전쟁을 가속화 시키기 위한 강력한 법안을 통과 시켰다.즉 '애국법'은 정보기관이 영장 없이 도청과 개인정보를 열람할수 있도록 하는등 테러와의 전쟁을 빌미로 시민권을 제약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그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알카에다를 지원하고 대량살상무기를 숨겨왔다는 명분을 내세워 이라크를 침공해서 무고한 이라크인들을 학살하고 이라크의 석유를 장악한다.(2003.3) 이라크를 침공한 이 명분은 나중에 허위 명분 거짓말 이었다는게 드러난다.
리처드 클라크(당시 백악관 테러담당 보좌관)는 '대통령은 은밀하게 이라크가 배후임을 꼭 밝혀내라고 지시했다.왜냐하면 그전부터 이라크에 대해 준비 해온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증언했다.
이라크전에서 막대한 이득을 챙긴자들은 군사와 석유관련 기업들이며 부시는 이들과 깊숙히 관련되있다.예를들면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군수회사의 CEO 였다가 국방부로 들어가 지네 회사에서 군수품을 구입하는 있을수 없는 체계이며 그들은 자신들의 기업과 정부에 큰 이익을 내는 정당한 핑계거리를 찾을 것이며 그것이 바로 전쟁이다 라고 니콜라스 리바이스(9.11 테러 진상 규명 모임)는 증언했다.